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지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막 식당 앞에 도착할 즈음에는 이미 식당안에서 발생한 파안대소와 시끌벅적한 소음들이 식당 문턱을 넘나들고 있었다. 설지와 명화 공주, 그리고 나운영이 식당 안으로 들어서며 주위를 둘러 보니 식당 안에는 소림의 계율 원주 혜명 대사와 소림 십팔나한을 비롯하여 녹림 총표파자 철무륵과 녹림 이십사절객, 그리고 무당 검선 일성도장 등 대부분의 인물들이 조금은 들뜬 듯한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한쪽 구석에는 한무리의 거지들이 자리를 차고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개방의 육결 제자인 취걸개 방융과 귀주성의 귀양 개방 분타에 속해있는 개방 식솔들 중 일부였다. 식당 안을 살펴보던 설지의 눈에 개방의 무리들이 들어오자 반짝하고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이내 쪼르르 거지들이 모여 앉은 탁자로 달려간 설지는 반짝이는 눈망울로 거지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 설지의 모습을 본 취걸개가 빙그레 미소지으며 설지를 향해 말을 건넸다.
"설지야! 왜 그러느냐?"
"응? 응! 처음 보는 거지 아저씨들이 있어서 그래요!"
"그렇더냐! 설지 네가 처음 보는 거지들도 있었더냐?"
"그럼요! 이 아저씨랑, 저기 저 아저씨, 그리고 저쪽 구석의 저 아저씨도 처음 보는걸요!"

말을 하면서 설지가 가리킨 세 사람은 언뜻 보기에도 꽤 대단한 기도를 풍기는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취걸개와 함께 개방 사룡으로 꼽히는 인물들로 이번 성수의가의 중원 출행에 함께 하기 위해 개방 총단에서 급파된 인물들이었다. 소림과 녹림에서 십팔나한과 녹림 이십사절객을 파견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개방주 팔선개 취타는 부랴 부랴 자신의 사제인 취걸개에게 연통을 넣어 의견을 나누었고 마침내 개방 사룡을 모두 성수의가의 중원 출행에 참가시키기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설지의 말을 듣고 난 취걸개는 자신을 제외한 개방 사룡을 설지에게 인사시켜 주었다.
"그렇구나! 그럼 인사나누거라. 여기 이 친구는 풍운개라 하고 저 친구는 무무개, 그리고 저기 구석의 저 친구는 취팔개라고 한단다. 저 세명과 함께 나까지 네명을 사람들이 개방 사룡이라고 부른단다."
"아! 그 개방 사룡! 응! 응! 들어봤어."
손바닥을 짝하고 마주치며 대답하는 설지의 말에 흡족한 미소를 띄우던 취걸개는 이내 생각이 난듯 설지에게 물었다.
"그래! 사람들이 무어라고 하더냐?"
"응! 응! 개방에는 제일 잘 나가는 땅거지 네명이 있는데 그들을 보고 개방 사토룡이라고 부른데."

설지의 이 말이 끝나는 순간 식당 안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배를 잡고 웃어대는 사람들과 반대로 취걸개를 비롯한 개방 식구들은 똥 씹은듯한 표정으로 식당 천장을 올려다 보는 거지, 웃음을 애써 참느라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딴청을 피우는 거지, 괜히 식탁 아래로 고개를 숙여 무언가 찾는 흉내를 내는 거지 등으로 나누어지며 제각각 다른 장면을 연출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이 말을 끝으로 설지는 더 이상 거지들에게는 용무가 없다는 듯 이미 백아와 호아가 위를 점령하고 앉아 있는 탁자 쪽으로 걸음을 옮겨가고 있었다.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 식사가 끝나자 이미 출행 준비가 끝난 마차들과 성수의가 식솔들은 가주의 출행 명령을 기다리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십여대나 되는 긴 행렬을 이루고 있는 마차들 근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마차들은 성수의가의 중원 출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비롯하여 약초를 실은 마차, 서책이 가득 실려 있는 마차, 생필품과 식기 등이 실려 있는 마차 등으로 구분이 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마차들 틈에 기이한 마차 하나가 포함되어 있었다.

오리와 닭이 이층으로 나누어진 커다란 우리 속에 잔뜩 들어 있는 마차 한대가 있었던 것이다. 때 마침 식사를 끝내고 나오던 설지의 눈에 이 마차가 들어오자 궁금함을 참지 못한 설지가 냉큼 할머니를 향해 질문을 해댔다.
"할머니. 저 오리와 닭은 뭐예요?"
"응? 아, 저 마차 말이구나. 호호호, 뭐긴 뭐냐 이 녀석아. 백아와 호아도 먹어야 하지 않겠니?"
"아! 그렇구나. 근데, 우와, 저 많은 오리와 닭을 보니 보기만 해도 배부르겠다."

설지가 할머니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성수신의 나운학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설지에게 다가왔다.
"설지야! 준비는 다 했느냐?"
"응? 응! 숙부님. 준비 끝. 이제 가면 돼."
"하하! 녀석. 자 이건 이제 부터 출행이 끝나고 의가로 돌아올때 까지 네가 맡거라."
성수신의 나운학은 말을 하며 곱게 접힌 검은 색의 천 대여섯개를 설지의 손에 들려 주었다. 그리고 다른 손에 들고 있던 긴 장대도 함께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다.

"설지야! 이 깃발들은 성상께서 우리 의가에 하사하신 의가를 상징하는 깃발이란다. 우리 의가의 얼굴인 셈이니까 출행 내내 잘 간직하는 것은 물론이고 늘 의가의 행렬 보다 한발 먼저 목적지에 들어서야 한다는 것도 잊으면 안된단다."
"응? 응? 그럼 내가 행렬의 선두에서 제일 먼저 가야 되는 거야?"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행렬이 출발할 때와 멈출때만 네가 앞에서 깃발을 들도록 하거라. 할수 있지?"
"응! 응! 알았어, 알았어. 걱정마! 헤헤."

귀여운 웃음을 흘린 설지가 작은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무언가를 찾는듯 하더니 이내 크게 소리질렀다.
"밍밍! 밍밍! 어딨어? 빨리 안오면 두고 간다!"
설지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마차 뒷편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던 밍밍이 화들짝 놀란듯 쏜살같이 설지의 앞으로 달려왔다. 설지는 달려온 밍밍의 콧등을 한차례 쓸어준 후 등에 얹혀져 있는 커다란 안장 겸 주머니에 깃발들을 챙겨 넣었다. 그리고 따로 빼두었던 깃발 하나를 펴서 긴 장대의 끝에 내걸었다. 

깃발이 내걸린 장대를 들어보던 설지가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번 장대를 올려다 보았다. 깃발을 단 장대가 너무 긴 탓에 체구가 작은 설지가 들고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숙부님! 이거 너무 길어!"
설지의 행동을 지켜 보고 있던 나운학은 설지의 말에 장대를 받아 들더니 중간 어림 쯤을 손날로 가볍게 잘라 버린 후 다시 설지에게 건네 주었다.
"이제 된 것 같구나!"
"응! 응!  딱 맞아, 딱 맞아!"
"그래. 그럼 이제 네가 선두에 가서 행렬을 출발시키거라."
"응! 응! 알았어! 할아버지, 할머니, 설지 다녀올께요. 맛난거 많이 먹고 올께요. 헤헤헤."

설지가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자 나운영과 명화 공주는 설지의 인사를 잔잔한 미소로 받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명화 공주는 전낭 하나를 품에서 꺼내 설지의 손에 들려 주며 이렇게 말했다.
"설지야! 이 은자는 네가 사고 싶은거나 먹고 싶은 게 있을 때 사용하거라. 은자가 떨어지거나 모자라면 혜린이에게 이야기 하거라. 전낭을 다시 채워 줄거야."
"우와! 이거 은자야? 우와 무겁다. 헤헤"

손에 들린 전낭을 가볍게 던져 올리며 귀여운 웃음을 흘린 설지가 밍밍의 등에 오르자 명화 공주는 아쉽다는 듯 다시 한번 설지의 손을 꼭 쥐어 주고는 등을 토닥여 주었다.
"백아와 호아, 그리고 초아까지 있으니 별 걱정은 없다만 그래도 몸 조심하거라!"
"응! 응! 알았어, 알았어. 할머니."
대답을 마친 설지는 밍밍의 등에 올라 앉은 채 천천히 행렬의 선두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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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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