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ehouse - Love Of A Lifetime

1989년에 데뷔하여 꺼져 가던 팝 메탈의 불씨를 되살리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던 미국의 팝 메탈 밴드 '파이어하우스'의 출발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Richmond)에서 태어난 '빌 레버티'는 네살이 되던 해에 부모로 부터 처음 기타를 선물로 받았으나 기타와 음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이런 빌 레버티가 흥미를 갖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음악이 아닌 스포츠 경기였다고 하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다이빙 선수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열살때 버지니아 주 다이빙 챔피언 자리에 오를 만큼 다이빙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던 빌 레버티는 돌연 다이빙을 그만두고 아이스 하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으나 선수로 뛰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음악과는 전혀 관련 없는 스포츠에 몰두하며 십대를 보내고 있던 빌 레퍼티가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열다섯살때 학교 수업시간을 통해 기타 이론을 공부하면서 부터 였다고 한다.

매주 한시간씩 6주 동안 진행된 이 음악 시간을 통해 빌 레퍼티의 인생 행로가 바뀌기 시작하였으며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정식으로 음악 이론을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음악 이론을 정식으로 공부하면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마이클 쉥커(Michael Schenker)',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키스(Kiss)' 같은 밴드와 가수들의 음악에 빠져 들게 된 빌 레퍼티는 밴드 활동의 꿈을 키우다 결국 1984년에 밴드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화이트 히트(White Heat)'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이 밴드의 드럼은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마이클 포스터'가 담당하게 되는데 바로 파이어하우스의 출발이었던 셈이다. 빌 레버티와 동향인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 출신의 마이클 포스터는 다섯살 때 어머니로 부터 선물로 받은 드럼을 두들기기 시작하면서 음악에 입문하게 된다.

어린 시절 부터 드럼을 두들기며 음악과 가까이 지내던 마이클 포스터는 학교에 들어가서 음악 이론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하이랜드 스프링 고등학교(Highland Springs High School) 재학 시절에는 행진 악대(Marching Band)에서 드럼을 담당하여 탁월한 연주 실력으로 몇차례의 수상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센추리(Century)라는 이름의 개라지 밴드(Garage Band)에서 활동하던 마이클 포스터는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드러머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는데 바로 빌 레버티가 신문에 낸 광고였다.

신문 광고를 보고 빌 레버티를 찾아간 마이클 포스터는 오디션 과정을 거쳐 선발이 되는데 당시 그가 즉석에서 연주 가능한 곡이라며 빌 레버티에게 적어 주었던 곡의 목록이 무려 서른 다섯 곡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밴드의 일원으로 가입하게 된 마이클 포스터는 밴드와의 협연이 없을때는 빌 레버티와 함께 자주 클럽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는 출연 밴드들의 공연 모습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클럽 무대에서 연주하던 밴드들 중에서 두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밴드는 '맥스 워리어(Maxx Warrior)'라는 이름의 밴드였다. 특히 이 밴드에서 보컬을 담당하고 있던 '씨제이 스내어'와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던 '페리 리처드슨'의 연주 모습에 감명을 받은 두 사람은 그들과 함께 한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그리며 가슴을 설레었다고 한다. 머지않은 장래에 그 설레임이 실현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채...

어릴때 부터 클래식 피아노 교육을 받고 성장한 씨제이 스내어의 꿈은 록 가수가 되어 무대 위를 활보하는 것이었다. 펜실베니아 주의 록 헤이븐 고등학교(Lock Haven High School)를 졸업한 씨제이 스내어는 플로리다(Florida) 주의 롤린스 대학교(Rollins College)에 진학하여 연극을 전공하게 된다. 그러나 대학교를 졸업한 씨제이 스내어는 연극 배우가 되기를 포기하고 어릴때 부터의 꿈이었던 록 가수가 되기 위해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씨제이 스내어는 베이스 주자인 페리 리처드슨을 만난 그와 함께 밴드를 밑 그림을 그린 후 1986년에 5인조 헤비메탈 밴드인 맥스 워리어를 출범시키게 된다. 'High On Metal'을 포함해 다섯 곡이 수록된 미니 음반(EP) 'Maxx Warrior'를 1986년에 발표하면서 데뷔한 맥스 워리어는 공연 활동을 하며 지명도를 넓혀 나갔으나 멤버들의 의견 차이로 인해 해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밴드가 해산하자 씨제이 스내어와 페리 리처드슨에게 접촉해온 인물들이 바로 빌 레버티와 마이클 포스터였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콘웨이(Conway)에서 태어난 '페리 리처드슨'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씨제이 스내어를 만나 밴드 활동을 시작한 인물이다. 씨제이 스내어와 함께 맥스 워리어를 출범시켰던 페리 리처드슨은 1988년에 결정된 맥스 워리어의 해산 이후 빌 레버티와 마이클 포스터의 제안에 따라 씨제이 스내어와 함께 그들과 합류하여 새로운 밴드인 파이어하우스의 출범에 합류하게 된다.

파이어하우스는 결성 이후 지하실을 임대하여 맹연습에 들어가는 한편으로 임대료와 공과금 마련을 위해 클럽 출연을 시작으로 공연 활동을 개시하게 된다. 그러던 1989년 12월의 어느 날 밤, 파이어하우스의 공연 모습을 지켜 보던 한 인물에 의해 파이어하우스는 전격적으로 음반사와 음반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그날 밤 그들의 공연을 지켜 보았던 이는 에픽 음반사(Epic Records)의 부사장인 마이클 캐플란(Michael Caplan)이었다.

에픽 음반사와 1989년에 음반 계약을 한 파이어하우스는 녹음실로 들어가 열두곡을 녹음하고 1990년 8월 21일에 데뷔 음반을 세상에 공개하게 된다. 'Firehouse'라는 제목이 붙은 데뷔 음반에서 첫번째 싱글로 발매된 곡인 'Shake & Tumble'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지만 두번째 싱글인 'Don't Treat Me Bad'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9위 까지 진출하며 성공을 거두더니 1991년에 발매된 세번째 싱글 'Love Of A Lifetime'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5위 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91년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erican Music Award)'에서 파이어하우스가 최우수 신인 하드 록/헤비메탈 밴드(Best New Hard Rock/Heavy Metal Band) 부문 상을 수상한 것에는 바로 파워 발라드 곡인 'Love Of A Lifetime'의 성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드디어 내 운명의 사랑을 만났다는 내용의 'Love Of A Lifetime'은 우리나라의 록 발라드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며 파이어하우스를 대표하는 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파이어하우스 (Firehouse) : 1989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에서 결성
씨제이 스내어 (CJ Snare, 보컬, 키보드) : 1959년 12월 14일 미국 워싱턴 출생
빌 레버티 (Bill Leverty, 기타) : 1967년 1월 30일 미국 버지니아 출생
페리 리처드슨 (Ferry Richardson, 베이스) :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Carolina) 출생
마이클 포스터 (Michael Foster, 드럼) : 1966년 12월 9일 미국 버지니아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팝 메탈(Pop-Metal)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firehousemusic.com/
노래 감상하기 : http://youtu.be/5ETENrv8cnU / http://www.divshare.com/download/15311757-a48

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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