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아의 도움을 받은 설지에 의해 혜명 대사의 진신 내력 중 일부가 전신 모공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나가 자연지기와 조우하면서 생기기 시작한 뿌연 강기막은 점차 그 두께를 두터이 하며 강막화되어 갔다. 일면 장엄하기 조차 한 혜명 대사의 이런 모습에 지켜 보던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지막한 감탄성을 토해내었다. 하지만 정작 놀라고 있는 것은 혜명 대사 자신이었다.

설지에 의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온 거스를 수 없는 신비한 기운이 자신의 내력을 거침없이 인도하기 시작하자 여태껏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놀라운 경험에 자칫 평정심이 흐트러질 뻔 했던 것이다. 하지만 불가의 고승답게 이내 마음을 다스린 혜명 대사는 설지에 의해 인도되는 기운을 따라 내력을 운용하며 차츰 호신강막의 묘용을 깨우쳐 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혜명 대사의 상태를 차분히 지켜 보는 한편 두어 차례 더 진기를 운용하여 혜명 대사가 직접 몸으로 진기 도인법을 깨우칠 수 있게 도움을 준 설지는 혜명 대사가 자신의 도움 없이도 원활하게 진기를 운용하기 시작하자 조용하지만 신속하게 자신의 기운을 다스려 혜명 대사의 내력과 분리시켜 나갔다.

그렇게 설지가 자신의 기운을 완전히 회수한 뒤에도 혜명 대사는 무아의 경지에 접어든 듯 여전히 호신강막을 전신에 두른채 두눈을 지긋이 감고 명상에 잠겨 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 보던 설지는 주위에 포진한 소림 십팔 나한을 한번 둘러 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혜명 대사와 멀어져 갔다. 그렇게 혜명 대사의 곁에서 떨어져 나온 설지는 백아를 안아 들려다 문득 그때 까지도 손에 들고 있던 묵혼을 내려다 보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여러개의 천막 중 한 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청청 언니! 뭐해?"
설지가 달려가 불쑥 이 말을 뱉은 곳은 진소청 모녀가 있는 천막이었다.
"어서오세요. 아가씨"
"헤헤, 아줌마"
유씨 부인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마주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설지가 손에 들린 묵혼을 진소청에게 보여 주며 들뜬 목소리로 말을 붙였다.

"청청 언니! 이거 봐, 이거 봐, 얘는 묵혼이야, 묵아라고 하면 돼. 그런데 얘가 바로 우는 칼이야. 우는 칼!"
우는 칼이라며 손을 내민 설지의 손에 들린 묵혼을 무심코 바라보던 진소청이 설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우는 칼이라고요?"
"응, 응! 우는 칼이야. 우는 칼, 무인이 들면 검이 막 울어, 무지하게 크게!"
"그, 그게 정말이예요? 그럼, 아까 그 소리가..."
"맞아, 맞아, 아까 그 소리는 묵아가 울던 소리였어. 아. 잠시만 있어 봐. 보표 아저씨!"

설지가 천막 바깥을 향해 빽 고함을 치자 잠시 후 천막의 입구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무당의 청진 도사가 조용한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무량수불! 소공녀, 무슨 일이십니까?"
"헤헤, 청진 아저씨구나. 청진 아저씨, 묵아를 한번 잡아 보세요."
"아! 그 검이 바로 우는 칼이로군요. 허나 지금 검명이 크게 퍼져 나가면 혜명 대사에게 방해가 되지 않겠습니까?"
"응? 아! 맞다. 헤헤. 음, 음. 아! 초아에게 부탁하면 되겠구나. 초아야, 천막 안의 소리를 밖으로 안나가게 할 수 있지?"

설지가 자신의 가슴 어림을 내려보며 이렇게 말하자 설지의 가슴에 달려 있던 초아의 작은 잎사귀가 대답을 하듯 소리 없이 조용히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본 설지가 웃으며 청진 도사를 향해 말을 이었다.
'헤헤, 이제 괜찮을거에요. 잡아보세요"

이렇게 말하며 설지가 내민 손에는 거무튀튀한 검집의 묵혼이 들려 있었다. 잠시 동안 묵혼을 유심히 살펴 보던 청진은 조용히 손을 내밀어 설지의 말대로 묵혼을 잡아 보았다. 설지의 손에서 청진의 손으로 건너간 묵혼은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작은 검명을 시작으로 점차 커다란 검명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묵혼이 울기 시작하자 재빨리 양손으로 귀를 틀어 막은 설지가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청진과 진소청을 번갈아 살펴보고 있는 사이 어느새 묵혼의 소리는 귀를 자극하는 시끄러운 울음 소리로 변해 있었다. 청진 도사는 자신의 손에 들린 묵혼이 울기 시작하자 묵혼을 향해 내공을 주입하며 검명을 다스리려 해보았으나 울음 소리를 그치게 만들지는 못했다.

오히려 내공을 주입할수록 묵혼에게서는 더욱 커다란 검명이 울려 퍼졌다. 시끄러운 울음 소리가 천막 안을 완전히 잠식할 무렵 검명 다스리기를 포기한 청진 도사가 묵혼을 설지에게 돌려 주며 고개를 설레 설레 저었다.
"무량수불! 빈도 역시 묵혼의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청진 도사에게서 묵혼을 돌려 받은 설지가 눈을 깜박이며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리고 진소청을 향해 입을 열었다.

"헤헤. 언니, 어때? 무지하게 신기하지"
그때 까지도 시끄러운 검명에 놀라 멍해 있던 진소청은 설지의 이같은 말에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수습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여 설지의 말에 동의하며 입을 열어 말했다.

"그, 그렇네요. 아가씨. 정말 신기하네요."
"헤헤. 그것 봐, 우는 칼 맞다니까."
"무량수불, 소공녀, 빈도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응, 응! 청진 아저씨."

고개를 숙여 목례를 한 청진이 천막을 벗어나자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유씨 부인이 자신의 딸을 한차례 바라 본 후 설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 아가씨..."
"응? 응? 왜그러세요?"
"이런 말 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소청이를 성수의가에 의탁하고 싶은데 가능할는지요?"
"응? 의탁? 그러니까 청청 언니를 우리 의가에서 살게 하고 싶다는 이야기죠?"
"예. 아가씨. 어려운 부탁인줄은 알지만 소청이가 의술과 무예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염치없지만 이렇게 아가씨께 말씀드리는 겁니다."
"우와. 잘됐다. 안그래도 청청 언니가 우리랑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 이럴때가 아니지,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말을 마친 설지는 유씨 부인이 뭐라고 할 사이도 없이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서더니 번개가 무색할 정도로 천막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설지의 곁에서 배를 하늘로 향한채 눈을 감고 느긋하게 누워 있던 호아는 설지가 빠르게 천막 속에서 빠져 나가자 그 모습을 반쯤 뜬 한쪽 눈으로 지켜 보다가 이내 귀찮은지 몸을 옆으로 누이며 잠시 밀려났던 잠을 다시 불러 그 속으로 빠져 들어 갔다.

한편 천막 속에서 뛰쳐 나온 설지는 나운학의 모습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저 멀리서 나운학과 교혜린의 모습을 발견하고 재빨리 숙부를 외치며 달려 갔다.
"숙부! 숙부!"
"어이쿠, 이 녀석아 넘어지겠다. 그래, 무슨 일로 그리 호들갑인게냐?"
"헤헤, 있지, 있지, 청청 언니 말야."
"응? 소청이가 왜? 어디 아프다고 하더냐?"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청청 언니가 우리랑 같이 살고 싶대. 숙부, 청청 언니 우리랑 살게 해줘. 응? 응?"

나운학은 자신의 팔을 잡고 흔들며 채근하는 설지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어 주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소청이를 우리 의가에서 살게 하자는 그 이야기냐?"
"응, 응! 아줌마가 그러는데 청청 언니가 의술이랑 무예를 배우고 싶다고 그랬대. 그래서 우리 의가에 의탁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어. 그래서 내가 된다고 했지. 헤헤"
"훗, 녀석, 네가 이미 결정 다해놓고는 이 숙부에게 확인 받으러 온게냐?"
"헤헤헤"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소청이만 아니라 유씨 부인도 함께 우리 의가에서 살수 있게 조치하라고 장총관에게 일러두마. 그리 알거라."
"우와! 숙부 만세! 헤헤헤"
"하하, 녀석, 이제 됐지? 가서 놀거라. 아참! 내일 오전에는 나와 함께 병자들을 둘러 보는 것 잊지 말고."
"응, 응, 알았어, 교언니 수고해"

인사를 마친 설지는 부리나케 다시 진소청이 있는 천막 쪽으로 달려가며 커다랗게 외쳤다.
"청청 언니! 청청 언니!"

진소청은 천막 안으로 바람처럼 들이닥친 설지가 숨가쁘게 내뱉는 말을 들으며 기쁜 표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청청 언니! 숙부가 그러라고 하셨어. 음, 음, 그러니까 언니랑 아줌마랑 함께 의가에 들어와 살라고 하셨어"
"에구머니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가씨"
설지의 말을 들은 유씨 부인은 몇번이나 머리를 조아려 가며 설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헤헤, 저도 청청 언니랑 같이 살수 있어서 좋은걸요. 전 읽어야 할 책이 있어서 이만 가볼께요. 이따가 장총관 아저씨가 오실거니까 자세한건 장총관 아저씨와 의논하세요. 그럼 청청 언니, 저녁 먹을때 봐"
손을 살랑 살랑 흔들며 말을 마친 설지는 호아의 머리를 한대 두들겨 잠에서 깨운 후 백아와 함께 천막을 벗어났다. 천막에서 벗어난 설지가 향한 곳은 만병서고에서 가져온 기문 진법 총람이 있는 마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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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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