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청 언니, 마구 마구 패줘!"

설지에 이어 초혜가 이렇게 맹랑한 응원을 펼치자 이를 지켜 보고 있던 귀혈쌍사의 사형이라는 작자는 머리 꼭지가 거꾸로 돌 정도로 분기탱천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손쓸 필요도 없이 함께 대동한 혈강시만으로도 별로 어렵지 않게 제거해 버릴 것으로 짐작했던 나이 어린 계집에게 어이없이 왼쪽 팔 하나를 잃어버리데다 자신들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은 설지와 일행들의 행동이 자신의 화를 더욱 돋구었던 것이다.

이에 사형이라는 작자가 일갈을 내뱉으며 앞뒤 가리지 않고 바위 위에 나란히 쪼르르 앉아 있는 관중(?)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자신의 이런 행동에도 불구하고 지켜 보고 있는 어린 계집년 둘이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귀혈쌍사의 사형은 내심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강호 경험이 일천하다 보니 뭣 모르고 까불고 있는 것이리라. 당연히 손속에 사정을 둘 이유가 없었던 귀혈쌍사의 사형은 그저 멍청하게 자신을 바라 보고만 있는 어린 계집년들을 일장에 처죽이기 위해 모든 내력을 오른 손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분기에 찬 장력을 막 뿌리려는 순간이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히 일장을 뿌리려고 마음먹었으며 그에 따른 진기 운용 역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장을 막 떨쳐내려는 그 순간 어찌된 일인지 자신의 오른손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허공의 한 지점에서 딱 굳어 버린 것이었다. 더불어 자신의 몸도 마치 마혈을 제압당한 것 처럼 달려 나가던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심히 당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린채 지금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는 귀혈쌍사의 사형은 눈알을 또르르 굴리며 자신의 몸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행여나 자신의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고 덜컥 겁이났던 것이다. 하지만 몸만 움직일 수 없을 뿐 진기 운용이라던가 기혈의 흐름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몸이 이렇게 되기 직전에 평소와 달리 이상한 것이 있었다면 바위 위에 걸터 앉아서 자신들을 경극 속의 배우 처럼 바라보던 어린 계집년 중의 하나가 이상한 손동작을 취했다는 것 뿐이었다. 여기 까지 생각이 미치자 귀혈쌍사의 사형은 설마 하는 생각으로 바위 위에 걸터 앉은 문제의 그 어린 계집을 향해 눈알을 또르르 굴렸다.

"설지 언니! 근데 그거 아무반응이 없어?"
"응? 뭐 말이니?"
"비환말이야."

초혜가 자신의 손목을 가리키며 말을 하자 그제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설지가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이거! 반응이 없네. 아마도 혈강시와 저기 두 할아버지들이 마기가 아닌 사기를 지니고 있어서 그런가 봐"
"햐! 진짜 신기하네. 그렇지? 설지 언니"
"호호. 네 말이 맞는것 같구나"
"근데 청청 언니는 괜찮을까?"
"괜찮을거야. 청청 언닌 태극혜검을 극성으로 익혔잖아. 아마 모르긴 몰라도 현강호의 무인 중에서 청청 언니를 쉽게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걸"
"그치만 저기 혈강시들은 사람이 아니잖아"
"마찬가지야. 도검불침이라고 해도 태극혜검으로 두들기다 보면 결국엔 파괴 될거야"
"그럼 태극권으로도 그게 가능해?"
"흠, 보자. 태극권이라... 아마 가능할거야. 하지만 태극권으로 혈강시를 제압하려면 권강을 사용해야 할거야"
"권강까지? 우와. 그럼 저 혈강시들이 거의 무적이라는 이야기잖아'
"그런 것 같애. 지금 보니 조문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지난 십년간 많은 개량을 했나 봐"
"그렇구나. 흐, 무시무시한 놈들일세"

제법 연륜있는 노강호 처럼 이야기하는 초혜의 마지막 말에 풀썩하고 웃음을 터트린 설지가 자신이 자연지기를 이용하여 제압해 놓은 귀혈쌍사의 사형을 힐끗 한번 바라 본 후 다시 진소청과 혈강시들의 격전장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순간 설지와 초혜는 볼 수 있었다. 싸늘한 예기를 뿌리는 한자루 검이 허공을 가르며 아름답게 혈강시들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그리고 이어지는 폭음 비슷한 소리, 하지만 그런 우아하고 아름다운 진소청의 검도 혈강시들을 당장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선연한 태극 문양을 그리며 나아간 진소청의 검이 혈강시 네구의 몸을 거의 동시에 가르고 지나갔지만 검에 격중당한 강시들은 걸친 옷만 누더기가 되었을 뿐 의복 아래의 몸은 의외로 말짱했던 것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삼성을 주입한 태극혜검으로 혈강시 네구를 두들겨 보았던 진소청은 자신의 예상과 달리 삼성의 태극헤검으로도 혈강시들에게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하자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 검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그때 부터 화려한 태극혜검의 검무가 펼쳐졌다.

보는 이의 눈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한 너무도 아름다운 춤사위 같은 태극혜검이 진소청의 손에서 칠성의 내력으로 펼쳐지자 삼성의 위력에도 끄덕없었던 혈강시들의 신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진소청의 사방을 점하고 공격을 가하고 있던 가장 앞쪽의 혈강시 네구의 전신을 진소청의 태극헤검이 스치듯 지나가자 이내 혈강시의 전신으로 가느다란 실금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순간 가느다랗게 생겨나기 시작했던 실금이 혈강시의 몸을 산산조각으로 터트려 버렸다.


"우와! 청청 언니, 좀 잔인하지만 너무 멋져"
"꺄악! 청청 언니 너무 멋있어"

호들갑스럽게 터져 나오는 초혜와 설지의 감탄성을 들은 진소청이 입가에 작은 미소를 떠올리고는 나머지 혈강시들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편,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눈 앞에 보이는 어린 계집년에게 제압당한 귀혈쌍사의 사형은 설지와 초혜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내심으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태극헤검이라니? 그리고 한번 보는 것만으로 혈강시에게 조문이 없다는 것을 파악할 정도의 고수가 눈 앞의 어린 계집이라니?  

자신의 짐작이 맞다면 이 어리게 보이는 계집년들 중에서 최소한 두명은 분명히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엄청난 고수라는 소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혈강시 열두구로 이 어린 계집년들을 어떻게 해보려고 했던 자신들과 혈교의 밀명은 헛된 망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런 그의 생각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진소청의 태극혜검은 열두구의 혈강시 중에서 막 여덟구를 파괴하고 나머지 네구의 혈강시를 향해 짓쳐가고 잇었다.. 

"꺄아악! 잔인해, 그래도 멋져."
"청청 언니, 멋져'

짤랑짤랑한 음성으로 혈강시를 상대하는 진소청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는 설지와 초혜의 목소리가 엄청난 광경에 혼이 나간 듯 놀라 버린 자신의 귀를 두들기자 그때 까지 멍청한 눈빛으로 장내를 주시하던 귀혈쌍사의 사제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의 사형을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발견한 사형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자신의 사형은 왜 저기서 저런 이상한 자세로 서있는 것인가? 모든게 혼란스러웠다. 

무적이라고 단언했던 혈교의 혈강시가 그 짧은 시간에 여덟구나 파괴되는 장면을 눈 앞에서 목격하고 나니 심장이 쿵하고 내려 앉은 귀혈쌍사의 사제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눈 앞에서 펼쳐지는 일들이 마치 실제가 아닌 듯한 괴리감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이어서 들려 오는 둔탁함 소음들은 자신의 이런 생각이 부질없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귀를 침범한 둔탁한 소음 이후 장내는 언제 시끄러웠냐는 듯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런 고요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방정맞은 어린 계집년들의 호들갑이 고요를 깨트려 버린 것이다.

"우와! 이겼다."
"이야! 청청 언니가 해냈어"

허탈했다. 무적의 혈강시를 대동하고 중원 천하를 누비며 각대문파를 복속시키는 일에 앞장서는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하던 귀혈쌍사의 사제는 이 순간 자신의 모든 꿈이 무너진 것에 너무도 허탈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조문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도검불침이라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검기나 검강을 만나지 않는다면 가히 절대무적이라고 까지 이야기 했다. 하지만 이런 모든 호언장담도 저 어린 계집년의 검 앞에서는 너무도 무력했다.

무슨 무공으로 혈강시를 산산히 파괴했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어린 계집년의 검에서 강기나 검강은 발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순수한 무공만으로 혈강시가 파괴되었다는 것은 어린 게집년의 무공이 이미 극의에 도달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 까지 생각한 귀혈쌍사의 사제는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떤 후 황급히 장내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공을 시전하려 했다. 자신이 벗어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사형도 장내를 벗어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순간 조금 떨어진 바위 위에 앉아 있던 어린 계집년이 이상한 손 동작을 취하는 것이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몸이 그대로 굳어 버리자 혼비백산한 귀혈쌍사의 사제는 사형이 그랬던 것 처럼 자신의 몸 내부를 살펴 보기 시작했다. 이상이 없었다. 그제서야 자신의 사형이 왜 저런 이상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제압당한 것이었다. 자신 처럼 자신의 사형도 무슨 수법에 당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저런 이상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에 놀란 가슴을 다독인 귀혈쌍사의 사제가 입을 열어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다. 하지만 입을 열수가 없었다. 아혈이 제압당한 것은 분명 아닐진데 입을 벙긋 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청청 언니! 수고했어"
"아니예요. 아가씨. 공연히 제가 나서서 아가씨 눈만 더립힌 것이 아닌가 싶어 죄송해요."
"아냐. 아냐. 청청 언니, 정말 멋졌어. 그렇지? 혜아!"
"응, 맞아. 청청 언니, 태극혜검 정말 멋졌어. 헤헤"
"호호, 녀석, 고마워"
"자, 이제 장내 정리를 좀 해볼까"

 

말을 마친 설지가 바위 위에서 폴짝 뛰어 내리자 설지 옆으로 나란히 앉아 있던 호아와 백아도 뒤 따라서 바위 위에서 내려 섰다. 

"설지 아가씨! 이 놈들은 어떻게 할까요?"

"흠, 보자. 어떻게 한다. 죽일 수도 없고..."

이 순간 제압당한 귀혈쌍사의 등뒤로 식은 땀 한줄기가 등을 타고 쭈욱 흘러 내렸다. 온갖 사악한 짓을 다 하고 다녔던 나쁜 놈들이었지만 막상 자신들의 죽음이 눈 앞에서 거론됨에야 담담하게 그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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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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