"캬오!"

마침내 한 소리 기음과 함께 설아가 사도연과 설지가 앉아 있는 바로 앞에 당도했다. 그런데 그순간 설아가 함께 달고온 잉어들은 공교롭게도 초록이 두자성의 앞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차곡차곡 내려 놓듯이 떨어져 내리는 그 모습은 분명 두자성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이거 구워!'

"크하하! 그렇지 않아도 몇마리 더 잡아올려고 했는데 잘 됐구나. 초록아 뭐하냐? 어서 구워라"
"옙"

떨어져 내리는 잉어들을 보며 철무륵이 반색하자 두자성은 서둘러서 잉어를 다듬고 나뭇가지에 꿰어 굽기 시작했다. 한편 잉어를 두자성에게 던져준 설아는 지금 한참 사도연과 설지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무척 신이 난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초혜 언니 옷이 홀라당 녹아 버렸다는거야?"
"캬오!"
"꺄르르르"
"호호호"

사도연과 설지가 웃음을 터트리자 보고 있던 호걸개가 둘이 웃는 이유가 궁금한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게냐?"
"초혜언니 옷이 홀라당 녹아 버렸대요. 꺄르르르"
"응? 그게 무슨 말이냐?"

"호호호, 혜아가 덜렁대다가 천년오공의 독에 전신이 노출되었나봐요. 그 바람에 입고 있던 옷이 독액에 녹아버렸다는군요"

그 말에 잠시 흠칫했던 호걸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천년오공의 독에 노출되었다는 말을 하면서도 전혀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호! 그거 볼만하겠는걸"
"그렇죠? 꺄르르르"

사도연의 웃음 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었다. 한편 천년오공을 대동하고 막 숙영지로 들어서던 초혜는 사도연의 자지러지는 듯한 웃음 소리를 듣자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사도연의 웃음 소리에 정체모를 불길한 기운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해서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는 초혜였다. 불길한 기운의 정체를 서둘러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언니! 대숙! 할아버지들 저희 왔어요"
"어서와"
"그래, 수고했다."

"켈켈켈! 어서오너라"
"우와! 천년오공이 저렇게 생겼어?"

햇빛을 받은 검붉은 외골격이 빛을 발하고 있는 천년오공의 모습은 대단히 위압적이었다. 흉칙하게 생긴 외양도 외양이지만 마필 일고여덟 마리 정도를 합친 것 보다 더 크게 보이는 압도적인 외형에서 엄청난 위압감이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그런 천년오공을 지켜보던 몇몇은 불안한 마음을 담은 침음을 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달리 사도연은 천년오공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근데 다리가 이렇게나 많아? 언니! 다리가 몇개야?"
"모두 일흔두 개야"
"우와! 그렇게나 많아? 신발 다 신을려면 시간 무지하게 걸리겠다"

"뭐? 호호호"
"크하하하"
"켈켈켈"
"허허허"

천년오공을 마주하고서도 위압감을 느끼기는 커녕 요상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도연이었다.

"홍아! 안녕? 난 연이야, 사도연!"
"나도 반갑구나 홍아. 난 설지야"
"어?어? 잠깐, 잠깐, 누가 홍아야?"

사도연과 설지가 천년오공을 보고 홍아라고 부르자 깜짝 놀란 초혜가 두 사람을 제지했다. 그런 초혜에게서는 이번만은 호아, 백아, 용아와 같는 이름만은 절대로 안된다는 강력한 의지가 철철 흘러 넘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초혜의 의지는 사도연의 말 한마디에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홍아 맞는데? 봐봐! 몸에서 붉은 빛이 은은하게 감돌고 있잖아"
"안돼, 절대 안돼. 홍아가 뭐야, 홍아가"
"그럼 뭘로 부를려고?"

"좋은 이름 많잖아, 소교라던가..."
"소교?"

소교라는 이름을 입 안에서 중얼거리며 천년오공의 몸에 달려 있는 다리를 보던 사도연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홍아가 훨씬 예뻐. 설지 언니! 내 말이 맞지?"
"응! 홍아라는 이름이 훨씬 예쁘구나"
"거봐! 홍아! 얘는 링링이야! 앞으로 친하게 지내"

사도연이 품 속에 있던 링링과 홍아를 인사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초혜는 절망에 사로잡혀 울부짖었다.

"크아아, 안돼에~"

그런 초혜를 보면서 장난끼가 발동한 사도연이 초혜에게 슬쩍 다가가더니 입고 있는 장포를 확 열어젖혔다. 그 바람에 누더기가 된 옷이 일시지간이지만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었다가 사라졌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꺄악!"
"꺄르르르"
"죽을래?"

초혜의 장포 앞섶을 열어 젖히며 개구진 표정을 지었던 사도연이 손가락 여섯 개를 척하고 들이 밀었다. 물론 그런 모습에는 '나 이제 여섯 살'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중인들은 초혜의 낭패한 모습에 미소를 지으면서 못본 척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호호호! 그만하고 가서 옷이나 갈아 입어. 그 꼴로 계속 있을거야?"
"알았어. 갈아 입고 올게"

옷을 갈아 입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초혜의 등 뒤로 이런 중얼거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후기지수들이었다면 죄다 눈깔을 뽑아버렸을건데...'
.
낮은 중얼거림이긴 했으나 장내에 있던 이들 중에서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이가 없었다.

"혜아! 버릇없이 그게 무슨 말이니"
"응? 아! 헤헤헤, 할아버지들 죄송해요. 실언이예요. 실언!"

설지의 말에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초혜가 곧바로 몸을 돌려 용서를 구하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켈켈켈. 까딱 잘못했으면 오늘 이 거지 두 눈알이 사라질뻔 했구나"
"크하하하"
"허허허"

바로 그때 중인들의 웃음 소리를 뚫고 소홍의 목소리가 사도연을 향했다. 

"작은 아가씨!"
"응? 소홍 언니 왜?"
"이리오세요! 작은 아가씨도 옷 갈아 입으셔야죠"
"아! 알았어"

그렇게 말한 사도연이 소홍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기자 이제는 홍아라고 불리게 된 천년오공이 그 거대한 몸을 부드럽게 움직여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잘 보여야 자신이 조금 더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을지를 순식간에 깨달은 결과였다. 하지만 자신들의 바로 뒤에서 움직이는 홍아를 보며 소홍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커다랗고 흉칙하게 생긴 지네가 뒤를 따르니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에그머니나"

이에 소홍이 혼비백산하며 비명을 터트렸다. 그런 소홍을 보며 사도연이 말했다.

"괜찮아! 홍아는 안 물어"
"그,그런가요? 헌데 작은 아가씨는 무섭지 않으세요?"
"응? 뭐가? 홍아?"

"예!"
"무섭지 않은데. 헤헤"

그런 사도연을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 본 소홍이 뒤에서 따라 오는 홍아를 흘깃 한번 보고는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아마도 당분간은 적응이 잘 되지 않을 터였다.

"여기 이 옷으로 갈 입으세요"
"응! 어? 이건 뭐야?"
"호호, 어때요? 이쁘죠?"
"응! 우와 진짜 이쁘다"

사도연이 보면서 감탄을 터트리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오른쪽 옷소매였다. 거기에 날아갈 듯한 자태로 작은 제비 한 마리가 곱게 수놓아져 있었던 것이다.

"일전에 작은 아가씨께서 매화검수들의 옷소매에 수놓아진 매화를 부러워 하셨잖아요?"
"응!"
"호호, 그래서 생각 끝에 작은 아가씨 이름과 같은 제비를 수놓은거예요. 이제 부터 작은 아가씨 옷소매에는 모두 제비를 수놓아 드릴게요"

"우와! 고마워, 소홍 언니. 나 가서 자랑할래'
"예! 그렇게 하세요"
"소홍 언니! 고마워"

달음박질 치듯이 빠른 걸음을 옮기는 사도연의 등 뒤로 흘러 나오는 경쾌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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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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