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il Young - Running Dry

닐 영 (Neil Young) : 1945년 11월 12일 캐나다 온타리오(Ontario) 주 토론토(Toronto) 출생

갈래 : 컨트리 록(Country Rock), 포크 록(Folk Rock), 사이키델릭(Psychedelic),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neilyoung.com/
노래 감상하기 : http://youtu.be/ibYqeVhrWqM / http://www.divshare.com/download/15999355-901

무슨, 무슨 산증인이라는 말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흔히 듣게 되는 말이다. <산증인>이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사전적 의미는 어떤 한 분야의 일이나 역사 따위를 다른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써 다양한 갈래로 나누어져 치열한 자리 다툼을 벌이고 있는 음악계에도 그런 산증인들은 꽤나 많이 존재하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토롵토 태생의 작곡가 겸 가수인 '닐 영(본명: Neil Percival Young)'은 이런 의미에서 볼때 포크 록의 산증인 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닐 영의 음악 세계를 차근 차근 들여다 보면 포크 록에만 한정하지 않은 그의 음악 세계를 확인해 볼수 있기도 하다. 컨트리, 포크, 블루스를 넘나드는 그의 음악 세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이키델릭과 하드 록에 까지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닐 영의 음악 성향은 당연히 후배 가수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며 이런 닐 영에게 위대한 연주자라는 호칭이 붙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닐 영은 토론토의 한 종합병원에서 태어나 온타리오 주의 시골 마을인 오메미(Omemee)에서 성장하였다. 여섯살 때 소아 당뇨와 소아마비로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던 닐 영은 열살 무렵 부터 음악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하는데 닐 영이 소형 라디오로 즐겨 들었던 음악들은 로큰롤, 로커빌리(Rrockabilly), 두왑(Doo-wop), 리듬 앤 블루스(R&B), 컨트리 등으로 음악의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다양한 음악들 가운데 닐 영이 특히 좋아했던 음악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들려주는 로큰롤이었다. 어린 닐 영에게 엘비스 프레슬리는 동경의 대상이자 닮고 싶었던 그의 우상이었을 것이다. 열두살 때 스포츠 기자였던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하자 닐 영은 어머니를 따라서 매니토바(Manitoba) 주의 위니펙(Winnipeg)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얼 그레이 중학교(Earl Grey Junior High School)에 입학하게 된다. 열네살때의 일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닐 영은 '켄 코블런(Ken Koblun)' 등과 함께 '제이즈(The Jades)'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여 이전 부터 늘 꿈꿔왔던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중학교 졸업 후 켈빈 고등학교(Kelvin High School)에 진학한 닐 영은 중학교 시절 부터 해왔던 밴드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새로운 밴드인 '스콰이어스(The Squires)'를 결성하게 되는데 이 밴드의 멤버 중에는 중학교 시절 부터 함께 해왔던 켄 코블런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콰이어스는 위니펙 지역에서 싱글 'The Sultan'을 히트시키며 제법 유명세를 누리기도 했지만 닐 영이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위해 밴드에서 탈퇴하는 것과 동시에 학교에서 자퇴하자 자연스럽게 해체되고 말았다. 스콰이어에서 탈퇴한 닐 영은 위니펙 지역의 포크 클럽을 중심으로 무명 가수로써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즈음 포크 클럽에서 '조니 미첼 (Joni Mitchell)'과 '스티븐 스틸스 (Stephen Stills)'를 처음 만나게 된다.

위니펙에서 무명 가수로 활동하던 닐 영은 좀 더 넓은 무대에서 활동하기 위해 1966년에 아버지가 있는 토론토로 돌아가 클럽 활동을 지속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토론토의 클럽가에서 닐 영은 소울 가수 '릭 제임스(Rick James)'와 베이스 주자 '브루스 파머(Bruce Palmer)'를 만나 그들과 함께 록 밴드 '마이나 버즈(Mynah Birds)'의 결성에 합류하게 된다. 하지만 마이나 버즈가 모타운(Motown)을 통해 발표한 음반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채 실패로 마무리 되고 말았다.

음반이 실패하자 닐 영은 브루스 파머와 함께 새로운 음악 무대를 찾아 미국의 로스앤젤레스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닐 영은 1966년에 브루스 파머, 스티븐 스틸스, '리치 퓨레이(Richie Furay, 기타)', '듀이 마틴(Dewey Martin, 드럼)'과 함께 멤버를 구성하여 포크 록 밴드 '버팔로 스프링필드(Buffalo Springfield)'를 결성하게 된다. 1968년 까지 매년 한장씩 석장의 탁월한 포크 음반을 발표했던 버팔로 스프링필드가 1969년에 해산하자 닐 영은 리프리즈 음반사(Reprise Records)와 계약하고 솔로 활동을 준비하게 된다.

1968년 11월에 솔로 데뷔 음반 'Neil Young'을 발표한 닐 영은 데뷔 음반이 기대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새로운 밴드를 고용하여 두번째 음반을 제작하기로 결정하게 되는데 닐 영의 선택을 받은 밴드는 '대니 휘튼(Danny Whitten, 기타)', '빌리 탈봇(Billy Talbot, 베이스)', '랄프 몰리나(Ralph Molina, 드럼)'의 세명으로 구성된 '로켓츠(The Rockets)'라는 밴드였다. 닐 영과 합류하게 된 로켓츠는 밴드 이름을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로 바꾸고 닐 영의 음반 녹음에 참가하여 닐 영의 명반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의 탄생에 일조하게 된다.

1969년 5월 14일에 발표된 닐 영의 음반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에는 닐 영의 초기를 대표하는 곡들로 공연장에서 빠지지 않고 연주되는 명곡들인 'Cinnamon Girl', 'Down by the River', 'Cowgirl in the Sand'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곡들 외에도 '바비 놋코프(Bobby Notkoff)'의 바이올린 연주가 처연한 분위기를 끌고 가는 곡 'Running Dry'가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곡은 크레이지 호스로 이름을 바꾼 로켓츠에게 바치는 진혼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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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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