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d Zeppelin - Babe I'm Gonna Leave You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영국 록 밴드 '레드 제플린'은 위대함이라는 단어가 적합한 몇 안되는 밴드 중 하나였다. 레드 제플린 음악의 시작과 완성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지미 페이지는 일명 왕따라고 불리는 친구들의 따돌림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따돌림이 오히려 어린 지미 페이지에게는 편안함을 제공했다고 하며 자신만의 견고한 성을 구축해 나가는 동기가 되어 주기도 하였다. 친구들의 따돌림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성을 쌓아가며 외롭게 성장하던 지미 페이지가 기타를 잡게 된 것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음악을 듣고나서 부터였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1955년 히트 곡인 'Baby Let's Play House'를 듣게 되면서 부터 지미 페이지는 기타라는 악기가 만들어 내는 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지미 페이지는 열두살이 되던 해 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여기에는 지미 페이지의 부모가 기울인 커다란 관심도 한몫을 하게 된다. 이때 부터 늘 기타를 끼고 살던 지미 페이지는 1957년에 4인조 스키플(Skiffle: 1950년대에 유행한 재즈와 포크 음악이 혼합된 형태의 음악) 밴드의 일원으로 첫번째 텔레비전 출연을 하게 된다.

후 웰던(Huw Wheldon)이 진행하던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인 'All Your Own'에 스키플 밴드의 일원으로 출연한 지미 페이지는 밴드 멤버들과 함께 'Mama Don't Want To Skiffle Anymore'라는 곡을 연주하였다. 텔레비전 출연 이후로 기타에 더욱 빠져 들게 된 지미 페이지 학교에서도 늘 기타를 치게 되는데 이로인해 기타를 압수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자연히 학교 공부를 등한시 하기 시작한 지미 페이지는 결국 중학교를 중도에 자퇴하고 혼자서 약 2년간의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된다.

히치하이킹(Hitchhiking)과 버스를 번갈아 이용하며 유럽 일대를 여행 하고 돌아온 지미 페이지는 학교 공부 보다는 음악 활동에 전념하기로 하고 1960년에 '닐 크리스천 앤 더 크루세이더스(Neil Christian and the Crusaders)'에 가입하여 밴드 활동을 시작하였다. 밴드의 일원으로 공연 활동에 주력하며 2년간의 시간을 보낸 지미 페이지는 1962년 11월에 밴드의 이름으로 발표된 싱글 'The Road to Love/The Big Beat Drum'의 녹음에 참가한 후 갑자기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pstein-Barr virus: EBV)에 의해 유발되는 선열(Glandular Fever)을 앓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밴드에서 이탈하게 된다.

치료를 하는 동안 잠시 음악 활동을 접기로 한 지미 페이지는 대신 미술 학교에 입학하여 순수 미술을 공부하며 치료에 전념하게 된다. 미술 학교에 다니면서 점차 몸이 건강해지기 시작한 지미 페이지는 마키 클럽(Marquee Club)에 드나 들면서 클럽에 출연하는 밴드들과 종종 잼(Jam) 세션을 벌였다고 하는데 당시 무대에서 보여지는 지미 페이지의 인상적인 모습은 곧 같은 연주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그에게 세션 요청을 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결국 지미 페이지는 '제트 해리스(Jet Harris)'와 '토니 미헨(and Tony Meehan)'의 요청을 수락하고 두사람의 싱글 연주 곡인 'Diamonds'에서 리듬 기타 연주를 하는 것으로 세션 기타 연주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지미 페이지가 첫번째로 세션에 참가한 싱글 'Diamonds'가 1963년 1월에 발표되어 영국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되자 이후로 수많은 세션 요청이 지미 페이지에게 쏟아져 들어오게 되었다. 

1963년 부터 1965년 까지 셀수 없이 진행된 지미 페이지의 세션 연주는 당시에 발매된 음반의 50% 이상에 해당될 정도로 엄청난 숫자였으며 세션으로 참가하여 음반을 대표하는 연주자로 불리울 만큼 확실한 세션 연주자로 자리 잡게 된다. 세션 연주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던 지미 페이지에게 당시 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록 밴드인 '야드버즈(The Yardbirds)'측에서 접촉해 온 것은 1965년 3월이었다.

야드버즈에서 탈퇴한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자신을 대신해서 야드버즈에서 활동해 볼 것을 지미 페이지에게 권유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제의는 지미 페이지의 정중한 거절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미 페이지는 자신 대신 자신의 친구인 '제프 벡(Jeff Beck)'을 추천하여 야드버즈에 가입시키게 된다. 지미 페이지의 야드버즈 가입 거절은 명목상으로는 건강상의 이유 때문라고 알려져 있으나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밴드인 야드버즈의 가입이 세션으로 잔뼈가 굵은 지미 페이지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하지만 야드버즈는 지미 페이지의 영입을 결코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야드버즈는 1966년 6월에 베이스 주자인 '폴 샘웰 스미스(Paul Samwell-Smith)'의 탈퇴로 결원이 생기게 되자 지체 없이 지미 페이지에게 연락하여 야드버즈의 베이스 주자로 가입할 것을 다시 한번 요청하게 된다. 당시 야드버즈는 미국 순회 공연을 앞두고 있었는데 지미 페이지는 미국 순회 공연이 재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야드버즈로의 가입을 수락하고 세션 연주자로써의 활동을 마무리 하게 된다.

베이스 주자로 야드버즈의 미국 순회 공연에 참가한 지미 페이지는 의도치 않은 제프 벡의 질환으로 리드 기타를 떠 맡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떨림 속에 진행된 지미 페이지의 리드 기타로써의 첫번째 공연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루어졌다. 기대반 우려반으로 리드 기타로써 무대에 올랐던 지미 페이지의 공연은 별다른 무리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으며 건강을 회복한 제프 벡과 함께 트윈 기타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트윈 기타라는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야드버즈는 성황리에 미국 순회 공연을 마무리 지었으나 1966년 11월에 제프 벡이 야드버즈에서 탈퇴하면서 강력했던 트윈 기타 체제는 마무리 되고 말았다.

야드버즈의 주축이 된 지미 페이지와 야드버즈는 1968년 까지 활동하다 그해 7월에 밴드의 주축이었던 '키스 렐프(Keith Relf)'와 'James McCarty(제임스 맥카티)'의 탈퇴로 해산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제프 벡의 탈퇴 이후 야드버즈의 주도권을 움켜쥐었던 지미 페이지는 베이스 주자인 '크리스 드레자(Chris Dreja)'와 함께 야드버즈의 존속을 모색해 보았지만 상황은 지미 페이지의 의도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결국 야드버즈는 공식적으로 해산을 발표하게 되는데 1968년 7월 7일의 공연이 야드버즈의 마지막 공연이 되어 버렸다.

야드버즌 해산했지만 공연 기획사와의 계약 기간이 남아 있어 야드버즈의 모든 의무를 떠 안게 된 지미 페이지는 잼 세션 등의 활동을 통해 옥석을 가리는 작업을 진행하며 새로운 밴드 결성을 준비하게 된다. 지미 페이지와 가장 먼저 합류한 인물은 베이스 주자인 '존 폴 존스'였다.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 '룰루(Lulu)', '허맨스 허미츠(Herman's Hermits)'등의 음반에서 세션 작업을 하고 있던 존 폴 존스는 '도노반(Donovan)'이 1968년 5월에 발표했던 싱글 'Hurdy Gurdy Man'에서 세션으로 함께 녹음에 참가했었던 인연으로 알고 지내던 지미 페이지와 연락이 닿아 1968년 8월에 지미 페이지와 합류하였던 것이다. 존 폴 존스가 합류하자 크리스 드레자는 음악계에서 완전히 은퇴하고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진로를 정하게 된다.

존 폴 존스의 합류 이후 지미 페이지는 가수인 '테리 리드(Terry Reid)'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프로콜 하럼(Procol Harum)'의 드러머 '비 제이 윌슨(B.J. Wilson)'을 영입하여 밴드를 완성시키고 싶었지만 두 사람의 거절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테리 리드는 자신 대신에 로버트 플랜트를 추천해 주었고 로버트 플랜트는 자신의 예전 밴드인 '밴드 오브 조이(Band of Joy)'에서 드럼을 담당했었던 '존 본햄'을 추천하여 마지막으로 밴드에 합류시키면서 1968년 9월에 새로운 밴드의 구성을 마치게 된다.

지미 페이지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새로운 멤버들로 재탄생하였지만 밴드는 야드버즈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뉴 야드버즈(New Yardbirds)'라는 이름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순회 공연을 떠나게 되는데 이는 야드버즈의 남은 계약의 일환이었다. 공연 후 뉴 야드버즈는 데뷔 음반의 녹음에 들어가 단 서른 여섯 시간만에 모든 작업을 마치게 된다. 이렇게 단시간에 제작을 완료한 것은 아직 밴드가 음반사와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녹음실 사용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였다.

녹음 작업을 마친 밴드는 '후(The Who)'의 드러머인 '키스 문(Keith Moon)'의 제안에 따라 밴드 이름을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으로 짓고 데뷔 음반이 발매 되기 전인 1968년 10월 25일에 영국 서리 주 길포드 카운티에 위치한 서리 대학교(University of Surrey)에서 역사적인 데뷔 무대를 가지며 전설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레드 제플린은 데뷔 무대를 가진 이후인 1968년 11월에 애틀랜틱 음반사(Atlantic Records)와 계약하고 1969년 1월 12일에 미국에서 먼저 데뷔 음반인 'Led Zeppelin'을 공개하였다.

데뷔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Good Times Bad Times'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80위에 그쳤지만 레드 제플린의 데뷔 음반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0위 까지 진출하면서 음악성을 인정 받게 된다. 라이브에서 강점을 드러내는 사이키델릭 성향의 강력한 곡 'Dazed and Confused'등이 수록된 레드 제플린의 데뷔 음반에는 이 곡 외에도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레드 제플린 초기의 명곡 'Babe I'm Gonna Leave You'가 수록되어 있다. 

이 곡은 미국의 포크 가수 '앤 브레든(Anne Bredon)'이 1950년대 후반에 발표했었던 곡을 레드 제플린식 록 발라드로 재해석한 곡으로 조안 바에즈(Joan Baez)의 1962년 음반 'Joan Baez in Concert'에 수록되어 있는 곡을 듣고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곡이다. 또한 이 곡은 발표 당시에는 조안 바에즈는 물론이고 레드 제플린도 작자 미상의 전통 포크 음악으로 알고 있었지만 1980년대 중반에 앤 브레든의 곡으로 밝혀졌다. 

오랜 기간 동안 레드 제플린 팬들만이 아닌 팝 팬들에게 까지 고루 사랑 받고 있는 곡인 'Babe I'm Gonna Leave You'는 로버트 플랜트의 애절한 목소리와 지미 페이지의 기타가 만들어내는 조합이 일품인 러브송이다.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 : 영국 런던에서 1968년에 결성

지미 페이지 (Jimmy Page, 기타) : 1944년 1월 9일 영국 헤스턴(Heston) 출생
로버트 플랜트 (Robert Plant, 보컬) : 1948년 8월 20일 영국 버밍엄(Birmingham) 출생
존 폴 존스 (John Paul Jones, 베이스) : 1946년 1월 3일 영국 켄트 (Kent) 출생
존 본햄 (John Bonham, 드럼) : 1948년 5월 31일 영국 우스터셔 출생, 1980년 9월 25일 사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블루스 록(Blues-Rock), 헤비메탈(Heavy Metal)
공식 웹 페이지 : http://www.ledzeppelin.com/
노래 감상하기 : http://youtu.be/smUFDvltY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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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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