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숙부! 저 아저씨 왜 그냥 보내?"
은가장주가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때 까지 잠자코 지켜 보고만 있던 설지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흠, 어쩌겠느냐,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림인인 내가 양민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더냐. 더구나 굳이 따지고자 한다면 저 놈은 왈패들이 터준 길을 따라서 걸어온 것 말고는 상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것이 없으니 보내줄 수밖에... 그러나 저 왈패 놈들은 내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철무륵의 설명을 다 듣고 난 설지가 이해가 간다는 뜻으로 고개를 주억거린 후 흐트러진 초혜네의 좌판 정리를 돕기 위해 쪼그려 앉아 땅바닥에 떨어진 전병과 당과 부스러기들을 집어들 때 철무륵은 왈짜 패들을 향해 다가가며 살기를 피워 올렸다. 그렇게 설지가 이제는 팔수도 없고 그렇다고 먹을수도 없는 전병과 당과들을 주워 담기 시작하자 그때 까지 할머니의 품 속에 안겨 울고만 있던 초혜도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양 소매로 쓱쓱 몇번 문지르더니 할머니의 품에서 벗어나 설지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전병과 당과를 주워 담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를 어쩌누, 아이고"
설지와 초혜의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초혜 할머니는 바닥에 그대로 주저 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울음 섞인 한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처연하기 그지없는 노파의 울음 섞인 한탄은 왈짜 패들을 향해 다가 선 철무륵의 살심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철무륵이 무당 도사들에 의해 제압당해 있는 왈짜 패들을 사나운 눈초리로 둘러 보며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 설지는 초혜 할머니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할머니, 초혜 엄마는 어디 가셨어요?"
설지가 이렇게 말하자 잠시 설지를 바라보며 한숨을 토해낸 초혜 할머니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듯 힙겹게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휴! 아가씨. 그게 말이우, 초혜, 저 놈이 태어난 해에 저 놈 아비가 군역에 갔지 않겠수. 그런데 다음 해에 덜컥 실종되었다는 서신 한장만이 사람 대신 돌아 왔다우. 그 소식을 들은 초혜 어미는 몸져 앓아 누워 씨름 씨름 앓다가 그만 지난 해에 세상을 떴다우. 저 불쌍한 것 하나만 남겨두고 내외가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여기까지 듣고 있던 설지가 갑자기 고개를 철무륵 쪽으로 돌리더니 빽하고 고함을 질렀다.
"철숙부! 그 아저씨들 혼내 줘"
"응? 그, 그래 알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 놈들을 어떻게 요리할까 고심 중이니 걱정말거라."

철무륵은 그렇게 말하며 꿇어 앉아 있는 왈짜 패들의 아혈을 모두 짚어버렸다. 시끄럽지 않게 타작을 할려면 꼭 필요한 순서였던 것이다. 청진 도사는 처음 철무륵이 살기를 피워 올리며 왈짜 패들에게 다가설 때 말릴려고 했으나 초혜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나서는 아예 아혈을 짚기 쉽게 왈짜 패들의 몸을 철무륵 쪽으로 돌려 세우는데 적극 협조를 했다. 그리고 그때 부터 철무륵의 살벌한 구타 교육이 왈짜 패들을 향해 가해졌다.

"할머니! 그럼, 매일 같이 초혜랑 이렇게 전병과 당과를 팔러 나오시는 거예요?"
"예. 그렇다우. 이거라도 팔아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니 매일 나올 수밖에 없다우. 그런데 저놈들이 장사 밑천을 거들내 버렸으니...아이고, 죽일 놈들, 천벌받을 놈들..."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슬픈 표정을 짓고 있던 설지가 무언가 곰곰히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어 초혜 할머니에게 말을 이었다.
"할머니. 전병이 무지 하게 맛있던데 이렇게 하면 어때요?"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아! 헤헤, 그게 그러니까 초혜랑 할머니가 우리 의가에 들어 오셔서 함께 사시는 것이 어떨까 하고 물어보는거예요"
"예? 아니 그 말씀은..."
"예. 할머니, 할머니의 전병 만드는 솜씨가 좋으시니까 우리 의가에 들어 오셔서 의가 사람들을 위해 지금처럼 전병과 당과를 만드시는게 어떨까 해서요"
"아이고. 그 말 진정이십니까?"
"헤헤. 예. 할머니, 초혜랑 할머니만 좋다면 짐을 꾸려서 저희 의가로 오세요. 대신 매일 맛있는 전병을 만들어 주셔야 해요."
"그, 그러문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아가씨. 고맙습니다."
"헤헤. 뭘요. 할머니가 전병을 만들어 주신다면 다들 좋아할거예요."
"그, 그럼. 우리 조손이 언제 의가로 들어가면 되는건지요?"
"언제든 오세요. 제가 지금 가서 총관 아저씨께 말씀드려 놓을테니 의가로 오셔서 총관 아저씨를 찾으시면 알아서 거처를 마련해 드릴거예요."

설지가 이렇게 말하자 노파는 눈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려 설지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청진을 비롯한 무당 도사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반면 철무륵은 한쪽 구석에서 왈짜 패들을 소리안나게 열심히 타작하느라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혈이 짚혀 비명 조차 내지르지 못하는 왈짜 패들은 지금 죽을 맛이었다.

비록 철무륵이 내공을 운용하지 않고 순수한 힘만으로 자신들을 교육(?)시키고 있지만 한번씩 내려치는 주먹에 실린 강도가 거의 기절 직전 까지 자신들을 내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기절 일보 직전 까지 몰려 있던 왈짜 패들에게 뜻밖의 구원자(?)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한무리의 관병들이 시전을 가로 질러 우르르 달려 오고 있는 모습이 확실한 교욱을 받고 있던 왈짜 패들의 시선에 걸려든 것이다.

설지와 철무륵이 있는 초혜네 좌판 쪽으로 달려 오는 관병들을 선두에서 지휘하는 이는 설지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십대 여아들의 살해 사건을 조사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장포두였던 것이다.

"마마! 신 장학일, 마마를 뵈옵니다."
"아! 헤헤, 장포두 아저씨, 어쩐일이세요?"
"예. 마마. 잠시 시전 주위를 탐문하다 이쪽에서 무슨 사고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려오는 길입니다."
"응, 응! 그러셨군요."

설지와 장포두가 인사를 주고 받고 있을 때 한쪽에서 열심히 교관 역할을 하고 있던 철무륵이 다가와 장포두를 향해 불쑥 입을 열었다.
"장포두, 내 뭐 하나 물어봅시다"
"아! 예. 철대협! 하문하시지요."
"혹시 말이오. 설지 저 놈에게 누가 욕설을 하면 그게 무슨 죄에 해당하오?"
"예? 욕설이오? 누가 감히 봉황옥패의 패주께 욕설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장포두가 눈을 부라리며 철무륵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자 철무륵이 슬그머니 왈짜 패들을 향해 시선을 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큼, 저기 저놈들이 설지에게 이년, 저년 하더이다."
"뭐라고요? 네 이놈들을 그냥... 여봐라! 뭣들 하는게냐? 저 대역죄인들을 즉각 포박하지 않고"

장포두의 서슬퍼런 명령이 떨어지자 관병들은 재빠른 동작으로 기절하기 직전 까지 교육을 받고 있던 왈짜 패들은 순식간에 굴비 엮듯 포승줄에 줄줄이 매달았다. 난데없는 대역죄인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왈짜 패들은 아혈이 짚혀 변변한 항변 조차 하지 못한채 끌려 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거기에 철무륵의 확실한 마침표를 찍는 질문을 받은 장포두의 답변을 듣자 왈짜 패들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경험을 벌건 대낮에 해야 했다.

"그런데 장포두, 저놈들은 무슨 처벌을 받게 되오?"
"감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패주께 한 저 놈들은 모두 관에서 운영하는 광산으로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흠, 그렇구려. 그 놈들 좋겠네. 매일 운동도 할 수 있고... 참! 그 놈들 아혈이 짚혀 있으니 풀어 줘야 할거요"
"장포두 아저씨! 사건 수사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요?"
"예. 마마! 아직은 별다른 성과가 없사옵니다. 범인이 워낙 용의주도하여 탐문에서도 이렇다할 진척 사항이 없사옵니다."
"응, 응, 그렇구나. 알았어요. 그만 가보세요"
"예. 마마. 소신 그럼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시전 상인들을 갈취하고 폭력을 일삼던 상직현의 왈짜 패들은 이렇게 모두 소탕되고 말았다. 물론 이 자리에 없었던 남은 잔당들 까지 모두 대역죄인이라는 같은 죄목으로 추포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럼, 초혜야, 이따가 의가에서 봐, 안녕"
장포두가 죄인들을 끌고 사라진 후 초혜와 헤어진 설지는 철무륵의 손을 잡고 왔던 길을 되짚어 가며 성수의가의 숙영지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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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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