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지가 밝은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자 안절부절 하며 엽정의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철무륵도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급히 엽정에게 다가섰다.
"어떠냐? 괜찮은거냐?"
"아! 예. 총표파자, 몸이 가뿐한 것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입니다. 하하하."

엽정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철무륵은 엽정의 몸 여기 저기를 만져보며 경탄을 토해냈다.
"호! 정말 강철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구나. 설지야 수고했다"
"헤헤. 별일 아냐. 철숙부"
"별일 아니라니 녀석아, 단시간에 일류 고수 하나를 도검 불침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어떻게 별일 아닌게냐? 이 사실이 강호에 퍼져 나가면 모르긴 몰라도 일대 소란이 벌어질거다"

그랬다. 설지가 어린 마음에 별일 아니라고 이야기 했지만 절정에 도달해 있는 고수를 단시간에 걸쳐 거의 금강불괴지신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 이는 무림 역사 이래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큼 설지가 한 일은 무림인에게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것으로 만일 이런 사실이 강호로 흘러 든다면 설지를 노리는 불나방 같은 자들이 덤벼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기야 그런 불나방들에게 쉽게 넘어갈 설지가 아니긴 했지만...

나운학과 장내의 모든 인물들도 설지와 철무륵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나운학의 입장에서는 만에 하나라도 설지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사태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니 사전에 이를 차단해야 했다. 철무륵도 설지와 말을 나누다가 불현듯 떠오른 그런 생각에 나운학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형님! 아무래도 식구들의 입단속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운학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철무륵이 녹림이십사절객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그들을 불러 모을 때 무당과 소림에서도 일성 도장과 혜명 대사가 다시 한번 제자들에게 설지의 일을 비밀에 부칠 것을 명하였다. 개방에서는 취걸개를 비롯한 대부분이 강시를 조종했던 세 사람과 함께 장내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남아 있는 개방의 일결 제자들의 입단속을 위해서는 나운학이 나서고 있었다.

한편 설지는 나운학과 철무륵 등이 자신을 염려해서 식구들의 입단속을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 철무륵에게 함구령을 받고 있는 녹림 이십사절객을 하나 하나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또 다른 강시 도구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때 쯤 강시를 조종했던 술사를 비롯한 세 사람을 고문하기 위해 산중으로 데려 갔던 개방 제자들도 장내로 돌아와 엽정의 변한 몸을 보고 놀란 시선을 설지와 엽정에게 주고 있었다.
"철숙부! 엽 아저씨의 몸이 어떤지 시험안해 볼거야?"

또 다른 강시 도구를 찾기에 여념이 없던 설지가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말하자 녹림 이십사절객에게 함구령을 내리고 있던 철무륵도 그제서야 엽정의 몸을 만져 보기만 했지 별다른 확인을 해보지 않은 걸 깨닫고 엽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렇구나. 무적강시공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을 해봐야겠지, 어떻게 확인해 보면 되겠느냐?"
"응, 응! 이걸로 살짝 찔러 봐"

말하는 설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철무륵이 허리에 차고 있는 단혼이었다. 거무튀튀한 도갑에 들어 있는 철무륵의 애병 단혼을 가리키는 설지의 손가락을 보며 당혹한 음성으로 철무륵이 말을 이었다.
"흐흠, 정말 단혼으로 찔러 보라는 이야기냐?"

설마 아니겠지 하는 심정으로 설지를 바라보며 입을 연 철무륵의 시선에 들어 온 것은 기대에 찬 눈망울을 반짝이고 있는 설지의 귀여운 모습이었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도를 가리키며 찔러 보라는 설지의 요구에 잠시 황당해 했던 철무륵은 혹시하는 마음으로 슬그머니 도갑에서 도를 끄집어 낸 후 허공에 힘차게 한번 휘두른 후 엽정에게 다가가 오른 팔을 내밀게 하고는 그야말로 살며시 톡하고 도신으로 엽정의 오른 팔을 건드려 보았다.
"아이참! 철숙부, 그렇게 해서 어떻게 확인이 돼? 좀 더 세게 찔러 봐"

아무렇지도 않게 천진난만한 목소리를 입에서 뱉어내는 설지를 힐끗 한번 돌아 본 철무륵은 설지의 말을 듣고 각오를 굳힌 듯 다시 한번 더 허공을 향해 도를 힘차게 휘두른 후 엽정의 팔을 찔러 갔다. 아까 보다는 강도가 조금 세어지긴 했으나 녹림 칠십이채의 우두머리라는 녹림 총표파자의 도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겸연쩍은 미약한 움직임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이번의 도에는 제법 강도가 실려 있었던지 엽정의 오른 팔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간 철무륵의 도가 엽정의 팔과 조우하는 순간 사람들은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팔과 도가 부딪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너무도 경쾌한 소리였다.

챙~

팔을 도로 두들겨 맞은 엽정과 공격한 철무륵을 비롯하여 장내에 있던 모든 이의 귀에 들려 온 그 소리는 분명 도와 도가 맞부딪혔을 때나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확인한 설지는 폴짝 폴짝 뛰며 탄성을 발했고 팔을 공격당한 엽정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팔과 철무륵의 도를 연신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더냐?"
"예. 총표파자.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믿기지 않았는데 정말 도검 불침이 된 것 같습니다."
"크하하! 설지야 수고했다. 정말 수고했다. 크하하하"
"아이참, 별일 아니래두, 이제 다른 아저씨를 강시로 만들어야 하니 철숙부는 볼일 봐"

그렇게 말하며 설지가 자신이 점찍어 놓은 두번째 강시 재료를 향해서 시선을 주었다. 설지의 시선을 따라 간 철무륵의 시선에 들어 온 인물은 다름아닌 녹림이십사절객의 막내인 장선이었다. 설지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인 철무륵이 장선을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 본 후 개방의 취걸개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걸음을 떼자 설지는 곧 바로 장선에게 다가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입을 열었다.
"아저씨. 준비해요."

설지가 그렇게 또 다른 무적강시공을 장선에게 전수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사이 철무륵과 나운학, 그리고 일성 도장과 혜명 대사는 설지의 행동을 지켜 보며 취걸개로 부터 혈교의 도발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사태가 간단치 않음을 취걸개의 입을 통해 전해들은 사람들의 표정은 침중하기 그지 없었다. 암운으로 흐르기 시작한 혈교의 도발에 대한 대비가 중원 각 대문파에 필요했던 것이다.

"무량수불! 마교의 이단아인 나찰마 비여홍이 마교에서 무단 이탈한 후 세웠다는 종파가 혈교라고?"
"그렇습니다. 어르신. 사이한 대법에 정통하여 마교에서도 통제가 불가능 할 정도였던 그 나찰마가 마교에서 뛰쳐 나와 만든 것이 바로 혈교입니다." 
"아미타불!"
"어르신, 중원 각 대문파에 배첩을 돌려 혈교의 도발을 사전에 대비케해야 하지 않겠는지요?"
"흠, 그래야겠지만 과연 중원 각 문파에서 순순히 우리 뜻대로 따라 줄지 의문이네. 정파는 그렇다해도 사파와 마도 쪽에서는 귀담아 듣지도 않을걸세"
"크흠, 어르신. 그렇긴 하지만 최소한 시도는 해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타불! 빈승도 철대협의 말대로 시도는 해보는게 좋을 것 같소이다."
"흠, 자네들의 생각이 그렇다면 개방의 도움을 받아 배첩을 돌리도록 해보세나"

일성 도장을 비롯한 인물들이 이런 결론에 도달할 즈음 설지에 의해 무적강시공을 전수받고 있는 장선은 지금 막바지 단계에 돌입한 듯 전신이 엽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거무튀튀한 빛깔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뜬 장선의 눈에서는 신광이 잠시 번뜩이는 듯 하다 사라졌다. 가봐좌를 풀고 일어선 장선이 자신의 몸을 이리 저리 살펴 볼 때 설지는 예의 나뭇가지로 장선의 팔을 두들겨 보며 기쁨에 젖은 탄성을 토해냈다.
"우와! 2호 강시도 성공이다"

약 두시진 반에 걸쳐서 진행된 녹림 이십사절객의 강시화는 다섯번째 대상자인 화유기의 강시화로 모두 끝이 났다. 그리고 그 즈음 왕삼의 징에서 저녁 식사 시간임을 알리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뒤도 돌아 보지 않고 초헤와 진소청을 데리고 식당으로 향하는 설지의 뒷모습을 지켜 보는 철무륵의 입에는 고소가 맺혀 있었다.
"그 녀석 밥 먹는 시간 챙기는 것은 절대지경에 들었구만"

철무륵의 우스개 소리를 들으며 나운학과 일성 도장, 그리고 혜명 대사 등도 서둘러 설지의 뒤를 따라 식당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식사 시간이 끝난 후 한자리에 다시 모인 사람들은 소림의 승려들이 전수받게 될 무적강시공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에 대한 기대감에 젖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기대감을 한몸에 받으며 설지는 다시 소림 승려들을 대상으로 강시 만들기에 대한 사전 준비로 승려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꼼꼼이 승려들을 살펴 보던 설지가 가장 먼저 지목한 것은 소림십팔나한의 수좌승인 공각이었다. 지목받은 공각은 녹림 이십사절객들과 마찬가지로 가부좌를 튼 채 설지로 부터 무적강시공을 전수 받기 시작했다. 설지로 부터 전해 지는 기운을 몸속으로 일주천하기 시작한 공각도 처음에는 몸이 움찔거릴 정도로 강력한 기운에 잠시 당혹해 했으나 수양 깊은 승려 답게 금방 안정을 찾으며 보다 쉽게 설지가 인도하는 기운을 받아 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녹림 이십사절객들 보다 좀더 빨리 몸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 결과가 달랐다. 녹림이십사절객들 중에서 지목된 다섯명의 강시 대상자들은 모두 거무튀튀한 빛깔로 전신을 물들였던 것에 비해 공각의 전신에서는 서기와도 같은 엷은 황금색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빛깔은 점차 짙어지더니 종내에는 완연한 황금색으로 바뀌었다.

반각 후 눈을 뜬 공각의 눈에서도 잠시 신광이 흐르다 사라지는 것을 사람들은 볼 수 있었다. 여지없이 팔을 두드려 보는 설지의 나뭇가지 세례를 덤덤히 받은 공각이 입가에 미소를 띈채 설지와 혜명 대사를 향해 깊이 합장하며 무적강시공이 성공했음을 간접적으로 알렸다.

"아미타불! 그래, 어떠냐?"
"아미타불, 예. 원주님. 별다른 무리없이 대법이 성공한 것 같습니다."
"허허허! 아미타불, 부처님의 보살핌이 크시구나."
"아미타불!"
"소공녀 한가지 물어 볼 것이있소이다."
"말씀하세요. 스님 할아버지"
"다른 게 아니라 공각에게 전수한 무적 강시공도 조문이 있겠지요?"
"응, 응! 맞아요. 조문이 두군데 있는데 모두 다 다르니까 서로 비밀을 지키면 될거예요."
"응? 아니 설지야 그게 무슨 말이냐?"

듣고 있던 철무륵이 나서며 이렇게 묻자 설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산적떼 아저씨들이랑 소림사의 스님들이랑 모두 조문이 서로 다 다르다는 말이예요."
"그럼, 견정혈이 조문이 아니라는 말이냐?"
"응, 응! 철숙부"
"그, 그럼 너 처럼 엉덩이가 조문인게냐?"
철무륵의 말에 고개를 살레 살레 저은 설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이참! 철숙부, 비밀이라니까"
"응? 으응? 아! 그, 그래, 그렇구나. 이런 정신 나간 놈, 크하하하"

그제서야 비밀이라는 설지의 말을 이해한 철무륵이 대소를 터트리며 설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철무륵의 대소를 들으며 미소를 지어 보인 설지는 다시 소림의 승려들을 대상으로 두번째 강시 만들기에 적당한 인물을 찾느라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창작 연재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협 연재] 성수의가 68  (0) 2012.04.15
[무협 연재] 성수의가 67  (0) 2012.04.08
[무협 연재] 성수의가 66  (0) 2012.04.01
[무협 연재] 성수의가 65  (0) 2012.03.25
[무협 연재] 성수의가 64  (0) 2012.03.17
[무협 연재] 성수의가 63  (0) 2012.03.04
Posted by 까만자전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