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마차 내부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마차 바닥에는 하얀 짐승의 가죽이 두텁게 깔려 있었고 그 위로는 한 여인이 누워 있었다. 가슴이 조금씩 오르내리지만 않는다면 죽은 것으로 착각할 만큼 전혀 미동조차 없는 여인의 곁으로는 시비로 보이는 또 다른 여인 하나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워있는 여인의 미모가 심상치 않았다. 병색이 완염함에도 불구하고 초혜 자신과 견주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을 만큼 눈부신 미모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햐! 설지 언니 만큼 예쁜 여인이 또 있었네"

누워 있는 여인의 얼굴을 슬쩍 훑어본 초혜가 저절로 감탄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한편 마차의 문이 갑작스럽게 열리자 시비로 보이는 여인은 깜짝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초혜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허, 매향아! 그리 놀랄거 없다. 이 분 소저는 성수의가의 초혜 여협이시다"
"아! 실례 했습니다. 소궁주님을 모시고 있는 시비인 매향이라고 하옵니다. 명성 높은 소요선자를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시비라고는 하나 빠른 상황 판단과 함께 허트러짐 없는 정중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오는 매향을 바라보는 초혜의 눈에 일시지간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몸 주위로 흐르는 기의 흐름으로 미루어 볼 때 무공 까지 익힌 것이 틀립없는 매형이 결코 평범한 시비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초혜의 기척을 눈치챘음인지 빙궁 수호대의 대주인 단유영이 부언했다.

"매향이는 어릴 때 부터 소궁주님과 함께 성장한 아이입니다. 대단히 총명하여 소궁주님께서 친인 처럼 여기시는 아이이기도 합니다."
"과찬이세요"

단유영의 부언에 볼을 살짝 붉히며 머리를 숙이는 매향이었다. 그런 매향을 보며 미소를 지어보인 초혜가 말을 이었다.  

"호호호, 어쩐지... 놀라게 했다면 죄송해요. 초혜라고 합니다. 제가 잠시 소궁주를 살펴보려 하는데 괜찮겠죠?"
"물론이예요. 어서 들어오세요"
"호호, 그럼 잠시 실례할게요"

마차 안으로 들어서는 초혜의 눈이 바닥에 깔린 짐승의 가죽으로 먼저 향했다. 신기하게도 온통 하얀색인 가죽의 크기가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마차 바닥 전체에 하얀 짐승 가죽이 깔려 있었는데 이음새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한 짐승에게서 나온 가죽인 것으로 보였다.

"이야! 무슨 짐승이길래 이렇게 큰거야? 이거 무슨 가죽인가요?"
"처음 보시나 보군요. 북해에서 잡은 곰 가죽이랍니다."
"곰 가죽이라고요? 호! 북해는 곰도 하얀색이구나"
"맞아요. 북해에는 곰 뿐만 아니라 여우도 온통 하얀털로 자신을 감추고 다닌답니다"
"하얀 여우라고요?"

초혜의 눈이 반짝거렸다. 흰여우 가죽으로 목도리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헌데 초혜는 모르고 있었지만 북해 빙궁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었다. 당연히 소궁주 일행들도 흰여우 가죽 목도리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중원으로 들어오면서 기후가 따뜻해지자 목에서 풀어 놓았을 뿐인 것이다.

"소요선자 께서는 흰여우 가죽에 관심이 있으신가 봅니다?"
"이르다 뿐이겠어요? 혹시 구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예요. 여기 마차 지붕에도 여러 장이 실려 있거든요."
"아! 오호호홋"

어딘지 모르게 살짝 경박한 웃음 소리가 초혜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흰여우 목도리를 하고 있는 자신의 우아한 모습을 떠올린 까닭이다. 그런 초혜를 보며 매향이 쇄기를 박았다.

"제가 가실 때 몇 장 챙겨 드리겠습니다"
"오호호호. 고마워요"

흰여우 가죽에 온통 정신을 뺏긴 초혜를 바라보던 단유영이 난감한 표정을 떠올렸다. 지금 그깟 흰여우 가죽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단유영이 그러거나 말거나 매향의 손 까지 꼬옥 잡고 해롱거리고 있는 초혜였다. 이에 단유영이 나직한 기척과 함께 초혜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크흠! 초소저!"
"아! 이런 내 정신 좀 봐. 호호호, 죄송해요"

그제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초혜가 단유영에게 사과했다.

"흠흠, 아니외다."
"호호호"

그제서야 초혜가 어색한 웃음과 함께 빙궁의 소궁주인 설수련의 몸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단유영이 나직하게 한 숨을 흘렸다.

"어디보자. 예쁜 소궁주 언니의 몸 상태가..."

소궁주의 몸으로 손을 가져가는 것과 함께 갑자기 초혜의 기도가 확 바뀌었다. 일견하기에 경박한 웃음 까지 터트렸던 조금 전의 초혜는 지금 마차 안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의 몸을 타고 흐르는 기의 흐름에서 숙연함 마저 감지되고 있었기에 지켜보는 매향과 단유영이 흠칫할 정도였다. 소요선자 초혜라는 이름이 결코 허명이 아님을 지금 두 사람은 실감하고 있었다.

한편 설수련의 손을 잡고 그녀의 내부를 살피고 있던 초혜의 안색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로 미루어 소궁주의 몸 상태가 최악임을 매향과 단유영은 짐작할 수 있었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초혜를 지켜봐야만 했다. 일각이 넘는 시간 동안 설수련의 몸에 기를 흘려넣으며 살펴보던 초혜가 마침내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나며 긴 숨을 토해냈다.

"휴~"
"어,어때요?"
"어떻소이까?"

매향과 단유영이 거의 동시에 물어왔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입가에 흐릿한 미소를 베어문 초혜가 입을 열었다.

"엉망이예요"
"예?"
"무엇보다 음한지기가 과도한 것이 문제인데 혹여 소궁주가 빙정이라도 복용했었던가요?"

"그렇소이다. 양기를 보조할  영약이 없는 상태에서는 빙백신공이 십이성에 도달해야만 빙정을 복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빙정의 음한지기에 몸이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빙백신공을 대성한 소궁주 께서 빙정을 복용한 후 자신의 내력으로 돌리는 과정에서 반도들에게 암습당하여 이렇게 되신 겁니다."
"그랬었군요."
"허면 방도가 없습니까?"

"예? 아닌데요"
"그 말씀은..."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이죠"

"오! 진정 진정 주화입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씀이시오?"
"그렇다니까요. 야! 도마뱀! 아참! 여기 없지"

이야기를 하다말고 갑자기 도마뱀을 찾는 초혜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매향과 단유영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심중을 눈치챈 초혜가 의문을 풀어주었다.

"호호, 본가에 도마뱀이라고 불리는 애기 용이 한 마리 있거든요. 소신녀랑 딱 붙어 다니는 녀석이죠"
"아!"
"하여튼 마차 돌리세요."

"예?"
"등봉객잔으로 돌아가자고요. 거기 가야 소궁주를 치료할 수 있으니까요"
"아,알겠소이다"

대답한 단유영이 황급히 일행들에게 마차를 돌리도록 했다.

"초록이 아저씨! 타세요"
"아닙니다요. 소인은 그냥 경공으로 가겠습니다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마차 놔두고 쓸데없이 힘빼지 마시고 얼른 타세요. 그래도 되죠?"

초혜의 마지막 말은 단유영과 매향에게 묻는 말이었다. 이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제서야 두자성이 마지 못한 듯 마차에 오르고 문이 닫히기 무섭게 마차는 빠른 속도로 등봉객잔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창작 연재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협 연재] 성수의가 315  (0) 2017.07.22
[무협 연재] 성수의가 314  (0) 2017.07.15
[무협 연재] 성수의가 313  (0) 2017.07.08
[무협 연재] 성수의가 312  (0) 2017.07.01
[무협 연재] 성수의가 311  (0) 2017.06.24
[무협 연재] 성수의가 310  (0) 2017.06.17
Posted by 까만자전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