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e Nelson - Always On My Mind

미국 컨트리 음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우는 컨트리 음악의 거장 '윌리 넬슨(본명: Willie Hugh Nelson)'은 대공황 시기인 1933년에 텍사스 주 애보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작곡가 겸 가수로 그리고 시인이자 배우로 활동하게 되는 미래의 수퍼 스타인 윌리 넬슨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는 여느 아이들과는 다른 성장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이유는 윌리 넬슨이 태어난 직후 부모가 이혼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혼으로 집을 나간 어머니와 다른 여성과 결혼하여 집을 떠나 버린 아버지, 결국 윌리 넬슨은 누나인 바비(Bobbie)와 함께 할아버지에게 맡겨져 성장하게 된다.

조부모의 슬하에서 외롭게 성장한 윌리 넬슨이 처음 기타를 만지게 된 것은 여섯살 때 였다. 늘 풀이 죽어 있는 손자를 달래주려고 할아버지가 기타를 선물하고 코드 몇개를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이때 부터 윌리 넬슨은 기타와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좀더 기타를 잘 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음악 이론을 공부하기 위해 우편으로 음악 이론서를 주문하여 탐독하기도 하였다.

윌리 넬슨이 음악에 빠져들던 이 시기에 누나인 바비도 애보트 지역의 교회에서 가스펠을 부르며 합창단 활동을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들 남매에게는 남들보다 뛰어난 음악적 재질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무서운 집중력으로 음악에 빠져 들었던 윌리 넬슨은 일곱살 때 처음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으며 아홉살 때에는 애보트 지역에서 활동하는 밴드인 '보히미안 폴카(Bohemian Polka)'에 기타 주자로 가입하여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열세살 때에는 선술집이나 댄스 홀 같은 곳의 무대에서 돈을 받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윌리 넬슨이 이렇게 돈을 받고 노래를 부르게 된 배경에는 목화 농장에서 일하는 것이 무척 싫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 애보트 주민들 대부분이 목화 농사를 짓고 있었기에 따가운 햇볕이 내리 쬐는 여름이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목화 수확에 동원되고는 했다. 윌리 넬슨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목화 농장에서 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싫었던 윌리 넬슨은 결국 자신이 잘하는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기 위해 무대에 올랐던 것이다.

애보트 고등학교에 입학한 윌리 넬슨은 야구 팀과 풋볼 팀에서 선수로 뛰는 한편 누나와 결혼한 매형 '버드 플레처(Bud Fletcher)'가 결성한 밴드인 '텍선스(The Texans)'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밴드 활동을 계속하게 된다. 열일곱살이 되던 1950년에 공군에 입대하여 9개월간 복무하고 전역한 뒤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디스크자키(Disc Jockey)로 일했던 윌리 넬슨은 1952년에 '마사 매튜스(Martha Matthews)'와 결혼하였으며 2년후인 1954년에는 베일러 대학교(Baylor University)에 입학하여 못다한 학업을 계속하게 된다.

하지만 윌리 넬슨은 가수 활동을 향한 욕구를 억제하지 못하고 2년만인 1956년에 대학교를 중퇴하게 된다. 텍사스에서 워싱턴 주의 밴쿠버(Vancouver)로 거주지를 옮긴 윌리 넬슨은 1956년에 소규모의 독립 레이블을 통해 싱글 'No Place For Me/Lumberjack'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밴쿠버에서 윌리 넬슨의 주요 활동은 지역을 대상으로 방송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행을 맡았던 것과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생활의 반복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무명 가수들이 겪어야 했었던 고단한 일상과 다르지 않았다.

좀더 넓은 무대에서 활동하기 위해 밴쿠버 생활을 청산한 윌리 넬슨은 1960년에 컨트리 음악의 중심지인 테네시 주 내슈빌(Nashville)로 향하게 된다. 내슈빌에 와서도 윌리 넬슨에게 뚜렷한 변화는 없었다. 클럽 출연과 더불어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여 음반사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밴쿠버에서의 생활과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었다. 대부분의 음반사에서 거절 당했던 윌리 넬슨의 데모 테이프는 컨트리 가수 겸 작곡가였던 '행크 코크란(Hank Cochran)'의 손을 거쳐 그의 도움으로 팸퍼 뮤직(Pamper Music)과 작곡가로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드디어 무명 가수에서 벗어날 탈출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윌리 넬슨의 작곡가로써의 첫 출발은 'Night Life' 라는 곡이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1년에 윌리 넬슨은 리버티 음반사(Liberty Records)와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대형 음반사와 계약에 성공한 윌리 넬슨은 1962년에 데뷔 싱글인 'Willingly'를 발표하여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 10위 까지 진출시키는 성공을 거두었다.

같은 해에 발표된 데뷔 음반 'And Then I Wrote'을 시작으로 컨트리 음악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던 윌리 넬슨은 1982년 2월에 '프로콜 하럼(Procol Harum)'의 'A Whiter Shade of Pale'과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 같은 커버 곡들을 수록한 음반 'Always On My Mind'를 발표하였다. 빌보드 컨트리 앨범 차트에서 무려 253주간 머물렀던 이 음반은 빌보드 컨트리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2위 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애절한 마음을 노래로 표현한 음반의 타이틀 곡 'Always On My Mind'는 미국의 컨트리 팝 가수 '브렌다 리(Brenda Lee)'가 1972년에 발표했었던 곡을 커버한 곡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5위 까지 진출했으며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는 1위를 차지했던 곡이다. 또한 'Always On My Mind'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팝 팬들의 애청 곡으로 윌리 넬슨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했던 곡이기도 하다.
윌리 넬슨 (Willie Nelson) : 1933년 4월 30일 미국 텍사스 주 애보트(Abbott) 출생

갈래 : 컨트리(Country), 컨트리 팝(Country Pop), 내슈빌 사운드(Nashville Sound)
공식 웹 사이트 : http://willienelson.com/
노래 감상하기 : http://youtu.be/R7f189Z0v0Y / http://www.divshare.com/download/15836303-2d7

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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