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아! 왼발.... 앗! 아니다. 왼손, 왼손..."

설지의 입에서 다급하게 말이 흘러 나왔지만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기나 긴 만마관의 통로 어디 쯤에서 설지의 말에 따라 오른 손, 왼손 올려가며 느긋하게 전진하고 있던 호아는 설지의 안일한 대응에 기어코 왼쪽 벽에서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거무튀튀한 봉에 왼쪽  옆구리를 제대로 가격당하고 말았다.

"켕..."

 

비명 비슷한 이상한 소음을 입으로 뱉어 내었던 호아는 자신의 옆구리를 가격하고 어느 틈에 원래 자리로 복귀해 버린 단단한 봉이 자리하고 있을 위치를 가늠해 보고는 그 곳을 향해 짜증섞인 사나운 눈초리를 날려 보냈다. 그런 후 설지가 있는 뒷쪽으로도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실수하면 안할거야'라는 의미가 담긴 사나운 눈초리를 설지에게 날려 보냈다.

"아하하하! 미안, 미안해! 안 아프지? 아픈거야? 헤헤"

지금 설지와 진소청, 그리고 초혜가 있는 곳은 만마관의 서른 두번째 관문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휴식 공간이었다. 지난 열흘 사이에 만마관의 서른 두번째 관문을 모두 돌파한 호아와 설지 등은 이른 아침 부터 서른 세번째 관문의 입구에 도착하여 관문 돌파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동안 소림에서는 호아와 설지가 돌파한 각 관문 마다 새롭게 안전 장치를 추가하느라 눈코 뜰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덕분에 소림사는 어제 저녁 무렵에 만마관의 서른 두번째 관문 까지 안전 장치를 모두 끝낼 수 있었다. 언제든지 원할때면 기관 장치의 동작을 멈추거나 가동시킬 수 있는 체계를 완벽하게 갖춘 것이다. 이제 소림은 소림사의 무공에 특화된 막강한 관문을 갖춘 수련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른바 소림 삼십육관의 시작이었다.

한편 설지는 오늘 중으로 관문 돌파를 모두 끝내 버리기 위해 이른 아침 부터 서두른 끝에 사시가 되기 바로 직전에 일행들과 함께 만마관에 당도하여 호아를 만마관의 통로에 밀어 넣을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서두르다 보니 조금 전과 같은 실수가 벌어진 것이다.

"이제 조심할께, 헤헤"

아마도 뒷통수에도 표정이 있다면 지금 호아의 뒷통수는 툴툴거리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뒷통수를 통해서 툴툴거리는 듯 한 표정을 지어 보인 호아는 작게 한숨을 포옥하고 내쉰후 다시 설지의 명령(?)에 따라 한발 한발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그리고 그런 호아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설지의 호명에서 조금 전과 같은 실수는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응? 이상하다"
"왜 그래? 설지 언니!"
"여기 말이야, 마지막 관문 같은데 조금 이상해"
"응? 이상하다고? 뭐가?"

초혜와 말을 나누는 설지가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 보고 있는 곳은 기이한 문양들이 잔뜩 벽에 그려진 서른 여섯번째 관문의 시작 지점이었다. 한번의 실수 이후 호아를 앞세워 거침 없이 서른 다섯번째 관문 까지 모두 돌파해 버린 설지는 마지막 하나의 관문만을 남겨 놓고 예상치도 못했던 의외의 상황과 부닥치자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상념에 잠겨 들었다.

여턔 까지의 모든 관문은 관문 도전자가 통로에 발을 들여 놓은 뒤 관문 마다 정해진 소림사의 무공을 시전하면서 기관 장치와 비무하는 형식을 취해 관문 돌파를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설지가 살펴 본 마지막 관문이라고 예상 되는 서른 여섯번째 관문은 이전 까지 와는 완전히 다르게 천장과 양벽은 물론이고 통로 바닥에도 무수한 기관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즉, 날카로운 도검을 비롯한 창과 봉등의 셀 수 없는 병장기가 통로의 상하좌우 모든 부분에서 숨겨진 채 빼곡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턱대고 통로에 들어섰다가는 꼬치가 되기 십상이었다. 물론 호아의 입장에서야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겠지만 말이다.


"흠! 어쩐다? 아래 위로 모두 기관 장치가 숨겨져 있으니... 날아가야 되나? 응? 날아가?"

갑자기 양손바닥을 짝하고 마주 친 설지가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맞아! 바로 그거였어. 헤헤헤"
"응? 설지 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초헤의 질문을 받은 설지가 초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 이 관문은 통로의 상하좌우에 각종 병장기가 빼곡히 숨겨진 채 독아를 숨기고 있어서 이전 관문들 처럼 걸어서는 통과하지 못할 것 같아'
"그럼, 어떻게 해?"
"그러니까 날아서 가면 되는거지"
"응? 날아간다고... 어떻게?"
"헤헤, 우리가 장경각에서 봤던 것 기억나지? 무지하게 우아한 모습으로 날아갈 수 있는 신법말이야"
"아! 그거, 연, 연대.... 뭐더라?"
"헤헤, 녀석 연대구품이잖아 연대구품!"
"맞다. 연대구품, 근데 그거 소림사에서도 익힌 스님이 없다고 안 그랬어?"
"맞아, 방장 할아버지가 그랬지. 너무 어려운 신법이라서 거의 실전되었다고..."
"그럼 어떻게 할려구?"
"걱정마, 걱정마, 이 언니가 누구야? 바로 성수신녀야, 성수신녀.. 크헤헤"

방정맞은 웃음으로 대화를 마무리 한 설지가 다시금 심각한 표정으로 상념에 빠져 들었다. 그런데 장경각에서 보았던 연대구품의 구결을 머리 속으로 떠올리며 한참 동안을 생각에 잠겨 있는 설지의 발 밑으로 어느 순간 부터 뿌연 색의 유형화된 기류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류는 어느 사이엔가 마치 연꽃 같은 형태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설지의 무릎 바로 아래 까지를 완전히 감싸 버렸다.

그런 설지의 모습은 마치 구름으로 만들어진 연꽃 속에 서있는 관세음보살의 모습 처럼 보였다. 세 소녀의 몇걸음 뒤에서 이를 지켜 보고 있던 원각의 입에서는 경악성과 동시에 불호가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오고 있었다.

"아,아미타불!"

하지만 원각의 경악성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기류로 만들어진 연꽃 위에 서있는 듯 하던 설지의 몸이 갑자기 그 자리에서 한자 정도 허공으로 둥실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날아가기 시작한 설지는 어느 사이엔가 서른 여섯번째 통로로 들어 서고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날아가는 그 모습은 설지의 말대로 우아하고 고귀하게 보였다. 너무 어려워서 거의 실전되다시피한 소림사의 최상승 신법인 연대구품이 이제 겨우 열살이 된 소녀에게서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통로에 들어 선 설지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날아간 설지는 채 일다경이 지나기도 전에 만마관의 마지막 관문이 끝나는 지점에 당도하고 있었다. 그런 설지의 뒤를 따르는 호아는 연대구품이 아닌 허공답보를 펼쳐서 허공을 조용히 걸어가고 있었다. 이런 둘의 모습을 눈이 찢어질듯이 지켜 보고 있던 원각은 심호흡 몇번으로 몸을 추스른 후 재빠른 걸음으로 들어 왔던 통로를 뒤돌아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설지가 지금 시전한 연대구품이라는 신법에 대해서 방장 스님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원각의 걸음은 만마관의 반도 지나치지 못하고 멈춰서야 했다. 소림사의 방장 스님인 혜공 대사와 그의 사제인 혜명 대사가 다른 일행 서넛과 함께 기관이 멈춰진 만마관의 통로를 따라 들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일성 도장과 철무륵을 대동하고 만마관의 통로를 따라 들어 오던 혜공 대사는 설지 곁에 붙여 둔 원각이 헐레벌떡 달려오자 눈빛에 이채를 머금으며 조용히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원각이 자신의 앞에 와서 숨을 고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 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아,아미타불! 예. 방장 스님, 다른게 아니오라 소공녀 께서 방금 여,연대구품을...."

가쁜 숨을 고르고 어렵게 말을 이었던 원각은 말을 채 끝마칠 수 없었다. 원각의 입에서 연대구품이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마자 혜공 대사와 혜명 대사가 앞뒤 가리지 않고 신법을 발휘해 순식간에 안쪽으로 사라져 가버린 것이다. 그렇게 두사람이 사라지는 뒷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원각은 뒤늦게 자신이 달려 나온 통로 쪽을 주시하고 있는 또 다른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멋쩍게 미소를 지으며 나직히 불호를 외워야 했다.

"어르신! 방금 연대구품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제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지요?"

"허허, 나도 그렇게 들었다네. 설지 이 놈이 또 다시 사고를 치려나 본데 어서 가보세"
"크하하, 사고라... 그러지요. 제가 앞장 서겠습니다."

호탕한 웃음 소리와 함께 철무륵이 신형을 날리자 일성도장 역시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려 사라져 갔다. 그런 두 사람을 지켜 보고 있던 원각은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며 코를 훌쩍거리더니 네 사람이 사라져간 만마관의 통로를 따라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 갔다.

한편 만마관의 마지막 지점에 당도한 설지는 연대구품을 풀지 않은 채 사방을 천천히 휘돌아 본 후 조심스럽게 바닥으로 내려섰다. 서른 여섯개의 관문을 모두 돌파했지만 혹시나 미처 파악하지못한 다른 장애가 있을까 저어한 것이었다. 하지만 주위를 살펴보며 막 한 걸음을 내딛은 설지는 이내 긴장을 풀어버렸다. 예상과는 달리 아무런 장애도 감지되지 않았던 것이다.

설지의 뒤를 따라서 바닥으로 내려선 호아 역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뭐 신기한 것이 없는지 찾고 있었다. 하지만 호아의 기대와는 달리 만마관의 마지막 관문이 끝난 자리에는 천마지존환이 놓여 있던 좌대 하나만 자리하고 있을 뿐 그 흔한 서찰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만마관을 누가 만들었던지 간에 후대를 위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장내의 모습에 실망한 호아가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드러 눕는 사이에 설지는 만마관의 마지막 관문이 끝나는 공간 여기 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며 살펴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설지의 눈에도 호아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단지 연대구품으로 통과해 온 마지막 관문을 멈추는 장치 하나만을 찾아 냈을 뿐이었다.

"칫! 뭐 이래, 아무 것도 없잖아, 아우, 씨! 괜히 들어온 것 같애, 보물이라도 한가득 찾을 줄 알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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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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