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sryche - Silent Lucidity

'사바타지(Savatage)'의 1991년 음반 'Streets: A Rock Opera'와 '와스프(W.A.S.P)'의 1992년 음반 'The Crimson Idol'과 함께 미국 헤비메탈을 대표하는 컨셉트 음반(Concept Album: 전체적으로 일관된 주제와 이야기 구조를 가진 음반)으로 1988년에 발표되어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음반인 'Operation: Mindcrime'의 주인공 '퀸스라이크'는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이나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 같은 유명한 헤비메탈 밴드의 음악을 커버하여 연주하던 밴드인 '크로스파이어(Cross+Fire)'에서 시작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마이클 윌턴'은 여덟살때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삼촌의 베이스 기타를 물려 받으면서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이왕에 생긴 베이스 기타를 그냥 놀릴수가 없다고 생각한 마이클 윌턴은 아버지가 수집해둔 '밥 딜런(Bob Dylan)', '비틀즈(The Beatles)',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같은 음악인들의 음반을 들으면서 베이스 기타를 배우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베이스 기타와의 인연은 실수로 아버지의 스피커를 터트려 버릴때 까지 계속되었다. 스피커의 볼륨을 너무 크게 하고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바람에 발생했던 이 일 이후에 마이클 윌턴의 숙모는 베이스 기타 대신 어쿠스틱 기타를 조카에게 선물로 주었으며 조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사망한 삼촌이 쓰던 장비 모두를 조카에게 물려 주게 된다. 이 즈음 마이클 윌턴은 전기 기타와 베이스 기타를 두고 저울질 하다 결국 전기 기타를 선택하게 되면서 기타 연주자로써의 길을 걷게 된다.

마이클 윌턴의 첫번째 밴드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여 결성한 개라지 밴드(Garage Band)였다. 당시 이 밴드에는 후일 퀸스라이크에서 함께 활동하게 되는 '크리스 드가모'가 포함되어 있었다. 고교 시절 하루에 두시간씩 기타 연습을 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던 마이클 윌턴은 시애틀의 예술 대학에 진학하여 재즈와 클래식 교육을 받게 되는데 대학교에서의 이런 교육 과정들은 마이클 윌턴으로 하여금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에 커다란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대학에서 마이클 윌턴은 '에디 잭슨'과 '스콧 록켄필드'를 만나 친분을 쌓게 된다. 마이클 윌턴과 스콧 록켄필드는 헤비메탈 밴드들의 음악을 커버하여 연주하던 밴드인 크로스파이어에 1980년에 가입하여 밴드 활동을 함께 시작했으며 이듬해인 1981년에 크리스 드가모와 에디 잭슨을 합류시키면서 밴드를 재정비하였고 밴드 이름도 '몹(The Mob)'으로 바꾸게 된다.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밴드의 구성에서 빠진 부분이 있다면 보컬이었다. 몹의 네사람은 자신들이 구상하고 있던 진보적인 성향의 헤비메탈 음악에 적합한 보컬 주자를 찾기 시작하였는데 때마침 워싱턴에서 열렸던 록 음악 축제에 참가한 '제프 테이트'를 발견하게 된다.

제프 테이트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미스(Myth)'에서 밴드 활동을 시작하여 '바빌론(Babylon)'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거치며 밴드 활동을 했던 인물로 당시 좀더 강력한 음악을 하는 밴드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참고로 미스에는 1998년 부터 퀸스라이크에 합류하게 되는 '켈리 그레이(Kelly Gray)'가 기타 주자로 제프 테이트와 함께 활동했었다.

몹은 5인조로 밴드의 구성을 마친 후 1981년에 'Queen of the Reich'를 시작으로 'Nightrider', 'Blinded', 'The Lady Wore Black'의 네곡을 담은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였다. 데모 테이프 제작 후 몹은 새로운 매니저를 고용하게 되는데 새롤 고용된 매니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밴드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매니저의 제안에 따라 바뀐 이름은 그들의 첫번째 데모 곡인 'Queen of the Reich'를 변형한 '퀸스라이크(Queensrÿche)'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멤버들은 이후 십일년 동안을 밴드 이름의 정확한 발음에 대해서 일일이 설명하고 다녀야 하는 고초를 겪게 된다.

퀸스라이크의 데모 테이프는 영국의 록 음악 전문 잡지 '케랑(Kerrang!)'의 지면을 통해 극찬을 받으면서 주목받게 되는데 이 일을 계기로 퀸스라이크는 206 음반사(206 Records)를 통해서 데모 테이프를 기반으로 하여 제작한 미니 음반(EP) 'Queensrÿche'를 1982년에 공개하게 된다. 이렇게 공개된 미니 음반의 성공은 이엠아이(EMI)로 하여금 1983년에 퀸스라이크와의 음반 계약을 추진하게 하였다.

이엠아이와 계약한 퀸스라이크는 1983년에 미니 음반 'Queensrÿche'를 재발매 하는 것으로 데뷔를 대신하였으며 이 음반은 예상대로 빌보드 앨범 차트에 진입하여 81위 까지 진출하게 된다. 데뷔 미니 음반의 성공 이후 영국 런던으로 건너간 퀸스라이크는 애비로드 스튜디오(Abbey Road Studios)에서 데뷔 음반의 녹음에 들어가게 된다. 1984년 9월 7일에 발표된 퀸스라이크의 공식 데뷔 음반은 'The Warning'이라는 제목을 달고 발매가 되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61위 까지 진출하였다.

1986년 7월에 두번째 음반 'Rage for Order'를 발표했던 퀸스라이크는 1988년 4월 27일에 헤비메탈 역사에 길이 남을 음반 'Operation: Mindcrime'를 발표하여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새역사를 쓰게 된다. 장대한 록 오페라를 선보여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50위 까지 진출했던 이 음반의 뒤를 이은 음반은 1990년 8월 20일에 발표된 'Empire'였다. 전작의 장대함에 여백의 미를 추가한 이 음반에서는 퀸스라이크 최고의 성과를 거둔 싱글이 탄생하게 되는데 바로 여덟번째 트랙으로 수록된 'Silent Lucidity'라는 곡이다.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9위 까지 진출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록 발라드인 'Silent Lucidity'는 루시드 드림(Lucid Dream: 꿈을 꾸면서 자신이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현상인 자각몽)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가사와 아름답게 흐르는 멜로디가 일품인 곡으로 이 곡을 통해 퀸스라이크가 제공하는 서정미를 느껴 볼 수 있다.

퀸스라이크 (Queensryche) : 미국 워싱턴 주 벨뷰(Bellevue)에서 1981년 결성
제프 테이트 (Geoff Tate, 보컬, 키보드) : 1959년 1월 14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Stuttgart) 출생
마이클 윌턴 (Michael Wilton, 기타) : 1962년 2월 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생
크리스 드가모 (Chris DeGarmo, 기타) : 1963년 6월 14일 미국 워싱턴 주 웨내치(Wenatchee) 출생
에디 잭슨 (Eddie Jackson, 베이스) : 1961년 1월 29일 미국 텍사스 출생
스콧 록켄필드 (Scott Rockenfield, 드럼) : 1963년 6월 15일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Seattle)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프로그레시브 메탈(Progressive Metal)
공식 웹사이트 : http://www.queensryche.com/
노래 감상하기 : http://youtu.be/jhat-xUQ6dw / http://www.divshare.com/download/15503876-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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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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