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있던 나무를 향해 뽀르르 달려가는 다람쥐를 향해 손을 흔들며 설지가 혼잣말을 할 때 한쪽에서 숙영지 전체를 울리는 커다란 징소리가 들려 왔다. 이번 의행에서 주방을 책임지게 된 성수의가의 보조 숙수 중 한명인 왕삼이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징소리였다.
"우와! 밥이다. 밥! 교언니"

징소리가 들려오자 반색하며 교혜린을 외쳐 부른 설지는 진식을 설치하기 위해 바닥에 박아 넣었던 나뭇 가지들을 뽑아 한쪽 구석으로 던져 버리고 교혜린을 찾아 잰걸음으로 천막을 향해 걸어 갔다. 이내 교혜린을 찾은 설지가 교혜린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할때 진소청 모녀도 막 식당으로 가기 위해 천막을 나서고 있던 중이었다.
"어? 청청 언니다. 헤헤, 언니, 밥먹으러 가는거야?"
"예. 아가씨."
"헤헤. 잘됐네. 같이 가"

떠들썩한 식사 시간이 끝나자 설지는 다시 기문 진법 총람을 끌어 안고 자신의 천막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설지가 있는 천막 안의 촛불은 밤 늦게 까지 꺼지지 않았다. 설지가 지난 밤에 무엇을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늦은 밤 커다랗게 터져나왔던 '우와'라는 외침 소리에 견주어 보았을 때 많은 깨달음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었다.

성수의가의 새 아침은 조용히 내리는 빗줄기와 이른 아침 부터 의가를 찾아 온 병자들의 부산한 발걸음 소리로 인해 깨어나고 있었다. 새벽 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를 뚫고 이른 아침 부터 많은 병자들이 성수의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밤늦게 까지 책과 씨름했던 덕분에 남들 보다 조금 늦게 아침을 맞이한 설지도 아침 식사를 끝내고 나운학과 함께 병자들을 맞이 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물론 설지의 준비라고 해야 의자에 앉아서 양발을 까불거리는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숙부! 오늘도 병자들이 꽤 많이 오신 것 같아"
"그래. 그런 것 같구나. 좀더 서둘러야 겠구나."
"그런데 교언니는 어디 갔어?"
"교소저는 잠시 철정채의 식구들을 살피러 갔단다."
"철정채? 아! 그 산적 아저씨들, 그런데 산적 아저씨들은 왜?"
"철정채의 식구들이 오늘 산채로 복귀하는 날이거든, 그래서 아직 완쾌되지 않은 병자들에게 이것 저것 주의사항도 알려주고 약재도 챙겨 주러 갔단다."
"응! 그렇구나. 알았어. 그런데 숙부, 난 오늘 뭘하면 돼?"
"이 숙부가 병자들을 촉진하는걸 잘 지켜 보며 배우고 손이 필요할 때는 날 도와주면 되지 않겠니?"
"응! 응! 알았어. 설지는 지켜보는거 무지 잘해!"
"하핫! 녀석!"

설지의 귀여운 말에 웃음을 터트렸던 나운학은 성수의가의 의원들이 병자들을 맞이할 준비가 모두 끝나자 의원들을 가리키며 줄지어 길게 대기하고 있는 병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 부터 한분씩 순서대로 여기로 오셔서 여기 계시는 의원님들에게 어디가 아픈지 이야기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약방문을 받으시면 저쪽으로 가셔서 약방문을 보이시고 약재를 받아 가시면 됩니다. 그럼 제일 앞에 계신 분 부터 이리 오세요."

그렇게 나운학과 의원들이 병자들을 살피기 시작한지 반시진 정도가 지나자 제법 많은 수의 병자들이 의원들의 손을 거쳐 약방문을 받아 들게 되었다. 제법 진지한 모습으로 나운학과 의원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설지의 눈에 반시진 정도가 지난 바로 그때 나운학을 향해 걸어오는 남루한 옷차림의 노파와 손녀로 보이는 여자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여섯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여자 아이는 할머니의 치마를 꼭 붙잡고 할머니의 걸음을 따르고 있었는데 비록 몸에 걸친 옷이 남루하였지만 대단히 귀여운 모습이었다.

"우와! 너, 무지하게 귀엽게 생겼다. 난 설지야, 설지! 넌?'
귀여운 여자 아이의 모습을 발견한 설지가 반색하며 의자에서 폴짝 내려와 아이 앞으로 걸어 가더니 이렇게 말을 걸었다. 어린 여자 아이는 처음에는 겁먹은듯 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설지의 환한 미소를 보고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초, 초혜!"
"초혜라고 우와! 이름도 무지하게 예쁘네. 헤헤. 이거 먹어!"

그렇게 말하며 설지가 자신의 가방에서 말린 과일 하나를 꺼내 초혜의 손에 쥐어 주었다. 하지만 초혜는 손에 놓인 말린 과일을 바라 보기만 할 뿐 입으로 가져가진 않았다. 그때 초혜가 치마를 잡고 있던 노파의 입에서 이런 말이 들려 왔다.
"아이고! 이런 고마울데가. 초혜야.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드리고 먹거라."
멀뚱거리며 손에 놓인 말린 과일을 바라보기만 하던 초혜가 그제서야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설지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 말린 과일을 입으로 가져갔다. 설지와 초혜의 첫 만남이었다.


오전내 숙부 곁에서 병자들의 모습을 지켜 보았던 설지는 점심 식사가 끝나자마자 무당 도사들을 호위로 대동하고 빈둥거리고 있던 철무륵과 함께 어제 못다한 현청 구경을 위해 숙영지를 나섰다.
"설지야! 너 묵혼은 어떻게 했냐?"
"응? 응! 묵혼은 마차에 두었어. 현청 구경가는데 묵혼은 필요없잖아."
"그렇긴하다만 늘 가까이 두도록 버릇을 들이거라. 허리에 차고 다니면 보기에도 좋잖니"
"응? 아냐! 아냐! 아직은 설지가 어리니까 묵혼은 없어도 돼"
"훗, 녀석, 그래 알았다. 네 마음이 그렇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겠지"
"우와! 현청이다"

현청의 정문이 눈에 들어오자 설지는 탄성과 함께 걸음을 빨리 했다. 어제와 달리 깍듯한 수문위사의 인사를 받으며 현청을 들어선 설지의 눈에서는 초롱 초롱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부터 무려 반시진 동안을 현청 이곳 저곳을 들쑤시며 돌아다닌 설지가 멈추어 선 곳은 옥사 앞이었다. 현청내의 다른 건물들과 달리 관병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는 그 옥사에는 두명의 죄수가 목에 칼을 쓴채 짚이 깔려 있는 바닥에 힘겨운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왕포쾌 아저씨! 이 아저씨들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갇혀 있어요?"
"예! 마마, 그것이..."
"응? 왜 말을 하다가 마세요?"
"죄, 죄송합니다. 마마! 그것이 이들은 은가장에서 빌린 돈 때문에 이렇게 투옥되어 있습니다."
"응? 돈? 돈을 빌렸으면 갚으면 되지 않나요?"
"예. 마마, 그렇기는 한데 은가장의 마수에 걸려서 전재산을 다 뺏기고도 빌린 돈을 갚지 않고 떼어 먹었다는 이유로 이렇게 투옥되어 있는 것 입니다."

왕포쾌의 이같은 말이 아직은 어린 설지에게 이해가 될 턱이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청진 도사를 바라 보는 설지의 눈은 '지금 이게 무슨 말이예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설지의 그런 표정을 본 청진 도사가 왕포쾌를 도와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무량수불! 소공녀, 아무래도 저 도우들이 악덕 고리대금업자에게 걸려든 것 같습니다."
"악덕 고리대금업자?"
"예. 적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눈덩이처럼 부풀려 받는 악덕 고리대금업자에게 잘못 걸리면 전재산을 모두 뺏길 뿐 아니라 심지어는 목숨의 위협 조차 받는다고 합니다. 무량수불!"
"아휴! 그거 무지 나쁜 사람이네. 그러니까 지금 저 아저씨들이 바로 그 악덕 고리대금업자에게 걸린거란 말이죠?"
"예! 마마. 그렇다고는 해도 법을 어기지는 않았기에 관에서는 뾰족한 대책을 세울수가 없습니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초나 덜 겪게 배려해 주는게 고작일 뿐 입니다. 휴!"

한숨과 함께 말을 맺는 왕포쾌를 바라보는 설지의 눈에서는 작은 불꽃이 일렁이는 듯 했다. 눈에서 불을 토하던 설지는 답답한 가슴을 안고 발길을 돌려 철무륵이 기다리고 있는 현령의 집무실로 향했다. 잠시 후 철무륵의 손을 잡고 현청을 나선 설지는 답답한 가슴을 풀어버릴 요량으로 철무륵과 함께 시전 구경에 나섰다.

여기 저기 가게들을 들락거리며 장신구를 살펴보기도 하고 어물전의 생선도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설지는 갑자기 달콤한 향기가 공기 중에 퍼지자 그 향기가 퍼져 나오는 곳을 찾아 발길을 옮겼다. 달콤한 향기의 정체는 시전 한켠의 좌판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좌판에는 수북하게 전병과 당과가 놓여져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달콤한 향기는 바로 그 전병과 당과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었다. 도저히 먹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의 달콤한 향기에 취한 설지와 철무륵이 좌판으로 다가가 설 때였다. 갑자기 설지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 나왔다.
"어? 초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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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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