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 이 놈이 그래도, 어서 이실직고 하지 못할까?"
"아, 아닙니다. 정말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도현령과 은고유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철무륵이 분통이 터진다는 듯한 표정으로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관병들에 의해 꿇어 앉혀져 있던 은고유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는가 싶더니 옆에 있던 설지를 향해 몸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재빠른 동작으로 설지의 목을 틀어 쥐는 것이 아닌가. 

은고유의 혈도를 풀어주고 나서 몇걸음 떨어진 옆에 서서 은고유를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라 보고 있던 설지를 비롯하여 장내에 있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쾌속한 몸놀림이었다. 더구나 은고유는 나운학에 의해 단전이 폐지당한 상태였기에 누구도 지금과 같은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리라고는 짐작 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은 놀란 표정이 되어 은고유의 다음 행동을 지켜 보아야만 했다.

한편 설지의 목을 한 손으로 틀어 쥐고 다른 손으로 설지의 몸을 뒤에서 껴안은 은고유는 음침한 괴소를 흘리며 도현령과 나운학 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크흐흐흐. 길을 열어라. 손가락 하나라도 까닥하는 놈이 있다면 이 년은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크흐흐"

나운학과 철무륵, 그리고 일성 도장 등은 잠시의 방심이 불러온 결과에 서로를 바라보며 탄식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좌우로 갈라서며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설지의 목을 쥐고 있던 은고유가 득의만만한 광소를 터트리며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어걸음을 옮겨 가던 은고유가 어쩐 일인지 더이상 걷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선 채 당혹스러운 음성을 입에서 흘려내는 것이 아닌가.
"이, 이게..."

그 순간 은고유를 지켜보던 이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도해야 했다. 은고유에게 목을 잡혀 있던 설지가 자신의 목을 쥐고 있는 은고유의 손을 가볍게 풀어 버리고는 은고유에게서 벗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은고유에게서 벗어난 설지는 고개를 좌우로 까닥거리며 한손으로 뒷목을 몇번 만지더니 짜증이 가득 담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씨. 이 아저씨가 누구 목을 잡는거야. 호아 한대 때려 줘. 무지 세게."

설지의 입에서 세게 라는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은고유의 면전으로 날아 오른 호아는 작고 앙증맞은 앞발로 은고유의 머리를 후려 갈겼다. 호아의 작은 앞발에 머리를 강타당한 은고유가 입에서 거품을 물더니 서있는 자세 그대로 혼절해버리자 설지가 허공을 향해 손을 한번 휘저었다. 그제서야 혼절한 상태로 서있던 은고유의 몸이 바닥으로 풀썩 쓰러졌다. 은고유가 쓰러지자 가장 먼저 설지를 향해 다가온 것은 나운학이었다.

"괞찮은게냐?"
"응, 응! 숙부. 나 멀쩡해. 헤헤"
"그래. 다행이구나."

나운학의 뒤를 이어 다가온 철무륵은 설지를 번쩍 들어 올려 설지의 몸 여기 저기를 살펴 보며 호들갑을 떨더니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설지를 내려 놓고는 입을 열었다.

"이 놈아, 방금 어떻게 된거냐? 이 숙부는 놀라서 죽는 줄 알았다."
"헤헤, 별거아냐. 초아와 내가 개발한 두번째 점혈법이야. 직접 손을 쓰지 않고 기를 움직여 점혈하는 방법인데 자세한건 비밀이야. 비밀!"
"응? 기를 움직인다고? 그렇다는 말은 허공을 격하고 점혈한다는 말이 아니더냐?"
"응, 응! 맞아"
"흠, 그럼, 지풍을 날려서 점혈하는 것과 같은게냐?"
"응? 지풍? 아! 그거랑은 틀려. 직접 느껴 봐"

그러면서 설지가 철무륵을 향해 과장된 손동작을 해보이자 철무륵은 무엇인지 알수 없는 신비한 기운이 자신을 옭아매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 당황한 철무륵이 반탄지기를 운용해 자신을 옭아매는 기운을 떨쳐 버리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 짧은 순간에 철무륵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비한 기운에 의해 온몸이 결박당해 버렸던 것이다.

"이, 이게 무엇이냐?"
"어때? 움직여 봐."
"이익, 크으으"
"헤헤. 안될거야. 호아도 벗어나지 못했는데 철숙부는 당연히 안될거야"

다시 한번 설지가 허공을 향해 과장된 손동작을 해보이자 철무륵은 자신을 옭아맸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짐을 깨달았다. 그리고 꼼짝달싹 할 수 없었던 몸도 그제서야 다시금 자유를 되찾았다. 자신을 옭아맸던 기운에서 풀려난 철무륵은 상당한 충격을 느꼈던 듯 당혹해 하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바, 방금 내 몸을 결박했던 기운이 무엇이더냐?"
"헤헤. 그건 여기 저기 보이는 풀과 나무들이 잠시 빌려준 기운이야"
"그, 그럼 자연지기라는 말이냐?"
"자연지기? 음, 음, 그렇겠네. 맞아 자연지기"
"크하하. 그래, 그럼 그렇지. 자연지기가 아니면 천하에 누가 이 철무륵을 구속할 수 있겠느냐?"

철무륵과 설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놀랍다는 듯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말로만 듣던 저연지기의 운용이 이제 고작 열살이 된 여아에게서 자연스럽게 발현되었으니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아마도 이 사실이 강호에 퍼져 나가면 상당한 파문을 일으킬 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한편 철무륵과 대화를 나누던 설지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나운학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빠르게 입을 열었다.
"참! 숙부. 저 아저씨 있잖아"

설지가 관병들에 의해 포박당하고 있는 은고유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아저씨. 몸 속에 있는 이상한 기운이 전에 그 아저씨 있잖아. 왜, 표국의 소국주라는 아저씨 말야, 그 아저씨가 가지고 있던 기운이랑 비슷한거 같아."
"뭐라고? 그게 사실이더냐?"
"응, 응! 틀림없어. 숙부가 단전을 폐지할때는 몰랐는데 아까 내게 덮칠때는 확실히 그 기운이 느껴졌어"

설지의 말을 들은 나운학과 철무륵, 그리고 일성 도장 등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 보았다. 하남 표국의 소국주인 곽철승이란 자는 분명 어떤 금지된 마공을 익히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곽철승에 이어 또 다른 마공을 익힌 자가 등장했으니 이는 분명 우연이 아닐 것이다. 거기다가 두 사람 모두 표국과 전장의 후계자라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무림에 은밀히 흐르기 시작한 암류의 흔적이 아닌가 여겨진 것이다.

무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던 나운학은 이내 생각을 덮고 관병들에게 결박당한채 혼절해 있는 은고유의 몸을 세세히 살펴 보기 시작했다. 그런 나운학의 행동을 말없이 지켜 보는 철무륵과 일성 도장, 혜명 대사의 얼굴에서도 그늘이 짙어지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 동안 은고유의 몸을 살펴 보던 나운학이 고개를 끄덕이며 은고유의 몸에서 손을 떼자 성질 급한 철무륵이 성큼 나서며 질문을 했다.

"그래. 어떤가?"
"예. 형님, 제가 살펴본 바로는 아무래도 역혈 마공의 하나를 수련한 것 같습니다."
"역혈 마공?"
"예. 형님. 단전을 폐지당한 상태에서도 한순간에 잠력을 격발 시켜 잠시나마 무공을 회복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화후가 높아 보이지는 않는군요"
"그 말은 역혈 마공을 익히기는 했으나 대성을 이루지는 못한 것 같다는 이야기인가?"
철무륵과 나운학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일성도장이었다. 
"예. 어르신.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자와 같은 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으니..."
"흠... 무량수불"

한편 은고유를 관병들에게 포박하게 하고 관아로 압송하려던 도현령은 일이 이상하게 흐르는 것 같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도현령이 숙고에 들어갈 무렵 은가장의 수색을 위해 나섰던 장포두와 관병들이 돌아 오는 모습이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 왔다. 은가장의 수색을 위해 떠났던 장포두 일행이 너무 빨리 돌아 오자 의아해 하던 도현령은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뛰어 온 장포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장포두! 어찌 된 일인가? 무슨 일이 있는가?"
"예? 무슨 일이라니요?"
"아니, 그렇지 않은가, 은가장을 수색하러 갔던 자네가 이렇게 빨리 돌아 왔으니 하는 말 아닌가?"
"아! 하하하.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니고 증좌를 발견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쉽게 발견했기에 수색이고 뭐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 그 증좌란게 무엇인가?"
"예. 이것이옵니다. 저 놈의 거처에 있던 문갑에서 이런 것들이 나왔습니다."

장포두가 내민 보따리를 받아들고 내용을 살피던 도현령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 나왔다.
"허! 이럴수가"
도현령의 손에는 보따리에서 끄집어낸 여아들의 장신구로 보이는 물건이 하나 들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작은 죽편이 하나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죽편에는 보기에도 선명하게 여아의 이름과 나이가 세필로 적혀 있었다. 그 장신구는 은고유가 여아들을 납치하여 음욕을 채운 후에 죽여 매장해버리는 과정에서 여아가 지니고 있던 장신구를 떼어 내서 기념품 삼아 모아 두었던 것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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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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