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na Ross & Lionel Richie - Endless Love

우리나라의 팝 팬들 사이에서 오랜 기간 동안 사랑받고 있는 곡인 'Endless Love'는 1981년 7월 17일에 미국에서 개봉되었던 같은 제목의 영화에 삽입되었던 영화 주제가이다. 이 곡은 삼인조 걸 그룹 '슈프림스(The Supremes)' 출신의 '다이아나 로스(본명: Diana Ernestine Earle Ross)'와 소울 밴드 '코모도스(Commodores)'의 '라이오넬 리치(본명: Lionel Brockman Richie, Jr)'가 듀엣으로 부른 곡으로 팝 역사상 가장 성공한 듀엣 곡 중 하나이기도 하다.

미국의 가수 겸 배우인 다이아나 로스는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의 한 병원에서 학교 교사였던 어머니와 미 육군 병사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 중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런 이유로 다이아나 로스는 전쟁이 끝날때 까지 아버지를 보지 못한채 성장하게 된다. 다이아나 로스가 태어나자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첫번째 딸에게 다이앤(Diane)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 주었으나 행정상의 착오로 인해 출생 기록부에 다이아나(Diana)로 표기되는 바람에 본명이 다이아나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집과 학교에서 늘 다이앤이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했다고 하며 이 다이앤이라는 이름의 사용은 그녀의 고등학교 졸업 연감에 다이아나라는 이름이 올라갈때 까지 계속 되었다.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다이아나 로스는 중학교 시절에 보컬 그룹을 조직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고교 시절에는 디트로이트 지역의 한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흑인이 이 백화점에서 일을 했던 것은 다이아나 로스가 처음이었다고 하는데 이런 배경에는 그녀가 고교생 신분으로 가수로 데뷔하였던 것이 크게 작용하였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다이아나 로스가 본격적인 프로 가수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59년이었다. 두왑(doo-wop: 리듬 앤드 블루스 형식의 음악) 그룹인 '프라임스(The Primes)'의 매니저를 보고 있던 '메리 윌슨(Mary Wilson)'이 다이아나 로스의 노래 실력에 반해 여성들로만 구성된 프라임스 같은 그룹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을 내놓게 된다. 이에 동조한 인물들은 메리 윌슨과 다이아나 로스를 비롯하여 '플로렌스 발라드(Florence Ballard)'와 '베티 맥글로운(Betty McGlown)'이었다.

네 사람은 '프라임츠(The Primettes)'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1960년에 루 파인 음반사(Lu Pine Records)와 음반 계약을 하였으며 같은 해 8월에 데뷔 싱글 'Tears of Sorrow'를 발표하게 된다. 이듬해인 1961년 1월에 베리 고디(Berry Gordy)를 만난 프라임츠는 베리 고디가 설립한 모타운(Motown)의 전신인 탐라 음반사(Tamla Records)와 계약한 후 베리 고디의 제안에 따라 그룹 이름을 '슈프림스(The Supremes)'로 바꾸게 된다. 그리고 1961년 3월 9일에 모타운 데뷔 곡이자 슈프림스의 데뷔 곡이기도 한 'I Want a Guy'를 발표하게 된다. 이 곡은 베리 고디가 만든 곡이다.

이후 다이아나 로스는 슈프림스와 함께 'Where Did Our Love Go(1964년)'를 시작으로 총 열두곡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을 탄생시켰으며 1970년 부터 시작한 솔로 활동을 통해서는 'Ain't No Mountain High Enough(1970년)'를 시작으로 1980년 까지 다섯 곡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을 탄생시키며 모타운을 대표하는 가수로 활동하다 1981년에 코모도스의 라이오넬 리치를 만나 그와 함께 영화 'Endless Love'의 주제가를 부르게 된다.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이자 음반 제작자이기도 한 '라이오넬 리치(본명:Lionel Brockman Richie)'는 앨라배마주의 터스키기에서 태어났다. 라이오넬 리치가 태어날 당시 그의 할아버지는 터스키기 대학교(Tuskegee University)의 학장이었다고 한다. 귀여운 손자와 가까이 있고 싶었던 할아버지의 바램에 따라 교내 사택이 있는 길 건너 맞은 편 집에서 성장하였던 라이오넬 리치는 후일 가족이 일리노이 주로 이사함에 따라 졸리엣 타운쉽 고등학교(Joliet Township High School)에 진학하게 된다.

졸리엣 타운쉽 고등학교에 진학한 라이오넬 리치는 테니스 선수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유명한 테니스 선수로 고교 시절을 보내게 된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테니스 선수로 장학금을 받으며 고향인 터스키기 대학교에 진학한 라이오넬 리치는 신입생 시절인 1960년대 중반에 학교 친구들과 함께 알앤비(R&B) 그룹을 결성하게 되는데 이 밴드가 바로 그 유명한 소울 밴드인 '코모도스(Commodores)'의 시작이었다.

밴드는 교내 공연을 시작으로 클럽 등의 무대를 통해 활발한 공연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여 차츰 인지도를 넒혀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밴드의 열정적인 활동의 성과는 1968년에 애틀란틱 음반사(Atlantic Records)와의 음반 계약서로 이어지게 된다. 코모도스라는 밴드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던 애틀란틱 음반사와의 인연은 한장의 싱글 음반을 발표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으며 이후 코모도스는 모타운으로 소속사를 옮기게 된다.

모타운으로 소속사를 옮긴 코모도스는 이후 `Easy', `Three Times A Lady'등의 히트 곡을 발표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코모도스의 모든 음악을 직접 만들었던 라이오넬 리치는 1980년에 컨트리 가수인 '케니 로저스(Kenny Rogers)'에게 'Lady’를 만들어 주어 히트시키면서 작곡가로써의 능력도 동시에 인정 받게 된다.

케니 로저스 최대 히트 곡이며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에 올랐던 곡인 ‘Lady’ 이후 라이오넬 리치는 1981년에 영화 ‘Endless Love’의 주제가를 직접 만들어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가수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와 듀엣으로 불러 영화에 삽입하게 된다. 아름다운 사랑 노래인 'Endless Love'는 1981년 8월 1일에 싱글로 발매되어 8월 9일에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랐으며 이후 10월 10일 까지 9주간 1위 자리를 지키며 맹위를 떨쳤다.

라이오넬 리치는 듀엣 곡 'Endless Love'의 엄청난 성공 이후 솔로 활동에 대한 자신감을 얻어 1982년에 음반 'Lionel Richie'를 발표하면서 솔로로 데뷔하게 된다.

다이아나 로스 (Diana Ross) : 1944년 3월 26일 미국 미시간(Michigan) 주 디트로이트(Detroit) 출생
라이오넬 리치 (Lionel Richie) : 1949년 6월 20일 미국 앨라배마(Alabama) 주 터스키기(Tuskegee) 출생

갈래 : 소울(Soul), 리듬 앤 블루스(R&B),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dianaross.com/ / http://www.lionelrichie.com/
노래 감상하기 : http://youtu.be/Ewf0TnM4eKo / http://www.divshare.com/download/15547856-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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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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