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아와 함께 객잔 밖으로 달려나가는 사도연을 바라보던 철무륵이 몸을 돌린 설지에게 물었다.
 
"저 녀석 배고프다더니 어딜 가는게냐?"
"호호, 철숙부가 한번 맞춰봐"
"그래? 흠, 어디보자. 등봉현에서 연이의 관심을 끌만한게 뭐가 있나?"

그렇게 말하며 염두를 굴리기 시작한 철무륵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설지가 객잔의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미 다른 일행들은 어린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서 2층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한편 배고픈걸 참고 객잔을 빠져나온 사도연은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이채를 발했다. 그리고 곧바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저씨!"

걸음을 멈춘 사도연이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남루한 상의 여기저기에 지전을 붙이고 있던 중년 사내 하나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주었다.

"아저씨! 그거 얼마예요?"
"응? 아! 귀엽고 에쁜 소공녀 께서도 지전이랑 향을 사실려고?"
"예! 지전이랑 향이 필요해요"

소림사로 올라가는 향화객들을 상대로 지전과 향을 팔고 있는 천씨의 눈동자가 영활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방금 자신에게 말을 건 조그마한 계집아이는 비록 궁장이 아닌 경장 차림이긴 했어도 질 좋은 비단으로 옷을 해입은 것으로 보아 여염집이 아닌 제법 큰소리 치는 부잣집의 철모르는 아이가 분명해 보였던 것이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오랜 세월 동안 장사치로 살아온 천씨가 놓칠리 만무했다. 철없는 어린 계집아이라는 것이 조금 꺼림칙하긴 했지만 오늘 장사는 이번 한번의 거래로 마칠 생각이었다.

"하하! 소공녀 께서는 잘 오셨소. 그거 아시오? 내가 파는 지전과 향은 다른 사람들이 파는 것들 보다 더욱 효험이 좋다오"
"정말이요?"

그렇게 묻는 어린 게집아이의 까만 눈동자에서 반짝반짝하고 빛이 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천씨가 다시 한번 자신있게 말했다.

"그렇다오. 소림사의 방장 스님께서도 인정하신 지전과 향이라오"

물론 거짓말이었다. 천씨가 소림사의 방장 스님인 혜공 대사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단 한번에 불과했다. 그것도 멀리 떨어져서 무리를 지어 걸어가는 스님들을 바라보던 자신의 귀에 누군가가 소림사의 방장 스님이 선두에서 걸어가고 계시다는 얘기를 얼핏 듣고서야 알 수 있었던 사실이었다. 물론 그 같은 소리를 전해 듣고 다시 한번 승려들에게 시선을 주었지만 사람들이 방장 스님이라고 했던 승려의 가사자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우와! 진짜예요?"
"그렇다마다라니까 그러시네. 어디 얼마나 드릴까?"
"소원을 빌려면 얼마나 있어야 하는데요?"

사도연이 그렇게 말하자 천씨는 내심 옳거니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야, 많을 수록 좋지 않겠소. 그리하면 부처님 께서도 좋아하시고 그 정성을 무시하지 않을테니 말이오"

은신한 채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흑룡대원 중 하나가 기막혀 하다가 하마터면 천씨의 뒷통수를 후려갈길 뻔 했다. 방금 전에 황천으로 갈 뻔 했다가 구사일생한 줄도 모르고 천씨는 그 뻔뻔한 얼굴에 작위적인 미소를 지어보이며 은근한 시선으로 사도연을 바라 보았다. 그런 천씨의 심중으로는 '어서 전낭을 꺼내. 그리고 이것 전부 팔아줘'라는 생각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음, 음, 그래도 얼마나 사야할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도연을 바라보던 천씨가 기꺼이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소원을 대신 빌어주거나 혹은 명복을 빌어줄 사람이 얼마나 되오?"
"많아요"

사도연의 입에서 '많아요'라는 대답이 나오자 천씨는 마치 부처님이라도 마주한 듯 희열에 빠져들었다. 그런 천씨의 심중으로 흐르는 말은 '많다고? 얼쑤~ 흐흐흐'였다.

"그렇다면 많이 필요하겠구려. 내 싸게 해드릴 테니 여기 있는거 몽땅 사 가시겠소?"
"예? 이걸 전부요?"
"하하, 지전과 향 하나로 한 사람씩 소원을 빌어준다고 생각해보시오. 결코 많은게 아니라오"

"아! 헤헤. 그렇구나, 그럼 전부 주세요"
"하하하. 잘 생각하셨소. 어디 보자. 지전과 향이..."

팔다 남은 지전과 향을 세어 보는 천씨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부잣집의 철없는 어린 계집아이 덕분에 오늘 장사는 상당한 이익을 남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보자. 그러니까. 좋시다. 내 예쁘고 귀여운 소공녀를 위해서 선심 한번 쓰리다. 전부 다해서 은자 한 냥만 주시오"

어린아이를 상대로 사기 행각 비슷한 것을 벌이고 있는 천씨를 보며 흑룡대원들은 '선심같은 소리하고 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많을 수록 부처님 께서도 좋아하신다는 소리를 들은 사도연은 그에 혹하여 스스럼없이 품 속에서 전낭을 꺼내 은자 한 냥을 천씨에게 건넸다.

한편 그런 사도연과 천씨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던 인근의 다른 상인들도 때는 이때다 싶었던지 일제히 사도연을 둘러싸고 지전과 향을 팔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등봉객잔의 입구로 돌아온 사도연은 양팔 가득 지전과 향을 안고 있었다. 물론 설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도연이 미처 들지 못한 지전과 향을 나눠 들고 있었던 것이다.

"어이쿠! 아가씨 그게 다 뭡니까?"

맨 처음 설지 일행을 안내했던 어린 점소이가 사도연이 품속 가득히 지전과 향을 안고 돌아오자 의아한 표정을 하며 물었다.

"헤헤, 지전과 향이예요"

그렇게 대답하는 사도연을 보며 어린 좀소이는 '그걸 묻는게 아니잖아'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냥 모른 척하고 일행이 있는 2층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한편 객잔 2층의 중앙에 자리한 탁자에 앉아서 주문한 요리를 기다리고 있던 설지는 사도연의 기척을 감지하고 계단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런데 어린 점소이를 따라서 올라온 사도연의 모습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전과 향을 사러 간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많아도 너무 많은 지전과 향을 안고 있는 사도연의 모습이 의아했던 것이다. 물론 설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일행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라? 지전과 향이 왜 그리 많아? 그거 전부 산거야?"
"응! 아저씨들이 씨게 팔았어"
"싸게 팔았다고?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초혜가 사도연으로 부터 지전과 향을 건네 받아서 탁자 위에 내려 놓았다.

"연아! 이게 다 뭐니?"
"응! 헤헤, 지전과 향은 많을 수록 좋다고 아저씨들이 그랬어. 그러면 부처님도 소원을 더 잘 들어주신데"
"아미타불"

한쪽 옆에서 듣고 있던 헤명 대사의 입에서 나직한 불호가 흘러나왔다. 빌어먹을 상인들이 소신녀가 어리다고 사기를 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도연을 바라보는 설지의 손은 잘했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그래! 잘 했구나. 우리 연이 배고프다고 했는데 뭐 먹을거야?"
"음! 소면하고..."

사도연이 주문을 하는 사이 흑룡대원으로 부터 자초지종을 전음으로 전해들은 초혜가 슬그머니 일어섰다. 그리고 조용히 몸을 움직여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초혜에게 설지가 전음을 날렸다.

'너무 심하게 하지마'
'염려마'

잠시 후 등봉객잔 밖으로 나온 초혜는 희희낙락하는 상인들을 발견하고 빛살 처럼 다가가서 상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멱살을 쥐고 탈탈 털기 시작했다. 가벼운 움직임이었지만 내력이 조금 깃든 손속에 상인들은 심한 어지러움증을 느끼고 풀썩 풀썩 쓰러졌다.

"이 사람들이 감히 성수의가 소신녀에게 사기를 쳐?"

초혜의 분노에 찬 일갈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귀로 쏙쏙 파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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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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