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의 제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질 무렵 일성 도장은 혜명 대사와 철무륵을 대동하고 교혜린과 함께 병자들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던 나운학에게 잠시 짬을 내게 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보게. 신의!"
"예. 어르신. 말씀하시지요."
"흠. 자네, 이야기 들었나?"
"예? 무슨 이야기 말씀이신지요."
"아! 모르나 보군. 내 혜명 대사와는 미리 이야기를 나누었네만 설지 저 놈이 내일 아침 부터 색마를 잡으러 다닌다고 하더구먼. 나더러 노복 행세를 하며 제 놈을 따라 다니라고 하던데 말이야..."
"하하. 노복이요? 그 녀석도 참."

태연하게 웃으며 말하는 나운학을 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끌끌 차던 일성 도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 걱정은 안되나?"
"예? 걱정이요? 아니 어르신 께서 노복으로 함께 다니신다는데 제가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설마하니 어르신께서 색마 하나를 감당하시지 못한다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허허허. 예끼! 이 사람. 자네도 설지 저 놈과 똑 같구먼. 알았네. 설지 저 놈 주위에 천라지망을 펼치는 한이 있더라도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게 할 터이니 걱정말게."
"하하.걱정하지 않는다니까요."

그때 나운학과 일성 도장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철무륵이 파안대소를 하며 대화에 끼어 들었다.  
"크하하. 하긴 설지 저 놈에게 위해를 가할만한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긴 하지. 어떻습니까? 어르신."
"허허허. 그렇긴하지. 나 조차도 설지 저 놈을 제압하려면 땀깨나 흘려야 할 것 같으니..."
"허허허. 아미타불!"
"그럼. 우리는 이만 가서 따로 자세한 사항을 의논해 보기로 하세. 신의는 이만 일 보시게."
"예.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운학과 헤어진 일성 도장 등이 막 걸음을 떼려는 찰나 커다란 징소리가 숙영지의 고요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이어 설지의 커다란 음성이 징소리의 여운을 따라 울려 퍼졌다.
"우앗! 밥이다. 교언니!"
"허허허"

방융에게 소문을 내어줄 것을 부탁하고 백아, 호아와 함께 숙영지를 거닐며 내일 할일을 생각하고 있던 설지는 때 마침 들려오는 저녁 식사 시간임을 알리는 징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반가운 음성을 토해냈다. 그리고 교혜린이 있는 천막 쪽을 향해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 설지의 눈에 막 나운학과 헤어져 걸어 오는 일성 도장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어? 할아버지. 여기서 뭐하세요?"
"허허. 신의와 이야기를 좀 나누었다."
"헤헤. 그러셨군요. 아참! 밥, 밥시간이예요."
"허허. 녀석. 그래 알았다. 먼저 가서 먹거라."
일성 도장이 이렇게 이야기 하자 설지가 고개를 까닥 거리며 말을 받았다.
"헤헤. 알았어요. 그럼. 저 먼저 갈게요. 교언니!"

설지가 교혜린을 두번째 외쳐 부르자 천막 속에서 나운학과 교혜린이 얼굴에 미소를 띈채 걸어 나왔다.
"호호. 요 녀석! 배고프니?"
"응. 응! 빨리 밥 먹으러 가."
"호호. 그래, 어서 가자꾸나."
"응, 응! 헤헤"

하지만 교혜린의 손을 잡고 나운학과 함께 식당으로 향하던 설지는 몇걸음 옮기지도 못하고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멀리서 장총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손녀 사이로 보이는 그 두사람은 다름아닌 초혜와 초혜의 할머니였다. 장총관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보따리 하나를 소중히 품에 안고 한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노파의 모습이 설지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어? 초혜다."

대번에 초혜와 초혜 할머니임을 알아 본 설지가 교혜린의 손을 놓고 초혜를 향해 후다닥 달려갔다. 이내 초혜의 앞에 당도한 설지가 초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헤헤. 초혜 왔구나."
"아이고. 아가씨. 여기 계셨구먼요."
설지를 발견한 초혜 할머니의 입에서 반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예. 할머니. 그런데 벌써 오신거예요?"
"아이고. 아니라우. 아직 짐 정리를 다 못해서 초혜 이 아이를 먼저 맡겨두려고 온거라우"
"아! 그러셨구나. 그럼 이렇게 하세요. 저희랑 같이 가셔서 저녁 먼저 드세요. 그리고 식사하시고 나면 총관 아저씨가 일꾼 아저씨들과 함께 가서 짐 정리를 해드릴거예요. 어때요? 총관 아저씨"
"예. 아가씨.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가씨"
"헤헤. 다 됐네. 끄읕. 초혜야. 이제 밥먹으러 가자. 빨리 가. 밥, 밥"
말과 함께 초혜의 손을 잡은 설지가 앞장 서서 식당으로 향하자 교혜린과 나운학이 뒤 따랐으며 초혜의 할머니도 뒤늦게 허둥지둥 일행을 따라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짹짹, 뾰르릉, 뾰르르르"
이름모를 청아한 새 울음 소리가 신새벽의 성수의가 숙영지에 울려 퍼졌다. 백아를 안고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설지도 자신의 귀를 간지럽히는 아름다운 새 울음 소리에 조금씩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힘겹게 눈은 떴으나 남아 있는 잠 기운을 떨치기 어려웠던 설지가 다시 눈을 감고 잠 속으로 빠져 들려는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날카롭고 커다란 새 울음 소리가 울려 퍼지며 설지의 정신을 돌아오게 했다. 날카로운 울음 소리의 주인공은 이른 새벽 부터 성수의가의 상공을 선회하고 있던 비아의 울음소리였다.

"아웅! 비아. 저 녀석. 오늘 무슨 일이 있길래 아침 부터 저 난리야... 앗!"
잠에서 덜 깬채 입속으로 중얼거리던 설지가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듯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맞다. 색마 때려 잡기 작전, 헤헤"

눈꼽이 낀 눈을 손으로 부비며 자리에서 일어난 설지는 먼저 자신의 옷이 들어있는 상자를 열어 젖히고 옷을 죄다 끄집어 내었다. 그리고 침상 위에 옷을 하나씩 펼쳐 놓고는 백아와 함께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렵지 않게 설지에게 선택된 옷은 옥색의 비단 옷으로 예쁘고 작은 꽃 무늬들이 수 놓아진 화복이었다. 화복을 들어 자신의 몸에 댄 설지가 백아와 호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때? 예뻐?"

설지의 질문을 받은 백아와 호아의 고개가 거의 동시에 끄덕여지자 만족한 미소를 입가에 베어 물은 설지는 서둘러 세수를 하고 골라 놓은 화복으로 갈아 입었다. 그리고 양갈래로 땋여 있던 머리도 교혜린의 도움을 받아 궁장의 형태로 구름 같이 틀어 올렸다. 설지가 그렇게 복색을 갖추고 나니 열살 짜리 여아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성숙미가 물씬 풍겼다.

"교언니, 어때?"
"호호. 우리 설지 이렇게 꾸며 놓으니 정말 예쁘구나."
"으응, 진짜?"
"그럼! 경국지색, 폐월수화, 침어낙안, 화용월태, 이런 말들이 무색하게 예뻐"
"우와. 헤헤. 고마워, 교언니."
"호호, 녀석. 그럼 아침 먹으러 갈까?"
"응, 응! 오늘 무지하게 중요한 날이니까 아침을 잘 먹어야 돼"
"호호호. 언제는 제대로 안 먹었고?"
"응, 응! 다른 날은 대충 먹은거야. 헤헤"
"호호호"

교혜린의 흐드러진 웃음 소리와 함께 천막을 나선 설지가 식당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설지를 향해 모아졌다. 늘 천방지축으로 뛰어 다니던 설지가 화려한 비단 화복과 틀어 올린 머리로 등장했으니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크하하. 이게 누구냐? 아니 어느 댁 규수께서 이른 아침 부터 성수의가를 방문하신게요?"
호탕한 웃음 소리의 주인공은 철무륵이었다.

"호호, 소녀는 진가장의 여식이옵니다."
철무륵의 농이 섞인 질문을 받은 설지가 새치름히 눈을 내리 깔더니 더없이 조신한 목소리로 이렇게 응답하자 곁에 있던 교혜린이 교소를 터트렸다. 그러나 막상 대답을 들은 철무륵은 멀뚱거리며 얘가 뭘 잘못 먹었나 하는 표정으로 설지를 지켜 볼 뿐이었다.

아침 식사를 서둘러 끝낸 설지는 장총관에게 가서 밧줄 한다발을 얻어 밍밍의 등에 실는 것으로 색마 때려 잡기 작전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백아와 호아에게 무언가를 이야기 하고 나서 상공을 선회하고 있는 비아에게 손짓을 하자 이내 비아는 까마득한 상공으로 비상하더니 이내 한점의 형태가 되었다. 그렇게 작전 준비 일단계를 마친 설지는 일성 도장을 향해 다가가 입을 열었다.

"도사 할아버지. 준비 되셨어요?"
"그래. 준비랄게 무어 있겠냐마는 어떠냐 노복 처럼 보이느냐?"
그러고 보니 일성 도장은 늘 입고 다니던 낡은 도복 대신에 허름한 마의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설지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출발! 할아범, 가요."
"할, 할아범, 끄응.."

인상이 제대로 구겨진 일성 도장이 무당 제자들과 혜명 대사, 그리고 철무륵을 돌아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변복 차림의 무당과 소림 제자, 그리고 녹림 이십사절객이 빠른 속도로 좌우로 흩어졌다, 이제 그들은 설지의 주위에서 기척을 숨긴채 작전이 끝날 때 까지 감시의 눈을 커다랗게 뜨고 지켜보게 될 것이었다. 설지는 사람들의 좌우로 흩어져 사라지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일성 도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도사 할아버지. 저 분들은 왜 저래요?"
"허허, 너를 지키기 위해 그런거란다."
"으응? 저를요?"
"그래. 색마라고 하지만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지 않느냐. 그래서 네 주위에서 은잠하며 대기할 것이다."
"음, 그러면 제가 이야기 할 때 까지는 절대 나서지 말라고 하세요. 아셨죠?"
"그래. 염려말거라. 내 이미 그렇게 이야기해두었다."
"헤헤, 그러면 진짜 출바알!"

한소리 외침과 함께 설지가 조신한 걸음을 옮겨 숙영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백아와 호아 대신 노복 일성 도장을 거느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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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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