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지의 입에서 화독이라는 말이 나오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무당의 청진이었다. 설지의 고통스러운 음성을 듣자마자 곧바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난 청진은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며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청진의 뒤를 이어 나머지 두명의 무당 검수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 경계를 강화하려고 할 무렵 일성 도장의 입에서 나직한 웃음 소리와 함께 이런 말이 흘러 나왔다.
"허허, 경거망동하지 말고 자리에들 앉거라"

일성 도장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자 그때서야 청진을 비롯한 세명의 무당 검수들의 눈에는 설지의 화독이라는 말에도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반응을 보인 사람이 한사람 있기는 했다. 바로 교혜린이 찻잔에 차가운 물 한잔을 가득 따라 설지에게 내밀며 알밤을 먹이고 있었던 것이다.
"요녀석! 호들갑은.. 그러게 늘 음식 먹을때는 주의를 기울이라고 했잖니."

화독에 당한 괴로움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낸채 알밤 맞은 머리를 한차례 손으로 쓰다듬은 설지는 이내 혀를 쑥 빼물었다. 그리고는 차가운 물이 담겨 있는 찻잔 속에 빼물은 혀를 담그고 열기를 식히기 시작했다. 설지와 교혜린의 행동에서 별일이 아닌 것을 알아차린 무당 검수들이 그제서야 자리에 앉자 일성 도장이 청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 청진아 화독이 무언지는 알고 있느냐?"
"예. 사숙조님. 그게 그러니까 화독이...."

말을 이어가던 청진은 순간 말문이 막히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일성 도장을 바라 보았다. 설지의 독이라는 말에 무작정 일어서서 주위를 살펴보았었으나 지금 생각해 보니 정작 자신은 화독이라는 말을 난생 처음 들어 보았던 것이다. 화독이라는 말이 무언지를 모르니 일성 도장에게 설명할 수도 없었던 것이었다.

"허허허, 화독이란게 별게 아니야. 설지 저놈은 유독 매운 음식을 잘 못먹더구나. 그래서 매운 음식을 모르고 먹고 나면 꼭 화독에 당했다고 하는게 입버릇 처럼 되어 있으니 다음 부터는 설지 저놈이 화독이라고 야단 법석을 피워도 그리 유난 떨것 없느리라"
"무량수불..."
"크하하하"

철무륵의 호탕한 웃음 소리가 끝날 무렵 찻잔 속에서 혀를 식히고 있던 설지가 고개를 들며 이렇게 말해 장내를 웃음 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후아! 시집도 못가보고 죽을뻔 했네."
"하하하"
"허허허"
"호호호"

손으로 입을 가리며 낮은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던 교혜린이 설지의 앞으로 매운 양념이 빠진 요리들을 옮겨 주자 초롱 초롱한 눈망울로 음식을 하나씩 살펴 보던 설지가 무언가 마음에 안드는 듯 고개를 젓더니 커다란 목소리로 점소이를 찾았다.
"점소이 오라버니!"
"아, 예! 아가씨! 말씀하세요."

일행들이 보이는 곳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대기하고 있던 점소이가 한걸음에 달려오자 설지는 점소이를 향해 씩씩한 목소리로 새로운 음식을 주문했다.
"응! 응! 점소이 오라버니. 여기 하나도 안 맵고 무지하게 맛나는 소면 하나 가져다 줘."
"예?"
어린 점소이의 반문에 이번에는 철무륵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허! 이놈. 성수의가의 소공녀께서 소면이 드시고 싶다고 말씀하시잖느냐. 냉큼 가서 그 뭐냐, 그래. 하나도 안맵고 무지 맛나는 소면 하나 가져 오도록 해라."

철무륵이 설지의 말을 따라하며 점소이를 타박하자 장내에는 다시 한번 웃음 소리가 흘러 넘쳤다. 하지만 사람들의 웃음 소리와는 상관없이 점소이는 얼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설지를 바라 보고 있었다. 점소이의 그런 모습에 철무륵이 다시 한번 호통치자 그제서야 점소이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잽싸게 입을 열어 철무륵에게 질문을 했다.

"대,대협, 저분 소저께서 성수의가의 소공녀시면 성수신의도 여기 계십니까?"
"응? 그건 왜."
"아. 예, 소인 같은 놈이 성수신의 같은 분을 뵙고 인사를 드릴수만 있다면 금생의 영광이 아니겠습니까요"
"허, 그놈. 혓바닥이 점소이답게 제법 매끄럽구나. 저기 소공녀의 옆에 잘생기신 분이 성수신의시다."

철무륵의 말이 끝나자마자 점소이는 성수신의 나운학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진지한지라 누가 보더라도 이런 점소이의 모습에서 진심으로 성수신의를 존경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너무도 숙연한 자세로 인사를 하는 점소이의 모습에 잠시 당황했던 나운학이 점소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 인사는 고맙게 받으마. 어디 아픈데는 없는 것이더냐?"
"예. 저같은 놈이야 몸이 밑천인데 아플려고 해도 아플수가 있겠습니까요. 헤헤헤, 이만 내려가서 소면 가지고 오겠습니다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방 얼굴에 미소를 짓던 점소이는 인사를 꾸벅하고는 물러나 서둘러 일층의 주방으로 향했다. 설지가 이야기한 하나도 안맵고 무지하게 맛나는 소면을 주방에 특별 주문하기 위해서였다. 점소이가 사라지자 다시 음식에 집중하기 시작한 설지는 매운 양념이 빠진 요리들을 하나씩 맛보며 행복한 표정을 얼굴에 그렸다.

설지의 옆 자리 탁자 위에서는 백아와 호아가 커다란 오리 구이와 몇가지 요리 접시들을 차지한 채 신나게 먹고 있었으며 용아도 설지의 어깨 위에서 내려와 두마리 백호와 함께 음식을 탐하고 있었다. 설지가 막 음식을 먹기 시작할 무렵 잠시 아래 층으로 내려 갔던 장총관이 소면을 든 점소이를 앞세우고 돌아온 것은 백아와 호아, 그리고 용아가 자신들 앞에 놓여 있던 요리들을 대부분 먹어 치웠을 때 였다.

점소이가 가져온 하나도 안맵고 무지 맛나는 소면으로 빠르게 배를 채워 나가던 설지에게 일층에 다녀왔던 장총관이 말을 걸었다.
"설지 아가씨"
정신 없이 소면을 먹어 치우고 있던 설지가 장총관이 부르는 소리에 소면 그릇에 박고 있던 고개를 들고 장총관을 바라 보자 장총관이 말을 이었다.

"아가씨. 여기 상직현에 머물때 요리가 먹고 싶으시면 언제든 이 객잔에 오셔서 드십시오. 여기 주인에게 아가씨께서 드신 음식 값은 제가 나중에 따로 셈을 치르기로 했으니 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와. 그럼, 나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뭐든 시켜먹으면 돼?"
"하하하, 예. 아가씨 께서 먹고 싶어 하거나 사고 싶어 하는 것들은 그게 무엇이든 무조건 사드리라는 두분 어르신들의 엄명이 있었습니다."
"응? 할아버지, 할머니가?"
"예. 아가씨. 만약 명을 어기게 되면 제가 어르신들께 주리경을 치게 됩니다."
"우헤헤헤, 신난다."

설지가 기분 좋게 방정 맞은 웃음을 터트리자 지켜 보던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도 웃음 소리가 함께 흘러 나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설지의 소면 공격은 그후로 채 반각이 걸리지 않아 완전히 공략되어 버렸다. 두둑한 배를 두드리며 위음차 한잔으로 입안을 가신 설지는 까불거리던 다리로 바닥을 딛고 일어서며 백아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는 나운학을 향해 입을 열었다.

"숙부! 나 객잔 입구에서 사람들 구경할래."
"그래. 다 먹은게냐."
"응! 응! 봐봐. 배가 무지하게 불러."
배를 불쑥 내밀며 귀엽게 말하는 설지를 보며 미소를 지은 나운학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말썽 부리지 말고 있어야한다."
"걱정마! 걱정마! 헤헤헤"
밝게 웃으며 일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하는 설지의 뒤를 무당 검수 세명이 조용히 일어서서 따라 내려갔다.

"점소이 오라버니!"
일층의 객잔 입구에 선 설지가 커다란 목소리로 점소이를 찾자 아까 설지에게 소면을 가져다 주었던 점소이가 빠르게 대답하며 설지에게 달려 왔다.
"예. 소공녀님! 하명하실게 있으세요."
"응? 점소이 오라버니 말투가 갑자기 왜 그래?"
"아! 예. 성수의가의 소공녀님께 어찌 경박한 말투를 쓸수가 있겠습니까요. 헤헤헤"

점소이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설지가 팔뚝을 쓸며 점소이의 말을 받아 용건을 이야기 했다.
"말투가 이상하니까 닭살이 생겨, 의자 하나 가져다 줘, 여기 앉아서 사람 구경할거야"
"아! 예, 예, 그리하십시오 제가 금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설지가 객잔 입구의 문 옆을 가리키며 이야기 하자 점소이는 서둘러 의자를 가지러 갔다가 금새 의자 하나를 들고 돌아와 설지가 가리켰던 곳에 의자를 내려 놓고는 물러 났다.

그때 부터 설지는 점소이가 가지고 온 의자에 앉아 다리를 까불 거리며 객잔의 앞을 오가는 행인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각쯤 자리에 앉아 행인들의 모습을 살펴 보던 설지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나직한 부르짖음과 함께 곁을 지키던 청진에게 다급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응? 위험해, 청진 아저씨, 저기 안겨 오는 사람이 위급해. 빨리 이리 데려와요."
설지가 다급하게 말하며 가리킨 곳을 청진이 바라보자 그곳에는 허름한 복색의 중년 부인 하나가 품에 아이 하나를 안고 황급히 달려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설지의 말에서 사태의 위급함을 감지한 청진이 전력으로 경공을 전개하자 거짓말 처럼 설지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듯 하더디 어느 새 달려오고 있는 중년 부인의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를 안고 정신없이 달리던 중년 부인은 갑자기 자신 앞에 왠 사람이 나타나자 무척 놀랐지만 도사 복장인 것을 발견하고는 이내 자신이 안고 있던 소녀를 청진에게 보이며 눈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청진의 몇마디 말에 고개를 끄덕인 중년 부인은 소녀를 안은채 청진의 뒤를 따라 설지에게 다가 왔다.

"흑흑, 소공녀님! 제 여식을 제 여식을...."
말을 채 잇지 못하는 중년 부인보다 더 화급한 심정의 설지는 급히 객잔 이층을 향해 커다란 목소리로 숙부를 외쳐 부른 후 중년 부인의 품에 축 늘어져 안겨 있는 소녀를 바닥에 내려 놓게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려 침통을 찾아 꺼낸 후 서둘러 소녀의 주요 대혈에 침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눕혀진 소녀의 몰골은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설지보다 두어살 정도 많아 보이는 어린 소녀의 하반신은 피로 물들어 있었으며 손톱은 무언가를 심하게 긁었는지 전부 부러져 있었다. 아마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끔찍한 일을 당한듯 했다. 거기다 기식이 엄엄하여 이미 죽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상태였다. 하지만 설지가 주요 대혈과 머리 주위에 여러개의 침을 시전하자 차츰 숨소리가 편안해 지더니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위험천만한 순간을 넘긴 것이었다.

설지의 커다란 목소리를 듣고는 한걸음에 입구로 달려 왔던 나운학은 설지의 침술을 가만히 지켜 보다 설지가 침술의 시전을 마치자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해주었다.
"수고했다. 이제 침술도 제법이로구나."
"헤헤. 나 잘했지? 숙부. 근데 이 언니 너무 많이 다친거 같아."
"그래. 그렇구나. 의가로 옮겨서 치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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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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