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상직현으로 들어가는 성문 근처의 넓은 벌판에 도착한 설지의 입에서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설지가 바라 보고 있는 넓게 펼져친 초지는 야트막한 야산이 초지를 품고 있는 형상이었다. 거기다 폭이 그리 넓지 않은 작은 개울이 초지와 야산을 가르며 야산 아래쪽을 돌아 흘러가는 정경이 겹쳐지면서 마치 한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은 운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밍밍의 등에서 탄성을 발하던 설지는 밍밍의 등에서 뛰어 내려 한달음에 개울로 달려가 손을 넣어 보았다. 차가운 물의 감촉이 손등을 타고 올라 가슴 속까지 청량하게 해주는 느낌에 기분 좋은 미소를 베어 물던 설지는 아예 신발을 벗고 앉아서 개울 속으로 발을 담그고 물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어느새 다가온 밍밍도 개울 속에 입을 박고 시원한 물을 마시고 있었으며 호아와 백아는 이미 물속으로 들어가 신나게 장난치고 있었다.

설지가 한낮의 여름 날 더위를 식히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운학은 벌판 한가운데에 설지가 꽂아 두고 간 성수의가의 깃발을 중심으로 천막을 치게 하고는 장총관과 함께 이후 일정과 의행에 대해서 몇가지를 상의하는 것으로 성수신의로써 상직현에서의 첫번째 업무를 시작하였다. 환자를 받는 순서와 그에 따른 진료 처리 과정들의 논의가 끝나자 나운학은 설지가 개울에 발을 담그고 물장구을 치고 있는 곳으로 다가가 설지에게 말을 걸었다.

"설지야! 시원하니?"
"응, 응! 숙부, 무지 무지 시원해,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야. 헤헤헤"
"하하하, 녀석도, 뼛속까지 시원하다니 다행이구나. 그래 이제 점심먹을 시간이 다되었는데 어쩔테냐?"
"응? 응? 뭘 어째?"
"응? 너무 시원하니까 벌써 잊어버린게냐? 아까 네가 객잔 풍운을 경험해 본다고 하지 않았느냐"
"아! 맞다. 헤헤헤"
"어서 준비하고 오너라. 기다리고 있으마"
"응, 응 알았어"

설지와 이야기를 끝낸 나운학은 철무륵과 일성 도장 등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 갔다. 숙부가 등을 보이고 걸어 가기가 무섭게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던 설지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서둘러 발을 닦고 신발 다시 신었다. 그리고 물 속에서 한참 장난을 치며 놀고 있는 호아와 백아를 불러낸 후 호아와 백아의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 주었다. 이렇게 설지가 객잔 풍운을 경험해 보기 위한 준비를 서두를때 나운학은 철무륵과 일성 도장 등과 담소하며 정리가 되어 가기 시작하는 장내를 둘러 보았다.

"형님! 설지와 함께 객잔에 가시죠."
"그래. 그러세. 도장 어르신과 대사님 외에 또 누가 함께 갈건가?"
"그야. 교소저하고 장총관도 함께 가야겠지요."
"크흐흐, 자네 교소저는 절대 잊지 않고 챙기는구만."
"아, 아닙니다. 형님!"
"아니긴 뭐가 아니야, 도장 어르신 그렇지 않습니까? 푸하하하"
"허허허"
"허허허, 아미타불!"

철무륵의 농담 섞인 말에 얼굴을 붉히며 당황해 하는 나운학을 구원해준 것은 짤랑 짤랑한 목소리의 설지였다.
"숙부! 숙부! 준비 끝이야. 준비 끝, 빨리 객잔에 가"
"그, 그래"
"교언니 어디있어? 교언니"
하지만 기어코 설지의 입에서 교언니라는 소리가 나오자 함께 모여 있던 일행들의 입에서는 한꺼번에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행들의 웃음 소리에 영문을 몰라 하던 설지는 유독 크게 웃는 철무륵을 향해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철숙부, 입에 파리 들어가!"
"하하하"

장내에 퍼지는 웃음 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설지의 목소리를 듣고 설지의 곁으로 다가 온 교혜린은 설지의 손을 잡고는 따뜻한 시선을 나누며 설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 공주님. 무슨 일이야?"
"응, 응! 객잔에 갈거야. 함께 가."
"객잔에? 그러자꾸나. 오랜만에 설지와 맛있는 요리 먹어보겠구나. 호호"
"숙부, 숙부, 나 먼저 교언니랑 갈래."
"그래, 그러려무나."

설지가 교혜린의 손을 잡고 상직현의 성문 쪽으로 걸어가자 일성 도장은 청진을 비롯한 무당 제자 세 사람을 뒤 따르게 했다. 앞서 걸어 가기 시작한 설지를 따라 나운학과 철무륵, 그리고 일성 도장과 혜명 대사도 천천히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간단한 검문을 거쳐야 통과하는 성문 앞에 거의 다다랐을때 장총관도 일행에 합류하였으며 장포두도 합류하여 선두에서 일행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일행이 잠시 검문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이에 관병들에게 달려간 장포두가 관병들과 몇마디를 나누는 모습이 일행들의 눈에 들어 왔다. 성수의가 일행들이 검문을 받지 않게 조치를 취한 장포두는 일행들을 안내하여 성문을 들어선 후에 설지를 향해 허리를 접으며 낮은 목소리로 짧은 보고를 남긴 후 관아를 향해 서둘러 달려 갔다. 빠르게 사라지는 장포두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 보던 설지는 교혜린의 손을 잡고 서둘러 객잔 풍운이 기다리는 객잔을 찾아 걸음을 재촉했다.

번잡한 성내에는 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호남성과 호북성을 잇는 경계 지역인 요충지에 자리한 상직현은 예로 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왕래하던 지역이라서 시전에는 사람들로 넘쳐 났으며 시전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된 길 옆으로는 제법 커다란 객잔들이 여러개가 자리하고 있었다. 설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시전 여기 저기를 살펴 보며 걷다가 주위에서 가장 커다란 객잔 하나를 발견하고는 눈에서 이채를 발하는 동시에 잡고 있던 교혜린의 손을 놓고 객잔의 입구를 향해 달려 갔다.
"어머, 설지야, 조심해, 그러다 넘어져."

설지가 달려가 멈춰선 곳은 객잔의 입구였다. 설지가 입구에서 고개를 들어 현판을 올려다보자 거기에는 운학객잔이라는 운치있는 이름이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객잔 이름치고는 과하게 좋은 이름을 달고 있는 운학객잔은 얼핏 보아도 제법 많은 손님들로 붐비고 있었다. 현판을 살펴보며 미소를 짓던 설지는 성큼 걸음을 떼어 객잔 안으로 들어서며 큰소리로 점소이를 찾았다.
"점소이 오라버니!"

설지의 커다란 목소리는 객잔 안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어린 여아의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일층에서 식사를 하던 손님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취객들의 시선이 단번에 입구를 향하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눈에는 신비로운 빛을 뿌리는 장포를 걸치고 머리를 양갈래로 땋아 내린 어린 여아의 모습이 마치 환상 처럼 보이고 있었다.

몽롱하게 술 기운에 젖어 있던 취객들은 자신들의 눈을 비벼가며 한번 더 설지를 살펴보았고 식사를 하던 손님들도 명문가 출신으로 보이는 설지의 모습에 감탄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멍한 모습으로 설지를 보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점소이였다. 어깨에 수건을 걸치고 멍하게 서있는 점소이는 설지보다 서너살 정도 많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설지가 다시 한번 빽 고함을 질렀다.

"아이참! 점소이 오라버니!"
"아이고, 예, 예, 아가씨. 어서 오십시오"
설지의 고함에 퍼뜩 정신을 차린 점소이가 그제서야 서둘러 대답하며 설지에게 다가 왔다. 설지는 다가서는 점소이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베어 물더니 양손을 활짝 펼쳐 손가락 열개를 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열명 정도가 밥 먹을거야. 그러니 조용한 자리를 만들어줘요."
"아! 예, 예, 그럼 이층으로 올라 가시죠."
"응, 응! 알았어. 교언니, 이층이야."

밖을 향해 빽 고함을 친 설지가 백아를 안고 점소이를 따라 쪼르르 이층으로 올라 갔다. 설지가 막 이층으로 올라갈 무렵 객잔의 입구에 당도한 교혜린은 설지를 따라 바로 이층으로 향하지 않고 잠시 그자리에 멈춰서서 뒤따라 오는 일행들을 기다렸다. 그렇게 그 자리에 그림 처럼 서있는 교혜린의 모습으로 인해 객잔 안은 순식간에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무림제일화로 불리우는 성수의화 교혜린의 고혹적인 모습은 삽시간에 장내에 파문을 일으키며 사내들의 넋을 빼 놓았던 것이다. 객잔의 일층을 뜻밖의 평지풍파 속으로 밀어 넣은 교혜린의 그린 듯 고요한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들의 넋을 왠 무식한 산적 같은 놈이 돌려 놓았기 때문이다.
"응? 교소저, 왜 여기 있는 것이오? 설지는 어디가고?"

철무륵의 목소리를 듣고 일층의 손님들이 자신의 넋을 챙기기 시작할 때 또 한번 사람들을 넋을 빼 버리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바로 교혜린의 너무도 아름다운 목소리가 연출한 상황이었다.
"예. 철대협. 이층으로 올라가시지요. 설지는 먼저 올라갔습니다."
"아우, 올라가세. 객잔 풍운을 즐겨보세나. 크하하하"

호탕한 철무륵의 웃음 소리와 함께 미녀가 이층으로 사라져 가자 사람들은 안타까운 음성을 토해내며 자신에게서 두번째로 벗어났던 넋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볼 수 있었다. 산적과 미녀, 그리고 미끈한 사내 놈 하나가 이층으로 올라 서기가 무섭게 무당의 도사 차림을 한 네사람과 승려 차림의 고승 한명이 이층으로 향하는 것을... 그제서야 사람들은 저들 일행이 법상치 않은 신분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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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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