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rope - The Final Countdown

유럽 (Europe) : 스웨덴(Sweden) 우플란스베스비(Upplands Väsby)에서 1979년 결성
요이 템퍼스트 (Joey Tempest, 보컬) : 1963년 8월 19일 스웨덴 스톡홀름(Stockholm) 출생
욘 노룸 (John Norum, 기타) : 1964년 2월 23일 노르웨이(Norway) 바르도(Vardø) 출생
욘 레비안 (John Levén, 베이스) : 1963년 10월 25일 스웨덴 스톡홀름 출생
미키 미깔리 (Mic Michaeli, 키보드) : 1962년 11월 11일 스웨덴 우플란스베스비 출생
이안 하우길란드 (Ian Haugland, 드럼) : 1964년 8월 13일 노르웨이 노드레사(Nordreisa)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글램 메탈(Glam Metal)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europetheband.com/
노래 감상하기 : http://youtu.be/9jK-NcRmVcw / http://www.divshare.com/download/16221046-7cb

우리나라의 록 팬들로 부터 한때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곡인 'The Final Countdown'의 주인공인 스웨덴의 헤비메탈 밴드 '유럽'은 '포스(Force)'라는 이름의 글램 메탈 밴드에서 시작되었다. 스톡홀름의 우플란스베스비에서 성장한 '요이 템퍼스트(본명: Rolf Magnus Joakim Larsson)'는 어린 시절 아이스 하키 선수와 축구 선수로 뛰기도 했으며 잔디깎기 경주 대회(Cart Race: 잔디깎기 기계를 개조하여 경주를 하는 자동차 대회)에도 출전하는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하며 성장기를 보내게 된다.

그런 요이 템퍼스트가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십대 시절 부터였다고 한다.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십대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밴드들을 기웃거리며 기타와 베이스 연주를 하기도 했던 요이 템퍼스트가 우플란스베스비에서 '욘 노룸(본명:  John Terry Norum)'이라는 노르웨이 출신의 기타 주자를 만난 것은 열다섯살이 되던 1979년이었다. 밴드 활동을 통해 경험을 쌓아 왔던 요이 템퍼스트는 한살 아래인 욘 오룸과 함께 밴드를 결성하기로 하고 멤버들을 모으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탄생한 밴드가 바로 포스였다.

요이 템퍼스트, 욘 노룸, '피터 올손(Peter Olsson, 베이스)', '토니 레노(Tony Reno, 드럼)'의 4인조 구성이었던 포스는 우플란스베스비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밴드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여 음반사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포스의 이러한 시도는 매번 음반사의 거절로 마무리되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우선 멤버들의 치렁치렁한 머리 카락과 스웨던어가 아닌 영어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음반사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들이 추구하는 방식을 변경하지 않았던 포스는 1981년에 첫번째 멤버 교체를 하게 된다. 불투명한 밴드의 미래에 피터 올손이 밴드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피터 올손을 대신하여 우플란스베스비에서 성장한 '욘 레비안(John Gunnar Levén)'을 베이스 주자로 가입시킨 포스는 1982년에 록 밴드들의 경연 대회인 'Rock-SM'에 출전하여 우승하면서 바라고 바라던 음반 데뷔의 기회를 잡게 된다.

스웨덴 전역에서 총 4천팀이 참가한 이 경연 대회에 포스는 'In the Future to Come'과 'The King Will Return'의 두 곡으로 참가하여 요이 템퍼스트가 최우수 보컬(Best Lead Singer)상을 수상하였으며 욘 노룸은 최우수 기타리스트(Best Guitarist)상을 수상하였다. 대회의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부상이 핫 음반사(Hot Records)와의 음반 계약이었기에 포스는 음반 계약을 한 후 밴드 이름을 유럽으로 바꾸고 곧 바로 데뷔 음반의 녹음에 들어가 1983년 2월에 데뷔 음반인 'Europe'을 발표하였다.

1984년 2월에 두번째 음반인 'Wings of Tomorrow'를 발표한 유럽은 밴드에 키보드 주자를 영입하기로 하고 두번째 음반의 공연 활동에서 부터 '미키 미깔리(본명: Gunnar Mathias Michaeli)'를 참가 시키게 되는데 미키 미깔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의 정규 멤버로 가입하게 되고 때를 같이 하여 유럽의 새로운 드러머로 '이안 하우길란드(본명: Håkan Jan Haugland)'가 가입하게 된다. 드러머의 교체가 이루어진 것은 토니 레노가 순회 공연에서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밴드를 정비하면서 5인조 체제로 확대된 유럽은 1985년 9월 부터 새 음반의 녹음에 들어가 이듬해 3월에 한장의 음반을 완성하게 되는데 그 음반이 바로 'The Final Countdown'이었다. 유럽은 음반을 공개하기에 앞서 1986년 2월 14일에 싱글로 음반의 타이틀 곡인 'The Final Countdown'을 먼저 공개하여 시장을 반응을 살폈다. 이 곡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불과 한달전인 1986년 1월 28일에 발생한 미국의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의 참사와 연관지어 이 곡을 추모곡 형식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면서 뜨거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성으로 향하는 우주 비행선의 이야기인 'The Final Countdown'은 1981년 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982년에 완성된 곡으로 발사 72초만에 공중에서 폭발하여 일곱명의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던 챌린저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곡이다. 이 곡의 키보드 리프는 이탈리아의 팝 가수 '토토 쿠뚜뇨(Toto Cutugno)'의 1979년 곡인 'Voglio L'Anima'에서 가져온 것이며 가사는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1969년 곡인 'Space Oddity'에서 영감을 얻어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베이스 주자인 욘 레비안의 제안에 의해 'Voglio L'Anima'의 키보드 리프를 채용하여 만들어진 유럽의 'The Final Countdown'은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8위에 그쳤으나 영국과 독일, 그리고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유럽의 대표 곡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록 팬들에게도 'The Final Countdown'은 록 발라드 'Carrie'와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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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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