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미타불!"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의아한 광경에 당황스러워 하며 원각이 나지막하게 불호를 읊조릴 때였다. 그런 원각의 귀로 우렁우렁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설지야! 비아 그 놈도 괴물이 되어 버린게냐?"

철무륵이었다. 비아의 날개를 안마(?)하는 설지의 행동을 말없이 지켜 보고 있던 철무륵이 날카로운 검의 공격에도 끄덕 없는 비아의 날개를 보고는 별 생각 없이 커다란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던 것이다. 하지만 철무륵은 자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자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순 세쌍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여 쏘는 듯 다가와 살기에 버금가는 따끔한 기운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 세쌍의 눈은 다름아닌 설지의 곁을 지키고 있던 괴물(?)들인 호아와 백아 그리고 용아의 시선이었다. 순식간에 괴물의 신세가 된 영수들의 따가운 시선에서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은 철무륵이 어슬픈 헛기침으로 실수를 무마하려 할 때 다행히 일성 도장이 나서며 위기의 철무륵을 구원해 주었다.

"어떠냐? 비아 그 녀석이 정말 도검불침의 몸이 된게냐?"
"응! 응! 그런것 같아요. 도사 할아버지"

"허허. 그래, 잘 됐구나"

"아니, 아니, 아직은 아니예요."
"응? 뭐가 또 있느냐?"
"헤헤, 지켜보세요"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든 설지가 비아에게 다가가 조용히 무언가를 이야기 하자 날개 한쪽을 설지에게 맡기고 체념한 듯 가만히 있던 비아가 양날개를 힘차게 퍼덕이더니 갑작스럽게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그리고는 설지의 머리 위 허공에서 두어 바퀴 선회 하더니 갑자기 설지를 향해 양발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발톱을 앞세운 비아의 공격을 막아 나간 것은 설지의 손에 들린 일성 도장의 검이었다.

깡! 깡!


매의 발톱과 검의 부딪힘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경쾌한 금속음이 비아의 발톱과 설지의 손에 들린 검이 부딪칠 때 마다 울려 퍼지는 모습에 장내의 중인들이 경탄을 터트릴 때 그와는 대조되는 당혹스러운 음성이 몇몇 중인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아, 아미타불, 달마삼검, 사제, 저건 달마삼검이 아니가?"

"아미타불, 소제의 눈에도 달마삼검으로 보이는군요. 허허. 어느새 본사의 달마삼검 까지 채가셨는가?"

그렇다. 혜공 대사와 혜명 대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소림의 승려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달마삼검이 지금 비아와 마주한 설지의 손에서 완벽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사실 설지 뿐 아니라 진소청과 초혜 역시 설지와 함께 장경각을 드나들며 달마삼검을 제법 익숙하게 익혀버린 상태였다. 세 소녀의 소림사 숨겨진 무공 찾기 및 소림사의 절기 닥치는대로 습득하기의 결과였다.

더불어 설지와 진소청의 작은 머리 속에는 소림 칠십이종절예의 대부분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기도 했다. 아마도 이러한 사실을 혜공 대사와 혜명 대사가 조금이나마 짐작했었더라면 달마삼검을 완벽하게 펼치는 설지를 보면서 또 다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익히기가 너무 난해하여 구결만 남은 채 실전된 것이나 다름없는 소림 최고의 보법인 연대구품의 완벽한 재현을 꿈꾸어 볼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중인들의 시선 속에서 한참 동안을 비아와 공수를 주고 받았던 설지가 검을 내리자 발톱을 세우고 공격해왔던 비아도 다시 허공을 한차례 선회한 후 설지의 곁으로 내려 앉았다. 자신의 곁으로 내려 앉은 비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만족한 미소를 떠올린 설지가 일성 도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헤헤. 도사 할아버지. 비아가 도검불침인게 확실해요."

"허허. 이 할애비가 보기에도 그렇더구나. 이제 어지간한 무인의 공격에도 견딜 것 같더구나"

"헤헤. 그렇죠? 그리고 가만 생각해 보니까 이제 숲 속에 숨어 있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설지의 이 말이 끝나자 가장 기뻐한 것은 비아였다. 제자리에서 박수를 치듯 양날개를 퍼덕이며 좋아했던 것이다. 덕분에 주위에 있던 중인들은 비아의 날개짓으로 날아오른 고운 먼지들을 고스란히 들이 마시는 수고를 해야했다. 한편 계율원 승려에게 이끌려 이 자리에 와 있는 원각은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기사가 잇달아 눈 앞에서 펼쳐지니 어찌 그렇지 않을 것인가?

두눈을 휘둥그레 뜨고 비아와 설지의 비무 장면을 흥미진진하게 지켜 보았던 원각은 자신도 모르게 양손의 주먹을 꼭 말아 쥐고 있었다. 소림사의 제자로 승적에 오르면서 무공을 배울 수 있게 되기를 얼마나 원했던가? 그리고 그렇게 전수 받은 무공으로 부모님의 원수를 갚게 되기를 또한 얼마나 원했던가? 하지만 자신의 그런 바램과는 달리 원각이 배치된 곳은 불목하니로 허드렛일이나 하는 공양간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이런 처지에 망연자실해 하기도 하였지만 공양간에서라도 성실히 제 역할을 수행한다면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무공을 익힐 기회가 오게 되리라고 굳게 믿고 있던 원각이었다. 그런데 오늘 자신의 눈 앞에서 방장 스님과 계율원주 까지 놀라게 한 작은 소녀의 검술을 보면서 새삼 무공을 배우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이 되살아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간절한 마음이 담긴 눈동자를 작은 소녀 설지를 향해 고정하고 있을 때 일성 도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설지가 갑자기 무언가를 느낀 듯 자신을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환한 미소와 함께 자신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내밀었다. 설지의 손에 들린 것은 원각이 지고 있는 지게에서 가져갔던 나무토막이었다.

"헤헤. 스님, 스님은 법명이 어떻게 되세요?"


너무도 귀여운 귀공녀의 장난기가 가득한 목소리를 들은 원각은 잠시 당혹해 하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아, 아미타불! 소승은 원각이라고 하옵니다."

"아! 원각 스님. 법명이 무지 좋아요. 헤헤. 방장 할아버지, 오늘 부터 우리 안내는 원각 스님이 하는거죠?"

"아미타불, 그렇게 하시지요. 소공녀! 원각이라고 했느냐?"

설지의 모습에 잠시 당황해 했던 원각은 갑작스럽게 자신을 부르는 방장 스님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 그렇습니다. 방장 스님!"

"그래. 원각, 너는 오늘 부터 여기 계시는 성수의가의 소공녀와 두분의 소저를 모시고 다니도록 하거라. 소공녀께서 가시고 싶다는 곳이 있다면 설령 그 곳이 조사동이라고 하더라도 개의치 말고 안내해 드리거라. 알아들었느냐?"  
"예. 방장 스님. 하온데..."

"할말이 있는 것이냐?"
"예. 방장 스님. 하필이면 저 같은 불목하니에게 그런 중대한 일을 맡기시는지가..."

"허허, 그래. 그것은 소공녀께 나중에 물어보거라."
"아니, 아니예요. 지금 알려드릴께요. 원각 스님의 기운이 너무 맑아서 제가 방장 할아버지께 부탁드린거에요"


설지가 이렇게 말하며 끼어들자 그렇지 않아도 원각을 택한 설지의 심중이 궁금했던 혜공 대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소공녀! 원각 저 아이의 기운이 맑다고 하셨소이까?"
"응, 응! 맞아요. 방장 할아버지가 보시기에는 어떠세요?"

"허허. 글쎄요. 빈승은 아직 멀었나 봅니다. 빈승의 눈으로는 잘 짐작이 가질 않소이다"

"응? 어라, 아닌데. 원각 스님은 여기 있는 그 누구 보다 맑은 기운을 가지고 계세요. 무공을 익히면 아마도 소림제일승이라는 이름을 가져가게 될 것 같은데요." 

설지의 입에서 소림제일승이라는 말이 나오자 혜공과 혜명은 침음성을 삼키며 새삼 원각을 아래 위로 뜯어 보기 시작했다. 설지의 눈이 정확하다면 소림은 기재 하나를 불목하니로 방치하고 있었던 셈이었으니 원각을 살펴보는 두 노승의 눈은 열기를 띰과 동시에 침중하기 그지 없었다. 허나 여전히 원각에게서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두 노승은 거의 동시에 한숨을 토해내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상대방이 무언가를 찾았기를 바라면서...

한편 설지의 소림제일승이라는 말에서 호기심을 느낀 일성 도장 역시도 원각을 다시 한번 집중해서 살펴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태껏 발견하지 못했던 미세한 선기가 원각의 몸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 있는 그 어떤 소림승 보다 맑은 선기였다. 설지의 말이 없었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선기를 그리 쉽게 느낀 설지가 신기한지 새삼 설지에게 시선을 주었던 일성 도장이 나직하게 도호를 읊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량수불! 허허."

일성 도장의 그런 모습에서 무언가를 느낀 혜공 대사가 황급히 일성 도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일성자 께서 무슨 가르침이 있으신지..."
"허허, 빈도가 보기에도 설지의 말이 맞는듯 싶소이다."
"오! 그렇습니까?"
"무량수불, 원각 스님의 몸에 작으나마 선기가 감돌고 있소이다. 설지가 말한 맑은 기운이 바로 그 선기인 듯 싶소이다"

"아미타불, 허허, 선재로다."

졸지에 선기를 지닌 스님이 된 원각이 황당해 할 때 설지의 짤랑짤랑한 음성이 그런 원각의 귀를 자극했다.

"원각 스님. 우리 탑림 구경가요. 빨리요"

설지가 백아를 품에 안고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잠시 당황해 하던 원각은 헤공 대사의 고개짓을 본후에야 정신을 수습하고 황급히 설지와 두 소녀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설지와 일행들이 서쪽의 산기슭으로 일각 정도를 걸어가자 갑자기 눈 앞으로 커다란 탑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역대 소림사 고승들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사리탑 이백여개가 장엄한 기상을 품고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와! 무슨 탑들이 이렇게 많아. 여기 들어 갔다가 잘못하면 길 잃어버리겠다."
"설지 언니! 조금 무서운 것 같아."
"응? 무섭다고? 호호, 초혜는 겁나는구나"

설지의 말에 귀엽게 고개를 끄덕인 초혜가 슬그머니 진소청의 손을 잡아가자 그 모습을 보며 얼굴에 작은 미소를 지었던 진소청이 마주 손을 내밀어 초혜의 손을 꼭 쥐었다. 초혜의 손을 잡은 진소청과 백아를 품에 안은 설지가 걸음을 옮기자 그들의 머리 위 허공에서도 무언가 일행의 걸음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아진 몸으로 더 이상 숲속에 몸을 숨길 필요가 없어진 비아였다.

일행들이 걸어 가는 여기 저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탑들이 시선을 잡아 끌었다. 불경의 한구절을 새겨 넣은 탑이 있는가 하면 항아리 모양으로 쌓아올린 전탑, 그리고 기이한 무늬가 동서남북 네 방향을 향해 새겨져 있는 탑등 그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탑이란 탑은 모두 여기에 모여 있는 듯 했다. 그렇게 네 사람이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 탑을 구경하며 걸음을 옮기던 어느 순간이었다.

갑자기 설지가 걸음을 멈추고 한 곳을 뜷어져라 직시하기 시작했다. 설지의 기색이 이상함을 눈치챈 진소청도 걸음을 멈추고 설지가 보고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설지의 시선이 닿고 있는 곳에는 5층으로 쌓아올려져 있는 고풍스러운 전탑 일곱개가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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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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