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 왜 그러시는지요?"
"윽! 설지 언니, 왜 그래?"

산문을 넘어 오는 병자들에게로 시선을 고정한 채 한눈을 팔며 걷다가 기어코 설지의 등에 얼굴을 부딪치고 만 초혜와 그런 초혜의 한걸음 뒤에서 걷고 있던 혜명 대사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비슷한 말이 흘러 나왔다. 이런 두 사람의 음성이 들려 오자 자연히 일행들의 발걸음도 설지를 중심으로 멈춰질 수밖에 없었다.

"응? 아! 스님 할아버지, 저기 저 아저씨 말예요"
"누구를 이르는 말씀이신지... 아! 저 분 시주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가 보군요?"
"맞아요. 저 아저씨!"

설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향해 시선을 준 일행들의 눈에 험한 산비탈을 힘겹게 기어 올라와서 막 산문을 넘고 있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는지 바닥을 기어서 산문으로 들어 오고 있었기에 입고 있는 복색은 다 헤어진데다 흙투성이었다. 거기다가 다른 사람들이 이마에 송골 송골 맺힌 땀방울을 연신 훔치면서 걷는 것에 비해 하반신이 마비된 중년의 남자는 땀을 닦을 사이도 없이 산을 오르는 것에만 집중했었는지 연신 굵은 땀방울을 비 오듯이 흘리고 있었다. 아마도 산문 까지 올라 오는 길이 결코 녹록치 않았으리라.

"아미타불! 혹여 소공녀께서 아시는 시주이신지요?"
"응? 응! 그건 아니예요. 그냥 저 아저씨의 상태를 제가 한번 살펴보고 싶어서요"
"아미타불! 허허, 그러시지요. 아무래도 저 분 시주께서 간밤에 길몽이라고 꾸셨는가 봅니다. 성수의가 소공녀께서 관심을 기울이다니 말입니다."

말을 끝낸 혜명 대사가 고개 짓을 하자 막 산문을 기어서 넘고 있던 중년 남자를 향해 공각이 다가 갔다. 그리고 몇마디 말을 주고 받는 것 같더니 잠시 그를 그 자리에 기다리게 하고 설지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허락을 받았습니다. 허면 어찌할까요? 자리를 옮기시겠습니까?"
"아니예요. 그냥 여기 바닥이 고르니까 여기로 좀 모셔와 주세요."
"흠, 그건 내가 하마. 아무래도 힘쓰는 건 산적이 어울릴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해! 철숙부"

말을 마친 철무륵은 중년 남자를 향해 성큼 성큼 다가가 가볍게 안아 올렸다. 그리고 숨 한번 쉴 만큼의 짧은 시간만에 설지 앞으로 데려온 후 바닥에 살며시 내려 놓았다. 그런 철무륵의 모습을 보고 있던 대부분의 병자들은 무척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절대지경의 무경에 오른 철무륵에게 병자 한명 옮기는 것이 별일 아니었지만 지켜 보는 병자들의 눈에는 그것이 아니었다. 우락부락한 남성적인 철무륵의 외모와 엄청난 괴력이 겹쳐지면서 마치 천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병자들이 받았던 것이다. 

"음, 음! 아저씨, 전 성수의가의 설지예요. 나, 설, 지!"
"아이고, 예. 예. 아가씨. 소인은 약초 채집으로 생계를 연명하는 오상이라고 합니다요."
"아! 오상 아저씨, 몸은 어쩌다 그렇게 되신거예요?"

설지의 물음에 잠시 한숨을 길게 내쉰 중년 남자가 말을 이었다.

"예, 그것이 못난 소인의 과욕이 부른 화입지요."
"자세히 이야기 해보세요."
"예. 그러지요. 이 놈에게는 하나뿐인 아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들 놈의 생일이 가까워지던 재작년 이 맘때 쯤였지요. 아들 놈의 여섯살 생일에 맞춰 평소에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당과나 실컷 먹여 주고 싶다는 생각에 정신 없이 산을 헤매는 제 눈에 절벽에 뿌리를 내린 채 자라고 있는 작은 나무 한그루가 보였습니다. 그냥 지나칠려고 하다가 다시 한번 살펴 보니 빨간 열매 같은 것이 조롱 조롱 매달려 있는 것이 여간 특이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분에 옮겨 심어서 내다 팔면 제법 비싸게 팔 수 있을 것 같았지요. 그래서 조금 위험해 보이는 절벽이었지만 종종 석이 버섯을 채취하러 절벽에 매달려 본 경험이 있었기에 별 생각없이 절벽을 내려 갔습니다."
"그래서요?"
"예. 절벽으로 내려선 저는 제 예상대로 별로 어렵지 않게 작은 나무에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 제가 나무로 손을 뻗는 순간 일이 터졌지요. 제가 나무로 손을 가져 가는 순간 갑자기 작은 나무의 뒷편 절벽에서 흰 뱀이 불쑥 튀어 나오더니 기성과 함께 혀를 날름거리며 제 눈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바람에 너무 놀란 저는 절벽에 매달려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한걸음 뒤로 물러서다 그대로 아래로 추락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이 꼴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나마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요. 허허"
"흠, 흰 뱀이라? 그러니까 이렇게 되신지 2년쯤 되었다는 말씀이네요. 의원들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예. 어떡하든 일어서 보려고 몇군데의 의원을 다녀 봤지만 찾아 가는 의원마다 다들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척추가 부러져서 손을 쓸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중년 남자의 긴 설명을 듣던 설지는 흰 뱀과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가 등장하는 대목에서 눈을 반짝거렸다. 그 절벽으로 가보면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전에 중년남자를 살펴보는 것이 먼저였다.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철무륵에게 맡긴 설지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 편안하게 엎드려 보세요. 제가 한번 살펴볼께요"
"예. 예. 얼마든지 살펴보십시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 입니까요?"
"예. 제가 하는 말대로 따라 하시면 되요"

중년 남자가 몸을 돌려 엎드리자 척추를 따라 내려 가며 신중하게 손을 짚어가던 설지가 다시 중년 남자를 돌아 눕게 했다. 그런 후 중년 남자의 손을 잡고 내력을 조금 불어 넣어 본 설지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 지금 부터 아저씨의 몸안으로 조금 이질적인 기운이 들어갈거예요. 놀라지 마시고 편안히 그대로 계세요"
"예. 예. 아가씨."

중년 남자의 손을 통해 내력을 집어 넣기 시작한 설지는 이내 기운을 척추 쪽으로 흐르게 하고 천천히 척추 주위의 신경과 척추 뼈 하나 하나를 대조해가며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켜 보는 사람들이나 내력을 운용하고 있는 사람이나 모두가 긴장된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후 내력을 거두어 들인 설지가 철무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런 설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철무륵과 초혜의 황당한 모습이었다.

"철숙부! 지금 뭐해?"

"응? 아! 하하, 그, 그게 말이다."

철무륵이 말을 더듬는 이유는 이러했다. 설지가 늘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받아 든 철무륵은 곁에 있던 초혜와 함께 의미심장한 시선을 교환한 후 설지의 가방을 뒤져 보기로 했다. 초혜와 철무륵, 둘다 가방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이 몹시 궁금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쪼그려 앉은 두 사람은 가방을 여는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과 부딪쳐야 했다. 덮개가 열려진 가방 안에는 그 어떤 것도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 무언가 들어 있다는 무게감은 있는데 안은 비어 있길래 혹시나 잘못 봤나 싶어 가방 안으로 손을 넣어 헤집어 보아도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혹여 따로 감춰진 공간이 있나 싶어 가방 안 여기 저기를 샅샅이 훑어 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가방을 거꾸로 들고 탈탈 털어 보았지만 가방 안에서는 먼지 한톨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철무륵이 가방을 거꾸로 들고 탈탈 틀어대던 바로 그 순간 설지가 철무륵을 외쳐 불렀던 것이다.

"가방은 왜 털고 난리야?"
"그, 그게 말이다. 흠, 흠 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나 하는 호기심에 잠깐, 아주 잠깐 살펴 본거니까 오해하지 말거라."

"그게 잠깐 살펴본거야? 탈탈 털어본거지, 그리고 초혜 넌"
"아, 아냐. 설지 언니. 난 그냥 철대숙이 뭐하나 싶어 구경만 조금 한거야. 진짜 조금!"

두 손바닥을 마구 휘저은 공범자인 초혜가 엄지로 검지의 끝 부분을 가리키며 귀엽게 말하자 이를 보며 기막혀 하던 철무륵이 당황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흠, 흠, 미안하구나. 어쨌거나... 그런데 말이다, 설지야. 이 가방 어떻게 된거냐?"

"그거 철숙부 같은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진을 설치해 놓은거야"
"뭐, 뭐라고 진! 네 말은 그러니까... 지금 이 가방에 진법을 펼쳐 놓았다는 거냐?"
"응! 맞아. 진법."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한 설지의 답에 멍한 표정이 된 철무륵이 일성 도장과 혜공 대사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가방 안쪽이 잘 보이게 펼쳐 들었다. 당신들도 한번 확인해 보라는 의미였다. 그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이는 일성 도장이었다. 철무륵에게 한걸음 다가간 일성 도장은 설지의 가방 안으로 시선을 고정한 후 천천히 진법의 형태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의 눈으로도 어떤 진법이 펼쳐져 있다는 것인지 전혀 알수가 없었다. 뒤이어 다가온 헤공 대사와 혜명 대사 역시 가방을 살펴 본 후 기이한 표정이 되어 설지를 돌아 보았다.

"아미타불! 소공녀, 정말 이 작은 가방안에 진법을 펼쳐 놓으신게요?"

"응, 응! 그렇다니까요. 보실래요?"

 

그렇게 말하며 가방을 받아 든 설지가 두어번 가방 속에서 손을 움직이자 그때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가방 속의 실체가 사람들의 눈에 들어 왔다. 설지의 가방 속은 한마디로 온갖 잡동사니가 잔뜩 들어찬 혼돈의 세상이었다. 어떻게 저 속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찾을 수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허허. 설지 네 가방 속은 말 그대로 요지경 속이구나."
"헤헤."

가방을 든채 한손으로 머리를 긁적인 설지가 잠시 가방 속을 뒤적거리더니 원하는 물건을 찾아 들고는 다시 두어번 손을 움직여 진법을 활성화 시켰다. 그리고 철무륵을 한번 흘겨 보고는 진소청에게 가방을 맡긴 후 중년 남자에게 다가 갔다.

"아저씨! 아저씨의 몸을 살펴 보니 다시 걸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부터 고쳐드릴께요."

"예? 저, 정말이십니까?"
"예. 고칠 수 있으니 걱정마세요. 그전에 이 환약 먼저 드세요."

설지가 중년 남자를 향해 내민 것은 공청석유를 배합한 성수보령환이었다. 설지가 내민 보령환을 받아든 중년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밀랍을 벗긴 후 입으로 가져 갔다. 보령환이 입 속에서 스르르 녹아 목을 타고 내려 가는 것을 확인한 설지는 중년 남자의 손을 잡고 내력을 주입시켜 약의 기운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한편 밀랍을 벗긴 성수보령환에서 청아한 향이 흘러 퍼지자 그 향을 맡은 헤공 대사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사제인 혜명 대사를 돌아 보았다.

"사제, 이, 이 향은 설마..."
"허허. 예, 사형. 짐작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소림 대환단을 조제하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 보는 이는 다름아닌 역대의 소림사 방장들이었다. 그런 소림사의 방장 중의 한 사람인 혜공 대사에게 천고의 영약인 공청석유의 향은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놀람은 더욱 컸다. 당과나 월병이 아닌 인세에 보기 힘든 영약인 공청석유가 배합된 환단이 어린 소녀의 가방 속에서 튀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아마 이 사실이 무림에 흘러 나간다면 분명 영약에 눈먼 강호인들을 중심으로 가방 쟁탈전이 벌어지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설지와 일성 도장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혜공 자신이 우려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했다. 혜공 대사는 아직 설지의 가방 속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약의 기운을 인도하여 체내에 고루 퍼지게 조치한 설지는 중년 남자의 상의를 벗게 해서 바닥에 깔은 후 돌아 눕혔다. 그리고는 가방 안에서 꺼낸 침통에서 거무튀튀한 침을 꺼내 빠른 속도로 시침하기 시작했다. 일다경이 채 지나기도 전에 중년 남자의 등에는 수십개의 침이 빼곡하게 자리 잡았다.

"아저씨! 지금 부터 제가 침을 다시 뽑을 때 까지는 그대로 가만히 계셔야 해요"
"예. 예. 아가씨. 침을 뽑으면 이 놈이 다시 설 수 있는 것입니까요?"
"당장 일어서서 예전 처럼 뛰어 다닐 수는 없겠지만 운신은 가능하실거예요."
"저, 정말입니까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헤헤.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혹시나 싶어 걸음을 옮기지 않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설지와 중년 남성을 지켜 보고 있던 병자들은 설지와 중년 남자의 대화에서 경악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모든 의원들이 치료를 포기했으며 평생 기어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가 짧은 시간에 다시 일어 설수 있다고 하니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이는 자신들의 병도 고칠 수 있다는 것과 다름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서서히 병자들 사이에서 흥분된 열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열기는 모든 침을 뺀 중년 남자가 스님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 서자 절정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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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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