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장포두가 대강의 설명을 마치자 설지는 잔뜩 굳은 얼굴로 장포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십대 여아들의 실종 사건이 종종 있어 왔는데 그게 이번 청청 언니의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는 얘기죠?"
'예. 마마. 소신의 생각으로는 그런 것 같습니다. 다만 저 아이가 발견된 곳이 마마께서 처음 신발 한짝을 발견하신 곳과는 다른 장소 같기에 좀더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응, 응, 알았어요. 가만! 십대 여아라고 했죠?"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던 설지가 갑자기 무언가를 떠 올린듯 이렇게 말하자 장포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마마. 십대 여아들 입니다."
"씨. 십대 여아라면 나잖아. 으아아! 잡히기만 해봐, 가만 안둘거야"

설지의 이 같은 말에 잠시 작은 미소를 그렸던 장포두는 이내 진소청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진소청이라고 했느냐? 그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겠느냐?"
소청은 갑작스런 장포두의 등장과 뒤이어 그의 입을 통해 들은 마마라는 호칭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장포두와 설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야기의 방향이 자신에게로 이어지자 순간 당황스러웠으나 이내 침착하게 마음을 추슬리고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그래? 하긴 그런 일을 당했으니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닐게야. 마음을 안정시키고 지내다 보면 사라졌던 기억이 다시 돌아올테니까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꾸나. 아! 그리고 부인!"
"예. 포두 나으리"
"소청이 이 아이를 처음 발견한 곳이 어디요?"
"예. 현청이 내려다 보이는 현청 뒷산의 중턱 쯤 입니다."
"그래요? 그 곳은 관도 쪽과 반대 방향인데... 그럼 아이가 없어진 것은 언제 쯤 이오이까?"
"예. 아침 나절에 저와 함께 밭에 나가 일을 하다 사시 초 쯤에 집에 심부름을 보냈었습니다. 그런데 오시가 다 되도록 소청이가 오지 않기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 집으로 향하던 중 길가에 떨어진 소청이의 신발 한짝을 발견하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다급히 마을 사람들과 함께 소청이를 찾아 나섰다가 현청 뒷산 중턱에서 흙 구덩이 속에 거의 파 묻혀 있던 소청이를 발견했습니다. 흑, 아마도 산채로 묻혔다가 살아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 같았습니다. 나리 부디 꼭 범인을 잡아주세요."

눈물을 찍어내며 긴 설명을 마친 소청의 어머니는 간절한 표정으로 장포두를 바라 보고 있었다. 장포두는 부인의 그런 표정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대답 대신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마마, 소신은 이만 돌아가 소청이가 발견된 곳 주위를 관원들과 면밀히 수색해봐야 겠습니다."
"응, 응, 알았어요. 이만 가봐요."
"예. 마마."

깊숙히 고개 숙여 예를 대신한 장포두가 천막에서 떠난 뒤에도 천막 속의 분위기는 너무도 무거웠다. 침중히 가라 앉은 분위기와 함께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설지의 입이 열린 것은 장포두가 현청으로 돌아가고도 일다경 정도가 더 지났을 무렵이었다.
"청청 언니! 내가 물어볼게 있는데 이제 부터 내가 묻는 말에 거짓말 하지 말고 대답해야 돼. 알았지?"

설지의 이 같은 말에 흠칫 놀랐던 소청은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설지의 너무도 깨끗한 눈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청청 언니. 범인이 아는 사람이지? 그리고 그 사람이 무서워서 말을 못한거지? 그렇지?'

설지가 이렇게 물어오자 설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청의 눈에 습막이 차오르는 것 같더니 이내 커다란 눈물 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어머니 품에 안겨 몸을 떨며 울던 소청이 조금씩 진정되어 가는 것 같자 그 모습을 지켜 보던 설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말이 맞구나. 알았어. 언제든 이야기 하고 싶을 때 이야기 해. 아! 그리고 몰라서 그런가 본데 우리 의가에는 의가를 보호하기 위해 따라온 무시 무시한 산적들도 스무명이 넘게 있으니까 다른 사람을 겁낼 필요 없어."

설지의 입에서 무시 무시한 산적이라는 뜻밖의 말이 나오자 소청 뿐만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도 놀란 표정으로 설지를 바라 보았다. 그런 모녀의 모습을 보며 혀를 한차례 빼물은 설지가 짐짓 명랑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 아, 걱정말아요. 걱정마. 산적 두목이 우리 숙부야. 숙부. 헤헤헤"

점입가경이었다. 상황을 모르는 모녀가 성수의가 소공녀의 숙부가 산적이라는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동시에 떠 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모녀가 놀라거나 말거나 제 할말만 하기로 작정한 것인지 설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청청 언니. 심심하지, 책 볼래? 내게 아주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 많이 있거든,어때?"

설지가 이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소청이로 부터 제대로 반응이 돌아왔다. 그것도 얼굴을 붉히는 것으로... 잠시 얼굴을 붉히며 주저하던 소청의 입에서 이런 말이 들려오자 이번에는 설지가 해연히 놀란 표정이 되었다.
"저, 아가씨...그러니까 저는 글을 읽을줄 모른답니다."
"엉? 그게 무슨 말이야? 왜 글을 못읽어?"

설지는 소청이 글을 못읽는다고 하자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질문을 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설지 자신이야 어려서 부터 글 공부 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지만 무릇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배움에서 마저도 제약이 따랐던 것이다. 먹고 살기 바쁜 때에 여아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설지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지의 그런 의문은 이어지는 소청 어머니의 부연 설명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아가씨. 쇤네의 형편이 어려워 소청이에게 글 공부는 물론이고 책 한권 조차도 마음 놓고 사줄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소청이가 아직 글을 깨우치지를 못한 것 입니다."
몹시 부끄러운 표정으로 이야기 하는 소청 어머니의 말을 들은 설지가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는 설지의 얼굴에는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는 듯한 표정이 떠 올라 있었다.

"헤헤, 괜찮아, 괜찮아, 지금 부터 배우면 되지 뭐. 아마도 청청 언니의 오성이 지금 대단히 활발해져 있을거야. 그러니까 글 정도는 금방 배울거야. 내말 믿어, 믿어. 진짜야. 진짜. 기다려 봐"

순식간에 많은 말을 토해내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밖으로 사라졌던 설지가 다시 천막 속에 나타난 것은 채 일다경이 지나기도 전이었다. 그런 설지의 품에는 책 두어권이 들려 있었다. 눈을 반짝이며 소청에게 다가 온 설지는 품 속의 책 중에서 제목에 설화집이라고 적혀 있는 책을 소청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봐봐. 이게 설 자고 이게 화 자야. 쉽지?"

그때 부터였다. 갑자기 진소청이 누워 있는 천막 속에서 향학열이 불타오르기 시작한 것은... 가끔 설지의 '우와'라는 탄성이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 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들려 오기 시작한 것은 소청이 책을 받아든지 반시진 가량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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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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