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칙칙하고 무거운 기운을 뿌리며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내를 건너고 있는 강시를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던 청진 도사가 손에 들고 있던 송문고검의 손잡이로 손을 가져 가며 침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사제들! 모두 조심하게"

무당의 장로급에게만 지급된다는 무당의 명검인 송문고검은 일대제자에게는 지급되고 있지 않지만 무당의 무력을 상징하는 무당십이검은 예외였다. 하나같이 고색창연한 송문고검을 소지하고 있던 무당 십이검은 대제자인 청진의 입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일제히 검을 빼 들고 청진 도사의 좌우로 늘어섰다. 그런 무당십이검을 바라 보고 있던 일성 도장의 입에서도 침중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말도록 하거라.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수도 있음이야"

일성도장의 말을 들으며 새삼 경각심을 일깨운 무당십이검이 강시들을 향해 막대한 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리 넓지 않은 내를 거의 건너 온 강시들도 자신들의 앞을 가로 막고 늘어선 무당십이검을 향해 흉폭한 기운을 뿜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강시들의 발이 내를 완전히 건너서 땅을 딛는 것과 동시에 무당십이검을 향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검을 들고 늘어선 무당십이검을 공격하는 강시들의 숫자가 정확히 열두구였다. 결국 무당십이검과 강시들은 일대일의 대결을 펼쳐야만 했다.

깡!, 까강!

적수공권으로 무당십이검에게 짓쳐 들었던 강시들의 손과 무당의 송문고검이 부딪치면서 내는 묘한 음향이 주위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검과 주먹이 부딪치는 소리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음향을 만들어가며 강시들과 무당십이검이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아무리 무당십이검이라고 해도 도검 불침의 강시들을 상대로는 어떠한 이득도 보지 못하고 그저 동수를 이루고 있을 뿐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계속 흐른다면 내공이 고갈된 무당십이검의 필패로 끝날 것이었다.

한편 강시를 보고 나서 귀신이라며 나운학의 품에 안겨 오들 오들 떨고만 있던 설지는 자신의 귀를 간지럽히는 묘한 음향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나운학의 품속에서 고개만 빼꼼히 장내로 돌려 강시와 무당십이검의 대결을 지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설지의 눈은 반짝 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흥미를 유발하는 강시의 존재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싶어졌던 것이다.

"우와! 무지하게 신기하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숙부 저게 말로만 듣던 금강불괴야?"
"금강불괴라? 글쎄다. 그건 아닌 것 같구나. 하지만 도검불침의 신체를 가진 것만은 분명한 것 같구나."
"그래? 우와. 신기해. 신기해. 응?  가만 저 강시들의 기운이 왜 저래?"
"응? 그게 무슨 말이냐?"

나운학의 물음에도 묵묵부답인채로 한동안 강시의 모습을 뚫어져라 지켜보고만 있던 설지의 입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뜻밖의 말이 흘러 나왔다.
"숙부! 그런데 저 강시들은 어떻게 움직이는거야? 시체라면서?"
"아! 듣고 보니 그렇구나. 아무래도 근처에 누군가가 숨어서 저 강시들을 조종하고 있을 것 같구나."

말을 마친 나운학이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성 도장 역시 주변으로 기감을 넓혀 가며 숨어서 강시를 조종하는 이를 찾기 시작했다. 얼마안가 나운학과 일성 도장은 자신들이 조금전에 내려왔던 복이산의 산정에서 사람으로 보이는 인영 몇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정확히 그들이 강시들을 조종하고 있는 것인지는 파악이 불가능하였다. 그때 설지가 나운학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용아가 찾았어."
 응? 정말이냐?"
"응, 응. 용아가 그러는데 저 산 위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며 강시들을 조종하고 있데."
"그럐? 그럼. 그 놈들을 은밀히 제압해야겠구나. 어르신! 설지를 부탁합니다."

나운학이 강시들을 조종하는 이를 잡기 위해서 막 움직이려 할 때였다.
"아냐, 아냐. 용아가 잡아온데. 용아에게 맡겨"

늘 설지의 어깨 위에 올라 앉아서 미동도 없던 용아가 오늘은 설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공으로 날아 오르더니 산정을 향해 빛살 처럼 날아가며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용아의 모습이 사라진 허공을 잠시 지켜보던 설지는 다시 시선을 강시들에게 돌리며 일성도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도사 할아버지! 강시들을 공격하는 보표 아저씨들이 왜 저래요?"
"응? 그게 무슨 말이냐?"
"조문을 두고 왜 자꾸만 쓸데없는 공격을 하는거예요?"
"뭐? 조문? 지금 조문이라고 했느냐?"
"응, 응. 조문, 조문요."
"허허. 강시에게 조문이 존재하고 있었구나. 그래, 그 조문이 어디냐?"
"양쪽 견정혈이 다른 곳 보다 유독 약해 보이는걸 보니 거기가 아마 조문인가 봐요"

설지의 입에서 견정혈이 약하게 보인다는 말이 나오자 일성도장은 곧바로 강시들과 일검, 일권을 교환하여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는 무당십이검에게 큰소리로 조문을 알려 주었다.
"모두 강시들의 양쪽 견정혈을 공격하거라"

일성도장의 외침에 무당십이검의 청진 도사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지체없이 자신의 앞에 있는 강시의 견정혈로 검을 찔러 넣은 것이다. 아무리 자연스러운 동작을 가진 강시라고 하나 무당십이검의 대제자인 청진 도사의 눈부신 쾌검에는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양쪽 견정혈이 차례대로 한치 정도 뚫리고 말았다. 그러자 그때 까지 광폭하게 설쳐대며 맹공을 퍼붓던 강시의 움직임이 뚝 그치는가 싶더니 이내 땅바닥으로 풀썩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뒤이어 여기저기서 강시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구의 강시 마저 쓰러질 무렵이었다. 강시들을 모두 제압하고 한숨을 돌리던 무당십이검을 비롯한 사람들은 허공에서 기이한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허공에는 밧줄도 없는데 세 사람이 거꾸로 매달려 허우적거리고 있었으며 그런 세 사람의 위에서는 용아가 조용히 날아 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매달았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용아가 일으킨 현상임에는 분명했다.

세 사람을 거꾸로 매달고 날아오던 용아는 순식간에 장내에 도착하여 세 사람을 설지 앞에 패대기 친 후 유유히 설지의 어깨 위로 날아가 조용히 내려 앉았다. 그리고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던 처음 그 자세 그대로 돌아갔다. 그런 용아의 몸통을 한번 쓸어주던 설지가 이내 무엇을 발견했는지 눈을 반짝이며 패대기 쳐진 충격에 혼절해 버린 세 사람 중 한 사람 근처로 걸어가서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주워 들었다.
"우와! 예쁘다. 숙부 이것 봐!"

경탄을 발하는 설지의 손에는 작고 예쁜 종 하나가 들려 있었다. 종을 들고 나운학에게로 다가간 설지는 손바닥에 종을 내려 놓고는 나운학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설지가 내민 손바닥을 들여다 보는 나운학의 눈에는 설지의 말대로 언뜻 보기에도 대단한 귀물로 보이는 작고 예쁜 종 하나가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거 고장났나봐. 흔들어도 소리가 안나."

설지의 말 그대로였다. 설지가 손 바닥에 놓여 있던 작은 종을 들어서 흔들어 보았으나 그 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설지의 행동을 묵묵히 지켜 보던 일성 도장이 무언가가 생각난 듯 설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설지야! 그 종, 어디 이 할애비가 한번 보자꾸나"
"응, 응! 여기 있어요!"

설지에게서 건네받은 작은 종을 한동안 유심히 살펴보던 일성도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역시 그렇구나. 아무래도 이 종은 마혼령인 것 같구나"
"마혼령? 그게 뭔데요?"
"흠, 그게 말이다. 마혼령은 말 그대로 심지를 제압하는 종이라는 뜻이란다."
"응? 심지를 제압한다고요?"
"그래. 섭혼술 등에 의해서 심지가 제압당하고 나면 이 마혼령으로 조종이 가능하다고 하더구나. 물론 강시도 당연히 조종할 수 있겠지"
"우와! 그럼 무지하게 좋은거잖아. 헤헤. 아이 신나."
"뭐가 그리 좋다는게냐?"
"그렇잖아요. 도사 할아버지. 마혼령만 있으면 강시들을 조종할 수 있다고 하니까 이제 귀신은 겁낼 필요가 없잖아요"
"허허, 그래, 그렇구나. 자, 이건 잘 간직하거라. 행여 나쁜 마음을 먹은 자에게 들어가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물건이란다."
"헤헤, 걱정마세요. 제 가방 안에 들어가면 무지하게 안전해요. 헤헤"

옆구리에 메고 있던 천잠사로 만든 가방을 툭툭 두드린 설지가 종을 냉큼 가방 안에 넣으며 꺼낸 말이었다. 그리고 나운학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숙부! 나 이거 가져도 되는거지?"
"녀석. 이미 가방 속에 집어 넣고는 딴 소리하는거냐?"
"헤헤"
"하지만 도사 할아버지 말씀은 꼭 명심해야 한다. 알겠니?"

나운학이 이렇게 말하자 눈망울을 반짝이며 작은 고개를 끄덕인 설지가 걱정말라는 듯 옆에 메고 있는 가방을 한번 두드려 보였다. 그렇게 예쁜 종 하나를 소중히 챙긴 설지는 다시 쓰러져 있는 강시들을 향해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무당십이검은 제압한 강시들을 한 곳에 가지런히 모아서 눕혀 놓았으며 용아에게 잡혀와서 혼절해버린 세 사람도 혈도를 제압하여 강시들의 곁에 눕혀 놓고 있었다.

가지런히 놓인 강시들 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강시의 앞으로 다가가 앉은 설지는 눈 앞의 강시를 꾹꾹 눌러 보거나 두드려 보기도 하면서 강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살펴 보던 설지의 입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흘러 나오기 시작한 것은 강시를 살펴 보기 시작한지 일다경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햐! 신기해, 신기해. 음, 음, 이렇게 되는거구나. 음, 음"

그렇게 한참 동안을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강시를 살펴보던 설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한참을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설지의 몸에 변화가 찾아 오고 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던 설지의 몸이 희미하게나마 뿌연 색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하더니 종내에는 온 몸이 완전히 뿌옇게 변해버린 것이었다.

"응? 아니, 저 녀석, 갑자기 왜 저래?"

설지의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철무륵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설지의 변화를 감지한 것은 철무륵 뿐이 아니었다. 나운학과 일성도장, 그리고 혜명 대사 등도 설지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설지의 행동을 긴장 속에서 지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그런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온 몸을 완전히 뿌옇게 만들어버린 설지의 입에서 돌연 한소리 경탄성이 흘러 나와 장내의 긴장을 완전히 이완시켜 버렸다.
"우와! 된다. 돼. 성공이다. 헤헤"

뭐가 되고, 뭐가 성공인지는 모르지만 설지의 경탄성을 들어 보면 전혀 위험하고는 거리가 먼 장난거리가 만들어진 듯 했다. 온 몸의 살갗을 뿌연 색으로 물들여 버린 설지는 자신의 몸을 한번 살펴 보고는 철무륵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런 설지의 입에 달린 기이한 미소가 철무륵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으로 설지를 지켜 보는 철무륵의 눈에 설지의 이상한 다음 행동이 들어 왔다. 두손을 앞으로 쭉 들어 올리더니 양발을 한꺼번에 굴려 콩콩 뛰면서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철무륵의 앞으로 콩콩 뛰어 온 설지는 천천히 철무륵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흐흐흐, 철숙부! 내가 아직도 설지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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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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