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한마디 말로 장내를 뒤흔들어 놓은 설지가 다시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하다가 갑자기 뒷쪽으로 고개를 돌려 관도 쪽을 유심히 지켜 보기 시작했다. 그런 설지의 모습을 본 철무륵도 관도 쪽으로 시선을 돌려 살펴 보다가 이내 누군가가 달려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설지를 바라 보았다.

일각 쯤 지나자 해가 뉘엿 뉘엿 넘어 가고 있는 철장산의 중턱을 향해 땀방울을 흩날리며 뛰어 올라 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장내에 있는 사람들의 시야에 잡히기 시작했다. 선두에 선 인물은 풍만한 몸집에 사람 좋은 인상을 한 관복 차림의 중년 남성이었으며 그 사내의 뒤로는 관병 차림의 병졸들 수십명이 열을 지어 함께 올라 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나운학은 눈에서 이채를 발하더니 곧 설지를 향해 말을 이었다.

"설지야! 마침 잘 되었구나. 할머니가 주신 패를 잘 가지고 있지?"
나운학의 말에 설지는 어깨에 둘러 메고 있던 가방을 손으로 가리키며 나운학에게 이렇게 말했다.
"응! 응! 여기 가방 속에 잘 넣어 두었어. 근데 그건 왜?"
"그래 나랑 저기 관복 차림의 아저씨에게 같이 가자꾸나, 그 패를 사용해야겠다."

영문을 몰라 하던 설지는 나운학의 이 같은 말에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나운학의 손을 잡고 막 장내에 도착하여 땀을 닦고 있는 관복 차림의 중년인을 향해 다가 갔다. 하지만 두 사람 보다 먼저 관복 차림의 중년인 앞으로 다가가 말을 건네기 시작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성수의가의 총관인 장이모였다.

장총관과 관복 차림의 중년 사내는 무슨 말인가를 주고 받다가 나운학과 설지를 비롯한 인물들의 자신들에게 다가 오자 나운학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가주님! 여기 이 분은 상직현의 현령으로 도일이라는 함자를 사용하고 계시답니다."

장총관의 소개를 받은 나운학은 정중하게 포권지레를 하며 도현령에게 자신의 소개를 했다.
"아! 그러시군요. 저는 성수의가의 당대 가주인 나운학이라고 합니다."
"하하, 이거 반갑소이다. 성수의가의 당대 가주님을 이렇게 뵙게 되다니 삼생의 영광이라 하겠소이다."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그저 허명 뿐인 범부일 뿐 입니다."
"허허허! 성수의가의 당대 가주가 허명 뿐이시라 하시면 저를 놀리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하하하!"
"하하! 그게 그렇게 되는건가요. 아! 여기 이 아이는 제 조카인 설지라고 합니다."
"허허허! 성수의가에 귀엽고 예쁜 소공녀가 계시다더니 소문이 오히려 부족한 듯 싶습니다."

나운학과 현령 도일의 인사가 끝나자 철무륵을 비롯한 일성 도장과 혜명 대사가 차례로 인사를 나누는 번잡한 시간이 지나가자 나운학이 다시금 도현령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런데 현령께서는 무슨 일로 여기 까지 달려 오셨는지요?"
"아! 흠, 흠, 그게 무슨 일 때문이냐 하면 말 입니다. 이 철장산 쪽에서 보광이 환한 대낮에 솟구쳐 올라서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 보러 올라왔습니다. 저희 현을 지나가던 무림인들이 그 보광을 발견하고는 신병이기의 출현이라며 무리를 지어 올라올 채비들을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제 입장에서는 모른척 하기도 곤란해서 사전에 무슨 일인가 살펴보러 오는 길입니다."

도현령의 긴 설명이 끝나갈 무렵 부터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설지를 향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설지의 어깨에 올라 앉아 있는 용아를 향하고 있었지만... 도현령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도 가장 먼저 말을 꺼낸 이는 철무륵이었다.
"쩝! 이거 사단이 날 것 같더니 기어코 무림인들이 몰려 오나 보군. 여보게 아우, 어쩔텐가?"
"모두 돌려 보내야겠지요."

담담한 표정으로 철무륵의 말에 대답을 한 나운학은 설지를 향해 말을 이었다.
"설지야! 할머니가 주신 패를 도현령께 보여드리거라."
"응? 아! 잠시만"

짧게 대답을 한 설지는 어깨를 가로 질러 메고 있던 가방 속을 뒤적거리더니 이내 손바닥만한 옥패 하나를 끄집어 냈다. 설지의 손에서 푸르른 빛깔을 내고 있는 그 옥패의 전면에는 봉황의 모습이 신비롭게 아로새겨져 있었으며 뒷면에는 이물질 하나가 붙어 있었는데 누가 보더라도 말린 과일이 엉켜 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앗! 이게 왜 여기 붙어 있지? 헤헤헤"

말린 과일을 발견한 설지가 말린 과일을 떼어 입속으로 넣으며 이렇게 말하는 순간 장내의 누구도 짐작조차 못한 일이 사람들의 눈 앞에서 벌어졌다. 옥패를 확인한 순간 도현령이 갑자기 황족을 대하는 자세인 오체투지를 하며 바닥에 엎드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도현령의 뒤에서 엉거주춤 서있던 관병들도 영문을 모르기는 했지만 상관인 도현령과 똑 같은 자세로 바닥에 엎드렸다. 관병들이 모두 오체투지를 하자 그제서야 도현령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 나왔다.

"신 현령 도일이 봉황옥패의 패주를 뵙습니다."
도일의 말이 끝나자 다른 관병들의 입에서도 똑 같은 외침이 따라 나왔다.
"패주를 뵙습니다!"
"패주를 뵙습니다!"

뜻밖의 상황에 어리둥절 하던 설지가 나운학을 바라보자 나운학은 빙그레 미소를 띠며 설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현령께 예를 거두시라 말씀드리거라."
"응! 응! 현령 아저씨! 예를 거두세요."
"신 현령 도일! 패주 마마의 명을 받듭니다."

말과 함께 오체투지를 풀고 일어선 도현령이 몸가짐을 바로 하자 함께 오체투지를 했던 관병들도 그제서야 우르르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런 관병들의 모습을 일변한 도현령은 설지를 향해 공손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마마! 하명하실 일이 있으신지요?"

도현령의 이 같은 말에 어리둥절해 하던 설지가 도현령을 바라 보며 입을 열었다.
"응? 마마라고요. 제가 왜 마마예요?"
"아! 예. 마마! 당금 대정국의 황실에는 황룡패와 봉황옥패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황룡패는 태자마마가 소지하고 계신 패이고 봉황옥패는 공주 마마에게 전해지고 있는 패이온데 지금 마마가 들고 계시는 그 패가 바로 봉황옥패이옵니다."
"응? 그런거야? 철숙부 들었지? 내가 마마래 마마! 우헤헤"

철무륵을 향해 방정 맞은 웃음을 던지며 자랑을 해보인 설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현령 아저씨! 봉황옥패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어요?"
"예! 마마, 패주의 신분으로 하실 수 있는 일은 대정국내의 어떤 관청이라도 자유롭게 출입하실 수 있으시며 필요할 경우 1만명의 관병을 동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와! 우와! 대빵 멋지다. 헤헤헤"

옥패를 들고 폴짝 폴짝 뛰며 좋아하는 설지를 바라보던 나운학은 시선을 거두고 도현령에게 옥패를 보여주며 부탁하려던 말을 이었다.
"도현령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혈사교의 잔당들을 발견하여 구금해 두었는데 그들의 호송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호송이라면 어디까지 말씀이신지요."
"아! 예. 멀기는 하지만 저희 성수의가 까지 부탁드리겠습니다."
"흠, 멀기는 하지만 별 문제는 없을 것 입니다. 다만 보고를 하고 관병을 움직여야 하기에 며칠간의 말미는 주셔야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십시오."
"그럼, 그 놈들은 어디있습니까. 일단 저희 현령의 옥사에 가둬 두었다가 보고 후에 호송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절 따라 오시지요."

나운학이 도현령과 함께 혈사교의 잔당들을 구금해둔 곳으로 걸어 가자 몇명의 관병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자리에 남은 관병들은 성수의가의 소공녀이고 봉황옥패의 주인인 설지의 모습을 신기한 눈 빛으로 살펴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눈 빛과는 상관 없이 설지는 철무륵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흠, 철숙부! 방금 들었지? 나보고 마마라고 하는 걸"

설지의 이 같은 말에 철무륵은 설지의 머리 통에 가볍게 알밤을 먹이며 이렇게 응수했다.
"에라이, 이 녀석아! 마마 좋아하네"
"앗! 어허, 무엄하다, 감히 산적 주제에 마마의 머리 통에 알밤을 먹이다니 정녕 죽고 싶은게냐?"
머리를 문지르며 설지가 이 같이 내뱉자 장내에는 한차례 웃음 소리가 휩쓸고 지나갔다. 그런데 웃음 소리가 그쳐 갈 무렵 문득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숲을 바라보던 설지의 입에서 나직하지만 단호한 음성 하나가 튀어 나왔다.
"호아! 가서 잡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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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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