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설지 덕분에 진귀한 구경을 했던 향화객들은 일단의 소동이 끝난 후 대웅전 앞마당의 한 켠에 설치된 십여 개의 커다란 향로에서 지전을 태운다든가 향을 피우면서 부처님의 가호를 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십팔나한들이 일제히 몰려 오는가 싶더니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향로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주위를 물리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고압적인 태도가 아니라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향로를 비우는 중이었다. 이에 향화객들은 합당한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하며 다른 향로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십팔나한들이 그렇게 향로 하나를 골라서 향화객들의 접근을 불허하고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소림사의 십팔나한들은 특별한 임무가 주어지지 않는한 방장인 혜공 대사의 주변을 지키는 것이 주임무였다. 그러다 보니 혜명 대사와 함께 소림사로 복귀한 공각 등의 십팔나한들은 곧바로 자신들의 임무인 소림사 방장을 지키기 위해 방장실 근처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십팔나한들의 대사형이며 수좌승인 공각에게 혜공 대사가 방장실을 나서는 것과 동시에 전음으로 향로 하나를 비우게 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비워진 향로 하나에서 혜공 대사의 주도로 천도재가 치러지기 시작했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개경계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급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

사도연이 지전을 태우고 향을 사르는 동안 혜공 대사는 목탁을 두드리며 천수경을 읊고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에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도리라도 담겨 있는 듯 했다. 혜공 대사의 나이답지 않은 낭랑한 목소리와 청아하게 까지 울려퍼지는 목탁 소리가 향화객들의 심신을 맑게 어루만져 주는 것은 물론이고 대웅전 앞마당을 넘어서 숭산 전체로 속되지 않은 기운을 실어 나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향화객들은 저절로 경건한 마음이 일어 혜공 대사를 향해 합장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데 사도연이 설지의 도움을 받아서 향화를 마무리할 즈음 벌어진 일로 인해 대웅전 앞마당은 순식간에 울음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가지고 있던 모든 지전과 향을 태우고 살랐던 사도연이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설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언니! 엄마, 아빠 얼굴이 생각안나"

그 말을 들은 설지가 순간 흠칫했다. 하루 아침에 부모를 잃은 것은 설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지금 사도연이 겪고 있을 혼란스러움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아울러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질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이에 설지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사도연을 꼬옥 안아 주었다. 그러자 결국 사도연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으아앙!'

그런 사도연의 등을 토닥여 주면서 설지가 나직히 말하고 있었다.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어도 돼. 엄마하고 아빠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아도 괜찮아. 연이 대신 엄마, 아빠가 우리 연이를 기억하고 계실거니까"
"훌쩍, 정말?"
"그럼! 우리 연이 가슴 속에서 늘 지켜보고 계실거야"

"가슴 속에서?"
"응! 우리 연이 가슴 속에는 엄마하고 아빠가 머무르고 계셔. 그리고 먼 훗날이 되면 다시 두 분을 만날 수 있을거야"
"훌쩍, 먼 훗날에?"
"그래. 그러니까 지금은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어"

그렇게 말하면서 사도연의 등을 토닥이는 설지의 모습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강호의 소문을 통해서 저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향화객들이 사도연의 비통함에 전이라도 된 듯이 여기저기서 나직히 울먹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대부분의 향화객들이 눈물을 찍어내기 시작했고 사도연을 측은하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그날의 천도재는 마무리가 되었다.

다음날 아침!
앳되지만 낭랑한 기합성이 지객당 앞마당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객당 앞마당을 이리저리 오가는 작은 인영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참으로 특이했다. 기합성으로 봐서는 무공 수련 같았으나 정작 그 움직임은 무공 수련이라기 보다는 춤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물론 그 처럼 요상한 움직임과 낭랑한 기합성의 주인공은 설아와 함께 하는 사도연이었다. 어제 오후에 대웅전 앞마당을 울음바다로 만들어버렸던 사도연이 지금은 또 다른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얍! 끄읕! 헤헤. 다했다. 언니! 밥먹으러 가자"
"캬오"
"호호, 수고했어"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설지에게 뽀르르 달려간 사도연이 그런 설지의 손을 잡고 재촉했다.

"밥! 밥! 밥!"
"호호호"

사도연의 재촉에 웃음을 터트린 설지가 사도연의 손을 잡고 공양간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두 사람의 뒤로는 정갈한 모습의 진소청과 연신 하품을 해대는 초혜가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뒤를 따르는 초혜의 얼굴에는 마뜩잖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설지 언니! 오늘 아침 반찬은 뭐래?"
"글쎄?"
"이거, 이거, 한 동안 풀만 먹고 살아야 하는거야?"
"어쩌겠니"
"아! 미치겠다"

그러자 설지와 초혜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사도연도 끼어들었다.
 
"나도 풀은 싫어"
"그렇지? 우리 귀염둥이가 이럴 때는 이 언니의 마음을 알아준단 말이야"

그렇게 쓸데없는 투정을 부리며 공양간 앞에 당도한 일행은 초록이 두자성을 만날 수 있었다.

"초록이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이쿠, 작은 아가씨! 잘 주무셨습니까요?"
"예! 헤헤. 언니 나 먼저 들어갈게"

두자성과 인사를 나눈 사도연이 먼저 공양간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던 초혜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보여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록이 아저씨! 대숙은요?"
"그게..."
"벌써 드시고 가신거예요"

"그게 아니라 지객당 옆의 소연무장으로 가셨습니다"
"소연무장?"
"예! 거기서 표국 식구들과 아침드신다고..."
"아!"

초혜의 탄성이 터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사도연의 비명성이 공양간 안쪽에서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 풀독이다"

그 소란스러움에 이목이 집중되는 순간 공양간 안으로 사라졌던 사도연이 빠르게 설지 앞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으아아아! 언니야, 나 풀독 올랐어"
"뭐?"
"봐봐"

그렇게 말하면서 오른손 검지를 내미는 사도연이었다. 물론 중독 증상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단지 작은 소채 찌꺼기 하나가 사도연의 오른손 검지에 달라 붙어 있을 뿐이었다.

"풀독 아닌데?"
"아니야?"
"응!"

"이상하다. 막 아픈데"
"호호호"
"진짜야. 아! 그리고 산처럼 쌓인 소채 옆에는 풀떼기 귀신도 있었어"

잡곡의 가루로 풀처럼 쑨 죽인 풀떼기가 졸지에 귀신으로 화하는 순간이었다.

"저런, 풀떼기 귀신도 있었어?"
"응! 그러니까 난 표국 아저씨들이랑 아침 먹을래. 그래도 되지?"
"호호호, 그렇게 해"
"헤헤, 이쪽이었지"

사도연이 소연무장이 있는 방향을 가늠하고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초혜가 입을 열었다.

"우리 귀염둥이 혼자서 가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언니가 데려다줄게"

속셈이 뻔히 보이는 친절을 초혜가 베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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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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