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중에서 천년하수오 같은 인세에 보기 드문 영초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끼니 때가 닥치면 먼저 끼니를 해결하고 나서 취해야 한다는 설지의 확고한 신념에 따라 오늘도 초혜와 진소청은 공양 시간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 오기가 무섭게 설지의 발걸음을 따라서 공양간인 와선당을 향해 달음박질을 해야 했다. 당연히 '우와 밥 시간이다' 라는 한소리 탄성과 함께 바람(?) 처럼 사라져 가는 설지의 뒷 모습을 멍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원각도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설지가 사라져간 와선당 쪽을 향해 달려 가야 했다.

설지가 초혜의 손을 잡고 와선당으로 사라져 간 후 소림 십팔나한의 일부도 설지의 뒤를 쫓아 몸을 날렸다. 설지와 함께 썰물 빠져 나가듯이 사람들이 빠져 나가 순식간에 텅비어 버린 만마관의 입구 부근에는 지금 혜공 대사와 혜명 대사, 그리고 철무륵과 일성 도장만이 남아서 바람 같이 사라져 간 설지의 뒷 모습을 쫓고 있었다. 이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십팔나한의 네 사람이 묵빛을 띤 단단해 보이는 장봉을 품에 안고 사위를 경계하는 것이 아까와는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었다.

"어르신! 우리도 한끼 해결하러 가시죠."
"흠, 그러세"

철무륵과 말을 나눈 일성 도장이 걸음을 옮기자 마지막 까지 남아 있었던 혜공 대사 역시 사제인 혜명 대사와 함께 걸음을 옮기며 십팔나한을 향해 가볍게 고개짓을 했다. 만마관을 엄중히 경계하라는 무언의 뜻이었다. 가벼운 고개짓이라고는 하나 소림사의 방장이라는 이름과 함께 라면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방장의 고개짓을 본 네 사람의 십팔나한은 불호와 함께 정중히 머리를 숙이며 반장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방장께서는 어쩌실 작정이신게요"
"무슨 말씀이오이까?"

와선당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일성 도장이 짐짓 궁금하다는 듯 혜공 대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속에 커다란 능구렁이가 댓마리는 충분히 살고 있을 만큼 연륜을 쌓은 혜공 대사의 입에서는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의뭉스러운 대답만이 흘러나왔다.

"허허! 무량수불, 내가 보기엔 만마관이 향후 소림에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소이다만..."

"아미타불! 허허! 그, 말씀이셨군요. 부처님의 가호가 소림을 살펴주고 계신 덕이겠지요"
"허허허"

소림과 무당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쓸데없는 신경전을 벌이며 와선당으로 향하는 그 무렵 앞서 달려 갔던 설지 일행은 커다란 한채의 전각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설지의 표현대로 라면 전웅대 라고 적힌 현판을 달고 있는 소림의 중지이자 본당인 대웅전 앞이었다. 바쁘게 걸음을 옮겨 가던 설지가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걸음을 멈추었던 것인데 이미 대웅전 앞은 설지 일행 외에도 여러 명의 소림 승려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대웅전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안절부절한 모습의 승려들은 대웅전 앞 마당만이 아닌 대웅전 안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승려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 하던 설지가 무심코 고개를 돌려 대웅전 안을 들여다 보니 거기에는 절대 대웅전에 있어서는 안되는 이상한 물체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살랑 살랑 흔들리기 까지 하는 그것은 분명 말이라고 사람들이 부르는 짐승의 꼬리 부분인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그 꼬리가 낯 익다고 여긴 설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웅전 안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자 확실히 그 꼬리는 자신이 평소에 잘 아는 말의 꼬리였다. 아니 그 꼬리의 주인은 말이 아니라 당나귀인 밍밍이었다. 밍밍은 지금 모처럼만의 포식이라는 듯 주위의 승려들이 말리는 것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제단 위에 정성껏 차려진 오색 과일들을 모조리 집어 삼키고 있었다.

대웅전을 지키는 승려들이 밖으로 내보내려고 밍밍의 엉덩이를 밀어 보기도 했으나 어쩐 일인지 당나귀 주제에 아무리 밀어 부쳐도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밍밍이었다. 힘이 부친 승려들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움을 청하기 위해 무승들을 데리러 간 그 사이에 밍밍은 이미 제단 위에 차려진 오색 과일을 전부 다 섭렵해 버린 상태였다. 과일을 다 먹어 치운 밍밍은 제단 위의 다른 음식들을 향해 막 입을 가져 가려다가 귀에 익숙한 사람 목소리가 들려 오자 고개를 돌리고 목소리의 주인공 쪽으로 뚱한 시선을 주었다.

"어라? 밍밍! 네가 여긴 왠일이야?"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주인인 설지였다. 하지만 밍밍은 설지를 발견하고도 모른 척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근래에 한번도 자기랑 놀아 주지 않은 몹쓸 죄에 대한 나름의 반항이었다. 밍밍이 이렇게 대웅전에 침입하여 제단의 오색 과일을 먹어 치운 것도 이렇게 하면 설지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맛도 없는 과일 몇개를 줏어 먹고 나자 드디어 설지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밍밍은 반가움 대신 투정을 부리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응? 아니 저 녀석이 왜 저래?"

밍밍의 태도가 이상하다는 듯 고를 갸웃거린 설지가 대웅전 안으로 성큼 들어가 밍밍의 콧잔등을 손으로 쓸어 주면서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무언가에 단단히 화가 난듯 보였던 것이다.

"밍밍! 왜 그래?"

설지가 다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 오자 한겹 화가 풀린 밍밍이 콧바람을 푸르릉 내뱉자 그제서야 무언가를 깨달은 설지가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밍밍에게 입을 열었다.

"내가 안 놀아 줘서 삐친거야? 헤헤, 녀셕도... 미안해"

설지가 사과를 하자 완전히 화가 풀려버린 단순한 밍밍이 아까 보다 더 큰 소리로 푸르릉 하며 콧바람을 내뱉었다. 한동안 못 봤던 설지를 찾았고 거기다 사과 까지 함께 받으니 기분이 한껏 좋아진 것이었다. 하지만 밍밍의 날아갈 듯한 기분 좋음은 딱 여기 까지 였다. 설지가 밍밍의 귀를 잡고 대웅전 바깥으로 끌어낸 것이다.

"요 녀석, 본가로 돌아가면 넌 한동안 외출 금지야. 알았어?"

설지가 밍밍을 대웅전 밖으로 끌고 나왔을 그 무렵 철무륵을 비롯한 어른들도 막 대웅전에 당도하여 밍밍이 사고친 현장을 둘러 보고 있었다. 혜공 대사가 바라보는 대웅전의 제단 위에는 본래의 모습이 전혀 연상되지 않는 적나라한 과일들의 잔해만이 남아 '나 예전에 분명 과일이었소'라고 항변하고 있었다. 대웅전과 제단을 살펴 보던 헤공 대사는 그만 피식하고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천하의 소림사 대웅전이 한낱 미물인 당나귀에게 점령당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허허, 아미타불..."
"앗! 방장 할아버지, 죄송해요. 밍밍이 이 녀석이 심통이 났나 봐요. 이 녀석이 먹어 치운 과일들은 제가 변상할께요."

그때 까지도 밍밍의 귀를 잡고 있던 설지가 호들갑스럽게 입을 열었다.
"허허, 아미타불... 소공녀, 그깟 과일들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게지요"
"헤헤, 정말 죄송해요."
"허허, 괜찮소이다. 그런데 어떻게 당나귀가 대웅전에 들어 갈 수 있었는지 궁금하구려?"

이렇게 말한 혜공 대사가 대웅전의 주변에 있는 승려들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시선을 받게 된 승려들이 움찔하며 황망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답을 구하려는 혜공 대사의 시선이 몇명의 승려들을 거쳐 갈 즈음 엉뚱한 곳에서 대답이 들려 왔다.

"크하하, 소림사의 대웅전에 당나귀라... 크하하, 방장께서는 이상히 여기실 것 없소이다. 밍밍 저 녀석은 내 힘을 견딜 정도로 힘이 좋은 녀석이니 말이외다."
"헤헤! 철숙부의 말이 사실이예요. 밍밍 이 녀석은 황소 보다 힘이 세니까 스님들이 막지 못했을 거예요"
"허허, 그런 일이... 허면 이 당나귀도 무언가 내력이..."

철무륵을 바라보며 혜공 대사가 말을 흐리자 철무륵이 얼굴에 기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은 당나귀 주제에 제 놈이 한혈보마인걸로 착각하는 놈이라오, 뭐 설지의 애마이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제서야 혜공 대사는 사제인 혜명으로 부터 들었던 설지의 애마인 기이한 당나귀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허허, 그랬었구려"


그런데 그 순간 혜공 대사를 더욱 황당하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밍밍, 이리와서 방장 할아버지께 잘못했다고 말씀드려, 빨리"

'당나귀 더러 잘못했다고 말씀드리라니 허면 저 당나귀가 사람 말을 알아 듣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말인가?'라는 생각을 혜공 대사가 머리 속에 떠올릴 무렵 설지의 말을 듣고 자신의 앞으로 걸어온 당나귀가 잘못했다는 듯 고개를 숙이더니 나직하게 푸르릉 하며 콧바람을 불어 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잘못했어요'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런 밍밍의 모습을 보며 혜공 대사는 다시 한번 실소를 터트려야 했다.

"허허"
"우와! 배 고프다. 다시 식당으로... 아니지 공양간으로 일동 진격"

한소리 외침과 함께 다시 설지가 와선당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이내 나머지 사람들도 다시 와선당을 향해 걸음을 서둘렀다. 밍밍의 등에 호아를 올려주고 함께 와선당으로 걸음을 옮기는 설지의 앞길은 이후부터 탄탄대로였다. 와선당으로 향하던 소림사의 승려들이 설지의 뒤를 따르는 십팔나한의 기운을 느끼고 모두 한걸음 물러 서서 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늘상 있어왔던 일인듯 설지에게 길을 내어 주면서도 누구 하나 의문을 가지지 않는 승려들의 사열(?)을 받으며 와선당에 당도한 설지가 막 문턱을 넘을 무렵이었다.

와선당으로 들어 서던 설지가 갑자기 걸음을 우뚝 멈춰 세우고 자신의 팔을 내려다 보았다. 와선당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설지는 자신의 팔에 채여진 천마지존환이 약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마기에만 반응하는 천마지존환이 소림사의 승려들이 공양을 위해 모인 와선당의 입구에서 반응한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설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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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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