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서고에서 골라온 서책들 사이에서 기문 진법 총람을 찾아 꺼내 든 설지는 서책을 들고 자신이 숙소로 사용하는 천막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서책을 처음 부터 넘겨 가며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시진 정도의 시각이 흐른 후 조용하던 설지의 천막이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기문 진법 총람을 손에 든 설지가 백아와 호아를 대동하고 천막에서 빠져 나와 땅바닥을 두리번 거리더니 무언가를 줏어 들기 시작했다. 

설지가 허리를 여러번 굽혀 가며 주워든 것은 부러진 작은 나뭇가지들이었다. 바닥에 떨어져 뒹굴던 작은 나뭇가지 십여개를 챙겨 든 설지는 천막의 입구 쪽으로 돌아와 땅바닥에 털퍼덕 주저 앉더니 주워 온 나뭇가지를 옆에 내려 놓고 기문 진법 총람을 펼쳐 들었다. 책을 읽어 내려 가며 고개를 갸우뚱 거리기도 하고 아래 위로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하며 잠시동안 서책을 읽어 내려 가던 설지는 기문 진법 총람에 적혀 있는 내용을 꼼꼼히 살펴 가며 주워 온 나뭇가지들을 바닥에 하나씩 꽂아 나가기 시작했다.

설지에 의해 반경 반장 정도의 공간을 차지하며 땅바닥에 박혀 들기 시작한 작은 나뭇가지들을 옆에서 보고 있던 청진을 비롯한 무당 도사들의 눈에 그것은 분명 일정한 거리와 폭을 유지하며 점차 어떤 형태를 이루어 나가고 있었다. 마침내 설지가 손에 들었던 나뭇가지들을 땅바닥에 다 박아 넣고 나뭇가지 하나만을 남겨 놓았을 때 무당 도사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나뭇가지로 구성된 두개의 동심원이었다.

마지막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자신이 만든 동심원을 세세히 살펴 보던 설지가 마지막 나뭇 가지를 바깥 쪽에 위치한 원형의 빈 지점에 꽂아 넣자 그때까지 아무런 징후도 보이지 않던 동심원의 중심 부근에서 마치 물결이 일듯 일렁이는 기의 흐름이 한차례 동심원을 따라 퍼져 나오더니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무당 도사들의 눈 앞에 있던 나뭇가지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우와아! 된다. 돼. 꺄아아!"

자신이 처음 설치한 기문진식의 변화를 가만히 지켜 보던 설지가 나뭇가지들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토해내며 백아와 호아와 함께 팔짝 팔짝 뛰기 시작했다. 설지의 유난스러운 호들갑에 사람들의 이목이 설지에게 모아질 무렵 숙영지를 어슬렁거리며 돌아 다니던 철무륵도 설지의 비명성을 듣고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아 곧바로 설지가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무량수불! 소공녀. 이 진식은 미리진의 일종인 것 같은데 맡는지요?"
"응, 응! 헤헤! 맞아요, 청진 아저씨. 환상미리진이야!"
"무량수불! 소공녀께서 처음 펼치신 진식인데도 불구하고 빈도가 보기에 거의 완벽한 진 같습니다."
"응! 응! 무지하게 기분 좋아. 헤헤"

설지가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고 청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막 당도한 철무륵도 자신의 앞에 기이한 흐름이 느껴지는 반경 반장 정도의 공간을 살펴 보다가 고개를 절레 절레 내저으며 설지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설지야! 뭐하고 있는게냐? 가만 보니 여기 앞에 진식이 펴쳐져 있는 것 같은데 네 솜씨더냐?"
"응! 응! 철숙부, 이거 환상미리진이야. 무지하게 신기해. 헤헤"
"허, 녀석. 처음 펼친 진식이 아무리 봐도 파훼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구나"
"응! 당연하지. 설지가 심혈을 기울여 펼친 진식인데. 헤헤"
"심혈을 기울여? 네가? 설마 이 진식 펼치는데 한시진 정도 걸린게냐?"
"응? 무슨 소리야, 아냐, 아마 일다경 정도 걸렸을걸, 그렇죠? 청진 아저씨!"

설지의 입에서 일다경이라는 말이 나오자 철무륵은 어이 없다는 표정과 함께 설지의 머리에 알밤 한대를 먹였다.
"에라! 요 녀석아. 그럼 그렇지. 심혈을 기울이기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철무륵은 내심 놀라고 있었다. 일다경만에 설치한 진식이라는 환상미리진을 아무리 살펴 봐도 파훼법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설지는 알밤 맞은 이마를 쓱쓱 문지르며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씨. 심혈을 기울인게 맞는데..."
"크흠, 설지야. 그런데 이 진식의 효용은 무엇이더냐?"
"아! 그거. 헤헤, 숨바꼭질 하기에 좋은 진이지. 뭐"
"숨바꼭질?"
"응! 응! 진식을 설치해 놓고 안에 들어가면 아마도 바깥에서는 절대로 못찾을걸"
"그럼, 저 진식은 안에서는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게냐?"
"응! 응! 아마도 그럴걸. 그런데 아직 정확히는 몰라. 실험을 안해봐서.."
"그래? 그럼 파훼는 어떻게 하는 것이더냐?"
"파훼? 그건 무지 쉬워, 봐! 이렇게"

설지가 말과 함께 주위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 들고 기의 흐름이 파동 치는 가장자리의 한부분으로 다가가 손에 든 돌멩이를 바닥에 내려 놓았다. 그러자 거짓말 처럼 기의 파동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나뭇가지들로 구성된 동심원이 사람들의 눈 앞에 드러났다.
"허! 파헤법을 눈으로 보고도 이 진식을 다른 곳에서 만나면 쉽게 파훼하지 못하겠구나. 이 진식이 기문 진법 총람에 있는 것이더냐?"

철무륵에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한 설지가 말을 이었다.
"그렇기는 한데 다른 진법과 조금 섞은거야"
"섞었다고? 그러니까 지금 설지 네 말은 다른 두 진법을 합쳐서 이 진식을 만들었다는 그런 말이냐?"
"응! 응! 헤헤, 나 무지하게 똑똑하지? 철숙부"
"끄응"
감탄 대신에 신음 비슷한 소리를 토해낸 철무륵이 질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허, 그참, 이 놈아, 분명 오늘 아침 까지 진법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게 맞느냐?"
"응! 응! 기문 진법 총람 보고 따라한거야. 그러니까 이 설지가 무지하게 똑똑한거지. 헤헤헤"
"그래, 이 놈아 너 무지하게 똑똑하다. 크하하. 그건 그렇고 설지야, 이 진식의 효용을 확인은 해봐야지 않겠느냐?"
"응! 그렇구나. 가만 누구보고 시험해 보라고 할까.."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진식의 실험 대상자를 찾던 설지의 눈에 때마침 근처 나무 위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까먹고 있던 다람쥐 한마리가 보였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잠시 그런 다람쥐를 지켜 보던 설지가 다람쥐가 있는 쪽을 향해 입을 열어 소리쳤다.
"얘! 이리와 봐"

그러자 잠시 소리가 난 쪽을 살펴 보던 다람쥐가 신기하게도 쪼르르 나무에서 내려와 설지를 향해 뛰어 오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의 발밑을 쏜살 같이 지나치며 순식간에 설지의 앞에 도착한 다람쥐는 설지가 손을 내밀자 냉큼 손바닥 위로 올라와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로 설지를 올려다 보았다. 귀여운 다람쥐의 등과 얼굴을 한차례 쓰다듬어준 설지가 나뭇가지로 만든 동심원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다람쥐에게 말했다.

"너 무지하게 귀엽다. 헤헤. 잠시만 저기 가운데에 들어가 있어. 알았지? 내가 맛있는 거 줄게"

설지가 이렇게 말하며 다람쥐를 내려 놓자 마치 그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한 듯 다람쥐가 쪼르르 동심원의 중심 부근으로 달려가 멈춰섰다. 다람쥐가 동심원의 가운데 부근에 자리 잡고 멈춰서자 설지는 아까 내려 놓았던 돌멩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서 돌멩이를 주워 들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동심원의 모습이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를 넘실거리는 기의 파동이 대신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기의 파동까지 사라져 버리자 그곳에는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듯 빈 공간만 자리하고 있었다.

"철숙부! 어때? 다람쥐 안보이지?"
"그래. 안보이는구나. 다람쥐가 별탈이 없다면 진 안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이겠구나"
"그럴거야. 진이 잘못되었으면 백아와 호아가 먼저 알았을테니까..."
"응? 그게 무슨 말이냐? 백아와 호아가 먼저 알다니?"
"응? 철숙부 몰랐어? 백아와 호아는 진식에 영향을 받지도 않지만 잘못된 진식은 금방 알아 볼수 있데. 용아도 그렇고"
"허...하기는 그렇겠지...."

철무륵의 혼잣말을 들으며 설지가 다시 손에 들고 있던 돌멩이를 동심원 외곽의 한부분에 내려 놓자 순식간에 기의 파동이 일렁이며 동심원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중심부에는 다람쥐 한마리가 태연히 앉아 있다가 설지가 진을 해제하고 나자 설지를 향해 쪼르르 다가왔다.

다람쥐가 다가 오자 쪼그려 앉은 설지가 자신의 가방에서 말린 과일 하나를 꺼내 잘게 부수어 다람쥐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다람쥐는 설지의 손바닥에 놓인 말린 과일 조각을 볼이 미어 터지도록 양볼 쪽으로 밀어 넣은 후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로 설지를 한번 바라본 후 자신이 원래 있던 나무 위로 쏜살 같이 달려갔다.
"헤, 그 녀석 무지 빠르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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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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