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박당해 있는 세 사람의 가까이 다가간 초혜가 짐짓 화가 난다는 듯 허리에 양손을 척하니 올리고 이렇게 쏘아 붙였던 것이다. 덕분에 장내에서는 상황의 심각성과 다르게 여기 저기서 실소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초혜는 자신의 의문점은 반드시 풀어야 한다는 듯 제법 사나운 눈초리로 세 사람을 흘겨 보며 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크윽! 네년은 또 무엇이냐?"
"응? 네년? 씨! 그러고 보니 좀 전에도 년이라고 했나 보네"

말을 마친 초혜가 욕설을 내뱉은 승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듯 하더니 냅다 정강이를 걷어 차 버리고는 순식간에 설지의 곁으로 돌아 왔다. 전광석화 같는 동작이었다. 그리고 그런 초혜의 뒤를 이어 이번에는 호아가 욕설을 내뱉은 승려에게 슬그머니 다가 가더니 초혜가 걷어찬 정강이 쪽을 한번 더 꽉 물어 주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도도한 걸음 걸이로 제자리로 돌아 갔다.

그 순간 정강이를 초혜에게 걷어 차이고 같은 자리를 호아에게 다시 물려 버린 중년 승려는 머리 속이 하얗게 비는 것 같은 고통과 충격을 경험해야 했다. 일시지간 마기가 빠져 나가는 바람에 허탈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무공을 익힌 자신이 이런 극통을 경험하게 되리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중년 승려가 호아의 무서움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미타불! 묻겠다. 한치의 거짓도 없이... 헉!"

호아가 제자리로 돌아간 후 계율원주인 혜명 대사가 마공을 익히고 있었던 제자들을 막 추궁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혜명 대사의 입에서 경악성이 토해지는 것이아닌가? 그리고 그런 경악성은 강한 전염성을 가진 듯 장내에 있는 모두의 입에서 똑 같이 토해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결박당해 있던 세 사람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성과 함께 선혈이 비치는가 싶더니 갑작스럽게 머리 주위를 시작으로 하여 전신이 빠른 속도로 녹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헉! 이럴 수가! 독이다. 모두 물러나라"

혜명 대사의 경고성에 장내의 모든 인물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 서고 있었지만 딱 세 사람만은 멀뚱히 그 자리를 지킨채 녹아내리는 시신을 침중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초혜와 빠른 속도로 초혜의 눈을 가린 설지, 그리고 진소청이었다. 물론 호아 역시 '뭔일이래?' 하는 표정으로 녹아내리는 시신을 보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솜방망이 같은 앞발로 시신을 툭툭 건드려 보다가 발에 뭐가 묻었다는 듯 깨끗한 와선당의 바닥에 앞발을 비벼대기 까지 하고 있었다. 혜공 대사가 보기에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세 사람과 호아는 독을 전혀 두려워 하지 않는 무관심한 모습이었다.

"아미타불! 소공녀! 괜찮소이까?"
"응? 아! 우린 괜찮아요."
"무량수불! 지독한 독이로구나."
"어르신! 아무래도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습니다. 소림사의 제자가 마공을 익히고 있던 것도 그렇고 발각되자 갑자기 독에 녹아내리는 것도 그렇고..."

철무륵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일성 도장은 곁에 있던 청진 도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그의 의향을 물었다.
"무량수불! 청진 네 생각은 어떠하냐?"
"무량수불! 예, 사숙조님, 저도 철도우의 생각과 같습니다. 아무래도 장문인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집안 단속부터 해야겠구나. 전서구를 보내도록 하거라"
"무량수불!"

 

일성 도장과 철무륵, 그리고 청진 도사가 말을 나누는 그 짧은 순간에 녹아 내리고 있던 시신은 이미 흔적조차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변해 있었다. 장삼 위에 걸치고 있던 세 사람의 가사가 남긴 미약한 흔적이 없었다면 애초에 그 자리에 누가 있었을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화골산을 능가하는 강력한 성분을 가진 독으로 인해 세 사람이 순식간에 별 다른 흔적 조차 남기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설지야! 정말 괜찮은 것이냐?"

일성 도장과 말을 나누던 철무륵은 아무래도 걱정이 된다는 듯 근심어린 눈으로 설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영민하다고는 하나 아직은 어린 아이에 불과한 설지가 혹여 독으로 인해 녹아 내리는 시신을 보고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철무륵의 염려는 설지의 한마디로 인해 필요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응! 응! 철숙부, 괜찮아, 혹시 놀란게 아니냐고 묻는 것이라면 난 의원이야. 의원... 헤헤"
"응? 크하하. 그래, 그래 넌 의원이지, 이 숙부가 쓸데없이 미련한 질문을 했구나"

"흠, 근데 철숙부 이 독이 조금 이상해!"
"응? 이상하다니 뭐가 말이냐?"
"그게 말이야. 아무래도 독을 원해서 삼킨게 아니라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작용했던 것 같애"
"뭐, 뭐라고? 그러면 독단을 깨문 것이 아니란 말이냐?"
"응! 응! 독단을 깨물었다면 이렇게 머리 부터 녹아 내릴 리가 없잖아?"

듣고 보니 그러했다. 독단을 깨물었다면 입 주위 부터 녹아 내리던가 아니면 장기 부터 녹아 내려야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그런데 시신 조차 남기지 못한 세 사람의 승려는 분명 머리 부터 녹아 내렸던 것이다. 이는 뇌 속에 특정한 고독이나 독을 심어 두었을 경우에만 발생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닌가?

그것도 정체가 발각되자 독이 스스로 작용할 정도라면 결코 평범한 용독술로는 불가능한 경지인 것이다. 여기 까지 생각한 철무륵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혜공 대사와 혜명 대사, 그리고 일성 도장 등도 같은 생각을 했었는지 안면을 잔뜩 굳힌채 서로를 돌아 보고 있었다.

"철숙부! 아무래도 이 독을 가져가서 숙부에게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
"가져간다고? 독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냐?"
"아니! 하지만 독의 성분이 바닥에는 조금 남아 있을거야"


어깨 위로 둘러 메고 있던 가방 속으로 손을 가져간 설지가 한참 뒤적 거린 끝에 작은 옥병 하나를 끄집어 내더니 마개를 열고는 세 사람이 결박 당해 있던 자리로 다가 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쪼그려 앉아 한참을 살펴 보더니 근처에 떨어진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들고 와선당의 바닥을 조금씩 긁어 남아 있는 가사의 일부분과 함께 옥병 안으로 옮겨 담았다. 그 모습이 마치 노련한 의원의 모습인 것 처럼 여겨져 혜공 대사는 나직한 감탄성을 터트렸다.

 

"허허! 아미타불!"
"사형! 아무래도 제자들을 모두 살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허허. 그래야겠지. 마공을 익히고 있는 제자들이 더는 없기를 바라지만 확인은 해 보아야 겠지"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내 생각도 지금 사제가 머리 속에서 떠 올리고 있는 그 생각과 같을걸세"
"그럼?"
"그렇네. 소공녀에게 맡기는게 제일 빠르고 확실하지 않겠나?"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 오르지 않습니다."
"흠, 글쎄? 뭐 대법회 같은 걸 열면 되지 않겠나? 모든 제자들을 빠짐 없이 모이게 하고 제자들에게는 소공녀가 대법회를 보고 싶어했다고 하면 되겠지"
"아! 허허. 그거 정말 기발한 생각이십니다. 역시 사형이십니다."
"허허. 사람도 참. 그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소림사에 간자들을 침투시켰는지 그걸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네"
"무량수불! 몇몇의 중소 방파 후기지수들에게서도 마공을 익힌 흔적이 발견되었소이다. 발각된 후기지수들은 모두 후계자의 신분이었으니 이는 단순한 마공의 문제만은 아닌 듯 하구려"

두 사제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일성 도장이 중간에 끼어 들며 이렇게 이야기 하자 철무륵이 부언했다.
"어르신의 말씀이 맞습니다. 은가전장의 소가주라는 놈과 하남 표국의 소국주라는 놈에게서 마공을 익힌 흔적이 발견되었지요. 모두 설지가 발견한 것이지만 말입니다."
"아미타불!  그 이야기는 사제가 보내준 전서를 통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무림에 암운이 드리우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무량수불!"
 

한편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시료 채취를 모두 끝마친 설지는 시료가 담긴 옥병을 잘 갈무리 해서 혼돈으로 가득찬 가방 안에 집어 넣은 후 와선당을 둘러 보았다. 설지가 보기에 아무래도 당장은 와선당에서 식사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살래살래 저은 설지는 철무륵을 향해 커다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철숙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철무륵은 설지가 커다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외쳐 부르자 또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응? 왜 그러느냐?"

"은자 있어?"
"은자? 은자는 갑자기 왜?"
"아이 참. 나 배고프단 말야. 객잔에 데리고 가줘"
"아! 크하하. 알았다. 알았어. 그래 가자꾸나."
"허허, 산적에게 은자를 내 놓으라는 놈은 설지 저 놈 뿐일것 같구나. 어떤가? 나도 설지 덕에 밥 한 그릇 얻어 먹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어르신. 산적 두목이 무당의 최고 어르신을 대접하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지 않겠습니까? 쪼잔하다고 말입니다. 크하하하"
"응? 철숙부 은자가 무지하게 많은가 봐? 그거 전부 사람들 주머니 털은 거 아니야?"

"응? 크하하. 예끼. 요 녀석"

호탕한 철무륵의 웃음 소리와 함께 혜공 대사와 혜명 대사를 포함한 일행들은 산문으로 방향을 잡고 걸음을 옮겨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혜명 대사는 전음으로 계율원의 제자들에게 많은 명령을 내려 놓고 있었다. 어수선한 경내를 정리하자면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기도 했다.

한편 초혜와 진소청 사이에서 걸음을 옮기며 연신 꺄르르 하고 웃음을 터트리던 설지는 산문이 가까워 지면서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 오자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걸음을 빨리하여 혜공 대사의 곁으로 다가 갔다.

"방장 할아버지! 저기 저 사람들 왜 저래요?"
"허허. 소공녀께서 소림사를 오가면서도 저 시주들을 한번도 보지 못하셨던 모양이구려"

"예. 방장 할아버지 몸이 불편한 사람들 같은데..."
"맞소이다. 저들 모두 의원들이 치료를 포기한 병자들이지요. 저들 중에는 어릴 때 나무에서 떨어져 꼽추가 된 시주가 있는가 하면 약초를 캐러 갔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된 시주도 있지요. 치료가 불가능한 저런 병자들을 위해 소림사에서는 열흘에 한번씩 약사여래에게 불공을 드리는 법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마침 오늘이 그날입니다."
"아! 그래서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저렇게..."
"허허. 그렇지요."

설지가 헤공 대사와 말을 주고 받는 사이에 일행들은 어느새 줄을 지어 산문을 넘어 오는 병자들과 마주치고 있었다. 그리고 소림사의 고승으로 보이는 두 승려를 발견한 병자들이 서둘러 합장하며 불호를 읊조릴 때 였다. 걸음을 옮기던 설지가 갑자기 걸음을 뚝하고 멈추더니 한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하였다. 설지가 시선을 준 곳에는 하반신이 마비된 병자가 바닥을 기어서 산문을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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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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