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숙부! 철숙부! 잡았어, 잡았어."
"오호. 그 놈이 범인이냐?"
"응, 응. 무지하게 쉽게 잡았어. 헤헤"

누에 고치로 만든 색마를 끌고 숙영지로 들어서던 설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입구 쪽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철무륵이었다. 철무륵은 무당의 제자들과 소림사의 제자들이 혹시라도 일이 잘못될까 저어하여 설지를 은밀히 따르는 한편 일성 도장이 노복 차림으로 설지와 함께 나갔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에 숙영지 입구 까지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철무륵은 자신의 귀에 설지의 짤랑거리는 음성이 들려 오자 그제서야 걱정했던 마음을 접고 굳었던 얼굴을 펼수 있었다.

설지의 생기 넘치는 음성에 안도하며 긴 한숨을 토해낸 철무륵은 걱정했었던 심정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반색하며 설지가 잡고 있는 밧줄에 매달린 누에 고치를 훑어 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눈을 돌려 설지의 몸을 아래 위로 훑어 보았다. 혹시라도 다친 곳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철무륵의 그런 심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설지였지만 이내 장난끼가 동해 두손을 교차하여 황급히 가슴을 가리는 시늉을 하며 한발짝 뒤로 물러 섰다.

"어머! 이 변태 숙부. 어딜 봐"
"응? 예끼, 요놈"
"허허허"
"하하하"

황당한 표정의 철무륵으로 부터 알밤을 한대 먹은 설지가 이마를 문지르며 아픈 표정을 짓자 사람들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잠시 사람들과 함께 웃음을 나누던 철무륵은 설지의 손에 잡혀온 색마에게 다가가 발로 몇번 툭툭 차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잡혀온 사내로 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설지야! 이 놈 이거 왜 이러냐? 혈도를 제압한거냐?"
"응? 응! 설지표 특제 점혈법으로 제압했어. 하지만 아혈은 짚지 않아서 말은 할수 있을거야"
"말을 할 수 있다고? 그런데 이 놈이 왜 이래? 혼절했나?"
"응? 혼절? 아!"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던 설지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한소리 외침을 터트리며 호아를 돌아 보았다.
"혹시 호아가 그런거야?"

설지의 말에 호아가 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아와 함께 사내의 가슴 위에 올라 타서 오던 호아가 심심풀이 삼아 머리를 몇번 쥐어 박은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사내가 끝내 혼절해 버렸던 것이다. 호아는 혼절한 사내를 한번 보더니 사내의 머리 쪽으로 가서 앞발로 다시 몇번 쥐어 박아 주었다. 그러자 혼절해 있던 사내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이 흘러 나오더니 이내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깨어났다.

혼절한 상태에서 강한 충격을 받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깨어나게 된 것이었다. 사내가 깨어나자 철무륵은 회심의 미소를 얼굴에 그리더니 사악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흐흐, 요놈, 깨어났구나, 기대하거라, 천국을 보여주마. 흐흐흐"
"으윽, 징그러워, 철숙부 목소리가 그게 뭐야?"
"응? 왜 어때서? 얼마나 분위기 있는 음성이냐? 크하하"
"으윽, 닭살, 닭살, 청청 언니!"

설지가 진저리가 난다는 듯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사내를 묶고 있는 밧줄 끝을 철무륵에게 넘겨 주고 진소청을 부르며 한쪽으로 달려 갔다. 설지가 진소청의 손을 잡아 끌며 나운학과 교혜린을 동반하고 다시 돌아온 것은 일다경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진소청은 철무륵에 의해 몸을 옥죄고 있던 밧줄에서는 벗어났으나 여전히 제압된 혈도로 인해 뻣뻣이 굳은채 눈알만 굴리며 불안한 표정을 짓고 서있는 사내를 본 순간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흠칫 몸을 굳혔다. 하지만 설지의 다음과 같은 말에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다잡은 후 천천히 사내의 얼굴을 다시 한번 세세히 살펴 보았다.
"청청 언니! 잘 봐, 저 사람이 맞아?"

틀림없었다. 몇번을 보고 또 보아도 분명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던 사내가 바로 앞에 혈도를 제압당한채 뻣뻣이 서있는 사내라는 것은. 더구나 그 사내는 평소에도 진소청이 잘 알고 있던 은가장의 장남이었으니 새삼 볼것도 없었다. 갑작스럽게 자신을 덥쳐온 불행에 큰 충격을 받은 것에 더해서 혹시라도 자신과 어머니에게 닥쳐올 후환이 두려워 말을 못했을 뿐이지 은가장의 장남이 자신을 범하고 죽이려 했다는 사실은 절대로 변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이었던 것이다.

한참을 세세히 사내의 얼굴을 살펴보던 진소청이 설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하는 것으로 범인의 확인이 끝나자 지켜보던 교혜린이 진소청을 품에 안으며 다독여 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나운학은 침중한 표정으로 사내를 다시 한번 살펴본 후 사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묻겠소. 소청이의 말에 따르면 당신이 소청이에게 몸쓸 짓을 하고 죽이려고 했다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오?"
"으으, 아, 아니오!  난 아니란 말이오. 난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소이다."
"허, 이런 개 잡놈이 있나. 이 놈아 설지에게 현장에서 잡혀온 놈이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게냐?"

철무륵의 화난 목소리에도 사내는 추호도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며 극구 부인하고 있었으며 우연히 시전에서 봤던 설지가 눈에 익어 아는 사람이 아닌지 확인해 보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진소청은 오늘 처음 보는 아이라며 한사코 범행을 부인했다. 이렇게 되자 난감해진 나운학이 다시 무언가를 따져 물으려 입을 열려고 할 때 일단의 관병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관병들의 선두에는 도현령과 장포두가 관병들을 이끌고 있었다.

"마마! 어디 다치신데는 없사옵니까?"
"응, 응, 현령 아저씨, 전 멀쩡해요. 헤헤"
"휴! 다행이옵니다. 현장에서 범인을 잡으셨다 들었사옵니다. 이 놈입니까?"
"응, 응! 맞아요. 그런데 이 아저씨가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막 우기고 있어요."
"그렇사옵니까? 그럼 저희에게 맡겨 주시겠습니까?"

도현령의 말에 설지가 나운학을 바라 보자 고개를 끄덕인 나운학이 입을 열었다.
"조사하기 전에 무공을 폐해야겠소이다. 현령께서는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예. 그렇게 하시지요"
"으으, 무, 무슨 소리냐. 이 놈들 내가 누군줄 알고, 난 이 곳 은가장의 장남인 은고유란 말이다. 이 놈들 어서 이거 풀지 못할까"

은고유라고 자신을 밝히며 고함을 지르는 사내를 보며 철무륵이 피식 웃었다.
"지랄한다. 이런 멍청한 놈이 있나. 야, 이 놈아. 방금 이 곳 현령께서 설지에게 마마라고 하는 소리 못들었냐? 은가장이라고? 아이구 그러셔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지랄 같은 일만 저지르고 다닌 개 잡놈이라서 참 좋으시겠어요"

철무륵의 비아냥을 듣고 있던 은고유가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린 듯 화들짝 놀라며 설지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벗어 날까 머리를 굴리다 보니 정작 사람들의 대화를 건성으로 흘려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마라니? 마마라면 황족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은고유는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눈 앞이 깜깜해 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한편 은고유는 절망감을 느끼며 암담해 하고 있다가 갑자기 자신의 단전에 와닿는 손길을 깨닫고 다시 한번 화들짝 놀라야 했다. 그리고 아래로 시선을 내리는 순간 끔직한 고통이 전신을 업습하더니 순식간에 자신의 내공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공허함을 느껴야 했다. 나운학이 다가서서 단전을 완전히 폐해 버린 것이다. 은고유의 단전을 간단한 동작으로 폐해버린 나운학은 은고유를 바라 보며 나직하지만 무거운 음성으로 경고를 했다.

"부디 당신 말대로 무죄가 밝혀지길 빌겠소. 그래야 성수의가의 소공녀에게 행한 죄를 내가 물을 수 있을테니 말이오. 기대해도 좋을거요"

짐짓 살기 마저 띤 나운학의 나직한 음성을 듣는 순간 은고유는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한편 늘 온화한 웃음을 얼굴에 달고 있던 나운학의 갑작스런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은 놀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 보았다. 자신들이 방금 들었던 나운학의 말이 제대로 들었던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새삼 알 수 있었다. 늘 사람들을 혼화한 모습으로 대하는 나운학도 설지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에게는 추호도 용서가 없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도현령은 은고유의 단전을 폐하는 나운학의 모습을 지켜 보다 장포두를 향해 명을 내렸다.
"장포두는 지금 즉시 은가장으로 달려 가서 장원을 샅샅히 뒤져 보게. 조그만 증좌라도 놓치면 아니되네."
"예. 현령 나으리, 걱정 마십시오."
"아! 그리고 만일 은가장에서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모두 잡아들이게. 마마께 불경한 죄만으로도 이미 대역죄거늘 수사 마저 방해하려 든다면 한치의 용서도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속히 가보게"
"예. 그럼"

장포두가 십여명의 관병을 이끌고 사라지자 도현령은 다시 은고유와 나운학을 한번 바라보고는 나운학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나신의! 이 놈의 혈도를 풀어 주시겠소."
"아! 그 혈도는..."
"헤헤헤. 그거 숙부는 못 풀어요. 내가 풀어줄게요."

설지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짓던 도현령은 이내 한걸음 물러서며 설지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자 설지가 앞으로 나서더니 은고유의 몸 두어군데를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갑자기 은고유가 풀썩 쓰러져 버렸다. 내공이 빠져 나감과 동시에 온 몸의 기력도 동시에 빠져 버렸던 은고유가 혈도가 풀림과 동시에 스스로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져 버린 것이다. 은고유가 쓰러지자 관병 두사람이 재빨리 달려 들어 은고유의 무릎을 꿇렸다. 무릎을 꿇린 은고유를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던 도현령의 입에서 추상 같은 음성이 흘러 나왔다.

"네 이놈, 은고유! 본관의 질문에 한치의 거짓도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묻겠다. 네 놈이 우리 상직현에서 일어난 여아들의 납치 살해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 맞더냐?"
"아, 아닙니다. 현령 어르신. 소인은 절대로 그런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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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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