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백아, 호아와 함께 숙영지를 돌아다니며 원진의 형태로 설치된 의가의 천막들을 구경하던 설지는 소림과 무당에서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 나란히 설치한 두개의 천막 앞에서 담소를 나누는 일성 도장과 혜명 대사를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쪼르르 다가갔다. 달려가는 설지의 뒤로는 청진과 두명의 무당 도사가 그림자 처럼 따르고 있었다.

"도사 할아버지! 스님 할아버지! 두분 뭐하세요?"
"응? 그래, 설지구나. 어서오너라."
"아미타불, 소공녀 어서 오시지요."
"허허허, 안그래도 내 너를 부르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잘 왔다."
"응? 저를요?"
"그래. 혹시 잊어버린게냐?"
"응? 뭐를요?"
"허허, 녀석, 조화말이다. 나하고 조화 이야기를 하다 말았잖느냐."
"아! 그거요. 근데 그거 말로 설명할려면 무지 어려운데.... 이렇게 해요."
"응? 어떻게 말이냐."
"도사 할아버지가 태극권을 시전해 보세요. 그러면 제가 자연지기와 할아버지의 진기가 조화를 이루게 해드릴께요."
"허허허, 몸으로 직접 느껴 보라는게냐? 그래 그렇게 하는게 말로 설명하는 것 보다는 더욱 쉽겠구나."

말을 마친 일성 도장은 곧 바로 두어 걸음 앞으로 걸어나가 진기를 운용하며 태극권의 기수식을 취하였다, 그리고 설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 설지야 준비가 되었다."
"예. 그럼 지금 부터 시작할께요."

설지의 시작한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성 도장은 자신의 내부로 들어오는 이질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도도한 흐름을 유지하며 자신의 몸속을 유영하던 기운은 곧 이어 일성 도장의 내력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시작하더니 태극권의 진기 운용에 따른 흐름을 그대로 포용한 채 전신 세맥을 거쳐 피부 바깥을 뚫고 나와 자연지기와 합일 하기 시작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일성 도장은 마치 자신이 이전 부터 알고 있는 진기 도인법인 듯 느껴지기 까지 했다. 그렇게 도도한 진기의 흐름에 고스란히 몸을 맡겼던 일성 도장은 어느 순간 무언가가 막힌 머리 속을 확 뚫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설지와 초아의 도움으로 진기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고 있던 일성 도장에게 깨우침의 순간이 자연스럽게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일성 도장의 몸에서는 희미한 빛무리가 마치 후광을 드리운 듯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 보던 혜명 대사는 한걸음 뒤로 물러 났으며 청진을 비롯한 세명의 무당 도사들은 다급히 일성 도장의 주위 삼면에서 경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깨달음을 방해할 요소가 일성 도장에게 다가든다면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일성 도장이 무아지경에 들자 설지는 일성 도장에게 나누어 주었던 초아의 기운을 회수하고 조용히 일성 도장을 지켜 보며 서 있었다. 한편 태극권의 기수식 자세 그대로 무아지경에 들었던 일성 도장은 설지가 기운을 거두어 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합일되어 흐르고 있는 자신의 진기와 자연지기의 흐름을 이용하는 방법을 무아지경 속에서 가부좌를 취하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반시진 정도의 시각이 흐르자 가부좌를 틀고 허공에 떠 있던 일성 도장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희미한 빛을 발하던 빛무리가 다시 일성 도장의 몸 속으로 스며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더 흐르자  반장 정도의 허공에 둥실 떠 있던 일성 도장이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 앉기 시작했다. 바닥에 내려 앉은 상태에서도 잠시 더 그 모습 그대로 미동도 없던 일성 도장이 마침내 긴 숨을 토해내며 눈을 뜨자 한줄기 기광이 언뜻 스치고 지나갔다.

일성 도장의 그런 모습을 발견한 무당의 제자들은 모두 도호와 함께 일성 도장을 향해 합장하며 사문의 존장이 얻은 대공에 기뻐 하였다. 설지가 주위를 둘러 보니 어느 사이엔지 주위에는 무당 십이검과 소림 십팔 나한, 그리고 녹림 이십사절객과 개방 사룡 까지 모두 다가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일성 도장을 지켜 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무림에서 다른 사람의 수련 과정을 지켜보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문율 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다른 이의 연공을 훔쳐 보다 그 사실이 적발 되었을 경우 심하면 목숨 조차 온전히 보장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함부로 다른 이의 연공을 드러내놓고 지켜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성 도장은 무당 비전의 무공을 수련했던 것이 아니라 설지의 도움으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었기에 딱히 봐서는 안된다는 명분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천하제일인에 가까운 당대의 무당 검선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뉘라서 궁금하지 않겠는가? 이런 이유로 무당에서도 딱히 일성 도장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지켜 보는 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성 도장이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가장 먼저 청진이 입을 열었다.

"사숙조님! 대공을 이루심을 경하드립니다."
"허허허, 그래, 그래. 고맙구나."
"우와. 도사 할아버지 무지하게 멋졌어!"
"허허허, 그랬더냐. 모두 설지 네 덕이다. 고맙구나."
"아미타불, 대공을 경하드립니다."
"크하하, 어르신 대공을 경하드립니다."

여기 저기서 쉴새 없이 날아오는 축하 인사에 답을 하는 일성 도장을 바라 보던 설지는 내려 놓았던 백아를 다시 품에 안고 일성 도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도사 할아버지! 이제 나 없어도 되죠?"
"허허허, 그래, 다시 한번 고맙구나. 이제 우리아이들은 내가 가르치마."
"응, 응! 알았어요. 그럼 난 청청 언니에게 가 볼래."

말을 마친 설지는 재빠르게 진소청이 누워 있는 천막 쪽을 향해 달음박질 쳤다. 그리고 그런 설지의 뒤로는 어김없이 세명의 무당 도사가 그림자 처럼 따르고 있었다. 진소청이 누워 있는 천막에 도착한 설지는 천막의 출입구에 드리워져 있는 긴 천을 살며시 옆으로 밀며 머리만 안으로 쑥 드밀었다. 그런 설지의 눈에 침상에 앉아 있는 진소청의 모습이 들어 왔다.
"우와. 언니 일어났다. 언니, 언니!"

호들갑을 떨며 침상으로 다가간 설지는 얼굴 가득 커다란 미소를 떠 올리며 침상 옆에 놓여 있는 의자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 진소청을 향해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언니! 어때? 이제 괜찮아?"

설지의 질문을 받은 진소청이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얼굴에 떠 올리자 곁에 있던 진소청의 어머니인 중년 부인이 진소청에게 설지를 소개했다.
"소청아! 인사드리거라. 성수의가의 소공녀시다. 너를 구해주신 분이야."

중년 부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무언가를 깨달은 진소청은 조금은 어두운 표정으로 설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예. 아가씨, 아가씨 덕분에 제가 목숨을 건졌사옵니다."
어두운 표정으로 말하는 진소청의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설지는 더욱 쾌활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소청 언니라고 했지? 그러면 내가 청청 언니라고 부르면 되겠다. 그지?"
"예. 아가씨. 그렇게 하세요."
"응, 응! 청청 언니. 참 그리고 여기는 백아와 호아, 그리고 내 어깨에 있는 얘는...음 이건 비밀인데. 용이야. 용. 그래서 이름도 용아야. 서로 인사해"

설지가 품에 안은 백아와 발치의 호아 그리고 어깨 위의 용아를 가르키며 이야기 하자 진소청은 놀란 눈으로 설지가 가리킨 영수들을 살펴 보았다. 잠시지만 어린아이다운 호기심이 진소청의 얼굴에 나타났다가 사라져 갔다. 그때였다.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점심 무렵 현청으로 돌아 갔던 장포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마마! 안에 계시옵니까? 소신 장포두이옵니다."
"응, 응. 들어와요. 들어와"

진소청 모녀는 마마라는 호칭에 어리둥절해 하다가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현청의 포두 차림인 것을 보고 해연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현청의 포두가 마마라고 호칭한다는 것은 설지가 황실과 관계된 인물이라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두사람이 놀란 표정으로 설지를 바라볼 때 장포두는 설지에게 다가와 깊숙히 고개 숙여 읍한후 현청에 들러 처리했던 일을 설지에게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 가운데는 설지가 처음 신발 한짝을 발견했던 관도 옆의 산 비탈에서 스무구 정도의 백골이 발견되었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포두의 설명이 이어져 갈수록 설지의 표정은 더욱 딱딱하게 굳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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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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