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탁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관솔불이 설지를 중심으로 원형을 이루며 앉아 있는 소림사 십팔 나한들의 모습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광장으로 다가서는 일성 도장과 무당 십이검의 눈에 한무리의 인물들이 들어 왔다. 그들은 현령 도일과 그의 수하들로 질서 정연하게 도열하여 설지가 있는 방향을 향해 다가서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 무리에는 포승줄에 묶인 혈사교 잔당들과 호북 삼귀도 포함되어 있었다.

설지의 모습이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지점, 즉 십팔 나한들이 원형을 이루고 있는 경계선 까지 다가선 도일은 설지를 향해 깊숙히 포권하며 입을 열었다.
"마마! 소신 도일! 오늘은 이만 물러나겠나이다."
"응? 응! 헤헤. 그렇게 하세요."
"예. 마마, 그리고 마마의 호위 겸 연락책으로 여기 이 두 사람을 두고 가겠사옵니다."
도일이 말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현령 일행들과 한 걸음 정도 떨어진채 포졸 차림으로 서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응? 아니, 아니예요. 그럴 필요 없어요. 제겐 저기 보표 아저씨들이 열두명이나 있고 대빵 보표 할아버지도 있어요"
설지가 가리킨 곳은 막 장내에 당도한 무당파의 일행들이 서있는 곳이었다. 설지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던 현령 도일이 설지를 향해 다시 공손히 말을 이어갔다.
"하오나 마마! 소신이 마마를 호위할 사람을 붙여두지 않으면 추후 문책을 당하게 되옵니다. 이 점 헤아려 주시옵소서"
"응? 그런거예요?"

도일의 말을 듣고 한참을 무언가 생각하던 설지가 도일이 가리킨 두 사람을 잠시 살펴보고는 도일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기 두 아저씨는 누구예요?"
"예. 마마, 저 두사람은 상직현을 관할하는 포청의 포쾌와 포두로써 강직하기가 이를데 없는 무장들이옵니다. 덩치가 큰 쪽이 포쾌인 왕팔이옵고 그의 옆에 있는 자가 왕팔의 직속 상관인 포두 장학일이옵니다. 특히 장포두는 지닌바 인품과 무력이 뛰어난 인재이지만 뒷배경이 없는 탓에 소신의 밑에서 기껏 포두를 하고 있사오나 포두로만 지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이옵니다."
"응! 그렇구나, 그런데 현령 아저씨"
"예. 마마"
"장포두라는 저 아저씨의 벼슬을 현령 아저씨가 올려주면 안되는 거예요?"
"예. 마마. 말단 포쾌의 신분인 자에게 소신의 능력이 미치는 범위는 포두가 고작이옵니다."
"그래요? 그럼, 마마라는 나는... 아참 내가 무슨 마마예요? 헤헤헤"
"예. 마마, 봉황옥패의 패주는 대정국의 공주마마와 같은 신분이십니다. 즉 공주마마이십니다."
"우앗! 크헤헤, 철숙부 들었지? 내가 공주래 공주, 우헤헤헤"

도일과 말을 나누던 설지는 자신이 공주라고 하자 철무륵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방정맞고 호들갑스런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한차례 신나게 웃음을 피워 물며 팔딱 팔딱 뛰었던 설지가 도일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현령 아저씨! 그럼 공주인 나는 어때요?"

뜬금없는 설지의 말을 들은 도일은 말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잠시 생각하다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설지를 향해 말을 이어 갔다.
"아! 예. 마마, 봉황옥패의 패주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제후를 비롯한 성주나 관찰사 등의 고위급 인사를 제외하고는 임명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물론 이에는 보고 절차를 거친 후 폐하의 윤허가 뒤따라야 한다는 조건이 붙사옵니다."
"그래요? 응, 응, 알았어요. 그만 내려가 보세요. 아참 그리고 나중에 현청 구경가도 되죠?"
"예. 마마. 언제든 구경하시고 싶으실 때 오십시오. 그럼 소신등은 이만 내려가겠사옵니다."
"예. 현령 아저씨. 조심히 가세요"

현령 도일이 설지의 앞에서 물러나 나운학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후 죄인들을 동반하고 하산하기 시작하자 설지도 미뤄 두었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왕포쾌와 장포두는 그런 설지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는 것으로 자신들의 할일을 시작했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 스님 할아버지!"
"예, 소공녀 말씀하시지요."

소림의 계율 원주인 혜명 대사는 잔뜩 기대에 찬 들뜬 표정을 숨기지 않은채 설지의 말을 받았다.
"응! 응!, 여기 스님들을 반으로 나누어서 보령환을 드시게 하고 운기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남은 아홉분은 만일을 대비해 주의깊게 운기하시는 스님들을 살펴보게 하세요. 운기하시고 계시면 운기의 길을 거스리지 않으면서 초아가 새로운 길을 열어줄거예요. 절대 거부하지 말고 새로운 길을 따라 가라고 하세요. 아마도 두시진은 걸릴거예요."
"예, 그리하도록 하지요. 제자들은 소공녀의 말씀대로 시행하라."

혜명 대사의 추상 같은 엄명이 내려지자 소림 십팔 나한 중 아홉명의 승려들이 손에 들고 있던 밀납에 싸인 성수보령환의 밀납을 깨트리고 차례대로 복용하기 시작했다. 공청석유가 배합된 성수 보령환을 복용한 승려들은 이내 자신들의 체내에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청아한 기운에 도취 되어 운공 삼매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홉명의 승려들이 차례대로 운기 행공에 돌입하자 설지는 가슴팍에 달려 있던 초아를 자신이 딛고 있던 발 아래로 살며시 내려 놓았다. 설지의 가슴에서 땅위로 내려서기 무섭게 초아의 뿌연 몸통은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더니 뇌두 부분만 남긴채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왕포쾌와 장포두는 물론 무당 십이검도 생전 처음 보는 기사에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뇌두만 남긴채 땅속으로 파고든 초아의 주변으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청아한 향기가 주변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은... 초아의 기이한 모습에 놀랐던 사람들이 그 향기를 느낄때 쯤 운기 행공을 하고 있던 아홉 스님들의 몸속에서도 기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홉 스님의 몸속으로 초아의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에 만년삼왕인 초아는 설지 한사람에게만 자신의 기운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땅속의 지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동시에 아홉 사람에게 자신의 기를 나눠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소림의 십팔나한들이 새로운 기연을 만나기 시작할 즈음 초아와 심령상의 대화를 통해 운기 행공을 하는 소림 십팔 나한들을 살펴 보던 설지는 반시진 정도가 흐르자 한차례 하품을 하고는 터벅 터벅 걸어 혜명 대사에게 다가가 이런 말을 남기고 천막 쪽으로 걸어 갔다.

"아웅, 졸려, 스님 할아버지, 저기 스님들 운기가 끝나면 교대하라고 하세요. 이제 부터는 초아가 알아서 할거야. 난 가서 잘래."
"예, 소공녀. 그리하도록 하시지요. 아미타불!"

설지가 교혜련의 손을 잡고 천막으로 사라져 간 후에도 장내에 있는 누구 하나 발을 떼는 사람들이 없었다. 모두가 이후에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기대대로 운기에 들어간지 한시진 정도가 흐른 무렵 부터 소림 승려들의 몸에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먼저 나타난 변화는 모공을 통해서 배출되는 사기와 노폐물로 인한 악취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승려들의 피부가 벗겨지며 바람에 날려가는 동시에 승려들의 몸속에서 뼈와 뼈가 부딪히는 듯한 기괴한 음향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른바 환골탈태의 과정을 아홉명의 승려가 동시에 거치는 중이었던 것이다.

아홉 승려를 지켜보며 호법을 서고 있던 십팔나한의 나머지 아홉 명의 승려들은 사형제들의 이런 모습에 더욱 긴장감을 끌어 올리며 지켜보기 시작했고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지켜 보는 혜명 대사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날줄을 몰랐다. 소림 승려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철무륵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를 못하는 혜명 대사에게 슬며시 다가가 부러운 목소리로 말을 붙였다.
"허, 이런, 오늘 소림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 같소이다."
"허허허, 아미타불! 부처님의 가호가 천년 소림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지요."

혜명 대사의 이 말을 들은 철무륵은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흥! 부처님의 가호는 개뿔이 설지의 가호겠지.'

철무륵의 시샘 속에 두시진의 운기 행공을 마친 아홉명의 소림 승려들은 차례대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아홉명의 승려들이 몸가짐을 단정히 추슬리고 희열에 찬 표정으로 헤명 대사를 향해 합장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성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주위에 보는 눈이 없었다면 혜명 대사는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그리고 나머지 아홉명의 승려들이 운기행공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소림이 맞은 기연의 밤은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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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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