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무륵의 중얼거림을 뒤로 하고 천막 쪽으로 향했던 설지는 여러 개의 천막 가운데서 임시로 환자들을 위해 마련한 천막의 입구에 서서 머리만 쏙 안으로 집어 넣은채 천막 안을 살펴 보고 있었다.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 하던 설지가 몇개의 천막을 지나쳤을 무렵 마침내 찾고 있던 인물을 찾은 듯 입구에서 안으로 밀어넣었던 머리와 함께 천막 안으로 사라져 갔다.

"교언니!"
짤랑 짤랑한 음성으로 설지가 부른건 천막 속에서 환자들을 살펴 보고 있던 의원 두어명과 함께 있던 교혜린이었다.
"응? 그래, 설지구나. 잘 놀다 온거니?"
"응! 응! 무지하게 잘 놀았어. 그리고 언니 피부에 좋은 물도 가득 퍼 왔어!"
"물? 무슨 물?"
"헤헤헤! 그런게 있어. 비밀이야 비밀, 나중에 숙부에게 물어 봐."
"호호, 녀석도 싱겁기는.."
"헤헤, 그건 그렇고 언니는 배 안고파? 난 배고픈데..."
"호호, 그러지 않아도 저녁 먹을 때가 다 된 것 같구나. 왕삼 아저씨에게 가 보려무나."
"헤헤헤, 알았어."

신나는 음성으로 대답한 설지가 막 교혜린과 대화를 끝내고 천막 밖으로 나올 즈음 좀 전에 설지가 일성 도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언급했던 일단의 무인들이 날렵한 경공을 시전하며 성수의가의 야영지로 들어 서고 있었다. 도관을 쓰고 하얀 색의 도복을 입은 십여명의 도사들은 야영지의 입구에서 잠시 사방을 살피더니 정확히 일성 도장이 있는 곳을 향하여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 서기 시작했다.

이미 무당 제자들이 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의 시선을 한꺼번에 받으며 일성 도장에게 다가 선 십여명의 도사들은 일성 도장에게 정중한 포권지례를 올렸다. 그리고 그 중에 대표인 듯한 도사 하나가 한 걸음 나와 일행을 대신하여 극도로 진중한 음성으로 일성 도장을 향해 인사를 했다.

"사숙조님! 무당 대제자 청진이 제자들을 대신하여 인사 올립니다. 그간 별래무양하신지요?"
"그래. 나야 뭐 별일이 있었겠느냐? 그런데 너희들이 여기 까지 어인 걸음이더냐?"
"예. 사숙조님. 장문인께서 보내셨습니다."
"허허. 그래, 먼 길 오느라고 수고들 했구나."

일성 도장과 무당 대제자인 청진이 인사를 나누고 있을 즈음 이들을 발견한 설지가 냉큼 달려와 어느 사이엔가 일성 도장의 곁에 서서 반짝이는 눈망울로 막 도착한 무당의 도사들을 살펴보는가 싶더니 갑자기 허공으로 손가락질을 하며 무언가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둘..다섯...아홉, 열..열둘, 우와! 도사들이 열두명이나 된다. 우와"

일성 도장에게 인사를 하면서도 사숙조의 곁에 서서 자신들을 쳐다 보는 어린 소녀가 누군지 궁금했던 청진은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설지의 감탄성을 들으며 일성 도장을 향해 눈으로 의문을 표시했다. 그러자 호탕한 웃음 소리와 함께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일성 도장이 무당 십이검을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지의 존재를 알려 주었다.

"이 아이가 성수의가의 소공녀다. 인사들 나누거라. 설지도."
"무량수불! 무당 십이검을 대표하여 인사드리겠소이다. 무당의 대제자 청진이라고 하오이다."
"헤헤헤, 난 설지예요. 나, 설, 지."

손을 흔들며 청진에게 인사한 설지는 일성도장의 소매 자락을 잡고 흔들더니 불쑥 이렇게 말해 무당 십이검을 당황케 하였다.
"헤헤, 근데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내 보표니까 이 도사 아저씨들도 내 보표야?"
보표라니? 무당 십이검수를 향해 보표가 맞느냐고 물어 볼 이가 과연 중원 천지에 존재하고 있을까? 무당의 일대 제자들 중에서 가장 기량이 뛰어난 기재 열두명으로 구성된 무당 십이검은 무당의 장래요 희망인 동시에 무당의 무력을 대표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존재들에게 보표가 맞느냐고 질문을 했으니 아마도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절대로 조용히 지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설지의 말에 잠시 당혹한 표정을 짓던 무당 십이검이 더욱 기함할 일은 다름 아닌 일성 도장의 입을 통해서 뱉어진 다음과 말 때문이었다.
"허허허, 아무렴, 네 보표들이란다. 마음껏 부려먹거라. 껄껄껄."

난데없이 보표가 되어 버린 무당 십이검이 모두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장내에는 또 다른 인물들이 하나 둘 등장하고 있었다. 바로 나운학과 철무륵 그리고 소림의 혜명 대사와 개방의 취걸개 방융 등이었다. 이들 모두의 얼굴에는 커다란 미소가 그려져 있었는데 바로 설지와 일성 도장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렁 우렁한 큰 목소리의 철무륵이 이번에도 가장 먼저 커다란 웃음 소리와 함께 누구에게랄 것 없이 장내의 모두가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크하하, 살다 보니 무당 십이검이 한낱 보표로 전락하는 순간도 다 있소이다. 그려..크하하"

장내에 있는 모두의 심정이 같은 듯 무당 십이검을 제외한 모두가 철무륵의 이 말에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사이 일성 도장은 무당 십이검을 향해 이렇게 전음을 날리고 있었다.
- 모두들 경거망동 하지 말고 설지 저 아이를 잘 보살피거라. 아마도 손해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야.

무당 십이검에게 전음으로 주의를 준 일성 도장은 일행들과 무당 십이검을 차례대로 인사를 시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무당 십이검과 개방 제자들과의 인사가 마무리 될 무렵 그때 까지 보표(?)들을 지켜 보던 설지는 다시 한번 일성 도장의 소매 자락을 흔들더니 일성 도장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 저 보표 아저씨들 몸 속에 있는 기운이 굉장히 깨끗해."
"허허허. 그렇더냐. 좋은 일이구나, 암, 좋은 일이고 말고..허허허"
"응! 응! 근데 나 배고파요. 할아버지 우리 밥 먹으러가요."
"그래 그러자꾸나."

설지의 말에 흐뭇한 웃음을 지었던 일성 도장은 설지의 손을 잡고 일행들과의 인사를 막 끝낸 무당 십이검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먼 길 오느라고 고생했을테니 오늘은 조금 일찍 저녁 먹으러 가자꾸나. 따라들 오거라."

무당 십이검에게 말을 건넨 일성 도장과 설지가 밥 냄새가 솔솔 풍겨 나오는 천막 쪽으로 걸어갈 때 뒤를 따르던 무당 십이검은 또 한번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왜냐하면 눈부시게 하얀 색의 털과 갈색 무늬를 가진 작은 고양이 두 마리가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전혀 감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성수의가의 소공녀라는 설지의 옆에서 함께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 저 고양이들은 언제 나타난거지? 무량수불."
청진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곁에서 함께 걸어가는 무당 십이검들에게 똑 같은 의문을 전달할 무렵 설지의 곁에서 걸어가던 백아와 호아는 고양이라는 말을 듣자 동시에 눈을 곧추세우며 기분 나쁘다는 듯 청진을 한번 흘겨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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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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