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 드디어 그놈이 주인을 찾았나 보구료. 그래 소저는 뉘신가?"
이층 병기고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며 설지가 있는 가운데 탁자로 다가 선 학사 차림을 한 노인은 이 같은 말을 하며 조용하던 이층의 분위기를 쇄신시켰다. 학사 차림의 노인이 바로 당대 만병서고의 주인인 위지량이었다. 그런 위지량의 질문에 답을 한 것은 설지가 아니라 무당의 도사 중 한 사람이었다.
"무량수불! 그분 소저께서는 성수의가의 소공녀 되시는 분이십니다."

도복 차림을 한 무당 도사의 이 같은 말에 학사 차림의 만병서고 주인 위지량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너털 웃음을 한차례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성수의가라... 허허허, 그 놈이 정말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난 것 같구료. 그래 소저의 방명은 무엇인가? 올해 나이는 몇이나 되었고?"
"헤헤, 학사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전 설지라고 해요. 나, 설, 지,"

그렇게 말한 설지가 양 손가락을 활짝 펼쳐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올해 열살이에요. 열살!"
"허허허, 설지라고? 예쁜 이름이구먼, 그래 내공을 익히고 있다는게 정말이신가?"
"응, 응! 정말이예요."
"그래? 그렇구먼, 그러시다면 이제 부터 그 검의 주인은 설지 소저라네."
"우와! 진짜예요? 근데 이 검 무지하게 비쌀 것 같은데 저 돈 없어요."
"허허허, 그 검은 설지 소저가 아니고는 다룰 수 있는 무인이 없으니 병장기로써의 가치가 없는 검일세. 그나마 이제라도 주인을 만났으니 내 기쁜 마음으로 선물 하는 셈 칠테니 부담 갖지 마시게."
"응? 그러니까... 공짜로 저 주신다는 그런 이야기예요?"
"허허허, 그렇다네."
"우와아! 고맙습니다. 학사 할아버지"

비명과 함께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건넨 설지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검을 잡아 갔다. 그 모습을 지켜 보던 위지량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디 검을 한번 뽑아 보시게나."

위지량의 이 같은 말에 검의 손잡이인 검파를 쥐어 가던 설지가 잠시 멈칫하는 것 같더니 검파와 검신을 나누는 검반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검의 울음 소리에만 관심을 가졌던 터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 곳에는 벽옥색의 보주 하나가 박혀있었는데 반 투명한 그 보주는 언뜻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그런 설지의 모습에 의문을 가진 철무륵이 설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설지야! 왜 그러느냐?"
"응? 응? 아! 철숙부 이거 봐, 여기 구슬이 박혀 있는데 신기하게 생겼어"
"응? 어디 보자"

말을 하며 설지가 들고 있는 검의 검반에 시선을 가까이 가져간 철무륵의 눈에 신비한 모습의 보주가 가득 들어 왔다. 벽옥색의 반 투명한 그 보주는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것 처럼 중심부 에서 부터 보주의 바깥 쪽으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는 듯 했다. 중심부에서 시작된 그 소리없는 파장이 보주 전체로 퍼져 나가며 보주의 내부를 느리지만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 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보주의 기이한 모습에 흠칫한 표정을 지었던 철무륵은 이내 담담한 표정을 회복하고는 주위를 둘러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 네 말대로 신기한 구슬이로구나."

그렇게 이야기를 마친 철무륵은 이내 전음으로 설지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했다.
'설지야, 아무래도 그 보주가 검을 울게 만든 것 같구나. 분명 어떤 영수의 원정 내단 같은데 이 같은 일이 알려지면 그 보주를 노리고 귀찮게 하는 놈들이 생길 수 있으니 여기서는 더 언급하지 말거라.'
'알,았,어!"


"헉!"
철무륵의 입에서 기겁한 신음성이 터져 나온 것은 뜻밖에도 설지의 전음성이 상상외로 엄청나게 컸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전음성으로 철무륵을 기겁하게 만들었던 설지는 철무륵을 향해 장난끼가 가득한 미소를 한번 지어준 후 검파를 쥐고 거무튀튀한 검집에서 검신을 빠져 나오게 하였다.

설지가 빼든 검은 검집인 검초와 같은 거무튀튀한 빛을 띄고 있었으며 검신은 형태만 갖춰져 있을 뿐 제대로 날이 서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 색의 검에서는 알 수 없는 예기가 뿜어져 나와 바라보는 이들의 감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감탄성과 다르게 사실 검을 쥐고 있는 설지도 지금 뜻밖의 상황에 무척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왜냐하면 검파를 쥐고 있는 자신의 손으로 끊임없이 청량한 기운이 유입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유입된 기운은 아무런 저항 없이 단전 쪽으로 거침없이 나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유입되는 양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검을 잡게 된다면 상상외의 엄청난 내공이 검을 통해서 축적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철무륵의 이야기대로 아마도 이는 보주의 영향 탓인 것 같았다.

"허, 명검이로군"
철무륵의 이 같은 말은 검을 바라 보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을 대변한 것이기도 했다.
"설지야, 이제 그 검에 이름을 지어 주어야 겠구나."
"응? 이름? 이름을 지어 주라고?"
"그래, 그 검은 설지 너의 첫번째 진검이 아니더냐, 멋진 이름을 지어주거라."

철무륵의 이 같은 말에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설지가 막 입을 열때 였다.
"음, 음, 그럼 이 검은 이제 부터 무...."
"잠깐, 잠깐, 설지 너 설마 묵아라던가 혹은 검아라던가 하는 이름은 아니지? 그렇지?"
설지의 말을 제지하는 철무륵이었다. 그리고 익히 설지의 작명 실력을 알고 있던 무당의 도사들은 나직히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철무륵의 말에 막 묵아라고 말하려던 설지는 철무륵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한번 노려본 후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그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예의 작명 실력이 어디 가겠는가?
"응, 응, 좋아, 정했어. 이제부터 이 검은 묵혼이야. 묵혼! 그리고 부를때는 그냥 묵아라고 부를거야"
"크하하하"
"하하하"
철무륵과 무당 도사들의 웃음 소리가 이층 병기고를 가득 채웠다.

"가만, 가만, 설지 너 묵혼이라고 했냐? 혹시 너 이 숙부의 도 이름인 단혼을 따라한건 아니겠지?"
"씨이, 아냐, 아니라니까. 그냥 내가 생각해낸거야. 묵혼, 묵혼"
"크하하하, 그래 알았다. 그러고보니 묵혼이라는 이름이 꽤 어울리는구나."
"그렇지? 그렇지? 헤헤헤, 이제 부터 네 이름은 묵혼이야, 묵혼"

검을 검집인 검초에 갈무리한 설지가 검파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이야기하는 순간이었다. 설지의 손에서 잠잠하기만 했던 묵혼이 다시금 검명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의 검명은 이전 처럼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아니라 낮고 조용한 울림이었다. 잠시 그렇게 낮은 검명을 토해내던 검은 이내 잠잠해 졌다. 마치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 주어서 고맙다는 듯한 검명이었던 것이다.

"허, 그 놈 참"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철무륵이었다. 설지는 검을 갈무리해서 들고는 위지량을 향해서 입을 열었다.
"학사 할아버지! 혹시 기문 진법 총람이라는 책을 구할 수 있어요?
"기문 진법 총람이라.. 허허허. 마침 우리 만병서고에 두어권 있는 것 같네."
"우와! 철숙부 우리 내려가, 빨리."
"그, 그래. 어허 이 놈아 넘어진다. 천천히 가자꾸나"

설지의 손에 끌려 내려가는 철무륵이 남긴 목소리가 이층 병기고를 휘돌고 사라졌다. 철무륵과 함께 일층으로 내려온 설지는 소년 점원에게 기문 진법 총람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 뒤 서가 여기 저기를 구경하며 서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잠시 사이에 대여섯권의 서책을 골라서 철무륵에게 안긴 설지가 다시 다른 서책을 들여다 볼 때 였다. 기문 진법 총람을 가지러 갔던 소년 점원이 다가와 제본한지 얼마되지 않은 듯 깨끗한 표지를 가진 제법 두꺼운 서책 하나를 설지에게 내밀었다.

그 서책의 표지에는 기문 진법 총람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서책을 받아 든 설지는 그 자리에서 책장을 넘겨가며 서책을 살펴 보기 시작했다. 서책을 살펴보는 그 잠시 동안 설지의 입에서는 연신 우와라는 탄성이 흘러 나왔다.
"우와! 우와. 이거 무지하게 신기하다."

그렇게 탄성을 토해내며 기문 진법 총람을 살펴 보던 설지는 서책을 철무륵의 품에 안겨 주고는 다시 서가 여기 저기를 다니며 십여권의 서책을 더 찾아내서 철무륵의 품에 안겨주었다. 그렇게 설지가 골라낸 서책들의 셈을 치른 철무륵이 설지의 손을 잡고 만병서고를 나설때는 이미 미시가 지나가고 신시도 중반을 넘어서던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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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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