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S.P. - Sleeping (In The Fire)

데뷔와 동시에 미국의 학부모들로 구성된 대중 음악 감시 단체인 PMRC(Parents Music Resource Center)로 부터 요주의 감시 대상 밴드에 선정되어 버린 미국의 헤비메탈 밴드 '와스프'는 '머틀리 크루(Motley Crue)'와 '콰이어트 라이어트(Quiet Riot)' 같은 헤비메탈 밴드와 함께 L.A 메탈계를 이끌며 L.A 메탈의 세계화를 주도했던 밴드이다.

뉴욕 주 스태튼 섬(Staten Island)에서 미국 원주민의 혈통을 갖고 태어난 '블랙키 로리스(본명: Steven Duren)'는 아홉살 때 처음으로 기타를 손에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해에 처음으로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가 가입한 밴드는 '언더사이드(The Underside)'라는 이름의 밴드였다. 열세살때 폭행 시비에 휘말린 블랙키 로리스는 그 댓가로 이듬해인 열네살때 군사 학교에 강제 입학하게 되지만 입교한지 2년만에 다시 상관을 폭행하여 학교에서 퇴교 조치를 당하게 된다.

군사 학교에서 퇴교 당한 블랙키 로리스는 열여섯의 나이로 프로 밴드의 일원으로 록계에 복귀하게 되는데 당시 그가 활동했던 '블랙 래빗(Black Rabbit)'과 '오팩스 레인보우(Orfax Rainbow)' 같은 밴드들은 지역의 선술집과 클럽을 무대로 활동하던 무명 밴드들이었다. 무명 밴드에서 조금씩 성장세를 보이며 활동하던 블랙키 로리스에게 첫번째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75년이었다.

미국의 펑크(Punk) 록 밴드인 '뉴욕 돌스(New York Dolls)'에 '조니 썬더스(Johnny Thunders)'의 후임으로 가입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디션을 거쳐 가입한 유명 밴드에서의 활동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미 밴드로써의 힘을 잃어가며 기울기 시작한 뉴욕 돌스가 결국 1976년에 해산을 결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블랙키 로리스는 뉴욕 돌스가 해산하자 뉴욕 돌스에서 같이 활동했던 베이스 주자 '아서 케인(Arthur Kane)'과 함께 프로젝트 팀인 '킬러 케인(Killer Kane)'을 결성하고 캘리포니아에서 싱글 'Mr. Cool'을 발표하면서 음악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 팀은 단발성으로 끝나 버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아서 케인은 뉴욕으로 돌아가 음악 활동을 하기를 원했지만 블랙키 로리스는 로스앤젤레스에 남아서 음악 활동을 이어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결별 후 블랙키 로리스는 1976년에 '리지 그레이(Lizzie Grey, 기타)'와 후일 머틀리 크루에서 활동하게 되는 '니키 식스(Nikki Sixx, 베이스)'와 함께 삼인조 헤비메탈 밴드인 '시스터(Sister)'를 결성하게 된다.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클럽을 무대로 활동하던 시스터의 블랙키 로리스는 할리우드(Hollywood) 지역에 있는 유명한 나이트 클럽인 스타우드 나이트 클럽(Starwood Night Club)에서 1978년의 어느 날 우연히 '랜디 파이퍼(본명: William Randall Piper)'를 만나게 된다.

고교 시절 부터 음반 할인 가게를 운영하며 음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던 랜디 파이퍼와 함께 음악 이야기를 나누던 블랙키 로리스는 랜디 파이퍼가 녹음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의 도움으로 시스터의 데모 테이프를 랜디 파이퍼의 매그넘 오퍼스 스튜디오(Magnum Opus Studios)에서 제작하게 된다. 하지만 이 데모 테이프 제작 후 블랙키 로리스는 니키 식스를 해고하고 밴드를 새로 구성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리지 그레이도 시스터에서 탈퇴한 후 니키 식스와 함께 헤비메탈 밴드인 '런던(London)'을 1978년에 결성하게 된다.

새로운 밴드를 구상하던 블랙키 로리스는 제일 먼저 랜디 파이퍼(기타)를 밴드에 합류 시킨 후 '조이 팔레모(Joey Palemo, 베이스)'와 '지미 이미지(Jimi Image, 드럼)'를 구성원으로 하는 새로운 시스터를 출범시키게 된다. 시스터는 1979년에 '서커스 서커스(Circus Circus)'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하게 되며 1980년 초에 '크리스 홈스(본명: Christopher John Holmes)'가 가입하여 와스프의 기본 형태가 갖추어 지기 시작한다.

'토니 리처즈(본명: Anthony Richard Orlando)'의 가입으로 4인조 헤비메탈 밴드의 체제를 완성한 밴드는 새출발을 위해 밴드 이름을 바꾸기로 하는데 1982년에 탄생한 새로운 밴드의 이름은 와스프였다. 와스프라는 밴드 이름을 두고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와스프가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것이 <White Anglo-Saxon Protestants>나 <We Are Sexual Perverts>의 약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밴드가 유명세를 빌어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여진다. 다른 일설에 의하면 블랙키 로리스와 친구가 어느 날 집 뒷편의 정원을 산책하다 말벌(Wasp)집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말벌집을 본 친구가 블랙키 로리스에게 밴드의 이름을 와스프로 하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이 권유를 받아 들인 블랙키 로리스가 밴드 이름을 강조하기 위해 각 철자 사이에 점을 찍어본 후 그 형태가 마음에 들어 밴드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여간 와스프로 밴드 이름을 결정한 밴드는 캐피틀 음반사(Capitol Records)와 계약하고 싱글 음반 'Animal (Fuck Like A Beast)'로 데뷔하였으며 1984년 8월 17일에 정식 데뷔 음반 'W.A.S.P.'를 공개하였다. 쇠로 만들어진 장신구를 착용한 멤버들의 모습을 표지에 담은 와스프의 데뷔 음반에는 첫번째 싱글로 발표되어 뉴질랜드 싱글 차트에서 30위 까지 진출했던 질주감이 탁월한 와스프의 대표 곡 'I Wanna Be Somebody'와 서정적인 록 발라드 'Sleeping (In The Fire)'등을 수록하여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특히 'Sleeping (In The Fire)'은 우리나라의 록 발라드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더불어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쯤의 내용으로 되어 있는 'Sleeping (In The Fire)'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잊혀져 버린 와스프의 매력을 되살리기에 충분한 곡이라는 생각이다.

와스프 (W.A.S.P.) :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1982년 결성
블랙키 로리스 (Blackie Lawless, 보컬, 베이스) : 1956년 9월 4일 미국 뉴욕 출생
크리스 홈스 (Chris Holmes, 기타) : 1958년 6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Glendale) 출생
랜디 파이퍼 (Randy Piper, 기타) : 1953년 4월 13일 미국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San Antonio) 출생
토니 리처즈 (Tony Richards, 드럼) : 미국 동부 출생, 애리조나 주 피닉스(Phoenix)에서 성장

갈래 : 헤비메탈(Heavy Metal), 글램 메탈(Glam Metal), 하드 록(Hard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waspnation.com/
노래 감상하기 : http://youtu.be/Mcrx4wsnoPY / http://www.divshare.com/download/15577719-d72

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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