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밍밍의 등에 올라 앉은 설지의 출발 신호에 따라 성수의가의 긴 행렬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멀리서 보자면 산 중턱을 향해 나있는 관도를 느린 속도로 움직여가는 성수의가의 긴 행렬이 여태까지와는 조금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성수신의 일행이 타고 있는 마차가 늘 선두에서 움직이던 것과는 다르게 녹림 이십사절객이 탄 말들이 행렬의 선두에서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포진인 쇄기꼴 포진을 취한채 행렬을 이끌며 산을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포진은 행렬이 막 움직이기 시작할 즈음 철무륵이 만일을 대비한 조치로 행렬의 후미에서 따르던 엽정을 비롯한 녹림 이십사절객에게 선두에서 행렬을 이끌도록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녹림 이십사절객이 선두로 나서자 뒤를 이어 성수신의를 비롯한 행렬의 주요 인물들이 탄 마차가 뒤를 따랐고 소림 십팔나한들이 마차를 중심으로 좌우로 포진하여 마차를 호위하며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조용하지만 긴박하게 흐르는 장내의 분위기에는 아랑곳 없다는듯 성수신의 일행이 탄 마차 옆을 따르고 있는 밍밍의 등에 발을 까닥이며 장난스런 자세로 앉아 있던 설지가 갑자기 생각난듯 마차 안의 교혜린에게 말을 걸었다.
"교언니! 교언니! 나, 궁금한게 있어!"
"응? 뭐가말이니?"
"저기, 그게 말이야, 저기 앞에 스님 아저씨들 말이야."
"응? 스님들이 왜?"

뜻밖에 소림 승려들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설지의 입에서 나오자 성수신의의 옆에 앉아 있던 혜명 대사는 또 무슨 말이 설지의 입에서 나오려나 싶어 내심 긴장하며 공력을 일으켜 설지의 말을 듣기 시작하였다.
"응! 그게, 저 스님 아저씨들이랑 산적떼 아저씨들이 가끔씩 교언니를 볼때 마다 이상한 기운들이 생겨나는 것 같아. 아주 나쁜 기운들이 출렁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그게 왜 그런거야?"

설지의 이 말이 끝나자 마차안에서는 기이한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연신 불호를 외우는 혜명 대사와 얼굴을 붉힌채 어쩔줄 몰라하는 교혜린 때문에 생겨난 어색한 분위기가 마차를 잠식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두 사람을 대신하여 나운학이 미소 띤 얼굴로 설지에게 대답해 주었다.
"하하! 녀석, 그건 교소저가 예쁘기 때문에 그런거란다. 네가 봐도 교소저가 예쁘지 않니?"
나운학의 이 말이 끝나자 교혜린의 볼은 더욱 붉어지기 시작하였고 그런 교혜린을 철무륵이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응! 응! 예뻐, 무지하게 예뻐. 그래서 그런거구나! 못써요, 못써, 할머니가 늘 말씀하시기를 남자들은 숙부들 빼고 다 도둑놈들이라고 하시더니 그 말이 맞나봐, 그치? 교언니!."
"크하하하! 녀석아 교소저 그만 놀리거라."
철무륵이 대소를 터트리며 설지에게 말을 하자 가만히 듣고만 있던 혜명 대사도 불쑥 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미타불, 소공녀, 이 늙은 중은 부끄러워 고개를 못들겠소이다. 그려. 허허허."

혜명 대사의 계면쩍어 하는 말을 듣고는 품에 안은 백아의 등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하던 설지는 이내 혜명 대사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되겠구나. 헤헤! 스님 할아버지 걱정마세요. 초아가 오늘 밤에 쉴때 스님 아저씨들에게 곁을 지키라고 하세요. 그러면 스님 아저씨들 몸속에 있던 나쁜 기운들도 괜찮아질거예요."
 "오! 그런 일이.. 정말 그러면 몸속의 사기가 정화된다는 말이오이까? 소공녀!"
"응! 응! 맞아요. 한번만에는 안되겠지만 몇번만 곁을 지키면 괜찮아질거예요.
"아미타불, 아미타불, 이런 복연이 있다니... 고맙소이다. 소공녀!"
"응, 그런데 공짜는 안되요!"
"허허! 그렇겠지요. 그래 무얼 원하시는게요?"

혜명의 이 말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반색을 하며 설지가 말을 이었다.
"응! 응! 뭐냐하면 말이예요. 나중에 제 부탁 한가지를 반드시 들어주는 것. 어때요?"
"허허허! 그렇게 하지요. 소림에서 가능한 것이라면 내 방장 사형께 부탁하여 무엇이든 들어드리도록 하지요."
"헤헤헤. 약속하신거에요. 우와, 이봐, 이봐, 증인도 이렇게 무지 많으니까 꼭 지켜야해요. 스님 할아버지."

혜명 대사의 말에 만족한듯 손가락으로 좌우를 가리키며 설지가 말을 받는 순간 성수의가의 행렬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던 엽정이 마차로 다가오더니 철무륵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이렇게 말했다.
"총표파자! 앞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녹림과 표국과의 싸움인 듯 합니다."

엽정의 말을 들은 설지가 앞을 한번 바라보고는 자신의 옆 허공에서 미끄러지듯 따르고 있던 깃대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기다렸는다는 듯 깃대가 허공으로 솟구치기 시작하더니 설지가 손을 흔드는 것에 따라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지의 정지 신호가 행렬의 후미에 까지 전달되고 행렬들이 서서히 전진을 멈추기 시작하자 선두의 마차에서 나운학을 비롯한 여러명의 인물들이 차례로 장내로 내려섰다.

철장산의 중턱 쯤에 다다른 듯 여태까지 오르막이던 관도의 좌우로는 제법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는 것이 먼저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완만한 지세를 유지하며 마차 두대가 충분히 오갈수 있게 만들어진 넓은 관도의 좌우로는 두 무리가 날카로운 기세로 서로 대립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눈에 보아도 산적들임을 알 수 있는 복장을 한 무리들과 하남 표국 깃발이 나부끼는 마차 세대와 함께 있는 표사 복장을 한 무리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미 그들은 치열한 접전을 한차례 벌였던 듯 쌍방간에 발생한 많은 수의 부상자가 평지 여기 저기에 널부러져 있는 모습도 보였다. 생사를 도외시한 채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철정산 산채의 산적들과 하남 표국의 표사들은 장내로 조용히 다가오는 긴 행렬을 발견하고 어쩔 수 없이 싸움을 잠시 멈추고 대치하고 있는 중이었다.

서로 대치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던 그들의 눈에 순간 기이한 모습이 들어 왔다. 은은한 빛이 나는 것 같은 새하얀 장포를 걸친 어린 소녀 하나가 두손을 뒤로 모아 뒷짐을 쥔채 사방을 훑어보며 다가서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작은 소녀의 반장 정도 뒤에는 누구도 잡고 있는 이가 없음에도 허공에 둥실 떠올라서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따르는 깃대 하나가 보이고 있었다. 또한 소녀의 좌우로는 새하얀 고양이 두마리가 따르고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고양이와는 생김새가 다른듯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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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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