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만들어진 인형인 토인을 데리고 몇걸음 나아가던 설지는 문득 무언가 생각난듯 갑자기 우뚝 멈춰서더니 자신이 만든 흙 인형인 토인을 잠시 바라 본 후 이렇게 말을 이었다.
"음, 음, 맞아, 아까 숙부가 했던 것 처럼 나도 저 토인을 날아다니게 해봐야겠다. 헤헤헤"

갑작스럽게 장난끼가 발동한 설지가 이렇게 읊조린 후 토인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그러자 멈춰 서 있던 토인의 주위로 기이한 공기 파동이 형성되는가 싶더니 육중한 토인의 몸이 위를 향해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다. 토인의 주위로 좀 더 강력한 파동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서서히 허공 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던 토인이 약 한자 정도 허공 중으로 솟아 올랐을 때 였다. 그 기세 그대로 잘 떠 오를것 같던 토인이 잠시 기우뚱 하는 것 같더니 곧장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리며 육중한 울림을 토해내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설지의 입에서 뽀쬭한 비명이 터져 나온 것은 토인이 막 떨어져 내리던 그 순간이었다.
"앗! 위험해."

설지가 이렇게 비명성을 토한 것은 때 마침 근처를 지나가고 있던 갈색 털을 가진 작은 몸집의 토끼 한마리가 막 떨어져 내리던 육중한 토인의 발치 어림에서 달려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끼의 입장에서는 길 가다가 횡액을 만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으며 설지에게도 늘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던 자연의 섭리를 자신의 장난 때문에 어길 뻔 했던 위기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어머, 어머, 너 괜찮니?"

토인에게 밟힐뻔 했던 위기의 순간을 겨우 넘긴 토끼는 두발로 일어서서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팔딱 팔딱 날뛰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신이 방금 죽음의 문턱을 겨우 지나쳤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화가 난 토끼가 팔딱 팔딱 날뛰기 시작하자 당황한 설지는 황급히 작은 토끼에게 다가가 토끼의 엉덩이 쪽을 토닥여 주며 엉덩이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 주었다.

"헤헤, 미안 ! 미안!  아이참! 미안하다니까. 그래, 그래, 조심할께. 미안해. 잘가!"
이렇게 작은 갈색 토끼의 엉덩이를 토닥여 달랜 설지는 토끼와 작별 인사를 한 후 가슴 어림에 붙어 있는 초아를 향해 말을 걸었다.
"초아야! 네가 한번 저 토인을 날게 해봐!"

설지가 이렇게 말하자 초아의 몸 주변에서 시작한 작은 파동이 조용히 설지의 몸 전체를 감싸 안는 것 같더니 이내 그 파동은 설지의 몸 속을 통과하여 우뚝 서 있는 토인을 향해 나아 갔다. 초아의 몸에서 시작되어 설지의 몸을 거친 기운이 토인에게 막 닿기 시작하자 설지가 시도할 때 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가볍게 허공으로 솟아 오른 토인은 설지의 손 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자유자재로 허공을 비행하기 시작했다.
"아! 이렇게 하는거구나! 이제 알았어. 몇번만 더 연습하면 나 혼자도 잘할것 같애."

초아의 도움으로 허공섭물(?)을 무사히 시현해 본 설지는 토인을 뒤 따르게 하고 다시 숲을 헤치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숲을 헤치며 그렇게 나아가던 설지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다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설지가 전방을 향해 눈길을 고정한 곳에서는 약초꾼인듯 보이는 젊은 청년 하나가 약초 채집을 위한 자루 하나를 옆구리에 꿰차고 주변을 탐색하듯 살펴 보며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응? 오빠는 누구야?"
설지는 자신과 일장 정도 떨어진 숲 속에서 땅 바닥을 살피며 조용히 움직이고 있던 청년을 향해 성큼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한편 온 신경을 땅 바닥을 향한 채 약초를 찾고 있던 청년은 갑자기 들려온 어린 여자 아이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으며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 보았다. 청년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자 거기에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커다란 흙인형 하나가 위압적으로 서 있는 모습 뿐이었다. 
"헉, 누, 누구세요?"

소스라치게 놀란 청년이 말을 더듬으며 몸을 부들 부들 떨때 커다란 흙인형 뒤에서 양 갈래로 머리를 땋아 내린 작고 귀여운 여자 아이의 머리 하나가 불쑥 튀어 나왔다. 설지였다. 설지는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띠며 엉거주춤 주저 앉아 있는 청년을 향해 말을 걸었다.
"난, 설지야, 설지, 나, 설, 지! 그러는 오빠는 누구야?"
설지의 미소 띤 얼굴을 보며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 시킨 청년은 주저앉아 있던 땅바닥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그리고 자신을 놀라게 했던 설지를 바라보며 한숨을 토해낸 후 설지의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휴! 하마터면 놀라서 죽을뻔 했네. 설지라고? 난 인근에서 사부님과 함께 약초를 채집하며 무공을 수련 중인 노팔룡이라고 해."
"응? 푸하하하. 팔룡, 노팔룡이라고. 아하하하, 하하하"
설지가 노팔룡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듣고 너무도 밝게 웃자 잠시 머쓱했던 청년은 별다른 사심없이 그저 웃을 뿐인 설지의 밝은 모습을 보고는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하하! 내 이름이 그렇게 우스우냐?"
"아하하하, 미, 미안해, 오빠 이름이 너무 웃겨서 나도 모르게 그만, 아하하"

눈물 마저 찔끔거리며 한차례 더 웃음을 피워 물었던 설지의 웃음 소리가 그치자 청년은 설지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그러자 잠시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은은한 빛을 내는 것 같은 장포와 품에 안고 있는 하얀 고양이 한마리, 그리고 발치에 있는 또 한마리의 흰 고양이, 이런 것들로 미루어 아마도 귀한 집에서 자란 소녀인 것 같았다.
"그래, 설지 넌 이 깊은 숲속에 혼자 무슨일이냐?"
"응? 나? 나야 볼일이 있으니까 숲속으로 들어온거고 오빠는 무슨 일로 숲 속을 헤매고 있는거야? 약초 캐는거야?"
"응! 요즘 사부님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셔서 좋은 약초나 한번 찾아 볼까 하고 숲속을 뒤지고 있던 참이야."
"그래?"

노팔룡의 이야기를 들은 설지는 뒷짐을 지고 노팔룡의 주위를 한바퀴 돌면서 노팔룡을 살펴 본 후 품 속에 안긴 백아와 초아를 향해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노팔룡이 보기에는 그저 품 속에 안긴 귀여운 고양이를 얼르는 모습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때 설지의 입에서 알 수 없는 말이 흘러 나왔다.
"괜찮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설지는 한쪽에 우뚝 서 있는 토인에게 다가 가더니 무언가를 쑥 빼내 들고 노팔룡을 향해 다가와 손에 들린 그것을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거 가지고 가. 하수오야. 아마 한 천년은 살았을거야."
"뭐, 뭐라고? 처, 천년 하수오라고?"
"응, 오빠를 보니까 착한 사람인 것 같아서 주는거야. 가지고 가서 사부님께 드려. 난 이만 갈께"

흙이 묻은 천년 하수오 한 뿌리를 노팔룡의 손에 쥐어 준 설지는 미련없이 몸을 돌려 숲 속으로 사라져 갔다. 설지가 나아가자 이때 까지 가만히 서 있던 토인도 설지를 따라 걸음을 옮겨 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다시 한번 놀란 노팔룡은 자신의 손에 들린 하수오와 멀리 사라져 가고 있는 토인의 모습을 번갈아 보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이렇세 읊조렸다.
"허! 내가 오늘 여자 아이 모습을 한 신선을 만났던 것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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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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