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식은 땀을 흘리며 설지의 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귀혈쌍사의 둘째는 한순간 자신의 눈 앞으로 무언가 다가 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게 설지의 간단한 손 동작 하나에 제압당해 버렸지만 자신은 강호상에 악명이 자자한 귀혈쌍사의 일인이 아니던가? 더불어 온갖 사악한 짓거리란 짓거리는 모두 하고 다니며 수틀리면 거리낌 없이 상대의 목을 댕강 잘라 버리는 일도 서슴치 않았던 고수가 또한 바로 자신이 아니던가? 그런 고수의 기감이 비록 제압당해 있다고는 하나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물체를 놓칠리 없었다.

머리에서 종소리가 날 정도로 염두를 굴리고 있던 귀혈쌍사의 둘째는 자신에게 다가 오는 물체를 확인하기 위해 머리 못지 않게 전방을 주시하며 데굴 데굴 굴러 다니게 만들었던 눈알을 돌려 다가 오는 물체를 향해 고정시켰다. 그러자 그런 둘째의 눈에 잡힌 것은 서서히 허공을 날아 자신에게 다가오는 작고 하얀 뱀이었다. 붉은 눈과 머리 앞쪽에 기이한 청록색을 띠고 있는 뿔 두개가 달려있는 설아였다.

설지가 갑작스럽게 앉아 있던 바위 위에서 뛰어 내리는 바람에 자신의 보금자리인 가방 속으로 미처 들어 가지 못한 설아가 뚱한 표정으로 모든 사건의 원흉인 귀혈쌍사를 향해 날아서 다가 가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설아의 의도는 자신의 휴식을 방해하고 몸소 귀찮은 구경을 하게 만들었던 귀혈쌍사 둘을 한번씩 꽉 물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먹고 귀혈쌍사를 향해 날아서 다가 가던 설아는 도중에 이상하게 자신의 마음을 자꾸만 잡아 끄는 물체 하나가 귀혈쌍사의 둘째 발 밑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귀혈쌍사 보다는 그 물체에 더 호기심을 느껴 둘째 쪽을 향해 다가 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가선 설아가 사제의 눈 바로 앞 허공에서 반자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서서 뿔달린 작은 머리를 모로 꼬며 뚱한 표정으로 둘째의 눈을 매섭게 한번 노려본 후 방향을 바꿔 둘째의 발 밑으로 날아내렸다. 그렇게 설아가 날아 내린 곳에는 귀혈쌍사의 둘째가 미처 수습하지 못하고 떨어트린 작고 예쁜 종 하나가 거무튀튀한 빛을 드러내며 설아를 유혹하고 있었다. 사기가 짙게 흘러 나오는 그 작은 종은 설아가 설지의 가방 속에서 발견하고 한켠에 곱게 모셔둔 자신의 수집품(?)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작은 종은 십년전 설지가 처음 강호로 나왔을 때 일행을 공격했었던 강시 무리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습득한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처음 그 종을 주워 들었던 설지는 작고 예쁜 종의 모습에 경탄을 터트리기도 했었으나 그때 뿐이었다. 습득한 종을 가방 속에 아무렇게나 던져 두었던 설지는 이내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적실영목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만난 설아가 설지의 가방 속에 둥지를 틀면서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물건을 정리하다 사기가 짙게 흘러 나오는 작은 종을 발견하였으며 그때 부터 작은 종은 설아의 수집품으로 가방 한켠에 곱게 자리하게 된 것이다.

적실영과 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아래 정도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작은 종을 또 하나 발견한 설아의 붉은 눈은 이 순간 기쁨으로 요요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요요한 기운을 가득 뿜어내며 즐거워 하던 설아가 일순간 작은 종을 향해 날카로운 독아를 드러내는가 싶더니 단숨에 종의 손잡이 부분을 덥썩 물고서 다시 날아 올라 설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한편 귀혈쌍사의 처리를 두고 고심하던 설지는 설아가 무언가를 물고 자신에게 다가 오자 하던 생각을 멈추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자 옆에서 함께 걷고 있던 초혜도 걸음을 멈추고 작은 종을 물고 날아오는 설아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응? 설아, 그게 뭐니?"
"어! 언니 저거 작은 종 같은데..."

그렇게 두 사람이 말을 주고 받는 사이 설지의 손 앞 까지 날아 온 설아가 입에 물고 있던 종을 설지의 손에 가만히 내려 놓으며 '나 이거 가져도 돼'라는 간절하고 강렬한 눈빛을 설지에게 쏘아 보내기 시작했다.

"어머! 귀여운 종이네... 가만, 이거 예전에 한번 본.... 아! 강시를 조종하는데 쓰는 소리안나는 고장난 종이구나"
"엉? 고장난 종이라고? 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거 마혼령 같은데?"
"어라! 그러고 보니 혜아는 기억력도 좋네. 십년전의 일을 아직도 잊어 버리지 않고 있다니"
"그걸 어떻게 잊어 버려. 그때 얼마나 무서웠는데.."
"호호호. 그건 그렇지"
"아가씨. 아무래도 설아가 그 마혼령이 마음에 드는가 봐요"

"그러게. 설아 요녀석이 적실영과 외에도 흥미를 느끼는게 있다니 신기하네. 그것도 이런 귀물에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설지가 귀엽다는 듯 설아의 작은 머리를 오른손 검지로 톡하고 건드렸다.

"그래. 이거 설아 가져. 전에 주웠던 마혼령도 잘 가지고 있지?"

설지가 이렇게 말하자 요요로운 기운이 가득한 붉은 눈을 한 설아가 작은 머리를 아래 위로 주억거렸다. 그러더니 다시 마혼령을 입에 물고 날아 올라 설지의 가방 안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잠시 동안 가방 안이 들썩이는 것 같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설아가 마혼령 두개를 갈무리 하면서 가방 속을 들쑤셨던 것이다. 마혼령을 갈무리한 설아가 잠잠해지는 것과 동시에 설지는 제압해두었던 귀혈쌍사를 향해 시선을 돌리더니 진소청을 향해 입을 열었다.


"청청 언니! 어떻게 할까?"
"음. 글쎄요. 일단 폐맥하시고 무당에 도움을 요청하시죠. 우리가 압송해 갈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이목을 너무 끌것 같은데요"
"맞아. 설지 언니. 우리 처럼 예쁜 여인들이 이런 흉악한 사람들을 끌고 가는 것은 보기가 영 좋지 않아. 암 그렇고 말고"

양손을 뒤로 모아 뒷짐을 진 초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하자 진소청과 설지는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초혜의 모습이 무척 귀여웠던 것이다.

"청청 언니 말대로 하는게 좋겠다. 무당파에 도움을 요청해야겠어. 비아! 이리 내려와"

결론을 내린 설지가 자신의 머리 위 상공에서 유유히 선회 비행을 하고 있던 비아를 외쳐 불렀다. 그러자 한가로이 비행을 즐기고 있던 비아가 시위를 떠난 화살 처럼 빠른 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설지와 일행들의 앞으로 날아 내렸다. 예의 먼지와 함께...

 

"에퉤퉤. 비아! 이 녀석 좀 얌전히 내릴 수 없어?" 

설지가 입안 가득 침범한 먼지를 뱉어내며 툴툴거려 보았지만 비아는 설지의 그런 기색에는 아랑 곳 없이 설지의 다리 쪽을 향해  종종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말똥거리는 눈망울로 설지를 올려다 보기에 바빴다.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풋하고 웃음을 터트린 설지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비아에게 말을 걸었다.

"비아! 너 무당산이 어디있는지 알아?"

잠시 설지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거리던 비아가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무당산에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비아로써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설지가 공청석유를 먹여 가며 정성 들여 키운 덕분에 영성이 영수에 못지 않게 발달한 비아였지만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찾아갈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비아의 반응에 난감한 표정을 떠 올리던 설지의 고민을 풀어준 것은 용아였다.

-무당산은 내가 알아.-
"엉? 용아가 무당산을 안다고?"
-그래. 그러니 내가 저녀석을 데리고 무당산을 다녀 오도록 하지.-
"호호. 그러면 되겠네"
"설지 언니, 왜 그래?"
"응? 아! 용아가 비아를 데리고 무당산엘 다녀 오겠데"
"우와! 용아랑 비아가 함께 간다면 무척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러게. 아마도 무당에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아. 그럼, 준비하자. 아! 청청 언니는 그자들의 단전을 폐맥해 줘. 부탁해"
'예. 아가씨. 걱정마세요. 두번 다시 내공을 쓰지 못할 겁니다"

서늘한 냉기를 풀풀 날리며 진소청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 오자 귀혈쌍사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무어라고 고래 고래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아혈 마저 제압당한 처지라 그 마저도 불가능했다. 그런 귀혈쌍사에게 다가간 진소청은 먼저 사형이라고 불렸던 첫째의 단전 부근에 장심을 가져다 대고 진기를 불어 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첫째의 안면은 고통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단전을 갈갈이 찟는 것 같은 아픔에 더해 그동안 축기했던 내공이 모조리 소실되면서 한순간에 허탈한 무력감이 귀혈쌍사의 첫째에게 몰아 닥친 것이다.

이윽고 장심을 뗀 진소청은 품에서 침통을 꺼내더니 다시 첫째의 단전 부근으로 향하는 주요 대혈 몇 군데를 향해 빠른 손놀림으로 시침하기 시작했다. 기다란 장침을 이용한 시침에 의해 순식간에 이루어진 진소청의 폐맥 작업으로 그동안 악명을 떨치던 귀혈쌍사 중 하나의 무공이 강호에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같은 방식으로 둘째라는 자의 폐맥 작업 까지 마친 후 침통을 수습한 진소청이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눈에 입김을 후후 불어 가며 무언가를 가득 적어 놓은 종이의 먹물을 말리는 설지의 모습이 비쳐 들었다.

"청청 언니! 다 했어?"
"예. 아가씨. 이제 이 놈들은 두번 다시 내공을 사용하지 못할거예요."
"그럼. 제압한 몸을 풀어 주기 전에 혜아가 저자들을 꽁꽁 묶어"
"알았어. 설지 언니"

양쪽 소매를 걷어 올리며 씩씩하게 대답한 초혜가 자신의 애마에게 다가가 밧줄을 가져 온 후 귀혈쌍사를 묶는 사이 먹물을 다 말린 설지가 서신을 가죽 주머니에 넣고는 비아의 다리에 단단히 묶어 주었다. 그리고 용아를 비아의 등에 내려 놓아 주자 비아가 힘차게 날개 짓을 하여 다시 먼지를 가득 피워 올리더니 하늘 저편으로 날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켜 보는 이들의 시선에서 비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 까지는 촌각에 불과한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설지 언니! 이 할아버지들 다 묶었어"
"그래? 수고했어"

그렇게 말한 설지가 허공을 향해 손짓을 한번 하자 이때 까지 꼼짝도 할 수 없었던 귀혈쌍사의 몸이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물론 초혜에 의해 묶인채였지만 말이다. 한편 제압당해 있던 몸이 비로소 자유를 찾자 귀혈쌍사는 억눌린 감정을 토해내듯 커다란 음성으로 거의 동시에 욕설과 함께 장광설을 내뱉었다.

"크윽. 이 년들, 네 년들이 이러고도 성수의가 라고 말할 수 있느냐?"
"이런 빌어먹을 년들, 차라리 우릴 죽여라"

하지만 이런 두사람의 분루에 찬 장광설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듣고 있던 진소청이 눈쌀을 찌푸리며 아혈을 제압해 버렸던 것이다.

"자! 그럼. 비아도 출발했으니 우리도 여기 강시들의 시신은 묻어 주고 출발하기로 해"
"예. 아가씨. 준비하겠습니다."

"청청 언니! 땅 파는건 내가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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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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