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웃음 소리를 뒤로 하고 숲 속으로 뛰어 들었던 설지는 이내 한 방향으로 숲을 헤치며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울창하게 자란 나무와 잡목들로 인해 발디딜 틈도 없이 빽빽한 숲 속을 요리 조리 잘도 달려 나가던 설지는 순식간에 사방이 온통 나무들로 가려져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깊은 숲 속에 당도하였다. 잠시 백아와 호아를 내려다 본 설지는 초아가 머리 속으로 전해오는 의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조심 조심 접근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시진 정도를 숲을 헤치며 나아가던 설지의 눈 앞에 갑자기 어른 한사람이 드나들기에 충분해 보이는 크기의 동굴이 시커먼 아가리를 벌린 채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 장면이 들어 왔다. 그런데 이 동굴은 흔히 산속에서 만날 수 있는 동굴들과는 어딘지 모르게 다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동굴 입구를 한차례 쓰윽 훑어본 설지는 가슴에 달려 있는 초아를 향해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우와! 이 동굴 분위기 한번 으시시하다. 여기가 맞아?"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며 초아를 향해 말을 걸었던 설지는 이내 작은 발을 들어 동굴 입구를 향해 걸어 가기 시작했다. 양가죽으로 만든 물통 하나를 들고 동굴로 들어선 설지의 다른 손에는 화섭자 하나가 들려 밝은 불씨를 토해내며 동굴 속을 환하게 밝혀 주고 있었다. 동굴 속은 태고 이래로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듯 천장에서 부터 기괴한 모습의 종유석들이 자라나 동굴 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며 바닥과 울퉁불퉁한 동굴의 옆면들에서도 기괴한 모습의 종유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인간의 손길을 거부한채 태고 이래의 모습을 간직한채 괴괴한 적막 속에 잠겨 있던 동굴은 설지에 의해 평화가 깨어진 탓인지 설지의 손에 들려 있는 화섭자에 의해 길게 드리워지는 그림자들이 마치 성난 괴물의 모습 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동굴 속을 걸어 들어가던 설지의 귀에 작지만 또렷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설지가 물 소리 쪽을 향해 몇 걸음 나아가다 손에 들린 화섭자를 물 흐르는 소리 쪽으로 기울이자 그곳에는 너무도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작은 웅덩이 하나가 작은 물방울 여러개를 토해내며 조용한 울림을 동굴 속으로 퍼트리고 있었다.
"우와! 우와! 물 무지하게 깨끗하다."

웅덩이 바닥의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샘솟고 있는 깨끗한 물로 채워진 웅덩이 속으로 손을 살짝 담구어 본 설지는 이내 그 차가운 감촉에 화들짝 놀라며 급히 물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잘레 잘레 흔들며 다시 동굴 속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양한 모습의 종유석들을 구경해 가며 한참을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간 설지의 눈에는 주변의 다른 종유석들에 비해 유독 커다란 몸통을 가진 종유석 기둥 하나가 들어 왔다.

그 커다란 종유석 기둥의 뾰쪽한 끝 부분이 가리키는 바닥 쪽에는 종유석을 타고 흘러 내리는 물에 의해 오랜 세월에 걸쳐 생성된 자그마한 웅덩이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의 종유석들에 비해 유독 커다란 이 종유석 기둥을 본 설지의 눈이 잠시 반짝거리는 듯 하더니 이내 기쁨에 찬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 나왔다.
"우와! 다왔다."

설지가 탄성과 함께 한발자국을 종유석 기둥 쪽으로 내딛는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설지의 눈 앞으로 어떤 물체 하나가 화살 처럼 쏘아져 오는 것이 아닌가?
"엇! 뭐야?"

한 소리 외침과 함께 설지가 다급히 손을 내밀 때 설지의 미간 쪽을 향해 쏘아져 오던 그 물체가 설지의 바로 앞 두자 정도 떨어진 허공 중에서 갑자기 뚝 멈추어 버렸다. 그 작은 물체는 언뜻 보기에 설지의 손 바닥 두개를 합친 반자 정도의 크기를 가진 작은 뱀 처럼 보였는데 작은 눈으로 설지의 모습을 살피는 듯 찬찬히 설지의 얼굴을 살펴 본 후 설지의 가슴 어림 쪽으로 시선을 내려 그 곳에 달려 있는 초아의 모습을 살펴 보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작은 뱀에 등장에 놀랐던 설지는 이내 작고 귀여운 뱀의 모습이 신기했던지 요모조모 살펴보기 시작했다. 영수와 인간이 서로를 탐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설지가 신기한 표정으로 살펴보는 작은 뱀은 머리에 작은 뿔이 두개 달려 있었으며 작고 짧은 몸통의 앞쪽과 뒷쪽에는 발이 두개씩 달려 있었다. 이런 이상한 모습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 하던 설지는 이내 무엇이 생각난듯 손바닥을 마주치며 탄성을 발했다.
"우와! 우와! 너 용이구나? 그렇지? 용 맞지?"

설지의 탄성에 잠시 설지를 바라보던 작은 용은 뿔이 달려 있는 작은 머리를 끄덕이며 설지의 말에 수긍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용이라니? 예로 부터 전설에 등장하는 용의 모습은 호풍환우를 마음대로 구사하거나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모습 등으로 알려져 있듯이 엄청난 크기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설지의 눈 앞 허공에 멈춰 서 있는 작은 용은 크기라고 해봤자 겨우 반자도 되지 않을성 싶었고 더우기 호풍환우를 마음대로 구사하는 엄청난 위용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아니 오히려 귀여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런데 너! 여기서 뭐하는거야? 용이라면 승천해야 하는거 아니니?"
설지의 이 말이 끝나자 설지의 머리 속으로 작은 용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승천했다가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어서 다시 내려왔어.
"뭐? 오호호호! 그래서 이 동굴 속에서는 뭐하는거야?"
- 다시 땅에 내려와 조용히 쉴곳을 찾다 보니 이 동굴에 들어 오게 된거야. 동굴에 들어와 보니 저기에 인간들이 이야기하는 공청석유인 오행신수가 생겨나 있더군. 그래서 저거나 지키며 이렇게 있는거야.
"응! 그랬구나. 그런데 난 저 공청석유를 가져 갈려고 온건데 어떡하지?"
- 네 가슴 쪽에 달려 있는 만년 삼왕을 보니 넌 가져 가도 될 것 같아. 가져 가고 싶은 만큼 가져 가.
"헤헤헤! 고마워. 음....그럼 이렇게 하자 너도 심심하다고 했으니 내가 저 공청석유를 다 가져가는 대신에 넌 나랑 같이 가자, 어때?"
- 너랑?
"그래. 난 성수의가에서 왔는데 우리 의가에서 이번에 중원 여기 저기를 여행하고 있거든 재미있을거야."
 
설지의 말이 끝나자 무언가를 한참 생각하던 작은 용은 설지와 설지의 가슴 어림에 달려 있는 초아와 설지의 발치께에 있는 두마리 백호를 다시 한번 보고는 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용이 승락의 고개 짓을 하자 설지는 기쁨의 탄성을 발하고는 작은 용을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 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이름이 있어야 하니까 용아라고 부를께 알았지?"
영물을 향한 설지의 기막힌 작명법이 다시 한번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용아를 어깨 위에 올려 놓은 설지는 커다란 종유석의 아래에 생겨난 웅덩이 쪽으로 다가가 살펴 보았다. 그 곳에는 의외로 무척 많은 뿌연 액체가 고여 있었는데 대단히 강한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인세에서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 하다고 알려져 있는 오행신수인 공청석유가 어린 소녀의 발치에서 찰랑거리며 고여 있는 것을 누군가 보았다면 거품을 물고 쓰러졌으리라. 설지는 제법 많은 양의 공청석유를 가져온 양가죽 물통에 조심스레 담기 시작했다. 설지의 조심스런 손에 의해 채워지기 시작한 양가죽 물통은 거의 반 정도를 공청석유로 채운 후에야 뚜껑이 닫혀졌다.

"다 됐다. 이제 돌아가자."
공청 석유를 한방울도 아닌 커다란 물통의 반이나 채운 설지는 미련없이 발길을 돌려 동굴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어올 때 와는 반대로 순식간에 동굴을 벗어난 설지는 동굴 주변을 잠시 살펴 보다가 동굴 속에서 처럼 다시 한번 눈에 이채를 발하더니 동굴 주변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우와! 역시 설련, 영지, 하수오 같은 영초들이 주위에 잔뜩 있는 것 같애, 전부 다 가지고 가야겠다."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하는 영초들의 모습을 다른 누군가가 보았다면 아니 무림인이 보았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기연이다!'

"일어나!"
영초들을 전부 가져가기로 마음먹은 설지가 자신의 눈이 닿는 동굴 주변을 향해 명령을 하듯 이렇게 말하자 갑자기 동굴 주변의 땅들이 들썩이더니 서서히 한 지점을 향해 흙덩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 흙덩이들이 제각기 영초 하나씩을 품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모여 들기 시작한 흙덩이들은 한 곳에서 서서히 뭉쳐지더니 마치 땅에서 자라나듯 조금씩 위를 향해 쏟아 오르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쏟아 오르기를 마친 흙덩이의 모습은 사람과 흡사한 외향을 가지고 있었다. 설지보다 조금 더 큰 키를 가진 이 토인이 사람과 다른 점이라면 몸통 여기저기에 영초들의 잎사귀가 삐쭉이 달려 있다는 것과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따라와!"
완전한 사람 형태로 자라난 토인을 한번 살펴 본 설지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는 토인을 향해 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각종 영초들로 장식된 몸으로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토인이 설지의 명령에 따라 설지가 나아가는 쪽으로 육중한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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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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