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저럴수가..."

"아, 아니.."

"허..."

시침한 상태에서 한식경 정도가 흐르기를 기다린 후 중년 남자의 등에 시침했던 침을 모두 회수한 설지는 남자를 돌아 눕게하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세세히 중년 남자의 몸을 살펴 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 가득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설지가 공각으로 하여금 중년 남자를 부축해서 일으키게 하였다. 두 다리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해 보기 위함이었다. 공각과 중년 남자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설지의 말에 따라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 일어서기 위해 벌벌벌 떨리는 다리에 힘을 조금씩 나누어 주던 중년 남자는 그 순간 두 눈이 동그래질 정도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다리를 바라 보았다. 감각이 없던 다리에 분명 힘이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정도라면 충분히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예상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비록 공각의 어깨에 기대어 있기는 했지만 희열에 가득찬 표정의 중년 남자가 자신의 두발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지켜 보던 병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의 입에서 다양한 경악성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헤헤. 어떠세요?"
"아, 아가씨.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소인의 다리가, 다리가..."

설지의 말에 대답하던 중년 남자는 미처 말을 끝맺지 못하고 굵은 눈물 방울을 주루룩 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중년 남자와 설지를 바라보는 병자들의 입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녀님이다. 신녀!"
"맞아! 신녀님일세"

"신녀님, 소인의 몸도 제발 좀 고쳐 주십시오"
"신녀님! 소인도..."
"신녀님! 제 딸년도..."

십여명에 이르는 병자들과 보호자들로 보이는 이들의 입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소리들로 이내 소림사의 산문은 소란스러워 졌다. 세상에 성수신녀 나설지란 이름이 처음으로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소문은 이후 들불 처럼 번져 나가 성수신녀는 중원 전역에서 신성시 되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한편 병자들의 아우성을 지켜 보며 난감해 하던 설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철무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철숙부! 객잔엔 못가겠어, 대신 숙부가 맛있는 것 좀 사다 줘"
"흠, 그러자꾸나. 그래, 설지는 뭘 먹을래?"
"응! 응! 무지하게 맛나고 하나도 안 매운 소면!"
"크하하. 고작 소면이냐. 그래, 알았다. 그럼 소청이와 초혜는?"

"대숙! 저도 무지하게 맛있고 안 매운 소면이요. 청청 언니도 소면 먹을거지?"
"그래. 대숙! 저도 같은걸로 사다 주세요."
"크하하, 그래, 그래 알았다. 이 숙부가 귀여운 조카들을 위해 재빠르게 다녀오마"

철무륵이 소림사 제자 두엇과 무당 제자 두엇을 데리고 등봉현의 객점으로 사라져 가자 남은 공각을 비롯한 소림사의 승려들도 헤공 대사의 명에 따라 바쁘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이왕 시작하기로 한 치료를 위해서 보다 안락한 구색을 산문 앞에 갖추기 위함이었다. 천막과 여러개의 탁자들이 승려들의 손에 의해 산문을 빠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제법 그럴듯한 간이 병상이 산문 앞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때 부터 설지의 손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미타불! 소공녀의 의술이 가히 믿기지 않을 정도 입니다."
"무량수불! 그럴게요. 제 숙부에게 제대로 배우고 거기다 진기의 운용마저 자유로운 놈이니 가히 못 고칠 병이 없겠지요"
"아미타불! 그렇다고는 하나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 지경입니다. 하반신이 마비되었던 이가 그야말로 벌떡 일어선 셈이 아닌지요? 신성한 불도량이 제 대에 이르러 성수신녀의 의술에 빛을 잃을 줄은 짐작 조차 못했던 일 입니다. 허허허"
"성수신녀라...허허..무량수불!"
"그나저나 일성자 께서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무량수불, 무슨 말씀이신지?"

"자리를 털고 일어난 시주 말입니다."
"아! 허허, 글쎄요. 아마도 환골탈태를 이용한 것이 아닌가 싶소만..."
"환골탈태라... 기연이로세, 아미타불! 허면 지금 손보고 있는 병자들도 모두 환골탈태를 이용해서 고치는 것이겠군요?"
"그렇겠지요. 허나 저들이 그런 사실 까지야 알 수 있겠습니까?"

 


일성 도장과 혜공 대사가 말을 나누는 사이 설지는 벌써 세명의 병자들을 완치시켜 놓고 있었다. 한쪽 다리를 못쓰던 사람 두명과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하던 소녀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그리고 그 즈음 산문을 내려갔던 철무륵과 일행들이 수레 두개에 무언가를 잔뜩 싣고 거의 날다시피 달려 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레에 실린 물건들이 요동조차 없는 것으로 보아 내가 기공을 이용해 수레를 보호하고 있는 듯 햇다. 철무륵의 기척이 느껴지자 제일 먼저 눈을 반짝인 것은 설지였다.

"우와! 밥이다. 우리 밥먹고 해요"

설지가 막 눈을 뜬 소녀를 지켜 보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렇게 외치자 그제서야 수레의 기척을 눈치 챈 병자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이 본 것은 술 몇동이와 함께 갖가지 요리들이 잔뜩 실린 두개의 수레였다.

"우와! 철숙부, 무지하게 빠르다"
"크하하. 그렇지? 이 숙부가 등봉현에 있는 객잔 십여군데에서 한꺼번에 주문해서 가져온 것이란다."
"헤헤. 철숙부 멋져!"

두개의 수레에 실린 온갖 요리들을 내려 놓자 산문 앞은 졸지에 잔칫집 같은 풍경으로 변해 버렸다. 병자들을 비롯하여 소림사와 무당의 제자 가릴 것 없이 맨땅이지만 요리를 앞에 두고 앉은 모든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설지와 진소청, 그리고 초혜는 목을 부여 잡으며 한바탕의 화독 소동을 일으켜 좌중에 폭소를 나눠 주기도 했다.

그렇게 즐거운 야외 식사가 끝난 후 다시 병자들을 보기 위해 탁자로 다가가는 설지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가장 먼저 설지가 보여준 기적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선 중년 남자였다. 잠시지간의 노력으로 부축 없이도 느리지만 혼자서 걷게 된 중년 남자가 감격에 겨운 얼굴로 설지에게 다가 왔던 것이다. 하지만 감격에 겨운 얼굴 표정 한켠으로는 작지만 근심어린 표정이 함께 자리하고 있기도 했다.

"저기, 신녀님..."
"아! 아저씨, 식사 다 하셨어요?'
"예. 신녀님, 이 놈 배터지게 먹었습니다요"
"헤헤, 그러셨구나. 그런데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예, 그것이..."
"무슨 말씀이신데 그렇게 뜸을 들여요?"
"예. 그것이 치료비는..."
"아! 그건 걱정마세요. 공짜예요. 공짜!"
"아이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신녀님"


몸이 완치가 되어 비할데 없이 기뻤지만 막대한 치료비가 한편으로 걱정되던 중년 남자는 설지의 입에서 공짜라는 말이 흘러 나오자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시했다. 그런데 그런 중년 남자의 귀로 뜬금없는 설지의 말이 들려와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헤헤, 그런데 그거 어디 있어요?"
"예? 그거... 라니요?"
"아이 참, 아까 말씀하신 그거요. 흰뱀!"
"아! 그거 말씀이시군요.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헤헤, 제가 가서 한번 살펴보려고요"
"아이고, 안됩니다. 신녀님! 위험합니다."
"헤헤. 그런건 걱정마시고 장소나 알려주세요."

사실 설지가 이렇게 흰뱀을 거론하며 중년 남자가 떨어져 다쳤던 절벽의 위치를 알고자 하는 것은 적실영목 때문이었다. 중년 남자의 설명대로 라면 그가 보았다는 작은 나무는 흰뱀의 보호를 받고 있는 적실영목일 가능성이 컸다. 화기가 가득한 절대 영과인 적실영과를 백년마다 한번씩 맺는다는 적실영목은 태양이 강렬히 내리 쬐는 절벽에서만 자라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그런 적실영목이 백년에 걸쳐 키워 내는 적실영과는 음한지기나 사기를 물리치는데 특별한 효능이 있었다. 특히 북해 빙궁에서는 빙정을 복용할 때 반드시 적실영과와 함께 복용하여 음양의 조화를 맞춘다고 알려진 영과이기도 했다. 거기다 양강지공을 익힌 무인이 복용하면 한알의 적실영과로 일갑자의 공력을 늘릴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니 적실영목이 맞다면 이는 무가지보의 가치가 있는 영목인 셈이었다. 그리고 이런 적실영목에 열리는 적실영과는 영물에 가까운 흰뱀이 가장 좋아하는 열매이기도 했다.

"장소 알려드리는 것이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부디 조심하셔야 합니다.'
"헤헤. 걱정마세요"

"그러니까 그 장소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보자... 아! 그렇군 저기 산봉우리 보이시죠?"


중년 남자가 가리키는 곳에는 나무가 거의 자라지 않은 채 거무튀튀한 바위가 군데 군데 드러난 봉우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소실봉의 옆에 자리한 이 봉우리는 나무도 거의 없고 가파른 절벽으로 이어져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봉우리였다. 그런 봉우리의 중간 쯤을 가리키는 중년 남자의 손을 따라 시선을 봉우리에 고정한 설지의 눈은 기대감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한시진 후 십여명에 이르는 병자들을 모두 완치시켜 버리는 기적(?)의 의술을 발휘한 설지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급히 자리를 뜨더니 어디론가 황급히 달려 가기 시작했다. 그런 설지의 곁에는 영문을 몰라 하는 초혜와 진소청이 함께 하고 있었다.

"설지 언니! 지금 어디 가는거야?"

"저기 저 봉우리 보이지, 거기 가는거야"
"응? 거긴 갑자기 왜?"
"헤헤. 저 곳에 영목이 있대. 적실영목이"

"적실영목?"

"아! 적실영목!"

진소청의 감탄성을 들은 초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진소청을 향해 입을 열었다.
"청청 언니는 적실영목이 무언지 알아?"

"응! 적실영목은 백년에 한번씩 적실영과라는 귀한 열매가 열리는 나무야."
"음, 열매라고? 맛있는거야?"
"호호호, 맛있다기 보다는 약이라고 할 수 있어. 맞죠? 아가씨?"
"응! 청청 언니 말이 맞어, 적실영과는 화기를 가득 품고 있는 열매야"
"우와! 그럼 그거 무척 비싸겠다. 그치?"

천진난만한 초혜의 말을 끝으로 한참 동안을 달다리는데만 주력했던 일행들은 어느새 까마득한 바위 절벽으로 이루어진 봉우리 아래에 당도해 있었다. 절벽 아래에서 위를 올려 보는 설지와 진소청, 그리고 초혜의 눈은 적실영목을 향한 호기심으로 잔뜩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바라 보기에도 위태로운 까마득한 절벽은 쉽사리 사람의 발길을 허용할 것 같지 않았다.

"가만, 이거 너무 높은데... 어쩐다... 음"

그랬다. 허공답보를 이용하지 않는한 마땅히 손들어갈 틈도 없어 보이는 가파른 절벽을 오르기란 요원해 보였다. 결국 설지는 고심 끝에 진법을 이용해서 자연지기를 이용한 계단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그러자면 적실영목의 장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리고 이럴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용아였다.

"용아! 올라가서 적실영목을 찾아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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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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