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사가 자리하고 있는 숭산을 빠져 나가다 보면 등봉현으로 들어가는 초입 부근에서 1천평은 족히 넘어가는 제법 넓은 초지를 만날 수 있다. 예로 부터 소림사를 찾아 온 향화객들을 비롯하여 중원 각지의 무림 방파에서 소림사를 찾아 온 길손들이 여기 까지 타고 온 말들과 마차들을 묶어 두는 곳으로 애용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얼마전 부터 드넓은 초지는 커다란 천막 십여개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잠식당해 버렸다. 바로 성수의가가 이 곳에서 숙영하며 병자들을 살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설지 녀석은 오늘도 소림사에 올라 갔소?"
"예. 가가!"
"하하하!"
"갑자기 왜 그리 웃으십니까?"

"하하, 미안하오. 교매가 가가라고 부르는 소리가 너무 듣기 좋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구려."
"가가도 참"

천막과 천막 사이를 느긋하게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두 사람의 선남선녀는 다름아닌 성수신의 나운학과 성수의화 교혜린이었다.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며 걷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누가 보기에도 한폭의 그림 같았으며 함께 하기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병자들이 있는 천막들을 오가다 드문드문 담소를 나누던 두 사람의 평화로운 풍경이 깨어진 것은 갑자기 들이닥친(?) 설지 때문이었다.

가파른 절벽 위에서 적실영목을 채취하는데 성공한 설지와 일행들이 소림사의 산문에서 여기 까지 달려 내려 오는데는 한식경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숨을 가빠하지 않았다. 다만 경공을 모르는 원각 혼자만 죽을동 살동 하며 달려 내려 오다 산비탈을 몇번 구른 탓에 숨이 턱에 차 있을 뿐이었다. 한편 득달 같이 숙영지로 들어선 설지는 나운학의 모습을 발견하자 마자 비명 같은 괴성을 지르며 나운학의 품에 냉큼 안겨 들었다.

"숙부우우우우"
"어이쿠, 이 녀석아! 넘어지겠다."
"헤헤. 숙부님, 교언니, 다녀왔습니다아."
"그래, 그래. 그런데 오늘은 일찍 내려 왔구나?"
"응! 응! 무지하게 좋은 나무가 있어서 캐왔어"
"좋은 나무?"
"응, 응! 책에서 본게 맞다면 적실영목일거야"
"뭐? 적실영목이라고?"
"응, 응! 공각 아저씨, 분 이리 주세요."
"아미타불!"

공각이 조심스럽게 내미는 분에 심어진 적실영목을 보는 순간 나운학의 눈이 갑자기 커다랗게 변했다. 자신도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분명히 책에서 본 적실영목의 모습과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직한 경탄성과 함께 공각으로 부터 적실영목이 심어진 분을 건네 받은 나운학은 앵두와 흡사하게 생긴 빨간 열매 수십개가 조롱조롱 매달린 작은 나무를 다시 한번 세세하게 살펴 보기 시작했다. 틀림없었다. 나무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열매의 외양 등을 종합해 볼때 이 작은 나무는 분명히 적실영목이었다.

 

"이 귀한 나무를 어디서 채취한 것이냐?"

"응, 응! 저기 보이는 소실봉 옆에서 찾았어! 적실영목이 맞지? 그렇지?"

"그래. 틀림없는 것 같구나. 그렇지 않아도 음기가 강한 절맥증을 앓고 있는 소녀가 있어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네 덕분에 한시름 덜었구나. 잘했다. 가만! 이런 영목 곁에는 항시 영수가 지키고 있었을텐데 별일 없었더냐?"
"응, 응! 설아가 함께 있었는데 별일은 없었어"
"설아? 하하, 이름을 보니 하얀 영수인가 보구나?"
"응, 응. 맞아, 설아 나와서 숙부께 인사드려"

설지가 옆구리에 메고 있던 가방을 앞쪽으로 돌리며 이렇게 이야기 하자 잠시후 설지의 가방 속에서 작고 하얀 머리 하나가 쏘옥 올라 왔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붉은 색의 두 눈과 신비한 느낌 마저 들게 하는 청록 빛깔의 뿔 두개가 머리 좌우로 달려 있는 적안백린사였다.

"호! 그 놈은 적안백린사구나?"
"응, 응! 맞아. 내 가방 속에서 살기로 했어"
"그래. 반갑구나. 설아야."

 

나운학이 이렇게 이야기 하며 적안백린사의 머리 쪽으로 손을 가져 가 작은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그러자 기분이 좋아진 설아가 머리를 아래 위로 주억거리며 긴장을 스르르 풀었다. 인간과 영수의 대화를 미소 띤 얼굴로 지켜 보고 있던 설지도 설아의 그런 모습에서 괜히 흐뭇한 마음이 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설지야, 적실영목은 어떻게 간수하려느냐?"

"응, 응! 저기 저 마차 위에서 키울거야"

설지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마차는 공청석유가 실려 있어서 마차의 주변으로 개방의 거지들이 여기 저기에 널부러진채 감시하고 있는 마차였다. 지금 설지는 그 마차 위에서 적실영목을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공청석유 만큼은 아니었지만 영물임이 분명한 적실영목을 놓아두기에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했다. 마차의 지붕 위에서는 태양 빛을 늘 쪼일 수 있을 것이며 행여 누군가 적실영목을 노린다 해도 삼엄한 개방의 감시망이 이를 사전에 철저히 차단할 수 있으니 영물의 보관 장소로 숙영지에서 이만한 장소도 찾기 어려웠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그럼 이제 쉬거라"
"아니, 아니야. 다시 올라갈거야!"
"응? 내일 다시 가면 되지 않느냐?"
"아냐, 급하게 처리할게 한가지 있어"
"급하게 처리할거라니 그게 무엇이냐?"
"응, 응! 이건 비밀인데..."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설지의 모습에서 의아함을 느낀 나운학도 주변을 한번 돌아 본 후 설지에게 고개를 끄덕여 다음 말을 재촉했다. 주변에서 자신들의 말을 엿듣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탑림을 구경하다가 지하에서 만마관을 찾았어. 이거 봐. 이 비환도 거기에서 나온거야"

설지가 내민 오른 손목에는 고풍스러운 은색의 비환 하나가 채워져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물건이었다. 의문에 가득한 눈으로 나운학이 설지를 바라 보자 설지가 작은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 갔다.

"이 비환이 천마지존환이래. 천마 할아버지의 지존 신물이었다는데....."

설지의 긴 설명을 모두 듣고 난 나운학은 침중한 표정을 한 채 한참 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설지야! 아무래도 그 비환의 존재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야 할 것 같구나. 자칫하면 분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으니 가급적이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환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 밝히지 말도록 하거라"
"응, 응! 그건 나도 알아. 그러니 걱정하지마. 헤헤"
"훗, 녀석... 그래도 모르니 조심하거라"
"응! 응! 걱정 마, 걱정 마"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숙부의 손길에 기분이 좋아진 설지는 헤헤거리며 말을 마친 후 다시 걸음을 돌려 소림사가 있는 숭산 쪽을 향해 달음박질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설지와 초혜. 그리고 진소청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려 가 버리자 뒤에 남은 원각은 한숨을 한번 포옥 내쉰 후 설지가 사라져 간 방향을 원망스럽게 바라 보았다. 그런 후 마음을 다잡는 듯 두 주먹을 꼬옥 쥐더니 설지가 사라져간 방향을 따라서 원각도 달려 가기 시작했다. 원각이 만마관을 통해서 절대 고수가 되어 가는 과정의 첫걸음에 드는 순간이었다.

"숙부! 다녀올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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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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