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전탑 앞의 바닥이 둔중한 소리와 함께 좌우로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하자 이때껏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만히 설지를 지켜 보고 있던 혜공 대사 일행도 서둘러서 석문이 갈라지는 앞으로 다가섰다. 누구도 예상못한 기사에 일행들을 중심으로 터질듯한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일행들과 달리 잔뜩 신이난 설지는 바닥의 석문이 열리면서 오랫동안 갇혀 있던 퀘퀘한 먼지 냄새가 훅하고 다가오자 황급히 입을 막고 한걸음 물러 섰다. 그러면서도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한순간도 석문이 열리는 곳에서 떼지 않았다.

"우와 계단이다. 그리고...응? 관, 마, 만...? 관마만이 무슨말이야?"

 

석문이 좌우로 완전히 열리고 나서 드러난 바닥에는 아래로 내려 가는 돌계단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돌계단이 끝나는 부분 앞쪽에는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또 다른 큼직한 석문이 신비한 기운을 머금고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석문의 전면에 바로 설지가 말한 관마만이라는 세 글자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그렇게 설지가 글자의 뜻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모로 꼬며 갸우뚱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자신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 왔다.

 

"설지 언니! 저게 어떻게 관마만이야? 만마관이지!"

"응? 아! 헤헤. 그렇구나. 맞아! 만마관이네. 근데 왜 글자를 거꾸로 새겨 놓아서 헷갈리게 하는거야"
"언니 바보지?"

"응? 요녀석이..."

"헤헤헤"

 

초혜의 말대로 거무튀튀한 석문의 가운데 즈음에 음각으로 새겨진 글자는 만마관이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만가지 마가 자리한 관문이라는 뜻인데 소림사의 중지인 탑림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은 가히 짐작조차 하기 힘든 일이 아니겠는가? 대관절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공간을 지하에 만들어 두었을까? 지금 굳게 닫혀진 지하 석문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머리 속에서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행들의 그런 생각과 전혀 관계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있긴 했다. 바로 설지였다.

 

"우와! 만마관이라... 이름이 거창한걸 보니까 안에 보물이 무지하게 많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데...."

 

모두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전혀 짐작조차 하지 않은 설지는 그렇게 한소리 툭 내뱉고 나서 서둘러 계단을 밟고 내려가 커다란 석문 앞에 섰다. 그리고는 석문의 여기저기를 두드려 보고 눌러 보면서 석문의 여기 저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편 철무륵은 설지가 별 생각 없이 석문의 여기 저기를 마구 만지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서 황급히 설지에게 다가가 설지를 한걸음 뒤로 물러서게 했다.

"응? 철숙부, 왜 그래?"

"이 녀석아! 석문에 무슨 장치가 되어 있는지 알고 그리 대책없이 만지고 그러는게냐?"
"응? 아! 헤헤, 철숙부, 여기가 어디야?"

"뭐라고?"

"아이 참 여기가 어디냐아아고?"

"그야 소림이 아니더냐?"

"그렇지, 소림사 경내잖아. 그런데 그런 소림사의 경내에 설치된 석문에 흉험한 장치가 되어 있겠어? 없겠어?"


설지의 말을 들은 철무륵은 그제서야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듣고 보니 네 말에도 일리는 있다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잠시 물러서 있거라. 이 숙부가 자세히 한번 살펴보마"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해"
"혜공 대사! 내가 한번 살펴봐도 되겠소이까?"

철무륵은 자신의 질문에 대답 대신 반장으로 답하는 혜공 대사를 일별한 후 석문 쪽으로 시선을 돌려 천천히 살펴 보기 시작했다. 가끔 가다 설지와 같이 여기 저기를 두드려도 보고 눌러도 보던 철무륵은 한 식경 정도가 흐른 후 천천히 석문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며 설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지의 말대로 석문에서 어떠한 기관 장치도 찾지 못한 것이다. 즉 이 말은 바꿔 말해서 철무륵이 석문을 여는 기관 장치 또한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말이기도 했다. 

"흠..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구나."

 

철무륵이 일성 도장 곁으로 물러나며 이렇게 말하자 설지가 다시 냉큼 석문 쪽으로 다가가 여기 저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빈틈없이 단단히 맞물린 석문에는 문을 여는 장치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석문 여기 저기를 살펴 보던 설지가 마침내 석문에서 한걸음 떨어져 나왔을 때였다. 얌전히 설지의 어깨 위에서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던 용아가 갑자기 날아 오르더니 석문에서 한자 정도 떨어진 천장 부분에 가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자신의 꼬리로 천장의 한 부분을 힘껏 두들겼다. 용아의 기이한 행동을 지켜 보던 설지가 용아의 꼬리가 부딪친 천장 부분을 자세히 살펴 보기 위해 안력을 돋우려 할 때였다. 갑자기 커다란 굉음을 내며 굳건히 닫혀 있던 석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용아가 후려친 천장 부분이 문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하는 기관이었던 듯 했다.


오랜 세월 닫혀 있었던 석문이 좌우로 그 육중한 몸체를 물리고 나자 밝은 빛이 갑작스럽게 사람들의 시야로 쏟아져 들어 왔다. 그 빛의 정체는 오랜 세월 동안 지하에 갇혀 있음으로 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야명주가 사람들의 발길을 인도하는 빛이었다. 천장에 박혀 있는 십여개의 야명주가 밝히고 있는 공간은 마치 긴 회랑을 보는 듯 했다. 그리고 그 긴 회랑에서는 음습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아미타불! 흡..."

"어르신! 이 기운은 마기 아닙니까?"

"그런 것 같네. 허! 어찌하여 소림사의 경내에 이런 마기가 존재하는 공간이 자리하고 있는지..."

 

회랑에서 몰아치는 마기에 놀란 일행들이 탄식을 토해내고 있을 때 짤랑 짤랑한 음성이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모두 뒤로 한걸음 물러서세요. 진법이 펼쳐져 있어요."


설지의 목소리였다. 어느 틈엔가 일행들의 맨 앞에서 침중한 눈 빛으로 회랑 너머를 건너다 보고 있던 설지가 바닥에 주저 앉아 무언가를 쓱쓱 그리기 시작하더니 한참만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 섰다. 그런 설지의 얼굴에는 귀여운 미소가 매달려 있었다.

"파훼법을 찾았느냐?"

철무륵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설지가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응! 응! 찾았어. 그런데 여기 설치된 진법은 별게 아닌데 아무래도 기관이 회랑 전체에 설치된 것 같아"

"뭐? 기관이라고?"
"응! 응! 그런 것 같아. 일단 진법을 파훼하고 나서 다시 살펴 보아야 할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면서 설지는 소림사의 방장인 혜공 대사에게 시선을 주었다. 진법을 파훼해도 되는지를 묻는 무언의 질문이었다. 설지의 시선을 받은 헤공 대사가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동의를 표하자 이내 설지는 회랑의 입구 쪽으로 다가가 여기 저기를 발로 툭툭 치고 다녔다. 몇번을 그렇게 하자 이때 까지 사람들의 시야에 보이지 않았던 작은 깃발들 십여개가 불쑥 그 숨겨졌던 몸을 드러냈다. 진법이 파훼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지켜 보는 일행들 모두는 아무렇지도 않게 발길질 몇번으로 진법을 파훼하는 설지에게 경탄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들 중에서 소림사의 나이 어린 스님 원각의 경우에는 그 놀라움이 특히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자신 보다 어린 소녀의 여러가지 능력이 그저 신비롭게만 보였던 것이다. 한편 어렵지 않게 발길질로 진법을 파훼한 설지는 회랑 안쪽으로 고개를 쑥 내밀어 보았다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 났다. 그 모습을 지켜 보던 일행들 중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철무륵이었다.

"설지야! 괜찮은 것이냐?"
"응! 응! 후아 무지하게 놀랐네"
"왜 그런 것이냐? 암기가 쏘아진다든가 하는 것은 없었지 않느냐?"
"응! 응! 암기가 아니라 기분 나쁜 기운이 쓱 다가 드는 바람에 놀라서 그런거야"
"휴! 난 또... 인석아 놀랐지 않느냐."

"헤헤. 철숙부 미안"

"녀석, 되었다. 그건 그렇고 기분 나쁜 기운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혹시 이 회랑에서 맴돌고 있는 마기를 가리키는 것이더냐?"
"응! 응! 마기 맞아. 그런데 좀 이상하긴 해."
"응? 뭐가 말이냐?"

"저 마기들 말이야. 끊임없이 휘돌며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무엇엔가 붙잡힌 듯 회랑을 맴돌고만 있잖아"

"흠... 듣고 보니 그렇구나. 어르신, 어르신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무량수불! 설지의 말이 맞는 것 같네. 저 너머 어디에선가 저 마기를 붙잡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네"

회랑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하는 일성 도장의 말에 혜공 대사와 혜명 대사의 고개도 끄덕여 졌다.

"확인해 볼려면 회랑 너머로 가봐야 하는데... 어디..."

 

아쉽다는 듯한 음성을 토해낸 설지가 바닥에서 돌을 하나 주워 회랑 안쪽으로 휙하고 던졌다.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날아가던 작은 돌이 회랑의 바닥에 닿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양쪽 벽과 천장에서 기다란 창 수십개가 불쑥 튀어 나오더니 정확히 돌이 떨어진 부근을 향해 공격해 들어 갔다. 아마도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고슴도치 신세가 되고도 남을만한 상황이었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마음에 안든다는 듯 혀를 끌끌 찬 설지가 떡하니 뒷짐을 지고 회랑 입구를 서성이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고심할 때면 늘하는 설지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번의 고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자신의 어깨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는 용아 때문이었다. 조금 전에 돌을 던졌을 때 작은 돌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 가던 순간에는 어떠한 공격이나 제지도 없었던 것이 생각난 설지는 귀여운 얼굴에 방실하고 웃음을 떠올리며 자신의 심중을 용아에게 전달했다.

"맞아! 그러면 되겠네. 헤헤. 용아! 용아가 저 너머에 한번 가 봐. 날아 가면 아무 일도 없을거야"

 

설지의 말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용아가 다시 날아 올랐다. 그리고는 곧바로 회랑 안으로 작은 몸을 움직여 날아 들어갔다. 설지의 예상대로 였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용아에게는 어떠한 제지도 없었다. 순식간에 회랑 너머로 사라진 용아가 다시 사람들이 시선에 들어 온 것은 한식경이 훨씬 지나서였다. 빠른 속도로 날아갔던 용아가 이리 오랜 시간을 지체했다는 것은 회랑 너머에 존재하는 또 다른 통로에서 목적지 까지가 무척 길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한편 사람들의 시선에 들어 온 용아의 발에는 들어 갈때는 분명 없었던 둥그런 물건 하나가 꼭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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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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