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지의 말 그대로 그 좌판에는 아침나절에 할머니의 치마를 잡고 성수의가에 왔었던 초혜가 할머니 옆에 딱 붙어 앉아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좌판을 향해 다가오는 설지와 철무륵을 지켜보고 있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귀엽게 생긴 초혜를 다시 만난 설지는 얼굴 가득 기분 좋은 환한 미소를 떠올리며 자리에 앉아 있는 초혜에게 말을 걸었다.
"초혜, 안녕! 헤헤, 여기서 다시 만나네"

자신의 말에 대답 대신 귀엽게 고개를 끄덕이는 초혜를 보며 설지가 계속해서 입을 열어 말했다.
"초혜, 너 무지하게 부자구나. 우와! 이 많은 전병과 당과 봐. 헤헤"
손으로 좌판에 놓인 전병과 당과를 가리키던 설지는 전병 하나를 집어 들어 철무륵에게 건네준 후 자신도 전병 하나를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가 한입 베어 물었다. 그렇게 입 속으로 들어간 전병의 맛을 음미하던 설지의 입에서 잠시 후 이런 감탄성이 흘러 나왔다.

"우와! 우와! 이거 무지하게 맛있다. 철숙부 그렇지? 응? 응?"
"그래, 이 전병은 정말 맛있구나. 그동안 먹어 본 전병 중에서 가히 최고의 맛이구나."
"헤헤, 정말 맛있다. 청진 아저씨 이리 오셔서 이거 드셔보세요. 백아랑 호아도 먹어 봐. 용아도 줄까?"

말을 하며 전병 세개를 더 집어든 설지는 품에 안겨 있는 백아의 입에 전병 하나를 물려주고 발치의 호아와 어깨 위의 용아에게도 전병 하나씩을 내밀었다. 그렇게 설지와 철무륵이 전병을 맛있게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을 무렵 갑자기 시전 한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작된 소란스러움에 고개를 돌려 소음의 원인을 찾던 설지와 철무륵의 눈에 화려한 비단 화복을 걸친 뚱뚱한 중년 사내 하나가 자신과 꼭 닮은 뚱뚱하게 살찐 소동의 손을 잡고 좌판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소음의 원인은 바로 그 뚱뚱한 중년 사내와 아이의 등장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었다.

아마도 뚱뚱한 중년 사내에게 고용된 것이 분명해 보이는 거친 모습의 왈짜 패 몇명이 화복 차림의 뚱뚱한 중년 사내와 아이 보다 한발 앞서 걸어가며 발에 걸리는 모든 것들을 걷어 차고 있었던 것이다. 왈짜 패들의 거침없는 발길질에 시전 상인들이 벌려 놓은 좌판은 물론이고 때로는 사람들까지 그 왈짜 패들의 발길질에 채여 쓰러지며 시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 보던 설지의 눈에서는 잠시전 현청에서 처럼 분노로 인해 생긴 작은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분노의 불길은 지켜 보는 철무륵이나 무당의 도사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었다. 시전 상인들이 쓰러지건 말건 팔기 위해 내어 놓은 물건들이 엎질러지건 말건 왈짜 패들이 터 놓은 길을 따라 느긋한 걸음으로 걷던 화복 차림의 중년 사내는 설지가 있는 좌판 쪽을 향하다가 갑자기 자신의 손을 잡아 당기는 아들의 행동에 우뚝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귀여운 막내 아들을 내려다 보며 입을 열었다.

"왜 그러느냐?"
"아빠, 나 저거 사줘!"
"응? 무얼 말이냐?"
화복 차림의 중년 사내가 이렇게 말하자 사내의 손을 잡고 있던 뚱뚱한 아이는 설지를 가리키며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저거, 저거 말이야. 흰 고양이"
"응? 허허허, 난 또 뭐라고, 그래, 우리 귀여운 막둥이가 사달라는데 저깟 고양이 한마리가 대수겠느냐. 가자."

이렇게 말하며 아들의 손을 잡고 설지 쪽으로 다가온 중년 사내는 설지의 품에 안긴 백아와 발치에서 자신을 노려 보는 호아를 한번 살펴 보더니 대뜸 전낭에서 은자 하나를 꺼내 설지에게 내밀며 명령조로 이야기했다.
"크흠, 은자 한냥이다. 이만하면 흰 고양이 한마리 값으로는 차고도 넘칠터 이걸 받고 한마리를 내게 넘기거라"

중년 사내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 말문이 막힌 설지는 멀뚱히 중년 사내의 손에 놓인 은자 하나를 바라 보고 있다가 한숨을 토해내며 입을 열었다.
"휴, 안 팔아요."

설지의 입에서 '안 팔아요'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화복 차림의 중년 사내 뒤에 서있던 왈짜 패 중 하나가 흉흉한 기운을 뿌리며 설지를 향해 다가 섰다. 그 왈패는 그 와중에도 전병과 당과가 놓여 있는 좌판을 발로 차버리는 만행을 서슴치 않고 행했다. 왈패에 의해 짓밟혀 버린 전병과 당과를 바라 보던 초혜의 입에서는 울음 소리가 터져 나왔으며 설지의 눈에서는 다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

"네 이년. 어르신께서 은자 까지 쥐어 주며 고양이 한마리를 팔라고 하시는데 거절하다니 죽고 싶은 것이더냐?"
왈패의 입에서 욕설과 함께 이런 말이 튀어 나오자 참다못한 철무륵이 손을 쓰기 위해 나서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한발 먼저 왈패의 앞에 귀신 같은 신법으로 등장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청진 도사였다. 왈패는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등장한 도복 차림의 도사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서기는 했으나 흏흉한 기운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무량수불! 빈도는 무당의 대제자인 청진이라고 하오이다. 도우께서는 말을 가려하시지요. 이 분 소저는 성수의가의 소공녀이십니다."
"헛!"

그때 까지도 흉흉한 기운을 뿌리며 청진을 노려 보던 왈패의 입에서 헛바람 소리가 튀어 나왔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도사가 무당의 대제자인 청진 도사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무당 제일검 청진 도사의 쟁쟁한 위명은 뒷골목 왈패인 자신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그는 청진이라는 이름에 너무 놀란 나머지 청진이 뒤에 했던 말을 무심코 흘려 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하하! 이거 위명이 쟁쟁하신 무당 제일검이시군요. 미처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기 저 조그만 년이 우리 어르신의 제안을 거절하여 발생한 일이니 청진 도사께서는 가시던 길 계속 가시는게 어떠실런지요?"

그때였다. 왈패의 행동을 줄곧 지켜 보며 인상을 쓰고 있던 철무륵이 콧김을 씩씩거리며 청진의 옆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삼엄한 기세를 피워 올리며 입을 열어 말했다.
"청진 도사는 뒤로 물러서시게. 저런 왈패 놈은 이 산적이 처리하겠네"
"무량수불! 손속에 사정을 두시길..."

청진이 도호를 외우며 뒤로 빠지자 삼엄한 기세로 왈패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 놓았던 철무륵이 왈패의 멱살을 틀어 쥐고 으러렁 거리듯 윽박질렀다. 왈패가 멱살을 잡히자 왈패의 동료들인 왈짜 패들이 분노의 외침과 함께 나서려 했으나 그들은 순식간에 다가온 무당 도사 세명에 의해 제압된 후 그 자리에 꿇어 앉혀졌다.
"이런 잡놈이 있나. 너 방금 뭐라고 했더냐.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열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오늘 이 철무륵이 똑똑히 가르쳐주마"

철무륵에게 멱살을 잡힌 왈패나 무당 도사들에 의해 제압되어 꿇어 앉혀진 왈짜 패들 모두 갑자기 멍청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청진 도사만 해도 뒷골목 왈패들인 자신들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경지의 인물인데 철무륵이라니... 녹림대제, 녹림촐표파자 철무륵! 뒷골목 왈패들이라고 어찌 이 이름을 모르겠는가? 자신의 멱살을 잡은 사내의 입에서 철무륵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사색이 되어 버린 왈패는 철무륵의 주먹질 몇번에 오줌을 지리며 기절해 버렸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이고! 총표파자 어르신 살려주십시오."
왈짜 패들의 이런 외침을 들으며 기절해 버린 왈패를 던져 버린 철무륵이 씩씩거리며 화풀이 할 새로운 대상을 찾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에 화복 차림의 뚱뚱한 중년 사내와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위축되기는 했으나 믿는 구석이 있는 듯 여전히 거드럼을 피우며 돌아가는 장내의 사정을 살피고 있는 모습에 분기탱천한 철무륵이 그들 부자를 향해 다가갔다.

"당신이 이 왈짜 패들을 고용한 사람이오?"
"하하하, 그렇소이다. 무슨 오해가 있으신 듯 한데 본인은 여기 상직현에서 은가전장을 경영하고 있는 은가장의 은모라고 하오이다."
"응? 은가장?"

은가장이라는 말에 설지를 향해 잠시 고개를 돌렸던 철무륵이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은가장이고 금가장이고 어쩌시겠소?"
"어쩌다니 무얼 말이요?'
"허, 이런 후안무치한 작자가 있나. 지금 내가 무얼 말하는지 모른다는게요? 당신이 여기 까지 걸어 오며 시전 상인들의 물건을 엎은 것을 정말 모른다는 말이요?"

철무륵의 후안무치하다는 말에도 화를 내기는 커녕 얼굴에 느물느물한 미소를 떠 올린 중년 사내는 느물거리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아! 그거 말씀이시군요. 하하하. 여기 시전 상인들은 모두 이 은모 덕에 살아간다고 할 수 있으니 그 정도 쯤은 감수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하하하"
"크하하하. 그 정도는 감수해야한다라... 당신 지금 빨리 이 자리를 떠나시오. 지체한다면 이 철무륵의 손속이 잔인해질지도 모르니 말이오."
"크흠, 하하, 뭐 그러지요. 그럼 추후에 다시 뵙겠소이다."

말을 마친 중년 사내는 서둘러 아이의 손을 잡아 끌고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사내와 아이의 멀어져 가는 모습을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지켜 보고 있던 철무륵은 잠시 후 고개를 돌려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안절부절하며 꿇어 앉아 있는 왈짜 패들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왈짜 패들은 철무륵의 그런 모습에서 마치 사신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몸을 부들 부들 떨어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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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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