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건"

주머니 속의 내용물을  확인한 혜공 대사가 당황스럽다는 듯 말 까지 더듬고 있었다. 평소 제자들을 대함에 있어서 늘 여유가 넘쳐 흘렀던 것을 생각하면 다소 뜻밖의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용물의 정체를 알게 되면 소림사의 제자들 누구라도 똑 같은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혜공 대사가 풀어헤친 비단 주머니 속에는 향기 만으로도 심신이 평안해지는 커다란 환단 열 개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고의 영약이라고 뭇사람들이 지칭하는 대환단이었다. 비단 주머니 속 물건의 정체가 대환단임을 확인한 혜공 대사가 또 다른 비단 주머니를 재빨리 풀어 헤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환단 보다는 작지만 역시 심신을 평안하게 만들어 주는 향기와 함께 소환단 오십여 알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대환단과 얼추 비슷하게 만들어봤습니다. 그건 소환단이예요."
"아,아미타불"
"그거 만든다고 내가 피똥을 싼걸 생각하면... 어휴!"

혜공 대사가 놀라는 것을 보고 있던 초혜가 몸까지 한 차례 부르르 떨면서 이야기 했다. 그러자 그런 초혜를 보고 있던 사도연이 눈을 반짝이며 설지에게 고자질했다.

"언니야! 초혜 언니가 방금 피똥이라고 했어"

딱!

초혜의 머리 쪽에서 터져나온 경쾌한 타격음이 방장실을 울렸다. 사도연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초혜의 머리 쪽을 향해 설지의 섬섬옥수가 움직인 결과였다.

"크윽! 언닛, 이거 지금 암습이지?"
"조신하게 말하라고 했지, 피똥이 뭐니? 피똥이?"
"맞아! 피똥이 아니라 혈변이라고 하는거야"

고소하다는 듯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은 사도연이 말하고 있었다. 그런 사도연의 머리를 설지가 귀엽다는 듯 한 차례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뭐? 압습? 암습 같은 소리하네. 이것아 정말 암습 한번 당해볼래?"
"아,아니, 아니"
"꺄르르"
"웃지마! 죽는다"

머리를 벅벅 문지르는 초혜의 눈 앞으로 사도연의 작은 손가락 여섯 개가 순식간에 떠올랐다가 사라져 갔다. 한편 뜻밖의 선물을 받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던 혜공 대사는 방장실이 시끌벅적하도록 스스럼없이 행동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대수롭지 않은 것 처럼 가볍게 행동하고 있지만 대환단과 소환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난한 작업이 필요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미타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구려"
"아니예요. 아! 죄송해요. 저희가 너무 시끄럽게 했죠?"
"허허, 아니외다. 이리 귀한 선물을 주셨는데 조금 시끄럽다 한들 누가 뭐라고 하겠소이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허허허, 아미타불!"

쓸데없이 길게 말을 늘어 놓으면서 고마움을 표하는 대신 따뜻한 웃음으로 고마운 마음을 대신하는 혜공 대사였다. 그리고 그런 혜공 대사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는 설지도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대사님, 그리고 긴히 논의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장경각을 이용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이용하시면 됩니다"
"호호! 그런게 아니고 진법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진법이라 하시면..."
"작금의 마교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것은 보고를 받으셨을거예요"
"그렇소이다"
"해서 드리는 말씀이예요. 제 생각에는 소림사를..."

설지의 긴 설명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교의 수상한 움직임과 중소문파에서 벌어졌던 많은 변고들이 모두 강호 무림이 위기에 직면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거기에 대한 대비책으로 설지는 소림사를 최후의 보루로 만들 생각이었다. 절대로 파훼되지 않는 진법을 설치하여 소림사 전체를 완벽하게 보호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때마침 빙하석균을 발견함으로써 소림사 근처에 극음빙맥이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되기에 진법 설치에 더없는 조건이 구비되어 있는 셈이기도 했다. 물론 그 전에 극음빙맥을 먼저 찾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알겠소이다. 신녀께 부탁드리겠소이다"
"예. 대사님! 허면 내일 부터 설치를 시작하겠습니다"
"아미타불!"

설지의 긴 설명이 끝나고 혜공 대사가 동의함으로써 소림사 전체를 감싸는 진법 설치가 진행되려 하고 있었다. 한편 혜공 대사와 설지가 길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심심해진 사도연은 품속에서 꼼지락거리는 링링과 함께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슬슬 졸음이 밀려올 때쯤 되어서야 비로소 두 사람의 대화가 마무리 되었다.

"언니! 끝났어?"
"응? 응! 호호호, 우리 연이가 지루했나 보구나"
"응! 헤헤. 그럼 우리 나가서 향 피우자"

"향?"
"응! 아까 내가 사온거말야'
"아! 그래. 그러자꾸나. 대사님! 허면 그렇게 알고 저희는 일어서겠습니다"

"아미타불. 그러시지요. 헌데 향이라 하시면?"
"아! 연이가 향화를 하고 싶어 하네요"
"아미타불"

그순간 혜공 대사의 머리 속으로 하나의 생각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바로 사도세가의 멸문이었다. 아마도 소신녀는 멸문한 사도세가를 위해서 향화를 하려는 것이리라. 거기 까지 생각이 미친 혜공 대사가 비난 주머니들을 갈무리한 후 목탁을 들고 일어섰다.

"아미타불! 아무래도 빈승이 천도재를 주관해야 할 것 같소이다"
"예? 하지만..."
"허허허, 아니외다. 중놈이 할일이란게 그런 것 밖에 더 있겠소이까? 부담갖지 말고 따르시구려"
"허면 그리하겠습니다"

설지와 일행이 정중하게 합장하고 혜공 대사의 뒤를 따라서 대웅전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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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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