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헤헤, 숙부"
물통 하나를 허리에 메달고 달려온 설지가 자신의 앞에 와 서자 나운학은 입가에 미소를 띄며 설지에게 말을 이었다. 
"녀석, 어딜 갔다오는게냐?"
"응, 저기 숲속에.."
"그래? 그런데 저건 무어냐?"

설지와 말을 주고 받던 나운학은 설지의 뒷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흙인형을 가르키며 지켜 보는 사람들의 궁금함을 풀어주려는 듯 질문을 했다. 설지의 뒷쪽에는 설지 보다 키는 조금 더 커보이지만 덩치는 몇배가 넘을 커다란 흙인형 하나가 서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 흙인형의 몸 통 여기저기에는 언뜻 보아도 영초들의 잎이 분명한 잎사귀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으니....

"응? 아! 저거? 뭐긴 영지, 하수오, 설련, 구엽초 같은 영초들이잖아. 한꺼번에 가져 오려고 토인을 만든거야."
그때 설지의 말을 듣고 있던 성질 급한 철무륵이 나운학의 말을 끊고 설지에게 불쑥 질문을 했다.

"토인이라고? 이 놈아, 그러니까 저 흙인형이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네가 움직인거란 말이지?"
"허공섭물? 아냐, 아냐. 아까 저 토인을 숙부 처럼 허공에 띄울려고 해 봤는데 잘 안됐어. 날게 할려다가 잘 안되어서 도로 내려 놓고 있는데 마침 지나가던 토끼를 밟을 뻔 했어. 어휴, 고 조그만 녀석이 얼마나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내는지, 아휴,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응? 뭐라고? 토끼가 길길이 날뛰어? 크크크, 크하하하"

설지의 말을 들은 철무륵이 대소를 터트리며 웃자 주변의 사람들도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단순히 사냥감 정도만으로 취급하는 토끼가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내었다고 하니 어찌 우습지 않겠는가? 한 차례 대소를 터트린 철무륵이 다시 눈을 반짝이며 설지와의 대화를 주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 토끼는 그렇다고 하고 그러니까 네 말은 저 흙인형을 날아다니게 하려고 했단 말이지? 아까 네 숙부가 흙더미들을 나르는 모습을 보고 말이지?"
"응, 응, 그렇다니까, 근데 처음이라서 잘 안됐어. 그런데 몇번만 더 연습하면 될 것 같아."
"허, 그 놈 참, 이 놈아, 흙더미를 허공으로 나르는 것 보다 너 처럼 저 덩치 커다란 흙인형을 걸어 다니게 하는 수법이 더 고강한 수법이란걸 정녕 모르는게냐?"
"응? 그런거야. 우헤헤. 그런거였구나, 헤헤헤"
"이 녀석아, 여기 있는 사람들 누구도 너 처럼 저 커다란 흙인형을 마치 사람 처럼 데리고 다니지는 못할게다. 그런데 산적인 내가 얼핏 보기에도 대단히 귀한 영초들 같은데 어디서 저리도 많은 영초들을 가져온게냐?"
"응, 저쪽 숲속에서 가져온거야."

설지는 손가락으로 숲 저쪽을 가리키며 말을 한 후 허리에 차고 있던 물통을 끌러 숙부에게 주면서 말을 이었다.
"참, 그리고 숙부, 천년 하수오도 있었는데 오다가 숲에서 만난 착한 오라버니에게 주었어."
"착한 오라버리라니?"
"응, 우헤헤, 팔룡이래, 이름이 노팔룡, 그런데 그 오라버니 참 깨끗한 기운을 가진 사람이었어. 사부님을 위해 영초를 구하고 있다길래 천년 하수오를 선물로 줬어."

설지의 말을 듣다 천년 하수오를 남에게 줬다는 말에 잠시 멈칫 했던 나운학은 깨끗한 기운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설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설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설지의 말을 받았다.

"그래? 잘했다. 그런데 이 물통은 무엇이더냐?"
말을 하며 나운학이 양가죽으로 만든 제법 큰 물통을 흔들어 보니 내용물이 반 가까이 차 있는 듯 제법 큰 출렁임이 손으로 전해져 왔다.
"응?, 응! 그거 공청석유야."

순간이었다. 그때 까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설지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설지의 입에서 공청석유라는 난데없는 말이 튀어 나오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경악에 가까운 놀란 표정을 지은 것은... 놀란 사람들 속에서도 가장 먼저 설지에게 말을 건 것은 이번에도 철무륵이었다.

"뭐, 뭐라고 했느냐? 공청석유라고 했느냐?"
철무륵이 놀란 표정으로 말을 건네오자 설지는 그런 철무륵을 바라 보며 별거 아니라는 듯 한 표정으로 철무륵의 의문에 답을 해주었다.

"아이참, 공청석유 맞다니까, 왜 그래?"
"그, 그러니까, 지금 저 큰 물통 속에서 출렁이고 있는 것이 죄다 공청석유라는게냐?"
"응, 그렇다니까, 저거 전부 공청석유가 맞아. 용아가 지키고 있던 거야."

설지의 마지막 말이 놀란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용이 지키고 있던 공청석유라면 틀림없는 전설 속의 그 공청석유인 것 이다. 일반인이 한방울만 복용하면 무병장수한다고 알려진 공청석유는 무림인들에게는 더욱 큰 무가지보의 가치가 있는 영약이었다. 한방울만 복용해도 무려 일갑자에 해당하는 공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알려진 공청석유가 한방울도 아니고 커다란 양가죽 물통 속에서 출렁거리고 있었으니 만약 이 일이 강호에 퍼져 나간다면 일대 소란이 벌어질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여보시게. 운학 아우, 아무래도 식구들 모두에게 입단속을 시켜야겠네."
"예.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게 번거로운 일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운학과 말을 주고 받은 철무륵은 다시 설지를 바라 보며 마지막 질문을 했다.
"설지야. 그럼 조금 전의 그 보광은 무엇이더냐?"
"응? 아! 그거, 그건 용아의 여의주에서 나온 빛이야."
"여의주?"

그때였다. 철무륵과 말을 나누던 설지가 돌연 관도 쪽을 잠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관도 쪽을 잠시 응시하던 설지는 이내 고개를 돌려 무당 검선 일성도장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을 이었다.
"도사 할아버지! 저 쪽 관도 아래 쪽에서 부터 할아버지와 똑 같은 기운을 가진 사람들의 기운이 느껴져요. 이 쪽으로 오는건가 봐요."
"허허, 녀석, 너도 그 기운을 감지했더냐? 그래, 아마도 무당에서 아이들이 오나보다."

설지와 일성도장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서 다시 경악한 표정이 드러났다. 관도 아래 쪽 이라면 상직현 쪽의 산 아래를 가르키는 말일텐데 족히 백장은 넘게 떨어진 거리에서 사람의 기척을 감지한다는 것이 어디 보통 일이겠는가? 일성도장이야 무당 검선이라는 이름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천하제일검에 가까운 인물이었으니 그렇다고 해도 이제 막 열살이 된 어린 소녀가 백장 밖의 사람 기척을 느낀다는 것은 고금에 유래가 없던 일이었던 것이다.

"숙부, 저 영초들은 숙부가 알아서 해, 난 이제 가서 놀거야."
사람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제 할일은 다 끝났다는 듯 한마디를 툭 내뱉은 설지는 손을  툭툭 털어 보이고는 백아를 품에 안고 천막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망연한 사람들의 시선을 등 뒤로 느끼며 설지가 천막 쪽으로 사라져 가자 문득 정신을 차린듯 한 철무륵이 나운학을 향해 이렇게 말을 이었다.

"운학 아우, 설지 저놈 몸속에 내공이 얼마나 들어차 있는건가?"
"글쎄요? 아마도 거의 없을 것 입니다. 저 녀석이 한자리에 지긋이 앉아서 내공 수련을 할 만큼 인내심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말입니다."
"응? 그럼 뭔가? 내공도 거의 없다는 아이가 어떻게 나도 못 느끼는 백장 밖 사람의 기척을 감지한다는 겐가?"

나운학과 철무륵,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일성도장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 든 것은 이때였다.
"허허허, 그건 이 호랑말코가 조금 알고 있는 것 같으이, 설지 저 놈은 내공의 힘이 아닌 자연의 기운을 이용하고 있는 것 같더군. 수십년간 도력을 닦은 나도 이제 겨우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은 무위자연의 도를 저 녀석은 이미 깨닫고 있는 것 같더란 말이지."

일성도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운학과 반대로 설지가 가진 능력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던 철무륵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놀라운 표정을 한 얼굴의 아래 쪽에 달린 입을 비집고 이런 중얼거림이 나지막하게 흘러 나왔다.
"허, 무위자연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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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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