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지 언니! 왜 그래?"
설지와 진소청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했던 초혜가 궁금함을 견디지 못하고 설지에게 질문을 던지자 그제서야 일곱개의 전탑에서 시선을 거둔 설지가 말을 받았다.

"응? 아! 그게말이야. 저기 봐봐. 저기 있는 전탑 일곱개에서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고 있어"
"응? 이상한 기운이라고?"

"그래. 잘 봐봐. 청청 언니는 어때? 느껴져?"

"예. 아가씨!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탑을 감싸고 신비한 기운이 맴돌고 있는 것 같네요" 
"그렇지? 그렇지? 헤헤. 초혜는 아직 모르겠어?"

설지의 말에 귀엽게 고개를 끄덕인 초혜가 두 사람에게 질수 없다는 듯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다시 전탑들을 뚫어져라 노려 보았지만 별다른 기운은 느껴지지가 않았다. 이에 실망한 초혜가 설지를 바라보며 도움을 청하자 초아의 도움을 받은 설지가 가볍게 손을 흔들어 초혜의 기감을 확대시켜 주었다. 그러자 이때 까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희미한 기운들이 전탑들을 둘러 싸고 있는 것이 초혜의 눈에도 비쳐 들었다.

"이야! 설지 언니, 이제 나도 보여"
"그렇지? 잘 보이지. 뭐 같애?"

"음, 음, 글쎄, 언니랑 우리들이 만들었던 진과 비슷한 것 같은데..."

"응? 아냐, 진법은 아닌 것 같아. 청청 언니는 어때?"

"글쎄요. 저도 저 기운들이 무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 가까이 가서 한번 살펴봐야겠어. 예쁜 보물들이 많이 숨겨져 있으면 좋겠다, 헤헤"

이렇게 말하며 설지가 일곱개의 전탑 가까이로 다가들 무렵 탑림의 외부에서는 이 순간 하나의 그림자가 다급히 경공을 발휘하여 방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무당의 도사들을 대신하여 경내에서 설지를 은밀히 따르고 있던 소림십팔나한 중의 하나였다. 설지가 일행들과 주고 받는 내용들을 종합해 볼때 탑림의 일곱개 전탑들에는 분명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소림사의 방장이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소림십팔나한 중의 하나가 황급히 방장실로 향하는 그 사이 설지를 비롯한 진소청과 초혜는 일곱개의 전탑들 중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전탑의 바로 아래에서 탑의 여기 저기를 세심히 살펴 보기 시작했다. 한편 원각은 설지와 두 사람의 행동에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신성한 탑림에서 마치 보물 찾기라도 하듯이 여기 저기를 마구 들쑤시는 설지의 행동을 말려야 할지 그대로 두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원각이 안절 부절하는 사이 첫번째 전탑의 아랫 부분을 대부분 살펴 본 설지가 진소청과 초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청청 언니! 어때? 뭘 좀 찾았어?"

"아니예요. 아가씨. 여기 저기를 살펴 보았지만 평범한 탑이라는 것 외에는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 초혜는 어때?"

"응, 설지 언니.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조금 이상한게 있기는 해"

"응? 이상하다고 뭐가?"

"저기 봐봐"

초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설지가 보고 있는 전탑이 아니라 전탑과 전탑들의 사이에 있는 빈 바닥이었다. 이름모를 작은 풀들이 여기 저기서 얼굴을 삐죽 내밀고 있는 것을 비롯하여 주변의 다른 땅과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그 땅바닥을 가리키는 초혜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초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주었던 설지는 무슨 말인가 싶어 다시 한번 땅 바닥을 살펴 본 후 초혜를 돌아 보며 말을 이었다.

"바닥? 바닥이 왜?"

"아이참 언니는 잘 봐봐, 이상하게 전탑들 근처의 바닥과 다른 바닥의 흙색깔이 틀리잖아"
"응? 색이 틀리다고..."


초혜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던 설지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일곱개의 전탑과 그 주변의 전탑들이 서 있는 지역의 바닥 흙 색깔을 서로 비교해 보았다. 초헤의 말 그대로였다. 분명 일곱개의 전탑이 서있는 곳과 다른 곳의 흙 색깔은 미세하지만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주변의 흙 색깔이 오랜 풍상을 견디어 온 탓에 거무튀튀한 색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일곱개의 전탑이 서있는 부근은 좀더 황토색에 가까운 빛깔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일곱개의 전탑이 있는 부근은 최근에 아래 쪽의 흙과 윗 쪽의 흙이 서로 뒤집혔거나 그도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 가져온 흙으로 다져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와! 우리 초혜 무지하게 똑똑하네. 네 말대로 이 부근의 흙 색깔이 조금 이상해"


초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경탄을 터트린 설지는 이내 땅 바닥을 자세히 살펴 가며 몇 발자국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발자국을 걸어 다니던 설지가 한곳에 이르더니 초아의 도움으로 기감을 극대화 시킨 후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바닥의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기겁한 원각이 말리기 위해 황급히 걸음을 떼려할 때 원각의 귀로 묵직한 전음 한가닥이 날아 들었다.

 

- 괜찮으니 그냥 지켜 보거라.

 

혜공 대사의 전음이었다. 일성 도장과 철무륵 등과 함께 방장실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혜공 대사는 소림십팔나한의 다급한 전갈을 받고 한걸음에 탑림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물론 그런 혜공 대사의 곁에는 혜명 대사와 일성 도장 그리고 철무륵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일행들은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찾았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설지의 행동을 지켜 보고 있는 중이었다.

한편 바닥의 흙을 파헤치던 설지는 자신의 손에 딱딱한 바위가 만져지는 것을 깨닫고 좌우로 흙을 털어낸 후  바위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 그런데 바위의 색이 이상했다. 드러난 바위의 일부분은 거무튀튀한 바위 고유의 색이 아니라 자잘한 검은 무늬들이 깨알 처럼 박혀있는 젯빛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지가 바위라고 생각했던 딱딱한 돌은 바위가 아니라 사람의 손을 거친 화강암의 일종이었다.

"어라? 바위 색이 왜 이래?"

"언니 왜 그래?"

"이거봐봐. 바위 색이 이상해"

"아가씨, 이건 바위가 아니라 석재로 사용되는 돌 같아요."

"응? 석재? 그럼 인공적인거란 말야?"
"예. 아가씨. 아무래도 우리가 밟고 있는 땅 속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 그렇단말이지. 헤헤. 이거 무지하게 기대되는데, 가만 그러니까...."

 

말을 하다말고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한 설지가 일곱개의 전탑과 바닥으로 시선을 번갈아 주며 한참을 그 자세 그대로 있더니 성큼 성큼 한 쪽의 전탑을 향해 다가갔다. 북두칠성 모양으로 늘어서 있는 전탑의 가장 바깥 쪽에 위치한 전탑 앞에 다다른 설지는 전탑을 이리 저리 살펴 보다가 틀림없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 후 진소청과 초혜를 손짓으로 불렀다.

"청청 언니는 탑 저쪽을 잡고 초혜는 여기, 그렇지 그 쪽에서 서서 밀어!"
"응? 설지 언니, 뭐라고?"

 

진소청과 초혜를 전탑 쪽으로 오게 한 설지는 전탑의 한쪽 면에 자리 잡은 후 자신의 좌우에 진소청과 설지를 서게 하였다. 그리고 대뜸 한다는 말이 <밀어!>였으니 초혜가 다시 물어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우리가 이쪽에서 탑을 밀면 아마도 탑이 움직일 것 같아. 그러니 한번 밀어 보자. 어때 준비 됐어?"


설지의 황당한 말에 전탑을 잠시 올려 보았던 초혜가 양쪽 팔을 걷어 부치고 씩씩하게 자세를 잡자 진소청과 설지도 자신의 자리를 잡고 힘을 쓰기 시작했다. 보고 있던 백아와 호아도 못말리겟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세사람 사이에 끼어 들어 작은 앞발로 탑을 미는데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바닥에 굳건히 뿌리 박고 있는 전탑을 내공을 이용하여 여러명이 밀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그 탑은 뿌리채 뽑혀 넘어갈 것이다. 그래서 설지와 일행들 모두는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힘만으로 전탑을 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설지와 두마리의 영수 까지 가세하여 밀어 부치고 있는 전탑이 어느 순간 앞으로 조금씩 밀려 나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아주 조금 움직이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부터는 땅 속에 박혀 있던 전탑이 아주 수월하게 앞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땅에 긴 자국을 남기며 앞으로 밀려나가던 전탑이 멈춘 곳은 일장 정도를 전진한 후였다. 거기서 부터는 제 갈길이 아니라는 듯 전탑은 요지부동으로 더이상 움직이지를 않았다. 전탑이 전진하기를 멈추자 손을 탈탈 털어낸 설지와 일행이 두번째 전탑으로 옮겨가서 다시 힘을 주어 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섯번째의 전탑 까지 앞으로 밀어낸 일행들이 전탑들의 위치를 다시 살펴 보니 기존에는 북두칠성 방위를 점하고 있던 전탑들이 이제는 반원형의 형태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태로 변해 있었다.

설지와 일행들이 마지막 일곱번째 전탑을 밀어 붙여 반원형의 빈 공간을 채워 넣자 전탑들이 반원형으로 포진한 앞쪽의 바닥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미세한 떨림을 보이던 바닥이 종내에는 제법 몸이 떨릴 정도의 진동을 보이더니 커다란 굉음과 함께 바닥이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바닥이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석문이 좌우로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그그긍!

 

설지와 일행들을 비롯하여 혜공 대사와 일성 도장 등도 놀란 표정이기는 매한가지였다. 기사였다.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던 소림사의 탑림이 그 감추었던 속살을 한겹 내비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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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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