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빛이 감도는 새하얀 장포를 걸치고  장내를 살펴보는 소녀는 물론 설지였다. 성수의가의 행렬이 중턱에 다다르고 나자 설지가 제일 먼저 밍밍의 등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백아와 호아와 함께 장내를 살펴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바로 그런 설지의 모습이 장내에서 대치중인 무림인들의 눈에는 기이하게 보였기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모든 이들의 시선이 설지를 향하게 되었다.

호아는 설지의 곁을 따르면서도 가끔 한번씩 설지를 따르는 깃대를 앞발로 톡톡 건드려 보며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이런 모습이 어찌보면 장난스럽기도 하지만 어린 소녀와 두마리의 영수에게서 풍기는 신비한 기운은 하남 표국의 표사들과 철정산을 근거로 하는 철정채의 산적들 모두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뒷짐을 쥔채 장내를 두루 살펴보던 설지는 쓰러져 있는 부상자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더니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쓰러져 있는 산적 하나에게 다가가 이러 저리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음, 음! 이 아저씨는 의원 아저씨에게 보여야 할 것 같네."
부상자를 요모조모 살펴보며 중얼거리던 설지는 곁에 다가와 있는 교혜린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교언니! 이 아저씨 많이 다친 것 같아."
"그렇구나. 하지만 다행히도 요혈들은 용케 피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구나.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응, 응! 근데 왜 이렇게 싸운거야?"
"글쎄다. 철대협에게 물어보렴."
"응, 응! 그러지 뭐. 철숙부!!"

설지와 교혜린이 대화를 나누며 산적 하나를 살펴 보는 중에 철무륵은 이미 녹림이십사절객들로 하여금 부상자를 수습하고 장내를 정리하게 하고는 하남 표국의 인물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 철무륵의 모습을 긴장한 자세로 자세히 살펴보던 철정채의 채주 마평은 그제서야 자신들의 총표파자인 철무륵을 알아보고는 황급히 설무륵에게 다가가 깊숙히 허리 숙여 포권의 자세를 취하며 총표파자에 대한 예를 올렸다.
"철장산의 채주 마평이 녹림 총표파자를 뵙습니다. 녹림천세!"

마평의 이런 말이 끝나자 화들짝 놀란 마평을 따르던 산적들과 여기 저기 쓰러져 있던 산적들이 부상에도 아랑곳 없이 분분히 몸을 일으키며 한꺼번에 굉량한 외침으로 총표파자를 대하는 예을 취하기 시작했다.
"녹림천세!"
"녹림천세!"

자신을 철정채의 채주라고 소개한 마평이라는 자는 이제 막 사십줄에 접어든 듯한 중년의 건장한 체구를 가진 사내로 커다란 도끼 하나를 오른 손에 들고 있었는데 도끼 여기 저기에는 피가 얼룩져 있어 치열했던 싸움의 여파를 말해주고 있었다. 마평의 예를 받은 총표파자 철무륵은 가볍게 허리 숙여 포권을 취하며 예를 받고는 산적들의 모습을 일별한 후 마평을 향해 말했다.
'마채주라고 했소?"
"예. 총표파자."
"그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게요. 왜 녹림호걸들이 표사들과 드잡이질을 하고 있는게요?"
"예. 그것이..."

마평의 설명을 간추려보면 이러했다. 예로부터 표국과 산적들의 관계는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관계로 표행에 나선 표국에서는 녹림의 관할구역에 다다르면 표물과 표사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통과비조로 일정액을 산채에 건네주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근래 들어 이런 오래된 관례가 하남 표국에 의해 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남 표국이 철정산을 통과할 때 마다 꼬박 꼬박 주고 가던 통과비를 일년전 부터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하남 표국에 통과비를 거두러 내려 갔던 산채의 식솔들이 번번히 큰 부상을 당해 쫓겨오는가 하면 반년 전에는 두명의 산적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산채로 돌아오는 일이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채주 마평은 오늘 산채의 운명을 걸고 철정채의 모든 산적들을 이끌고 직접 하남 표국을 치기 위해 하산하였으며 행여나 표국과 산채의 전투 때문에 철정산을 넘기 위해 길을 나선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까 저어되어 길을 막아두었다는 것이었다.

마평의 설명을 듣던 철무륵의 안색이 점점 굳어져 갈 즈음 설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숙부! 철숙부!"
"응? 왜 그러느냐?"
"이 아저씨들 왜 싸운거야?"
설지가 철무륵을 향해 이렇게 물어올 때 설지의 곁에서 가끔 깃대를 톡톡 건드려 보며 장난을 치던 호아가 갑자기 어느 한방향을 향해 쏘아가기 시작했다. 호아가 쏘아져 간 곳에는 검은 장포를 걸친 하남 표국의 표사 하나가 서 있었는데 눈깜짝할 사이에 표사의 앞에 다다른 호아는 그 표사의 다리를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크아악!"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호아에게 공격당한 표사는 기이한 각도로 꺽인 오른 다리와 함께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으로 쓰러져 갔다. 표사 하나를 쓰러트린 호아는 또 다른 방향으로 쏘아져 갔으며 설지의 품에 안겨 있던 백아마저 설지의 품에서 벗어나더니 한방향으로 쏘아져 날아갔다. 거의 동시에 두군데서 비명성이 터져 나왔으며 비명이 터진 자리에서는 처음 호아에게 공격당한 표사와 비슷한 모습으로 오른 쪽 다리들이 꺽인 두 표사가 나동그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설지의 표정이 이상했다. 두 주먹을 꼭 쥔채 온몸을 부들 부들 떨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설지의 이상한 모습과 두마리 영수들의 난데없는 표사를 향한 공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운학은 황급히 설지의 곁으로 다가서서 설지를 품에 안아 떨리는 설지의 몸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설지가 이렇게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떨어대자 설지의 가슴에 매달려있던 만년삼왕 초아의 몸에서 청량한 향기가 흘러 나오기 시작하더니 설지의 주변 일장 정도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운학의 품에 안겨 몸을 떨고 있던 설지가 조금씩 안정되어 가기 시작했다. 이런 설지와 나운학의 모습을 살피던 철무륵과 혜명 대사는 상황이 그리 간단치 않음을 알아채고는 전음으로 서로 의견을 나눈 후 녹림 이십사절객과 소림 십팔나한으로 하여금 사방을 포위하여 장내에서 빠져 나가는 인물이 없도록 하명하였다.

녹림과 소림의 인물들이 장내를 포위하기 시작하자 여태까지 행렬의 후미에서 따라오던 개방 사룡을 비롯한 개방의 거지들도 사방을 장악하며 개미 새끼 한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갑자기 돌변한 장내의 분위기에 당황한 것은 하남 표국의 일행들이었다. 표국의 표사 세명이 갑자기 작은 고양이에게 공격당해 쓰러지더니 녹림과 소림 그리고 개방의 인물들이 자신들을 포위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 설지야 왜 그러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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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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