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춘지절을 막 넘어서면서 더위가 찾아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따가운 태양 빛이 호북성의 철장산에도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철장산을 넘어가는 넓은 관도에는 막 마차 한대의 꼬리가 보이고 있었는데 마차가 지나간 자리에는 이십여대의 마차가 지나간 흔적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 행렬은 다름아닌 보름여전 귀주성을 떠나온 성수의가의 행렬이었다. 행렬의 선두에는 성수신의 일행이 타고 있는 마차와 그 마차를 호위하고 있는 듯 소림 십팔 나한들이 탄 말이 조금 뒤쳐져 따르고 있었으며 마차 옆으로는 설지를 태운 당나귀 밍밍이 따르고 있었다.

"신의! 내 물어보려다 짐작가는게 있어서 그만두었소만 저게 대관절 무슨 조화인게요?"
성수신의 나운학의 맞은 편에 앉아있던 혜명대사가 마침내 더 이상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나운학에게 물어 왔다. 혜명대사가 이렇게 물으며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신기하게도 설지가 타고 있는 밍밍의 반장 정도 옆에서 설지를 따르듯 성수의가의 깃발을 매단 장대가 저 혼자 허공에 둥실 매달려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허허! 글쎄요. 저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설지의 말을 요약해보면 자연지기의 힘인것 같더군요."
"자연지기라...허허허.. 저 어린나이에 자연지기를 다스린다니 성수의가의 홍복이로소이다. 허허허."
그랬다. 설지는 귀주성의 성수의가를 떠나온지 일주일 쯤 되었을 때 부터 늘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오일전 쯤 부터 설지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장대가 갑자기 저 혼자 허공에 둥실 떠올라 설지를 따르는 기사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놀라서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오자 설지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장대 들고 다니기 귀찮아!"

사람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그날 부터 늘 저렇게 성수의가의 깃발이 달린 장대는 설지의 반장 정도 떨어진 허공에서 설지를 따라 다니고 있었다. 밍밍의 등에서 아래 위로 흔들리던 설지는 문득 무언가 재미난 것을 발견한 듯 갑자기 밍밍을 재촉하여 행렬의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성수의가 행렬은 허공 높이에서 좌우로 흔들리는 성수의가의 깃발을 바라보며 멈춰서야 했다.

"설지야! 무슨 일이니?"
갑자기 행렬이 멈춰서자 나운학은 마차의 문을 열고 내리며 설지를 향해 말했다.
"응! 응! 숙부님, 저거 봐. 길바닥에 나무들이 누워 있어!"
설지가 말을 하며 가리키는 앞 쪽 관도에는 설지의 말대로 한아름은 넘어 보이는 굵은 나무 대여섯그루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관도로의 진입을 막기 위해서 쓰러트려 놓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나무들이었다.

"그리고! 저기 너머에서 나쁜 기운이 느껴져!"
설지의 말을 들은 나운학도 그제서야 나무들로 가로막힌 관도 너머 산 중턱 부근에서 흘러 나오는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설지가 말하는 사이에 나운학의 옆으로 와 있던 일행들도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를 들은 듯 신중한 자세로 전방을 주시하기 시작하였다.
"소공녀! 나쁜 기운이라고 하셨소?"
"응! 응! 스님 할아버지, 아주 나쁜 기운 같아. 저기 서 있는 스님 아저씨들에게서 느껴지는 나쁜 기운보다 몇배는 강한 것 같아!"

설지의 말을 경청하던 혜명 대사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허허! 사형이신 방장 대사께서도 어렴풋이 느끼신 사기를 느끼셨다니 스님으로써 부끄럽기 짝이 없소이다.그려."
그랬다. 소림 십팔 나한들은 수련 과정에서 항마력을 키우기 위해 고의로 사기가 강한 공동묘지에서 수행을 하다 보니 자신들도 모르게 미약한 사기에 침입당하여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소림의 고승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가운데 소림 십팔 나한들의 수련은 대를 이어 오며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소림의 십팔대 방장인 혜공의 대에 이르러 마침내 소림 방장인 혜공에 의해서 그동안 소림 십팔 나한들이 수련 과정에서 미약하나마 사기에 침입당하여 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런 사실을 이제 막 열살이 지난 어린 여자 아이가 이야기 하고 있으니 새삼 놀라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저 앞의 나무를 치워야 행렬이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소? 신의."
혜명의 말에 성수신의 나운학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뒤편에 서있던 장총관을 향해 말했다.

"장총관! 수고스럽지만 일행들과 저걸 좀 치워주시겠습니까?"
나운학의 말에 머리 숙여 예를 표한 장총관이 의원 몇과 일꾼들을 데리고 나무가 쓰러져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갈 때 귀여운 외침 하나가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앗! 기다려, 기다려요. 내가 할거야."

설지였다. 설지는 어느틈에 목검 하나를 손에 들고 일행들의 앞에 서있었던 것이다.
"숙부님! 내가 할거야. 내가 해도 되지?"
"허, 녀석. 그러려무나. 대신 너무 힘을 주면 안된다는 것 잊지말고."
"응! 응! 알았어."

씩씩하게 대답하며 쓰러진 나무들을 바라보던 설지는 신중하게 두손으로 목검을 잡고는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에잇! 이 악적들. 내가 사랑과 협의의 이름으로 너희를 용서하지 않겠다. 얍!"
요란스런 협박성 대사를 날린 설지의 입에서 귀여운 기합 소리가 나오고 머리 위의 목검이 아래로 그어졌을때 사람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설지의 목검에서 소도처럼 작고 연한 빛을 띤 십여가닥의 강기가 쓰러진 나무들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던 탓이다. 그리고 이내 사람들의 눈에는 산산히 부서져 허공으로 날리는 나무 조각들이 시야를 가득 채워왔다.

"우헤헤. 성공이다. 우헤헤."
"허, 녀석아. 힘 조절을 하래도 저걸 보고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게냐."
방정맞은 웃음을 날리며 좋아하던 설지는 숙부가 가리킨 곳을 보더니 이내 무안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아하하, 그게, 분명히 살살했는데, 이상하네? 아, 덥다 백아야, 저기 시원한 물 마시러 가자."
마차를 가리키며 백아를 향해 말한 설지는 종종 걸음으로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설지가 마차를 향해 달려간 후 전방에는 마치 폐허를 보는 듯한 모습이 서서히 사람들에게 드러나고 있었다. 방금 전 까지 나무들이 쓰러져 있던 곳에는 잘게 부서진 나무의 잔해 외에도 새로 생겨난 구덩이들이 십여개 생겨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에 혜명과 철무륵 그리고 일성 도장등은 마차에 달라 붙어 빼꼼히 이쪽을 바라 보고 있는 설지의 모습을 기이한 눈빛을 띤채 쫓고 있었다.

"허허, 녀석 참. 땅을 다 헤집어 놓다니."
성수신의 나운학은 웃음 띤 얼굴로 이야기 하며 길 양편의 바닥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거짓말 처럼 흙무더기들이 허공을 날아 새로 생겨난 구덩이 위를 메워가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모든 구덩이가 메워지자 멀리서 빼꼼히 지켜보고 있던 설지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 나왔다.
"우와! 우와! 신기하다. 나도 오늘 부터 저거 연습해야지."

한편 설지의 이런 말을 들은 일행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미모를 미소를 입에 물었다. 설지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했던 것이다. 장내가 대충 정리되자 설지는 서둘러 행렬의 선두로 가서 장대를 높이 올려 깃발을 앞 뒤로 흔들며 출발을 지시했다. 말은 안했지만 설지는 아까 부터 앞쪽에서 들려오던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몹시도 궁금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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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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