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지의 채근에 걸음을 서두른 일행은 채 일다경이 지나기도 전에 이층의 형태로 시전 한 가운데에 단아하게 자리하고 있는 만병서고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 여타의 병기점이나 책방들이 인적이 좀 한산한 위치에 자리해 있는 것과 달리 병기점과 책방을 겸하고 있는 만병서고는 특이하게도 시전의 가운데 쯤에 자리하고 있어 주변의 상권이 만병서고를 기준으로 하여 형성되어 있는 듯 보였다.

오랜 세월 동안 오가는 사람들의 출입을 묵묵히 허용하고 있는 제법 커다란 만병서고의 출입문 옆에는 정성들여 쓴 글씨로 만든 현판 하나가 세워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만병서고 라는 글자가 양각되어 있었다. 현판을 잠시 일별한 설지와 철무륵이 성큼 걸음을 옮겨 만병서고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두 사람을 반긴 것은 눈으로 보이는 곳 사방이 책으로 가득 채워진 서가였다. 

철무륵과 함께 서가를 둘러 보며 감탄성을 발하던 설지의 눈에 입구 쪽에 자리한 계산대로 보이는 탁자에 앉아 있는 나이 지긋한 학사 차림의 노인과 노인의 곁에 서있는 십오세 가량의 소년이 보였다. 만병서고로 들어서는 두 사람을 줄곧 지켜 보고 있던 소년은 어린 소녀와 눈이 마주치자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손님들, 어서오십시오. 저희 만병서고를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 만병서고의 일층에는 각종 서책들이 구비되어 있으며 무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층에는 가종 병장기들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찾으시는지요?"
"응, 응! 우린 우는 칼 보러 왔어, 우는 칼, 그거 어디있어?"

설지의 천진난만한 질문에 잠시 미소를 짓고 서있던 소년 점원은 고개를 돌려 주인인 듯 보이는 학사 차림의 노인과 한차례 시선 교환을 한 뒤 철무륵과 설지를 이층으로 안내했다. 한걸음 뒤에 조용히 서있던 무당의 세 도사들 까지 모두 이층으로 사라지자 말없이 앉아 있던 학사 차림의 노인 입에서 나직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흠, 그놈이 오늘은 주인을 만나게 되려나."

소년 점원의 뒤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온 일행을 반기는 것은 검과 도를 비롯한 각종 병장기들이었다. 검, 도, 편, 창, 부 등 병장기들은 종류별로 나누어져 진열되어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진열된 모든 병장기들은 제대로 손질이 되어 있는듯 날카로운 예기를 발하고 있었다. 

이층의 병기고는 조용한 아래 층의 서고와는 달리 이미 선객들이 있었는데 몇사람의 무인들이 먼저 들어와 점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병장기들을 살펴 보고 있는 중이었며 또 다른 무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은 병기고의 가운데 쯤에 위치한 곳에 따로 탁자 하나를 차지하고 진열되어 있는 검 한자루를 점원의 설명과 함께 눈으로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설지와 일행을 이층까지 안내한 소년 점원은 이층을 담당하고 있는 세명의 점원 모두가 저렇듯 바쁘게 손님들을 안내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한번 휘젖고는 설지와 일행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헤헤, 손님들! 보시다시피 이층의 형님들이 전부 바쁘셔서 아무래도 제가 계속 안내해 드려야겠습니다. 따라 오시죠."

소년 점원이 말과 함께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한 곳은 두 사람의 무인이 점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검을 살펴보고 있는 병기고의 가운데에 있는 바로 그 탁자였다.

설지와 일행이 탁자 쪽으로 다가가자 두 사람의 무인은 부녀지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다가서자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는 세명의 무당 검수를 발견하고는 이내 흠칫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낭인들인 자신들이 무당의 검수들과 부딪쳐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서 였다. 두 사람이 한걸음 물러서자 철무륵이 두 사람의 낭인들을 향해 고개를 한번 끄덕여 주고는 설지를 이끌고 탁자 앞으로 다가 섰다.

"우와! 멋지다. 점원 오라버니, 이게 우는 칼이야?"
"예. 아가씨. 그렇습니다. 무인들이 잡으면 우는 소리를 내는 바로 그 칼입니다."
"우와! 우와! 철숙부, 한번 잡아봐. 빨리, 빨리"
"허허, 그 녀석 참! 알았다. 어디 한번 잡아볼까."

말과 함께 철무륵이 거무튀튀한 검집에 들어있는 검을 검집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반짝이는 눈으로 지켜 보던 설지의 귀에 잠시 뒤 믿기지 않는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분명 검에서 흘러 나오고 있는 그 소리는 어떻게 들으면 고양이 울음 소리 같기도 하고 어떻게 들으면 어린 아기의 울음 소리 같기도 한 귀를 자극하는 날카로운 울음 소리였다.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검이 우는 소리는 더욱 커지는 듯 했다. 종내에는 귀를 틀어 막아야 할 정도로 날카롭고 비명에 가까운 큰 소리가 병기고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 서슬에 철무륵이 어쩔 수 없이 후 검을 내려 놓자 그토록 요란스럽게 비명을 토하며 울어대던 검이 한순간에 잠잠해졌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거무튀튀한 검은 철무륵의 손에서 해방되기가 무섭게 거짓말 처럼 울음을 뚝 그쳐 버린 것이다. 양손으로 귀를 막고 있던 설지는 그 신기한 광경에 눈을 더욱 반짝였다.
"도사 아저씨! 이번에는 도사 아저씨들이 잡아 보세요."

설지의 말이 아니더라도 검을 잡아 보고 싶었던 세명의 무당 도사들이 차례로 검을 잡아갔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서도 검은 여전히 비명에 가까운 울음 소리를 토해내었다. 마지막 무당 도사의 손에서 풀려난 검이 잠잠해지자 이번에는 설지가 냉큼 그 검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손에 잡힌 거무튀튀한 검을 바라 보며 마치 사람에게 말하듯이 검을 향해 설지가 입을 열었다.
"얘! 울어 봐, 울어 봐"

그러나 검을 잡은 손을 좌우로 그리고 아래 위로 탈탈 흔들어 가며 울음을 재촉했지만 검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흘러 나오지 않았다. 잠시 전 까지 다른 사람들의 손에서 그토록 맹렬하게 울부짖었던 검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침묵이었다. 설지는 자신의 손에 잡힌 검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자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좀더 강하게 검을 아래 위로 탈탈 흔들어 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검은 묵묵부답이었다.
"철숙부! 얘, 왜 이래? 고장났나 봐."

손에 쥔 검을 아래 위로 흔들며 말하는 설지의 모습을 바라 보던 철무륵은 지금 이 순간 몹시도 당황스러웠다. 병기고 안을 쩌렁 쩌렁 울릴 정도로 비명성을 토해내던 검이 설지의 손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자 설지의 말대로 고장난 것이 아닌가 여겨질 정도였다.
"내려 놔 보거라. 이 숙부가 다시 한번 잡아 보마."
"응, 응!"

대답을 한 설지가 검을 탁자 위에 내려 놓기가 무섭게 철무륵이 다시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허나 다시금 철무륵의 손에 쥐어진 검에서는 커다란 울음 소리가 토해지기 시작했다.
"우와! 운다, 울어. 헤헤, 고장난게 아니구나. 응? 으응? 그런데 왜 내 손에서는 안 울었지?"

시끄러운 울음 소리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검을 내려 놓은 철무륵은 검을 향해 무서운 눈초리로 한번 째려 봐주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때 점원의 목소리가 철무륵의 귀에 들려 왔다. 
"하하! 아가씨! 저 검은 내공이 없는 사람이 들면 울지를 않습니다."
"응? 으응? 난 내공을 익혔는데?"
"예? 그, 그러니까 아가씨께서 내공을 익히고 계시다고요?"
"응, 응! 그치 숙부?"

설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철무륵이 설지의 의문에 답을 해주었다.
"흠, 설지야. 아무래도 저놈이 너를 주인으로 선택했나 보다. 그렇기에 네가 들어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던 거야"
철무륵의 이 같은 말에 무당의 도사들 뿐만 아니라 점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뜻을 표한 후 설지에게 말을 건넸다.
"맞습니다. 아가씨. 아가씨께서 내공을 지니고 계신게 맞다면 저 검은 아가씨를 주인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제가 주인 어른을 모셔 오겠습니다."

한편 이 같은 상황을 지켜 보고 있던 병기고 안의 무인들도 우는 칼이 주인을 선택했다는 말에 호기심을 드러내고 설지를 살펴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 가운데서 잠시 전 설지 일행에게 자리를 양보했던 낭인 중 한 사람이 슬며시 무당 도사에게 한걸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도사님! 저 분 소저가 뉘신지요?"
"무량수불! 예, 도우께서 말씀하신 분은 성수의가의 소공녀님이십니다."
"성, 성수의가, 허면 철숙부라는 저분은 녹림의..."
"예. 맞습니다. 소공녀님의 숙부이시자 녹림의 총표파자이신 철무륵 대협이십니다."

철무륵이라는 말을 듣자 낭인은 기겁한 표정으로 설지와 철무륵을 바라 봤다. 만일 잠시 전에 자신들이 저 두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시비를 벌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니 식은 땀이 등줄기로 흘러 내렸던 것이다. 낭인과 도사의 대화는 작은 소리로 이어 졌지만 이층 병기고에 있던 사람들 특히 무인들은 두 사람의 대화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해연히 놀란 표정으로 철무륵을 바라보는 무인들의 눈에서는 그순간 경탄과 시기, 흠모 등이 담긴 복잡한 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녹림대제, 녹림 총표파자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그만큼 무거웠던 것이다.

녹림 총표파자라는 이름이 장내에 몰고온 무거운 분위기는 이층으로 서둘러 올라 오는 걸음 소리에 이내 깨어졌다. 막 이층으로 올라온 사람은 두명이었는데 소년 점원과 학사 차림의 노인이었다. 학사 차림의 노인은 이층에 올라 오기가 무섭게 설지와 일행들이 있는 가운데 탁자 쪽으로 성큼 성큼 걸음을 옮겼다.

'창작 연재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협 연재] 성수의가 49  (0) 2011.11.20
[무협 연재] 성수의가 48  (0) 2011.11.13
[무협 연재] 성수의가 47  (0) 2011.11.06
[무협 연재] 성수의가 46  (0) 2011.10.30
[무협 연재] 성수의가 45  (0) 2011.10.23
[무협 연재] 성수의가 44  (0) 2011.10.16
Posted by 까만자전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